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장 성경 주석말씀은 복음의 증인이 되라고 예수님이 승천하면서 제자들에게 명령했다. 예수님은 승천하면서 성령을 보내신다고 약속했다.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루러 내 증인이 된다고 했다. 구원받은 우리도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Ⅰ.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1:1-5
1. 데오빌로(1,2)
먼저 누가복음에 나오는 데오빌로를 상기하고 우리가 그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 본서를 읽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1]누가가 본서를 헌정한 그의 후원자는 데오빌로이다(1절). 성경에서 특정한 이름이 불리어질 때 그 이름에 대해 우리는 마치 우리 각자의 이름이 불리어지는 것처럼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2]여기서 누가의 복음서는 ‘그가 먼저 쓴 글’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그는 ‘먼저 쓴 글’에 이어 이제 영감을 받아 본서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완전히 행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며, 또한 지난날에 수고했다고 해서 앞으로 더 많은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누가는 먼저 쓴 글을 기초로 하여 본서를 저술하려고 한다. 새로운 설교와 새로운 책들로 인해 옛 것을 잊어버리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마음에 새기고 보완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3]누가가 쓴 복음서의 내용은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기를 시작하셨던 모든 것’이다. (1)그리스도는 행하시면서 가르치셨다. 행하면서 가르치는 자들은 가장 훌륭한 사역자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삶 자체가 진실한 설교가 되기 때문이다. (2)그리스도는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셨다. 그는 기초를 쌓으셨다.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그가 시작하신 것을 수행하고 지속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그 일에 종사하도록 하셨으며, 또한 그것을 계속 행할 것을 그들에게 일임하셨지만, 또한 성령을 보내사 그들에게 권능을 베풀어 주셨다.
이러한 사실을 그리스도 자신이 시작하셨던 복음사업을 전력을 다해 수행하는 자들에게 위로가 된다. (3)네 복음서 기자들, 특히 누가는 예수께서 행하시면서 가르치시기 시작하신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비록 모든 것을 세세하게 전한 것이 아닌 중요한 것만 전해 주었지만 그것으로 우리는 나머지 부분을 미루어 판단할 수 있다.
[4]누가복음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그리스도가 승천하신 날’에서 종결짓고 있다(2절). 따라서 주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신 후 복음서에서는 그의 육체적 현존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2.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3)
여기서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주장하며 입증하고 있다(3절). 주님의 부활의 가장 큰 증거는 그가 사도들에게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저희에게 보이셨다는 것이다. (1)그 증거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서 그가 살아나셨다(그는 그들과 함께 걷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그들과 함께 먹고 마셨다)는 사실과 살아나신 분이 다름 아닌 그 분 자신이시라는 사실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들에게 손과 발, 허리의 상처의 흔적을 여러 번 보여 주셨다. (2)그런 일이 여러 번 있었고 자주 반복되었다. 그는 ‘사십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셨다’ 그 동안 그들과 함께 항상 계신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에게 자주 모습을 보이셨다.
3. 그리스도의 교훈(3)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줄 교훈에 대하여 대략적인 암시를 주셨다. 그는 그들이 수행해야 할 임무에 대하여 교훈을 주셨다.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주께서 사도직에 뽑았던 자들은 그가 그들에게 특권을 주시리라고 기대했으나 오히려 그는 그들에게 계율을 주셨다.
그는 그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계율을 주셨다. 즉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심으로 그는 그들에게 계율을 주시는데, 그 위안자는 또한 명령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그들이 가르쳐야 할 말씀에 관해서 교훈을 주셨다. 즉 그는 저희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3절). 그는 그들에게 그 나라에 대한 보편적인 개념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성령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그들이 예정된 길을 가게 하게 위해서 그 나라의 특성에 관해서 더욱 많은 교훈을 주셨는데 그 나라는 이 세상에서는 은총의 나라요, 저 세상에서는 영광의 나라인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하나의 증거였다. 예수께서는 친히 제자들에게 다시 사심을 나타내 보이셨는데 그 제자들은 그가 그들에게 나타나셨을 뿐만 아니라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신 사실로 인하여, 바로 그분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분이 아니고는 아무도 하나님 나라의 일을 그렇게 명쾌하고 완벽하게 말할 수 없었다.
