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2장 주일 설교문] 모리아 산에서 이삭 번제(창22:1-24)

창세기 22장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시험을 하기 위해서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바치라고 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지를 시험했다.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복을 주셔서 이삭 대신에 수양을 준비했다. 수양은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여호와 이레의 축복

I.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시험 22:1,2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기사가 나온다. 전에는 그가 자기 부친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였고 이제는 그가 자기 아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야 했다.

(1) 아마도 그는 이때 어려움은 이제 다 지나갔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는 이전의 어떤 것보다도 더 가혹한 시련에 부딪히게 되었다.

(2) 그 시험을 일으킨 자 : ‘하나님’이 그를 시험하셨다. 그러나 그를 죄에 빠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장점들이 얼마나 강한가를 드러내 보여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게 하기'(벧전 1:7)위해서 시험하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1절).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들어 올렸다’고 읽는다. 학문에 잘 정진한 학자가 더 높은 경지에 오르듯이 그때 아브라함은 더 높은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3) 시험 자체 : 필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을 때 15:1이나 17:1에서 처럼 새로운 어떤 약속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놀랍게도,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것은 간단히 말해서 ‘아브라함아 가서 네 아들을 죽여라’는 것이었다. 그 한 마디 한 마디는 그의 뼈를 도려 내는 칼날과도 같았다. 이 시험은 그 견디기 어려운 명령의 말들로 인해 더욱 냉혹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1) 희생 제물로 바쳐져야 할 사람 : “네 소나 양이 아니라 네 아들을 드리라.” “아니다. 나는 네 집에서 수소를 취하지 아니하리라(시 50:9).” “나는 반드시 네 아들을 취하리라.” “이삭을 바쳐라. 이름 그대로 너의 웃음인 바로 그 아들을 바쳐라.” 히브리어에서는 이것이 더욱더 강조적으로 표현되었다. 그래서 이것은 다음과 같은 뜻으로 읽는 것이 매우 합당할 것 같다. “네게 있는 아들, 곧 너의 유일한 아들인 네가 사랑하는 바로 그 이삭을 바쳐라.”

2) 제사 장소 : 그곳은 삼일 길이나 떨어져 있는 ‘모리아 산’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 제사가 더욱 합당하고 명예로운 예배가 될 수 있도록 그 제사에 대해 심사숙고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3) 제사 방법 : 그를 번제로 드리라(2절). 그는 그의 아들을 죽여야 할 뿐만 아니라 그를 제물로서 죽여야 했다.

Ⅱ. 아브라함의 놀라운 순종 22:3-10

아브라함은 이 명령이 가혹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종하였다. ‘아브라함은 시험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히 11:17).

1. 아브라함이 헤치고 나아간 난관들

이 명령을 순종하는 데는 뚫고 나아가야 하는 몇 가지 난관이 있었다.

(1) 이 명령은 하나님께서 이전에 내리신 율법, 곧 중한 형벌을 받게 되어 있는 살인을 금하신 법(9:5,6)에 정반대가 되는 것처럼 보였다.

(2) 더구나 이 명령이 자신의 아들에 대한 인간 본연의 애정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겠는가?

(3) 하나님은 그에게 그 명령에 대한 이유를 전혀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 이스마엘이 쫓겨나게 되었을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삭이 죽어야 하고, 아브라함이 그를 죽여야 하는 이때에는 이삭이나 아브라함이나 왜 혹은 무엇 때문에 그래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이삭이 진리를 위해 순교하였다면 혹은 그의 생명이 보다 귀한 다른 생명의 속전으로 바쳐졌다면 문제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경우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는 본분을 잘 지키고 유순하며 전도가 유망한 아들이었다. “여호와여, 그의 피를 흘린다고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4) 이 명령이 하나님의 약속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가 칭할 것임이니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창세기 3장 설교말씀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타락함

(5) 아브라함이 대체 어떻게 다시 사라의 얼굴을 마주 대할 수 있겠는가?

(6) 그 당시 그 땅에 살고 있던 애굽 사람들이나 가나안 사람들, 브리스 사람들이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 그 일은 아브라함과 그의 제단에 영원히 수치가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총의 뜻이라면 내가 어떠한 일이든지 감수하리라.”

2. 순종의 단계들(3-10)

(1)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3절). 하나님의 명령은 단호한 것이어서 검토의 여지를 허락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은 진심으로 행하되 신속히 행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2) 그는 번제에 쓸 물건들을 준비하였다.

