요한복음 2장 예수님 말씀은 예수님이 가나에 가셔서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이적을 베풀어 주셨다.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면서 첫 번째 기적을 행하셨다.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혼주가 수치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의미다. 예수님을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앞으로 있을 구속의 사역을 예표 했다.
Ⅰ. 첫 기적 2:1-11
이 이야기는 갈릴리 가나의 한 혼인 잔치에서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기적에 관한 이야기다. 기적이란 그리스도의 교훈에 대한 신성하며 장엄한 표증으로서, 예수께서는 이전에도 기적들을 베풀 수 있으셨지만, 전파하기 전까지는 결코 베푸시지 않으셨다.
1. 기적의 배경(1,2)
마이모니데스(Maimonides)는, 모세가 광야에서 행했던 모든 표적은 필요에 따라 행해진 것이라는 사실이 모세에게 영예가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음식이 필요할 때 모세는 우리에게 만나를 주었다. 그리고 그리스도 역시 그러했다.
(1) 시기 : 사흘 되던 날. 예수께서는 갈릴리로 가셨다. 복음서 기자는 사건 일지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의 종들보다 훨씬 잘 자신의 시간을 사용하셨으며, 밤이 되었을 때 하루를 낭비했다는 말이 결코 나오지 않도록 하셨다.
(2) 장소 : 그 장소는 갈릴리 가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스라엘의 한쪽 구석에 가셔서 기적을 행하시기 시작하셨다. 솔직하고 정직한 갈릴리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기적들을 대적했다.
(3) 사건의 배경 : 배경은 혼인이었다. 예수의 어머니도 그곳에 계셨다고 한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는 혼인식에 영광을 더해 주시며, 그가 결혼식에 함께 하심으로써만 아니라 첫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결혼의 장엄함을 한층 아름답게 하셨다. 혼인에는 결혼 축하연이 있어 결혼의 장엄함을 한층 더해 주었다. 결혼은 항상 축제로 경축되었다.
(4) 주빈 : 그리스도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이 잔치의 주빈들이었다.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2절).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그는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예수께서는 청함을 받고 오셔서 그들과 함께 대접을 받았다. 결혼 예식이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거기에 참석해 계시다는 사실, 즉 참석하셔서 결혼을 주재하시고 축복하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바랄만한 일인가! 실로 그러한 결혼식은 자랑할만한 것이다. 결혼 예식을 거행할 때 그리스도께서 그 결혼 예식에 함께 하시길 원하는 사람들은 기도로 그리스도를 청해 모셔야 한다. 기도는 그리스도를 모셔 오기 위해 하늘로 심부름을 가는 사자이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는 오실 것이다. 그리고 물을 포도주로 바꾸실 것이다. 그의 제자들 역시 청함을 받았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돌보심 아래 자기들을 맡겼으며, 그리스도께서 결코 부자가 아니셨지만, 훌륭한 친구들과 사귀고 있음을 곧 알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와 함께 잔치에 참여할 것이며 그가 마시는 것을 마시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은 그의 제자들에 대한 사랑에 의해 입증되는 것이다.
2. 기적(3-10)
(1) 그들에게 포도주가 부족한지라(3절). 잔치에 결핍이 생긴 것이다. 많은 것을 준비했었을테지만 다 써 버렸던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지내는 동안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충분히 준비해 놓았다고 생각할지라도 몹시 어려운 곤경에 빠지곤 한다. 만일 항상 쓰고만 있다면 우리가 깨닫기도 전에 모두 다 써 버리게 될 것이다. 거기 결혼식 연회에 모자라는 것이 있었다.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은 이 포도주가 모자랄 때 거기 계셨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필요하여 어쩔줄 모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까닭에 손해 보지 않을 것이다.
(2) 예수의 어머니께서 그녀의 친구들을 도와주라고 그리스도께 권유하였다. 여기에 그리스도와 그 모친 사이에 오간 내용에 대해 쓰여 있다(3-5절).
1) 예수의 모친께서는 그 사람들이 곤란한 지경에 처해 있음을 알려 주었다(3절).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하니. 혹자는 생각하기를(여지껏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신 일이 없기 때문에) 그 모친이 그에게서 어떤 기적적인 지원을 받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의 어머니가 기적을 원했음이 더욱 신빙성이 있다.