4. 성령을 주시겠다는 약속(4,5)
제자들은 곧 성령을 받으리라는 특별한 보증을 받았다.
[1]그는 그들에게 기다릴 것을 명하셨다. 이것은 그들의 기대를 불러 일으켰다. 그들은 약속된 시간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그 때는 얼마 남지 않았다. 믿음으로 약속된 은혜를 바라는 사람들은 그 때가 올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만 한다. 그들은 지정된 장소, 즉 예루살렘에서 기다려야만 했다.’거기서 그리스도는 치욕을 당하셨고, 또한 거기서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의 대적과 핍박자들을 용서하도록 우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이 은사는 예루살렘에서 주어져야 한다. 사도들은 이제 공인의 입장에 서게 되었다. 예루살렘은 많은 등불들이 세워지기에 제일 적합한 등경이었다.
[2]그는 그들이 헛되이 기다리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보증하셨다.
1)그들에게 예정된 축복이 임할 것이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5절). 예수께서는 이미 성령을 그들에게 불어 넣으셨다(요 20:22). 그리고 그들은 그 유익함을 알았다. 이제 그들은 측량할 수 없는 은사와 은총과 위로를 받을 것이다. 제사장들이 성직을 맡게 될 때 물로 세례를 받고 정결하게 되듯이 그들은 성령으로 정결하게 순결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징표를 가졌듯이 너희도 징표를 가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너희는 이제까지보다 더 열심히 너희 주님을 섬겨야 할 것이다. 너희가 다시 그를 버리지 못하도록 너희는 그리스도와 굳게 연합되어야 한다.”
2)이제 그는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말한다.
그것은 그에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이므로 그들이 의지할 만한 것이었다. 첫째, 성령은 약속으로 주어졌다. 하나님의 성령은 인간의 영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처럼 부여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여된 것이다. 그 은사가 더욱 가치 있는 것이 되며 더욱 확실해지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이 은총이 되고 믿음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성령도 그리스도와 같이 믿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둘째, 그것은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며 우리의 아버지이신 아버지의 약속이었다. 그는 자비로우신 아버지로서 성령을 주실 것인데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약속이다. 셋째, 이러한 아버지의 약속에 대해 그들은 그리스도께로부터 여러 번 들었다. 그는 보혜사 성령이 오실 것이라고 되풀이해서 확증하셨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확고하게 해 준다.
성령의 은사는 세례 요한이 예언한 것이다(5절). “너희는 내게서 뿐만이 아니라 요한으로부터 그 약속에 대하여 들었다. 요한이 말하기를(마 3:11)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요한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요한에게 큰 명예가 된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종들, 즉 그의 사자들의 말을 성취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의 사역자들보다 더 많은 것을 하실 수 있다. 그들이 은혜를 나누어 주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그들에게 명예로운 일이다. 그러나 은혜의 성령을 주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특권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들에게 약속된 이러한 성령의 은사를 다음 장에서 보게 된다. 이 약속은 다음 장에서 완전히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성경 말씀에 의하면 이 성령의 은사는 모든 믿는 자에게 주어졌으며 바로 이 특별한 능력으로 인해 첫 복음전도자들은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약속에 의해 우리는 신약 성경이 신적 영감으로 쓰여진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Ⅱ. 부활의 증인 1:6-11
그들은 주님의 승천에 대한 증인이 되기 위하여 한 곳에 모였다.
1. 제자들의 질문(6)
[1]그들이 주님께 질문한 내용은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1)”주님은 정말 현재의 이스라엘의 통치자들로 나라를 회복하게 하시겠습니까? 주님과 우리들을 미워하고 핍박한 자들에게 권세를 주시겠습니까?”
2)”그들이 주님에게 복종한다면 주님은 유대인의 나라를 회복시켜 주시겠지요?”
[2]이 질문에는 두 가지 잘못이 들어 있다.
1)그 나라에 대한 그들의 기대:그들은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왕국을 회복시켜 주시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의 왕국 곧 하늘의 왕국을 세우려 오셨지 지상의 왕국인 이스라엘의 왕국을 회복시키려 오신 것은 아니었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①선한 사람들조차 교회의 행복을 외적인 화려함과 권력에서 찾기가 쉬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는 십자가만 바라고 그 나라는 저 세상에서 기다리라고 하는 것이다.
