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십계명 설교 말씀은 출애굽기 20장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셨다. 구원받은 백성이 광야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십계명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가 성경 10 계명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한다.
I. 십계명 (1) 20:1-11
(1) 율법을 기록한 모세의 서언이 나타난다(1절).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십계명은 하나님이 만드신 율법이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이 직접 말씀해 주신 율법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자녀들에게 많은 방식으로 말씀해 주신다(욥 33:14). 그러나 그는 어떤 때, 어떤 경우에도 십계명을 말씀하셨을 때 처럼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하나님은 이미 오래 전(이 율법은 사람의 마음 속에 본래적으로 기록되어 있었다)에 이 율법을 주셨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그 기록이 손상 되었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통해 그 율법에 대한 지식을 되살리는 것이 필요했다.
(2) 율법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서언이 나타난다(2절). 나는…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1) 하나님은 이러한 법을 제정할 수 있는 그 자신의 권위를 일반적으로 주장하신다.
2) 하나님은 십계명의 첫 네 계명들 속에 부과된 종교적 예배의 유일한 대상으로서 그 자신을 제시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삼중으로 얽힌 끈에 의해 순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①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은 율법도 주실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할 경우 우리를 지켜 주시고 우리의 순종에 대한 보상을 해 주실 수도 있으며, 우리가 불순종할 경우 우리의 불순종을 벌하실 수도 있다.
②그는 그들의 하나님이었다. 즉 그는 그들과 계약을 맺고 그들의 동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다. 비록 지금은 이 특수한 계약이 더 이상 존재 하지 않지만, 또 다른 하나의 계약이 있으며 그것에 의해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하나님인 여호와와 관계를 맺게 된다. 따라서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그들은 불의하고 패역하며 배은망덕한 사람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③그는 그들을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다. 그는 그들을 구해내심으로써 그들을 통치할 수 있는데 큰 권리를 획득하셨다. 그들은 그들을 자유케 해 주신 분을 섬겨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우리도 우리를 죄의 속박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그리스도를 가장 귀한 분으로 섬겨야 하는 것이다(눅 1:74)
(3) 율법의 내용(3-11절) : 우리는 이 본문에서 십계명의 첫 네 계명을(이것은 흔히, 첫째 돌판으로 불린다)대하게 되는데 이 계명들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의무와 관련된 것들이다. 그 계명들이 먼저 제시된 것은 적절한 일이다. 그것은 사람이 사랑해야 할 이웃을 갖기에 앞서 사랑해야 할 창조자를 가졌기 때문이다. 공의와 사랑은 그것들이 경건의 원리로부터 나왔을 때만이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는 순종의 행위들이다. 자기의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는 순종의 행위들이다. 자기의 하나님께 거짓된 자에 대하여 그가 자기의 형제에게는 진실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1) 제 1계명은 우리의 경배의 대상인 여호와에게만 관련된 계명이다(3절).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애굽 사람들과 그 근방에 있던 다른 민족들은 그들 자신의 상상력을 통해 기이하게 만든 새로운 신들을 많이 섬기고 있었다. 우리가 가장 쉽게 빠지는 죄인이 계명을 범하는 죄는 하나님에게만 돌려야 할 영광과 명예를 피조물에게 돌리는 죄인 것이다. 교만은 자아를 우상으로 삼는 것이고 탐욕은 돈을 우상으로 삼는 것이며 정욕은 배를 우상으로 삼는 것이다.
우리에게 하나님보다 더 존중하거나 사랑하고, 두려워하거나 섬기며, 기뻐하거나 의지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근 것이 무엇이든 사실상 그것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 것이다. 이 계명 가운데 ‘나 외에는’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다음과 같은 뜻을 나타낸다. ①우리는 다른 어떤 신도 섬길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실을 분명히 아실 것이기 때문이다. ②감히 다른 신을 하나님의 면전에 두는 것은 하나님께서 간과하실 수도 없으며 간과하시지도 않을 죄이다.
2) 제 2계명은 예배의식 곧 하나님께서 예배 받으시는 방법과 관련된 계명이다.
①금지규정 : 참된 하나님을 섬기더라도 새긴 우상을 통해 섬기는 것은 금지되었다(4,5절). 유대인들은(적어도 포로 시대 이후의 유대인들) 이 계명에 따라 형상을 새기거나 그림을 그리고 것은 무엇이든 스스로 금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로마군대가 그들의 군기 속에 그려 놓은 형상들을 ‘가증한 것'(마 24:15)으로 불렀으며 특히 그 군기들이 거룩한 곳에 세워질 때 그렇게 불렀다. 그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놓는 짓이라고 생각되었다(롬 1:25).
왜냐하면 형상은 거짓 스승이기 때문이다(합 2:18).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육신을 가졌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한받지 않으시는 영이시다. 이 계명은 또한 우리의 상상력으로 하나님에 대한 형상을 새기지 말라고 명령한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을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여기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적인 예배는 상상의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의 능력에 의해서 지배되어야 한다.
