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0장은 야곱의 아내들이 자녀를 출산하는 내용이 기록되었다. 라헬의 여종인 빌하가 자녀를 낳았는데 단과 납달리다. 레아의 여종인 실바도 아들을 낳았는데 갓과 아셀이다. 레아도 두 아들을 낳았는데 잇사갈과 스불론이다. 라헬은 요셉을 낳았다.
야곱의 후처인 빌하와 실바와 레아와 라헬의 출산
I. 여종의 아들들 30:1-3
여기서는 야곱이 두 자매와 맺은 묘한 결혼의 좋지 못한 결과들을 보게 된다.
1. 야곱과 라헬 사이의 불행한 논쟁(1,2)
이 논쟁은 라헬이 아이를 낳지 못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녀의 언니인 레아가 자녀를 많이 낳았기 때문에 일어났다.
(1) 라헬이 안달하였다. 그녀는 그의 언니 레아를 투기하였다(1절). 투기란 남이 잘되는 것을 보고 배 아파하는 것인데, 그것만큼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고 우리의 이웃과 우리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죄는 없다.
(2) 야곱이 그녀를 꾸짖었는데 그것은 매우 정당한 처사였다. 야곱은 그녀를 사랑하였으므로 그녀의 그릇된 말에 대해 책망하였던 것이다(2절). 신실한 책망은 참된 애정의 발로요 증거라는 사실을 명심하자(시 141:5;잠 27:5,6). 야곱은 라헬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녀의 죄에 대해서 화를 내었다. 야곱은 그런 식으로 자신이 불쾌함을 표현했던 것이다. 야곱이 안달하는 라헬의 요구에 대하여 한 말은 매우 엄숙하고 경건한 대답이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갈대아 역본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기 쉽게 의역하고 있다. “네가 나에게 아들을 구하느냐? 어째서 너는 하나님께 아들을 구하지 않느냐?” 아랍어 역본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내가 하나님보다 뛰어나냐? 하나님께서 네게 주시지 않는 것을 내가 줄 수 있느냐?”
2. 야곱과 두 여종과의 불행한 결합 (3-13)
(1) 야곱은 라헬의 설득에 못이겨 그녀의 여종인 빌하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 당시의 풍속에 의하면 여종이 낳은 자녀들은 여주인의 양자가 되어 여주인의 자식으로 인정되었던 것 같다(3절). 라헬은 자식을 전혀 갖지 못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명목상으로나마 자식을 갖기를 원했다. 즉 실상은 아니지만 자기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자녀를 갖고 싶어했다. 그녀는 자기 여종이 낳은 자식들에게 자기 언니와의 경쟁심의 의미밖에 지니지 않는 이름들을 지어 주는 가운데서 기쁨을 느꼈다.
1) 그녀는 마치 법적인 측면에서 언니를 이긴 것처럼 여겼다. 그녀는 자기의 여종 빌하가 낳은 첫 아들에게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셨도다”즉, “내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셨다”고 말하면서 ‘단'(억울함을 푸심)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2) 라헬은 싸움에서 언니를 이긴 것처럼 생각하였다. 그녀는 둘째 아들에게는 ‘내가 형과 크게 경쟁하여 이기었다'(8절)고 말하면서 ‘납달리'(경쟁함)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러한 사실은 마치 야곱의 모든 아들들이 경쟁으로 인하여 태어난 것처럼 보이게 한다.
(2) 야곱은 또 레아의 설득에 못이겨 그녀의 여종인 실바도 아내로 맞이하였다(9절). 실바는 야곱에게 두 아들을 낳아 주었다. 레아는 자신이 그 아들들에 대하여 권리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였다. 그에 대한 표시로서, 레아는 자녀들로 이루어진 작은 ‘군대'(한글 개역은 ‘복됨’)를 갖게 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한 아들에게 ‘갓’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11절).
그리고 다른 아들에게는 자신이 그 아들로 인해 행복해질 것을 기대하면서 ‘아셀'(기쁨)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이 두 자매간의 경쟁과 다툼에는 많은 잘못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악에서 선을 이끌어내셨던 그러므로 해서 야곱의 가정을 가득 채웠던 이 열두 지파가 생겨났고 또 이들의 이름대로 각 지파가 불리워졌던 것이다.
Ⅱ. 레아의 나머지 자식들과 라헬의 출산 30:14-24
(1) 대여섯살 난 어린아이인 르우벤이 들에서 놀다가 ‘합환채’를 발견하였다. 그것이 꽃인지 열매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냄새가 매우 좋은 것이었다. 잘 심고 가꾸는 정원에서 분만이 아니라 아무도 돌보지 않는 들판에도 가치있고 유용한 소산물들이 있게 마련이다. 독실한 유대인들에게는 무척 즐거운 일이 있을 때면, 예를 들어 사과를 먹다가 맛이 좋으면 “이렇게 맛있는 열매를 만드신 이를 찬미하라”고 말하든가 혹은 꽃냄새를 맡다가 냄새가 향기로우면 “이렇게 향기로운 꽃을 만드신 이를 찬미하라”고 외치는 좋은 습관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합환채가 재스민 향을 내는 꽃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 합환채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라헬은 르우벤이 레아에게 가져다준 그 합환채가 그냥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몹시 탐이 났다. 박식한 주교 패트릭은, 야곱의 아내들이 야곱과 동침하려고 서로 경쟁하여 서로 자기들의 여종을 야곱의 아내로 삼으려 하는 이러한 행동의 진정한 이유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리라는 아브라함에게 임한 언약이 성취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매우 설득력있게 주장한다. 또한 패트릭 주교는, 만일 거기에 그와 같은 중요한 이유가 있지 않다면 이런 일들이 특별히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이 거룩한 역사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 레아는 다시 두 아들을 낳는 축복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이 합환채에 대한 충분한 대가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여 첫 아들을 ‘잇사갈'(값)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두 번째 아들의 이름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인정하여 ‘스불론'(거함”이라고 불렀다.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20절). 그녀는 아이들을 요금 계산서로 생각지 않고 훌륭한 지참금으로 생각한 것이다(시 113:9). 여기에 딸 ‘디나’의 출생이 언급되는데 나중에 그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34장).