②우리는 자기의 사고 방식을 고집하는 데에서 벗어나거나 교육의 편견을 극복하기가 무척 어렵다. 제자들이 그의 나라가 영적인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③우리가 자기 민족에게로 기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스라엘이 흥하든 망하든 간에 이 세상의 나라는 그의 것이 되어야 했다. ④우리는 성경을 오해하고 자기 식대로 해석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따라 자기의 생각을 결정해야 한다.
2)그 때에 관한 질문:’주여 이 일을 이루심이 이 때니이까’ 이 질문에서 그들은 그들의 입장을 망각하였다. 즉 그들은 주님이 유도하지 않은 질문을 했던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큰 몫을 기대했던 그 나라가 세워지기를 조급하게 기다렸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보좌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눅 22:30)그들은 곧 왕좌를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2. 그리스도께서 질문을 막으심(7)
그리스도는 ‘때와 기한은 너희의 알 바 아니요’ 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들의 질문을 막으셨다. 제자들의 실수는 곧 성령 강림으로 교정되었고 그 후 그들은 현실적인 나라에 대해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 복음의 왕국이 세워질 것이라는 그들의 기대는 옳은 것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때에 대한 그들의 질문을 제지하셨다.
[1]때에 대한 지식은 그들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었다. 너희의 알 바 아니요. (1)그리스도는 그들을 떠나시려 하시는 이 때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견책하신다. 그 말씀은 우리의 첫 번째 조상들(아담과 이브)을 치명적인 파멸로 치닫게 했던 것, 즉 금지된 지식에 대한 비상한 욕망을 주의하라는 그의 교회에 대한 경고이다. (2)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에게 다른 사람보다도 더 많은 지식을 주셨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하신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할 때 우리가 지식을 자랑함이 얼마나 쓸데없는 일인가를 알게 된다. (3)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에게 그들의 임무를 감당하기에 충분한 교훈을 주셨다.
그리고 이 지식으로 그들을 만족하게 하실 것이다. (4)그리스도는 그 자신이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지켜야 할 것을 말씀해 주셨고, 성령이 장차 올 것을 그들에게 보여 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또한 그는 때의 징조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미래의 사건의 상세한 내용이나 정확한 시간을 알려고 기대하거나 바래서는 안 된다. 연중의 때와 기한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우리는 여름과 겨울이 교차되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여름이나 겨울 중 특별히 어느 날이 맑고 어느 날이 흐릴지에 대해서는 우리는 모른다. 우리는 닥쳐올 특별한 날이 이 날인지 저 날인지 말할 수 없다. 다만 그것에 대비해야만 하고 그것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2]그 지식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아버지께서 자신의 권세 안에 두신 것이다. 그 이외에 아무도 장차 올 때와 시기를 계시할 수 없다. 그분은 때와 시기에 대하여 너희가 알고 있는 이상으로 알지 못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분은 그 일을 자신의 권세 안에 두셨으며 그것을 합당하게 여기셨다.
3. 그리스도께서 임무를 주심(8)
그는 그들에게 할 일을 주시고 권위로서 그들의 성공을 보증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8절). 그리스도께서 그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쓰시고자 한다면 우리가 증인이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1]그들의 임무가 명예스럽고 영광스럽게 되리라고 하셨다. 내 증인이 되리라. 그들은 그의 왕으로 선포할 것이다. 그들은 솔직하고 엄숙하게 그의 복음을 세상에 전해야 한다. 그들은 세상의 증인들처럼 맹세로써가 아니라 기적과 초월적인 은사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으로써 그들의 증언을 확고하게 할 것이다. “너희는 나를 위해 순교자가 되리라” 이와 같이 그들은 죽기까지 고통을 당하면서 복음의 진리를 입증했던 것이다.
[2]이 임무를 위한 그들의 능력이 충분하리라고 하셨다. 그들은 그 일을 위해 그들 자신의 능력이 있었던 것도, 지혜나 용기가 많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너희가 너희에게 임할 성령의 능력을 받으리니, 너희가 복음을 전할 능력을 얻고 기적과 고난으로 복음을 확고히 세울 능력을 얻으리라.” 주님의 일에 헌신하는 자들은 주님께서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자격을 부여하신다.