(3) 필시 그는 그 사실에 관해서 사라에게 아무 말도 안 했을 것이다.

(4) 아브라함은 제물을 바치도록 정해 주신 장소를 찾기 위해 둘레를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우리는 저기 보이는 저곳으로 가서 경배하리라”라고 말했다(5절).

(5) 그는 그의 종들이 이 기이한 제사에 끼어들어 방해하지 않도록 그들을 멀리 떼어 놓았다(5절).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으로 고통을 겪으러 들어가실 때 단지 세 제자만 데리고 가시고 나머지 제자들은 동산 입구에 머물도록 하셨다.

(6) 그는 이삭에게는 번제 나무를 지게 하고 자기는 불과 칼을 들고 갔다(6절).

(7) 그는 조금도 불안해 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그가 지금 드리려고 하는 제사가 일상적으로 드리는 제사인 것처럼 그것에 대해서 이삭과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7,8절).

1) 그들이 함께 가고 있을 때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물은 질문은 매우 애처로운 것이었다. 이삭은 ‘내 아버지여’라고 말했다. 그것은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부름이었다. 아마도 그 말은 이삭의 가슴을 향한 아브라함의 칼보다 더 깊이 아브라함의 가슴을 파고 들었을 것이다. 그럴지라도 아브라함은 훌륭하게 마음을 진정시키고 태연자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조용히 아들의 질문을 기다렸다. 아들의 질문은 이것이었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7절).

①이것은 아브라함에게 괴로운 질문이었다. 그가 어떻게 이삭 자신이 그 어린 양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 사실이 그러했지만 아브라함은 이제까지 감히 그에게 그렇다고 말하지 못했다.

②이것은 또한 우리 모두에게 교훈이 되는 질문이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려고 할 때 진지하게 생각해야만 하는 질문이다. 예배드릴 때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즉 번제물로 하나님께 드릴 준비가 되어 있는가?

2)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한 대답은 매우 신중한 것이었다.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①이것은 순종의 말이었다.

②또한 이것은 믿음의 말이었다. 한 희생 제물이 이삭 대신에 준비되어 있었다. 첫째, 위대한 속죄 제물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예비하신 것이었다. 둘째, 우리의 모든 감사 제물도 또한 하나님의 예비하신 것이다. 마음을 예비하시는 이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시 10:17).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은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요 그가 마련하시는 것이다(시 51:17).

(8) 그는 계속해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얼마 동안 지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 후에 마침내 운명의 장소에 다다랐다. 거기에서 그는 이제까지 그가 쌓았던 중에서 가장 슬픈 단을 쌓고 이삭을 화장하기 위한 나무는 가지런히 벌려 놓은 후 아주 놀라운 소식을 아들에게 전한다. “이삭아 네가 바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양이란다.” 이 기사에서 나타나는 바에 의하면 이삭도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기꺼이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는 그가 도망치려고 했다거나 조금이라도 저항했던 흔적을 보지 못한다. 그럴지라도 희생 제물은 결박되어야 했다.

그러나 자애로운 아브라함이 죄 없는 아들의 손을 묶을 때 어떤 심정이었겠는가! 아마도 그 손은 그에게 축복을 빌어 달라고 자주 들려졌었고 그를 껴안기 위해 뻗쳐졌으나 이제는 사랑과 의무의 줄로 더욱 단단히 묶여진 손이 아닌가! 그러나 그의 손은 묶여져야 했다. 이삭의 손을 묶은 후 아브라함은 그를 제단 위에 올려 놓고 그의 머리 손을 얹었다. 이때 아브라함과 이삭이 눈물을 비오듯이 흘리면서 마지막 작별의 입맞춤을 주고받는 것을 우리는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는 마음을 굳게 먹고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서 칼을 잡은 팔을 들어 올렸다. 이 모양을 보고 하늘이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땅이 어찌 경악하지 않겠는가! 여기에 믿음과 순종의 행위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이삭을 바치는데 있어서 아브라함의 이같은 순종은 다음과 같은 사실의 생생한 표현이다. 첫째,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독생자를 희생 제물로 내어 주고 고통을 받게 하고 죽게 한 하나님의 사랑을 생생하게 표현해 주는 행동이다. 여호와께서는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셨다(사 53:10;슥13:7). 둘째, 그 사랑에 보답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돌려야 할 의무를 생생하게 표현해 주는 행동이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같은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도록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Ⅲ. 이삭의 구출 22:11-14

지금까지 이 이야기는 매우 우울하고 가장 비극적인 종말을 향하여 치닫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늘이 갑자기 맑게 개이고 태양이 나타나며 밝고 즐거운 장면이 벌어진다. 상처를 입히고 내어 던졌던 그 손이 여기서는 치료하고 들어 올린다.