②이 금지규정이 부과된 이유들(5,6절) : 첫째, 하나님은 예배를 드리는 일에 있어서 다른 신을 믿는 것을 용서치 않으신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하나님은 특별히 사람들이 이 자연 속에 있는 것들을 형상으로 만들어 예배를 할 때 용서치 않으신다. 둘째, 하나님은 우상 숭배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신다. 하나님은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자기를 미워하는 자들로 간주하신다. 하나님은 그 죄에 대한 형벌을 자손들에게까지 내리신다. 만일 그 부모들이 그들의 죄가운데 죽고, 자녀들이 그들의 부모의 전통을 물려받음으로써 그들의 전철을 밟고 거짓된 우상숭배를 한다면 그들의 죄의 분량이 찰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러 오신다 해도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불의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오래 참으시지만 그들을 항상 참으시지는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최대한 4대까지 기다렸다가 그때부터 그들이 범한 죄의 형벌을 내리기 시작하실 것이다. 셋째, 하나님은 그의 신실한 예배자들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하신다. 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제 1계명이 사랑과 욕구와 기쁨과 소망과 감탄 등의 내적인 예배를 요구한다면 제 2계명은 기도와 찬양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엄수등의 외적인 예배를 요구한다.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그의 계명을 특히 그에게 예배드리는 것과 관련된 계명들을 지키는 일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들을 지키는 자들은 다른 계명들도 지킬 수 있도록 은혜를 받게 될 것이다. 복음적인 예배는 모든 방식의 복음적인 순종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런 은혜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에게 가해질 하나님의 진노보다 훨씬 더 멀리 천대에까지 미치게 될 것이다.
3) 제 3계명은 우리의 예배 방식과 관련된 계명이다.
①엄격히 금지된 규정 :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지 말라(7절).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에 의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는다. 첫째, 위선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신앙고백을 하면서도 그 신앙고백에 따라 살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죄악에서 떠나지 않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들이다. 둘째, 계약 위반이다.
만일 우리가 선한 것만을 행하기로 하나님께 약속하고도 여호와께 대한 우리의 맹세를 이행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는 것이다(마 5:23). 셋째, 경솔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전혀 선한 목적도 없이 지나가는 말로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다. 넷째, 거짓 맹세이다.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드리도록 배우는 종교적인 행위 중에는 ‘그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이 있었다 대한 증인이 되도록 부른다면 그들은 그에게 영광을 돌릴 것이 아니라 모욕을 준 것이다.
②엄중한 형벌 :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남의 죄를 처벌하는 법관들은 이 계명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계명을 범한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개인의 재산이나 공공의 안녕을 해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죄를 지은 사람은 아마도 자기에게 죄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죄없다 하지 아니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심판의 손에 떨어지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4) 제 4계명은 예배의 시간과 관련된 계명이다. 하나님은 매일 영광과 섬김을 받으셔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칠일 중에서 하루를 특별히 성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를 섬기는 일로 보내야한다.
①제 4계명의 내용 :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8절). 아무 일도 하지 말라(10절).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은 태초부터 제 7일을 축복하시고 성별하셨다(창 2:3). 그러므로 이 계명은 새로운 법을 제정한 것이 아니고 옛법을 되살린 것이었다.
㉠그들은 종교적으로 준수해야 할 날에 대해 지시를 받고 있다. 그날은 엿새 동안 일하고 나서 맞게 되는 이레째 날이다. 그런데 이날이 첫 번째 제 7일부터 계산한 것인지 그들이 애굽에서 나온 날로부터 계산한 것인지 아니면 양자가 모두 포함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다. ㉡이 날은 어떻게 준수되어야 했나. 첫째, 이 날은 안식일로 준수되어야 했다. 그러므로 이 날에 그들은 직업이나 세상적인 일을 막론하고 아무 일도 해서는 안되었다.
둘째, 이 날은 거룩한 날, 곧 거룩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거룩한 일을 하도록 성별된 날로 준수되어야 했다. 하나님은 이 날을 축복함으로써 이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엄숙하게 하나님을 찬양함으로써 이 날을 거룩하게 지켜야만 했다. ㉢누가 이 날을 준수해야 했나.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10절). 여기서 아내는 언급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아내가 남편과 하나이며 그 남편과 함께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객으로 있는 곳에서라 할지라도 우리의 행동 특히 안식일에 행하는 우리의 행동을 주목하신다.