[3]그들의 영향력이 크고 광범위하리라고 하셨다. “너희는 증인이 되리라.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하여 너희의 빛이 온 유대에 비치게 되며 또한 사마리아까지 미치리라.”
4.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심(9)
이러한 교훈을 그들에게 남기시고 그리스도는 그들을 떠나신다(9절).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눅 24:50).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그는 그의 제자들이 보고 있는 동안 그들의 눈 앞에서 승천하셨다. 그들은 주님이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마음에 의심이 들지 않도록 주의와 정성을 다해 보았다. 그는 그들의 눈 앞에서 그름 속으로 사라지셨다. 그리스도께서 변모하셨을 때 그를 가린 것이 바로 밝은 구름이었고 이 구름도 아마 바로 그와 같은 구름이었을 것이다(마 17:5).
구름은 천상 세계와 지상 세계를 잇는 일종의 통신 수단이다. 즉 구름을 통해 땅으로부터 수증기가 올라가고 하늘로부터 이슬이 내려온다. 그러므로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되신 그리스도는 그름을 타고 승천하셨으며,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에게 임하시고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된다. 이것이 그의 최후의 모습이었다.
5. 남은 제자들(10)
그가 제자들 앞에서 사라진 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10절). (1)비록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그들을 떠나는 것이 그들에게 유익하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그의 육체적 현존을 너무나 갈망했기 때문에 그가 그들에게 되돌아 올 것을 바랬는지도 모른다. (2)그들은 지금 막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셨던 그들 눈앞에 하늘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일찍이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너희가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되리라(요 1:51)고 말씀하셨으니 이제 그들이 왜 그것을 기대하지 않겠는가?
6. 천사가 나타남(11)
두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났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의 교회에 대하여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스도는 그를 마중 나온 천사들 중에 둘을 그의 제자들에게 보내셨는데, 그들은 흰 옷 입은 두 사람으로 나타났다. 이제 천사들이 그들에게 했던 말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1)그들의 호기심을 제지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가 무엇을 보고자 하느냐? 너희에게 모든 것을 다 보여 주었는데 무엇을 더 보려고 하느냐? 무엇을 보면서 서 있느냐?”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수행해야 할 확실한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물끄러미 서 있어서는 안되었다. (2)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그들의 신앙을 확고하게 해 주었다. 그들의 주님 또한 그들에게 종종 그 재림에 대하여 말씀하셨었다.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첫째, 전에는 치욕 속에 재판을 받으신 바로 이 예수가 다시 영광 중에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둘째 그는 똑같은 방법으로 오실 것이다. “그는 구름 속에 가리워지셨다.
너희는 구름에 가려진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리고 그가 가신 곳으로 그를 따라 갈 수도 없다. 그러나 그 때에는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할 일 없이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을 때 주님이 재림하시리라는 생각이 우리를 자극하고 깨우칠 것이다. 또한 우리가 두려워 떨며 바라보고 있을 때 그 생각은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것이다.
Ⅲ. 예루살렘에 다시 모인 사도들 1:12-14
1. 그리스도가 승천하신 장소(12)
그리스도는 감람산에서 승천하셨다(12절). 그 곳에서 그의 고난이 시작되었고 그곳에서 영광스럽게 승천하심으로써 그는 고난의 불명예를 벗으셨다. 그리하여 그는 예루살렘에서 볼 수 있는 곳에서 그의 왕국으로 들어가셨다. 이 산은 예루살렘 가까이에 있었으며 그 거리는 안식일에 허용된 여행길 정도로서, 안식일 저녁 공중 예배가 끝난 후 신앙심 깊은 사람들이 명상하기 위해서 걷곤 했던 정도의 거리에 불과했다. 그 거리에 대해 혹자는 일천보라고 하고 혹자는 1,500m라고 한다. 안식일에 허용된 거리 이상으로 여행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오늘날 우리와의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것은 허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즐길 수도 있는 것이다.