신랑은 더 많은 포도주를 구해 보라고 사람을 보냈을 테지만 예수의 어머니는 그 근원에게로 갔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 친구들의 필요와 곤핍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자신이나 친구의 곤핍이 생겼을 때 기도로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지혜이며 의무인 것이다. 그리스도께 탄원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 이렇게 해 달라 저렇게 해 달라 처방을 내려서는 안되며 겸손히 우리의 사정을 그리스도 앞에 펼쳐 보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2) 예수께서는 이에 대하여 그 어머니에게 질책을 하셨다.
①경책 :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4절). 그리스도께서는 사랑하시는 만큼 꾸지람하시고 경책하신다. 예수께서는 그녀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여자라고 부르고 있다. 이 말을 우리가 생각함에 앞서 우리는 우리가 연약하고 어리석고 타락한 남자와 여자 즉 인간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나타나고 있다. 첫째, 그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으로서의 일이었으므로 그 일에 끼어 드는 일을 견제하신 것이다. 그러한 일은 그의 어머니에 의해 되는 일이 아니었으며, 마리아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모친은 아니었다.
인간은 커다란 진보를 이루었다고 해서 자신과 자신의 처지를 결코 망각해서는 안되며 은혜의 언약으로 그리스도와 친숙해졌다 해서 경솔하거나 존경심을 갖지 않는다거나 주제 넘는 짓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둘째, 이 말은 그가 기적을 베푸시는 일에 있어서는 육체를 따라서 생긴 어떤 혈연 관계일지라도 그에게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그의 다른 친지들에 대한 교훈이었다. 이 문제에 있어서 비록 주님의 가족들이라 해도 주님에게 다른 사람 이상의 어떠한 존재도 아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여러 국면을 인간이 알 수는 없는 것이다.
②경책의 이유 :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셨거나 또는 그에게 행해진 모든 일들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때, 즉 정해진 시간과 또한 가장 적절한 시기를 가지고 계셨다. “기적을 행할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셨으며 그의 때가 도래하기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이 일을 행하셨다. 예수께서는 이 일이 제자들의 어린 믿음을 다지게 하리라고 예견하셨기 때문이었다(11절).
그러므로 이 기적은 그의 때가 이르렀을 때 행하셨던 많은 기적들 가운데서 대단히 중요한 기적이었다. 그의 모친은 그의 마음을 움직여 포도주가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3절은 이렇게 읽을 수도 있다) 그 사람들을 도와 주도록 했다. 그러나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의 때가 왔다. 이 사실은 인간의 극도의 곤경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기회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즉 우리가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어 어찌해야 할 지 모를 때 그의 때가 오는 것이다. 자비가 뒤늦게 베풀어진다고 해서 기도가 거부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모친은 그가 도우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스스로 격려하였다. 그리하여 그녀는 하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일러 주었다(5절). 예수의 모친은 그의 경책에 매우 유순한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거기에 대하여 왈가 왈부 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로부터 경책을 듣지 않은 일이 최상의 일이지만 들을 만한 일을 했을 경우 그 꾸지람을 듣고 겸손히 그리고 조용히 있는 것이 차선책이며 그 질책을 호의로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다. 예수의 어머니는 소망을 잃지 않고 그리스도의 자비의 손길을 바라 보았다.
우리가 어떤 도우심을 구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 올 때 다음 두 가지 사실이 우리의 용기를 꺾어 놓는다. 그 첫째는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과 불결에 대한 자각이며 둘째는 우리 주님께서 눈을 찡그리시고 꾸짖지 않으실까 하는 두려움이다. 고통이 계속되고 구원이 지체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화내시는 듯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바로 여기 우리 주님의 모친이 당하고 있는 경우이다. 그러나 주님의 모친은, 그가 결국에는 평안의 답을 주시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스스로 용기를 북돋우므로써 설사 하나님께서 우리와는 정반대로 섭리하시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과 씨름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 어머니는 자기를 바라보지 말고 그리스도께 주목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명령을 정확히 이행하라고 일러 주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그리스도의 후의를 바라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요구(명령)에 철저히 따라야만 한다. 의무를 준행하는 길이 곧 자비를 얻는 방법이다. 그리스도의 방법은 결코 의무를 배제하지 않는다.