(2) 라헬이 마침내 아이를 낳게 되었다(22절). 라헬은 그 아들을 낳게 되었다(22절). 라헬은 그 아들을 ‘요셉’이라고 불렀다. 히브리어에서 이 이름은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말이다. 즉 하나는 ‘아삽’ 곧 “그는 나의 수치를 없애 버렸다”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야삽’곧 “여호와께서 내게 또 다른 아들을 더하시리라”는 의미이다.
Ⅲ. 야곱과 라반의 계약 30:25-36
(1) 야곱은 이제 고향을 생각하게 되었다. 야곱은 라반과 계약한 기간 곧 그의 두 번째 도제 기간도 라반에게 성실하게 봉사했다. 그러나 야곱은 여전히 가나안 땅에 대하여 애착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 이유는 그 땅의 그의 출생지이며 그곳에 그가 몹시 보고 싶어하는 부모가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곳이 바로 약속의 땅이기 때문이었다.
(2) 라반은 야곱이 좀더 자기곁에 머물기를 바랐다(27절). 그것은 라반이 야곱이나 딸들 혹은 야곱의 자식들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였다. 야곱이 계속해서 자신의 목자장으로 일해 주도록 열심히 야곱을 설득했다. 야비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온갖 달콤한 말을 구사할 줄을 안다. 라반은 자신의 가축 떼가 야곱의 성실한 보살핌으로 인해서 놀랍게 불어날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과 야곱에게 매우 경위를 표시하는 다음과 같은 말로써 그 사실을 인정한다.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27절).
(3) 야곱과 라반은 또다시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다. 라반의 교활함과 탐욕은 야곱의 단순함과 정직함과 착한 성품을 이용하였다. 야곱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의견을 적절히 제시한다.
1) 야곱은 자신이 그처럼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①라반에게 행한 일로 인하여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자기를 잘 대해 줄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야곱은 그답게 참으로 공손하게 말하고 있는 점을 유의하자. 겸손한 성도는 자신의 선행에 대한 칭찬을 듣는 것에 서보다는 선을 행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법이다. ②야곱은 자기에게 가족을 돌보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2) 야곱은 자신의 일을 기꺼이 하나님의 섭리에 맡긴다. 야곱은 하나님의 섭리가 아주 하찮은 일에까지, 심지어 가축들의 색깔에까지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야곱은 자신의 품삯으로는 양과 염소를 갖되 이제 앞으로 태어날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 그리고 검은 색깔의 것들을 갖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하였다(32,33절). 이에 대하여 라반은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기꺼이 이 계약에 동의하였다.
만일 지금 야곱의 수중에 있는 얼마 안되는 아롱지고 점 있는 양과 염소들을 나머지 떼와 떨어뜨려 두면-이 일은 라반과 야곱이 서로의 합의하에 시행해야 할 일이었다-야곱이 치는 가축들은 대부분 한 가지 색만을 띄어 온통 검거나 희게 되어 아롱진 색깔을 띤 새끼는 극히 적게 나오거나 아니면 전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혀 보수를 주지 않거나 지극히 조금만 주고서도 야곱을 부릴 수 있을 것이라고 라반은 생각하였던 것이다.
Ⅳ. 야곱의 계약 30:37-43
야곱이 궁리해낸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 야곱은 껍질을 벗겨 얼룩무늬를 낸 나무 가지들을 가축들이 물 먹는 곳 앞에 세워 두었다. 그렇게 해서 가축들이 얼룩덜룩한 나무 가지들을 많이 보고서 영상의 원리에 의해 나무 가지처럼 얼룩덜룩한 새끼들을 낳을 수 있도록 하였다(37-37절). 아마도 이러한 방법은 이처럼 얼룩덜룩한 가축을 갖고 싶어하는 가나안 목자들이 흔히 사용했던 관습이었을 것이다. 가축들 중에서 아롱진 것과 검은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자 야곱은 먼저 얼룩무늬진 새끼들을 한데 모아 따로 세웠다.
그리고 나서 그는 나머지 무늬없는 양떼들로 하여금 그 얼룩무늬진 새끼들을 바라보도록 함으로써 이전과 마찬가지로 영상의 원리에 의해서 얼룩무늬진 새끼들을 낳을 수 있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야곱은 단시일 내에 ‘심히 풍부하여'(43절) 큰 부자가 되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겸손하고 정직하여 자족할 줄 알고 부지런한 사람들은 이와 같이 마침내는 창대하게 되는 결과를 얻게 됨을 볼 수 있다. 작은 일에 충성된 자는 더욱 큰 일을 맡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것에 충성된 자는 자신의 몫을 받게 될 것이다. 의로운 종이었던 야곱은 이제 부유한 주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