2. 제자들이 돌아온 곳(12)
그들은 주님의 지시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돌아 왔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시자 즉시 그들은 감시 받게 되었지만 그들이 갈릴리로 갔다고 알려진 후 아무도 모르게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왔던 것 같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위하여 적의 소굴에서 은신처를 찾아내신다. 예루살렘에서 그들은 다락방으로 올라가서 거기에 머물렀다. 거기서 그들은 성령 강림을 고대하면서 매일 모임을 가졌다. ‘그들은 늘 성전에 있었다'(눅 24:53). 그러나 그들은 기도하는 시간에 성전의 뜰에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그들은 방해받지 않고 예배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다락방은 개인 집에 있었던 것 같다.
3. 모인 제자들(13-15)
여기서 열 한 사도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으며(13절), 우리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이름도 나온다(14절). 그리고 이것이 그녀에 대한 마지막 언급이다. 그곳에는 주의 형제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 모인 무리의 수는 모두 120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15절). 70명의 제자들도 모두 혹은 대부분 그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다.
4. 그들이 한 일(14)
그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가. 그들 모두는 합심하여 기도와 간구를 계속했다. 그들은 기도하고 간구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기도하는 백성이다. 당시는 고통과 위험의 시기였다. 괴로운 일이 있는가? 그에게 기도하라. 그들은 새로운 임무에 직면하여 그것을 수행하기 전에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들을 처음 보내시면서 그리스도는 먼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데 시간을 바치셨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성령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최상의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다. 기도로써 우리는 약속된 긍휼에 대해 하나님께 간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약속의 실현이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더욱더 열심히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계속 기도하였다. 그들은 늘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하였으며(눅 24:53), 본문에서도 그들이 기도와 간구를 계속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약속을 찬양하는 것은 성취를 갈망하는 올바른 태도이며 이전의 긍휼을 찬양함으로써 큰 자비를 얻게 된다. 그들은 이 일을 구함에 있어 합심으로 기도했다. 평화의 유대 가운데 성령의 일체성을 보존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위로를 받을 조건을 완비한 것이다.
Ⅳ. 맛디아가 사도로 선택됨 1:15-26
유다의 죄로 말미암아 열 두 사도로 구성된 사도의 수에 공석이 생기게 되었다. 그들이 11명뿐이라면 누구든지 12명을 채우고자 할 것이다. 따라서 그 공석을 채우기 위해서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1. 이 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15)
그 집에는 약 120명이 모여 있었다. 여기서 교회가 시작되었다. 이 120명은 큰 나무로 성장하게 될 겨자씨였으며, 밀가루 반죽을 부풀게 할 누룩이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제안을 했던 사람은 언제나 가장 지도적인 입장이었던 베드로였다. 할례자의 사도로 묘사되는 베드로는 그 거룩한 이야기가 유대인에게 퍼졌을 때 그는 여전히 할례자의 사도로 소개되었으나 바울의 이야기가 시작될 때까지 이방인에게 설교하기도 한다.
2. 베드로의 제안(15-22)
베드로는 다른 사도를 선택하자고 제안했다. 베드로가 그 형제 가운데 일어섰다(15절).
[1]그는 유다의 죽음으로 생긴 공석을 설명하면서 그 일 속에서 성경의 말씀이 성취된 것에 주목했다.
1)유다가 가졌던 직무: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예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17절).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과 본성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단지 그리스도인의 수에 포함된다는 것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2)유다의 죄:그는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하였다. 뻔뻔스럽게도 예수를 체포하려는 무리의 두목 앞에 공공연히 나타났다. 그는 그들을 데리고 예수가 계신 곳까지 가서 “이 사람이 바로 그 자다. 꽉 잡아라”고 말하며 예수를 넘겨주었다. 죄의 주모자는 조인 중에서도 가장 나쁜 죄인이다.
3)이 죄로 인한 유다의 파멸:제사장들이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유다는 그들을 건네주고 자기의 생명뿐만이 아니라 재물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첫째, 그는 아주 치욕스럽게 그 돈을 잃게 되었다(18절). 그는 불의의 삯이었던 은화 30개로 밭을 샀다. 그는 자신을 위해 땅을 사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나그네들이 묻힐 밭을 구입한 결과가 되었다. 과연 그나 그의 가족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이었는가? 둘째, 그는 치욕적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는 절망하여 밖으로 나가서(마 27:5) 목매달아 죽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왔다. 창자가 터지는 것은 반역자에 대한 벌이었다.