4)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기적을 통하여 그들에게 공급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종종 그의 말씀보다 더 좋은 분이시며 결코 나쁜 분이 아니시다.
①기적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것이었다. 물이라는 물질이 새로운 형태로 바뀌어 포도주가 되고 포도주의 성질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자연의 하나님, 즉 땅에서 포도주가 나게 하시는 자연의 하나님이심을 보이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심으로써 기적을 베푸시기 시작하셨다. 이와 같이 복음의 축복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것이다. 이로써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신 자신의 사명이 믿는 모든 사람의 생활의 즐거움을 증진시키며 진실로 그들에게 위로를 주는 것임을 보여 주셨다.
②기적이 발생했던 상황은 그 기적을 돋보이게하여 속임수라는 어떤 의심도 제거한다.
㉠기적은 물 항아리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6절). 첫째, 이 항아리들이 그곳에 놓여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법을 따라, 그리고 더욱 큰 이유는 장로들의 유전(전통)을 따라 율법적인 정결을 갖추기 위해서였다. 유대인들은 씻는데 많은 물을 사용하였으므로 여섯 개의 큰 물 항아리가 여기에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씻는데 물을 아끼지 않고 쓰는 사람은 세상에서 많은 부를 얻는다”는 속담이 있었다.
둘째, 그리스도께서는 그 항아리들을 기적의 포도주를 담는 그릇으로 사용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물과 같았던 율법의 그림자 대신에 포도주를 즉 복음의 은혜를 가지고 오셨다. 이 항아리들은 포도주를 담는데는 결코 사용되지 않았던 물 항아리들이었다. 이 항아리들은 돌로 된 항아리들로서 혹 예전에 이 돌 항아리 속에 포도주를 담은 적이 있었다 할지라도 이전의 포도주의 향기를 보존하는데는 전혀 적합치 못했던 항아리들이었다. 그 물항아리에는 물이 두 세 통 들어 있었다. 그 양은 불확실하지만 매우 주목할만 하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영광의 부요에 따라 그리스도답게 풍성하게 주시는 것이다.
㉡그 물 항아리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한 하인들에 의해 아구까지 채워졌다(7절).
㉢기적이 아주 순식간에, 순간적으로 확실히 돋보이는 방법으로 성취되었다는 점이다.
첫째, 그 하인들이 물을 채우자마자 예수께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8절)고 말씀하셨으며 이때 기적은 이루어져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기도를 한다거나 주문을 왼다거나 어떤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시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전히 자기 자리에 앉아서 말씀 한마디 없이 그 일을 뜻(의지)하셨고 그렇게 기적을 이루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소리 없이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
그리고 마음 속에 어떤 주저의 빛도 없이 확실하게, 감추어진 방법으로 분명한 변화를 일으키신다. 더욱이 이 기적이 첫 기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가장 큰 확신을 가지고 맨 먼저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하고자 하셨던 일을 아셨으며 하실 수 있는 일도 알고 계셨다. 시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잘 되었다. 아주 잘 되었던 것이다.
둘째, 우리 주 예수께서는 하인들에게 지시하셨다. 그 물을 떠서. 즉 마실 수 있도록 뜨라는 지시이다.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 쓸모가 있는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고 여러분에게 지식과 은혜를 주셨는가? 그 지식 역시 유용한 것이며 그러므로 지금 떠 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에 대하여 시험해 보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또한 그 떠낸 물을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지시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비록 그 잔치의 주인으로써 대우받지 않으셨지만 친절하게 자신이 그 잔치의 후원자 임을 입증하셨으며, 그 잔치를 배설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그 잔치에 가장 유익한 사람이심을 보이셨다.