(1) 이삭은 구출되었다(11,12절). 그를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은 단지 시험을 하기 위한 것뿐이었담. 그러므로 그 명령은 철회되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12절). 위험이 절박하면 절박할수록 그 구원은 그만큼 더 놀랍고 기쁘다.

(2) 아브라함은 인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칭찬을 받았다.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을 가장 잘 증명해 주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으로써 기꺼이 그를 섬기는 그를 영광스럽게 하는 태도이다.

(3) 이삭 대신에 다른 제물이 준비되어 있었다(13절). 이삭의 구원에 대해서는 당연히 하나님께서 감사를 받으셔야 한다. 그러나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는 아브라함의 말은 틀림없이 이루어진 셈이다. 이 사실은 언약의 씨, 곧 약속된 메시야와 관련하여 살펴져야 한다.

1) 그리스도는 이삭을 대신한 이 수양처럼 우리를 대신해서 희생 제물이 되셨다. 그리하여 그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해방되었다.

2) 그 축복된 씨가 이미 약속되었고 이제 이삭에 의해서 예표되었을지라도 그를 제물로 드리는 일은 연기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 동안에는 이 수양처럼 짐승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가, 어느 날엔가 저 위대한 제물에 의해서 이루어질 속죄의 보증으로서 드려져야 했다. 후에 제사 드리는 장소인 성전이 이 모리아산 위에 세워진(대하 3:1)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갈보리산이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4) 이곳에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다. 그것은 즐거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든 신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여호와이레’곧 ‘여호와께서 준비하심’이란 이 이름은(14절) 필시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8절)는 아브라함의 말을 암시하는 이름일 것이다.

Ⅳ. 재확약된 하나님의 언약 22:15-19

아브라함의 순종은 즐겁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우리는 여기서 그의 순종이 보상받는 것을 본다.

(1)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이 언약의 동기가 되었다고 말씀하시기를 기뻐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칭찬하셨다(16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2) 이때 하나님은 맹세로써 그 약속을 확정하셨다. 그 약속은 이미 이전에 이야기되고 날인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약속이 맹세된다.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렇게 하나님이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신 이유는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 보다 더 큰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히 6:13). 하나님은(정중히 말씀하시기 위해)심지어 그 약속에 자신의 생명과 존재를 걸기조차 하셨다(내가 살아 있는 한). 그리하여 하나님이 거짓말 하실 수 없다는 점을 포함한 그 모든 변치 않는 사실들 때문에 하나님과 그의 능력은 강력한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3) 여기에서 갱신된 구체적인 약속은 많은 자손에 대한 것이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게 하리라(17절). 역사 가운데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어떠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를 보라! 얼마나 많은, 얼마 유명한 그의 후손들이 오늘날까지 아브라함이 자기들의 조상이라는 이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는지를 보라!

마태복음 26장 헬라어 원어성경 설교문

(4) 그 약속은 의심할 여지 없이 메시야와 복음의 은혜를 가리키고 있다. 이것이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된 바이며, 누가복음 1:73에서 사가랴가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다음의 약속들이 들어 있다.

1) 성령을 주시겠다는 큰 축복의 약속이 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즉 이 말은 복 중에 가장 좋은 축복인 성령의 선물을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2) 교회의 증가에 대한 약속이 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인 신자들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리라는 약속이다.

3) 영적 승리에 대한 약속이 있다.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건져 주시고 두려움 없이 주를 섬기게 하시며'(눅 1:74)라고 한 사가랴의 말은 아마도 그 맹세의 이러한 부분을 언급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약속의 정상은 마지막 약속이다.

4)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약속이 있다. ‘네씨로 말미암아, 곧 네게서 태어날 한 특정 인물(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3:16에서 진술하는 대로 여호와의 사자는 여럿을 가리켜 말하지 않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

Ⅴ. 아브라함의 친족의 번성 22:20-24

이 사실이 여기에 기록된 것은, 비록 아브라함이 자신의 가정이 특별한 은혜로 매우 명례롭게 된 것을 보았을지라도 자신의 친족 집안이 번성하는 것을 들었을 때에도 역시 기뻐하였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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