4)이 일에 대한 일반의 주목: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이 이 일을 알게 되었다. 마치 신문에 보도된 것처럼 주님을 배반한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에 대해서 온 거민이 이야기 했다(19절). 그것은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고 아무도 그 사건의 진리를 논박하지 않았다. 즉 그 사건은 진실이라고 알려졌다. 여기에 악명이 붙은 좋은 예가 있다. 그 밭은 아겔다마, 즉 피밭이라고 불리웠는데 그것은 피의 삯으로 구입되었기 때문이다.
5)이 일로 성경말씀이 성취되었으며, 또한 성경은 마땅히 성취되어야 함(16절):유다의 배반에 대해 놀라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다. 다윗은 그의 범죄를 예고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받을 형벌도 예고했다.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또한 그로 인한 공석을 다른 사람이 대신 취하게 되었다. 곧 그의 사도직 혹은 직분을 다른 사람이 맡게 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제정하신 어떤 직분이, 그 직분을 맡은 자들의 사악함 때문에 혹은 그 사악함에 대한 수치스러운 형벌로써, 그 직분 자체가 타락하게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한 하나님은 그의 임무를 맡긴 사람의 실패로 인하여 그의 목적이 좌절되거나 그의 사업이 수행되지 못했다고 해서 고통받지도 않으신다. 유다는 죽었으나 사도직은 없어지지 않았다. 증인이 없어도 그리스도의 뜻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2]베드로는 다른 사도를 선택할 것을 제의한다(21,22절). (1)빈 자리를 채워야 하는 사람은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가.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낮은 자리에서 맡은 바 책임에 성실한 사람은 높은 지위를 맡기에 아주 적합하다. 작은 일에 충성했던 사람은 더 큰 일을 맡겨도 신뢰할 수 있다. 사도들과 함께 다니고 계속 친숙했던 사람이 아니면 사도직을 계승할 수가 없다.
(2)새로 부름 받은 사람의 할 일은 무엇인가? 그는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한 사람’이어야 한다. 이 사실로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열 한 명의 사도 외에 다른 제자들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도들이 세상에 대하여 증거 하려 했던 위대한 사실은 그리스도의 부활이었다. 세속적인 권위와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을 전하기 위해서 사도들이 해야 할 일을 살펴 보자.
3. 유다를 계승할 사람의 추천(23-26)
[1]그리스도의 성실한 추종자라고 알려졌던 두 사람이 후보자로 추천되었다. 저희가 두 사람을 천하니(23절). 그들이 추천한 두 사람은 요셉과 맛디아였는데 그들에 대한 기록을 다른 곳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다. 두 사람은 모두 직분에 적합한 사람들이어서 누가 더 적당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했다. [2]그들은 둘 중에 누구를 뽑을지 지시해 달라고 기도로써 하나님께 간구했다(24,25절). 첫째, 그들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호소했다.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24절). 어떤 사람이 사도로 선택될 때는, 그의 마음과 기질과 성벽에 의해 선택될 때는, 그의 마음과 기질과 성벽에 의해 선택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교회의 발전과 목회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은 그들에게 또 다른 영을 주심으로 그의 목적을 위하여 그들을 합당하게 만드실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위로해 준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이 누구를 택하실지 알고 싶어했다. “주여 우리에게 보여 주소서.” 하나님이 자신의 종을 서택하시는 것이 합당하다. 셋째, 그들은 유다가 버리고 제 곳으로 간 봉사와 직부를 대신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을 형제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유다에게는 반역자의 자리가 더 합당하다.
그리스도를 배반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와의 고귀한 관계를 절연함으로써 비참한 지경에 빠진다. 우리의 구세주는 유다의 운명에 대하여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 26:24)고 말씀하시던 적이 있다. 넷째, 그 선택은 하나님께 호소하는 방법인 제비뽑기로 결정되었는데(26절), 이 방법은 달리 종결지을 수 없는 일을 결정하기 위한 합법적인 방법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진지한 종교적 규범 속에서 신앙심 깊은 기도와 함께 이루어졌다. 이렇게 하여 사도들의 숫자가 채워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