여기 연회장이란 운영 총책이었으며 모든 것이 충분한가, 지나침은 없는가, 버릇없는 행위는 없으며 무질서는 없는가 등등을 살피는 직책이었다. 잔치에는 연회장이 필요한 법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잔치에 참석하면 질서를 잃기 쉽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 연회장이 축복을 빌고 감사를 드렸던 제사장이나 레위인이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그 잔을 그 연회장에게 가져다 그로 하여금 그 잔을 축복하고 그 잔에 대하여 하나님께 축복을 빌게 하셨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임재와 권능의 비상한 표현은 결코 경건과 헌신이라는 일상적인 규칙과 방법을 대치하거나 축출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적에 의해 준비된 포도주가 최고급품 임이 연회장에 의해 밝혀졌다(9,10절). 첫째, 그것은 포도주임이 확실했다. 연회장은 그 포도주가 어디서 난 것인지는 몰랐지만 마셔 보고 분명 포도주임을 알았다. 반면에 그 하인들은 어디서 난 것인지는 알았지만 아직 그 포도주를 맛보지는 못했다. 둘째, 그 포도주는 가장 좋은 포도주임이 확실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사역은 그 사역이 어떻게 해서 성립되었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조차 매혹적이다. 기적의 산물은 항상 최상의 것이었다. 이 연회장은 기분이 흡족하여 신랑을 보기 드문 사람으로 여기게 된다.
보통 하는 방식은 이와는 좀 달랐다. 좋은 포도주는 가장 좋은 때인 잔치머리에 내고 손님들이 술에 취한 후에 좋은 포도주는 치워 버리고 좀 질이 나쁜 포도주를 접대하고자 할 것이었다. 감각적인 쾌락이란 모두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곧 싫증이 나게 되지만 결코 만족을 모르며 즐기면 즐길수록 쾌락은 감소되는 것이다.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10절). 이렇게 좋은 포도주가 어디에서 나와 자기들이 음미하게 되었는지 몰랐으므로 연회장은 신랑에게 가서 그러한 배려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다.
손님들을 위해 포도주를 풍성하게 공급하시므로 여기에서 포도주의 고무적인 건전한 용도, 특별히 기쁨의 때에는(느 8:10) 사용할 것을 허락하셨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언제나 심지어 결혼식에라도 지나치게 술 취하거나 방탕해서는 안된다는(눅 21:34) 당신의 경고를 백지화시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억지로 절제한다는 것은 감사가 없는 덕에 불과하다. 그러나 감각적인 쾌락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풍성히 주어진 것이요, 이러한 쾌락도 하나님의 은혜로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이는 바로 칭찬받을 만한 자기부인인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두 가지 교훈을 통하여 우리는 어느때 어느 순간이라도 무절제의 유혹을 이길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는 우리가 먹는 고기나 주류 역시 하나님께서 후하게 우리에게 내려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무례하게 감사함도 없이 경건치 못하게 남용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내려다 보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와 함께 한 사람들과 어울려 사귀는 방법의 표본을 우리에게 보이셨다. 즉 나중을 위해 가장 좋은 것으로 예비해 놓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들은 신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죄가 주는 기쁨은 보기에 좋지만 결국에는 깊은 상처만을 주지만 경건의 즐거움은 영원토록 즐거움이 더할 것이다.
3. 이 이야기의 결론(11)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들 수 있다. (1) 이 기적이 예수께서 행하셨던 기적들 가운데 첫 기적이었다. 물론 모든 기적들 중에도 그리스도 자신이 가장 찬연한 기적이셨다. 그러나 이 가나에서의 기적은 그에 의해 일어난 첫 기적이었다. 그분은 권능을 지니고 계셨지만 자신의 권능을 숨기고 계신 때가 있었던 것이다. (2) 이기적으로써 예수께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하셨던 것이다. (3) 그의 제자들이 그를 믿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께서 앞서 부르셨던 사람들은 이제 이 광경을 보고 그 사실을 마음 속에 각자 간직하였으며, 그리하여 그로 인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들의 믿음을 더욱더 공고히 하게 되었다. 참된 믿음일지라도 처음에는 신앙이 약한 법이다. 몸이 건장한 사람이라도 어린아이 시절을 겪어야 했듯이 강성한 그리스도인 역시 유약한 시절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