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3편 설교 말씀은 다윗의 시로서 여호와가 자기의 목자가 되어 주시면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한다. 우리도 시편 23편을 통해서 예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면 부족함이 없다. 인생에서 주님이 나의 길을 인도하시고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셔서 내 영혼을 소생시켜 주신다.
Ⅰ. 성도들의 찬미 23:1-6
(1) 하나님이 자기의 목자라는 사실로부터 시편 기자는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것 중에 어느 것도 부족하지 않다는 점을 추론해 낸다(1절). 다윗 자신이 목자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젖양을 지키는 중에’ 택함을 입었었다(78:70,71). 따라서 그는 선한 목자가 자기 양떼를 향하여 가지고 있는 관심과 부드러운 애정에 대하여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양떼들이 목자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가를 기억하고, 한 마리의 양을 구하기 위하여 생명까지 무릅썼던 적을 회상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예로 들면서 그는 자기 백성에 대하나 하나님의 돌보심을 입증하고 있다. 우리 구주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라고 말씀하셨을 때(요 10:11) 아마 이 구절을 인용하신 듯하다.
그는 양떼를 자기 우리로 들이시고 그들을 위해 온갖 것을 다 베풀어 주신다. 우리는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라가야 한다. 하나님이 자기의 목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다윗은 과감하게도 이렇게 말할 수가 있었다.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구절에는 표현된 것보다 더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다. 즉 단순히 ‘내가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는 의미 뿐만 아니라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모두 주어질 것이라. 또한 만일 내가 원하는 것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내게 합당하지 못하거나 혹은 내게 유익이 되지 못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정하신 때에 받게 될 것이라고 결론지으리라”라는 의미도 담겨있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대하여 선한 목자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신다는 사실로부터 기자는 자기가 빠질지도 모르는 가장 큰 위험이나 곤경에서라도 해를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점을 추론하고 있다(2-4절). 하나님의 초장에 뛰노는 양떼와도 같이 축복 받은 성도들을 보라.
1) 그들은 좋은 곳에 놓임받아 평안히 거하게 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로부터 이생의 평안함, 곧 아버지되신 하나님으로부터 일용할 양식을 받는 기쁨을 누린다. 이렇게 커다란 풍성함도 사악한 자들에게는 메마른 벌판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정욕을 만족시켜 주는 것들만 즐기는 자들이다. 반면에 일상적인 모든 기쁨 안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는 경건한 자들에게는, 비록 이 세상에서는 지극히 적은 소유만 누린다 할지라도 그것이 푸른 초장이 된다(37:16;잠 15:16,17).
2) 그들은 좋은 곳으로 평안히 인도함 받는다.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양육받는 자들은 그의 인도하심에 따라야만 한다. 그는 그들의 눈과 길과 심령을 자기 백성들에게 음식과 휴식을 제공하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힘과 기쁨을 누리게 하신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고여 있어서 썩고 더러운 물가가 아니요, 급하게 굽이쳐 흐르는 물가도 아니요, 사나운 바다도 아닌 조용히 흐르는 물가로 인도하신다.
왜냐하면 조용하면서도 계속 흘러가는 물은, 하나님께로 향하여 흘러가면서도 조용한 영혼에 가장 잘 부합되기 때문이다. 그가 나를…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의의 길이라 함은 의무의 길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길에서 그는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시며 양심과 섭리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의무를 지키는 길은 진정 기쁘고 즐거운 길인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길로 인도하셔서 걷게 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그 길을 걷지 못할 것이다.
3) 어떤 것이 그들을 괴롭힐지라도 그들은 적절한 도움을 받는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며. 한번 범죄하였을 때에는 다윗의 마음이 자신을 괴롭혔고 또 다른 죄를 범했을 때에는 나단을 보내어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말해 줌으로써 하나님은 그의 영혼을 소생시키셨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죄에 빠질 만한 고난을 주실지라도 그들이 계속 그 죄에 빠진 채로 있게 하시지 않는다. “나의 평생에 예닐곱 가지의 고통을 통하여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였으므로 나는 끝까지 주를 버리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내가 죽음의 위협 속에 있을지라도, 즉 골짜기와 같이 깊은 위험의 한가운데에 있을지라도 나는 평안하도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을 가정하는 중에서도 두려움을 경감해 주는 네 개의 단어가 있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즉 첫째로, 그것은 단지 사망의 ‘음침함’일 뿐이다(흠정역에는 ‘그림자’로 되어 있다-역주). 그 안에는 실질적인 해악이 없다는 의미이다. 아무리 독사나 칼이라 하더라도 그림자만 갖고서는 물거나 죽일 수가 없는 것이다. 둘째로, 그것은 참으로 깊고 어둡고 더러운 음침한 골짜기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골짜기는 열매가 풍성하며, 마찬가지로 죽음 그 자체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로의 열매가 된다.
셋째로, 그것은 골짜기를 ‘다니는’것에 불과하다. 즉 기분 좋고 즐겁게 다니는 것이다. 그것은 골짜기를 통과해 지나가는 것이며 그 골짜기 안에서는 아무도 잃어 버려진 바 되지 않고 반대편의 향기로운 산에 모두 안전하게 도달할 것이다. 넷째로, 그 골짜기 안에는 하나님의 자녀를 해칠 것이 전혀 없다. 죽음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떼어낼 수 없다. 즉 죽음이 우리의 육신을 죽이기는 하나 우리의 영혼에는 손대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선한 목자는 단순히 지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골짜기 너머로 자기 양떼를 보호하며 인도해 가실 것이다. 그의 존재는 양떼들에게 큰 위안이 된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즉 목자들의 지팡이, 혹은 양들을 계수할 때 양을 그 밑으로 통고시키는 막대기(레 27:32), 혹은 양들을 소요시키는 개들을 쫓기 위해 목자들이 가지고 다니는 지팡이를 예로 들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신이 안위하신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3) 이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풍성한 선물로부터, 그의 자비가 한결같으심과 영원하심을 추론해낸다(5,6절). 주께서…내게 상을 베푸시고. “주께서 내게 영육간에 필요한 모든 것과 이생과 앞으로 영원히 꼭 필요한 것들을 베풀어 주셨나이다.” 음식은 맛이 있고 상은 하나가득 베풀어져 있으며 잔은 가득 채워져 그가 배고프면 먹을 수 있고 그가 목마르면 마실 수 있다는 의미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것은 나와 내 친구들 모두에게 충분하나이다.” 기름으로 머리에 바르셨으니. 그는 1절에서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하였지만 이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하고 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이제 체험을 통하여 그의 소망은 솟아나고 그의 믿음은 더욱 견고해졌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올 때 물을 내던 반석이 계속 그 진을 따라온 것처럼, 선하심과 인자하심도 자기를 따라 오리라는 확신을 가진 것이다. 그것은 그의 평생 동안 따라올 것이며 심지어 마지막까지라도 그러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자를 끝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녕’ 확신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 평생토록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를 것이며 인생이 끝나는 날, 나는 더 나은 세상으로 옮겨져서 ‘여화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이다.’ 그곳은 거할 곳이 많은, 위에 계신 내 아버지의 집이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