㉣이 의무는 특별히 기억되어야 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8절). ‘안식일을 기억하라’라는 말은 안식일이 그 이전에 제정되어 준수되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애굽의 속박 속에서 그들은 안식일을 제대로 준수할 수가 없었다. 어떤 학자들은 이 말이 우리가 안식일을 위해 준비를 해야 함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안식일이 올 때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도록 그 날이 오기 전에 그 날을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②제 4계명을 지켜야 할 이유들 :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6일이라는 충분한 시간을 누리고 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9절). 이 엿새 동안이란 시간은 우리를 하나님을 섬겨야만 한다. 이 날에 우리가 쉬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에 대한 친절이 될 것이다. ㉡이 날은 하나님의 날이다.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10절). 이 날은 하나님에 의해 제정된 날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 봉헌된 날이다. ㉢이 날은 세상의 창조를 기념하기 위하여 제정되었으며 따라서 창조자의 영광을 위하여 준수되어야 한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킴으로써, 자기들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음을 명백히 나타냈으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만든 우상을 섬기는 모든 열방과 그들 자신을 구별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의 일을 마치신 후 제 7일에 쉬심으로써 안식의 모범을 보여 주셨다.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하나님께서는 친히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11절). 하나님은 이처럼 안식일을 축복해 주셨으며 우리가 그 날을 신앙적으로 준수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그 축복을 받게 되리라고 우리를 격려하셨다. 안식일은 여호와께서 만드신 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날을 훼손시키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Ⅱ. 십계명(2) 20:12-17
우리는 여기서 흔히 둘째 돌판으로 불리는 나머지 여섯 계명을 대하게 된다. 이 계명들은 우리 자신들과 우리들 상호간에 할 의무를 다루는 있는 것으로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두 번째 큰 계명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 제 5명은 우리가 우리의 친척들에게 지켜야 할 의무에 관한 계명이다. 여기에서는 부모들에 대한 자녀들의 의무만이 명기되어 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12절). 이 말은 다음과 같은 뜻으로 한 말이다.
1) 부모들의 인격에 대한 공경 : 우리의 모든 외적인 행동으로 표현되는 부모에 대한 내적인 존경을 나타낸다.
2) 부모들의 합당한 명령에 대한 순종 : 이것은 에베소서 6:1-3에 상술되어 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순종하라.’ 이 계명은 사랑의 원리에 입각하여 순종할 것을 명령하는 것이다. 이 말은 비록 지금까지는 너희가 “하지 않겠나이다”라고 말해왔지만 이후로는 회개하고 순종하라는 것이다(마 21:29).
3) 부모들의 책망과 교훈과 징계에 대한 복종 : 자녀들은 하나님을 대할 때와 같은 마음으로 부모들의 선하고 부드러운 책망 뿐 아니라 엄한 책망에 대해서도 복종해야만 한다. 자녀들은 모든일에 있어서 부모에게 위안을 주려고 노력해야 하며 또한 필요시에는 그들을 봉양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구주께서 이 명령을 통해 특별히 의도하셨던 바이다(마 15:4-6). 이 계명에는 다음과 같은 약속이 수반되어 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하나님은 이 두 번째 돌판이 시작되는 이 부분에서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리라는 것에 대해 언급하신다. 이 계명을 순종하는 자녀들에게는 특별히 그 좋은 땅에서의 장수가 약속되고 있다.
(2) 제 6계명은 우리 자신과 우리 이웃의 생명에 관련된 계명이다(13절). 살인하지 말지니라. 이 말은 곧 “너 자신의 몸이나 다른 사람의 몸의 건강과 안락과 생명을 부당하게 해치거나 상처입히지 말라”는 것이다. 이 계명이 합법적인 전쟁이나 우리 자신을 방어하는 데 필요한 행동으로 인한 살인을 금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어떤 개인에 대한 일체의 악의나 증오심(왜냐하면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자와 같이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개인적인 복수를 금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갑작스러운 충동으로부터 생기는 모든 성급한 분노와 격정에 의해 말해지거나 행해진, 또한 행할 의도가 있었던 가해 행위를 금하는 것이다. 우리 구주께서는 바로 이러한 뜻으로 이 계명을 설명하셨다(마 5:22).
(3) 제 7계명은 우리 자신과 우리 이웃의 순결에 관련된 계명이다(14절). 간음하지 말지니라. 우리 구주께서는 이 계명을 제 6계명보다 앞에 놓으셨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막 10:19). 왜냐하면 우리의 순결은 우리의 생명만큼이나 소중한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몸을 더럽히는 것을 우리의 생명을 파괴하는 것 못지않게 두려워 해야 하기 때문이다.
(4) 제 8계명은 우리 자신과 우리 이웃의 재산에 관련된 계명이다(15절).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이 명령은 죄된 낭비에 의해 자기의 소유를 축내거나 죄된 절약에 의해 자기 소유물의 유용성과 그로 인한 즐거움을 박타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계명은 고대의 토지 경계선을 옮기거나 이웃의 권리들을 침해하거나, 이웃의 집이나 토지 또는 그 소유물을 강제적인 방법이나 은밀한 방법으로 빼앗거나, 폭리를 취하거나, 빌리거나 주운 것을 되돌려 주지 않거나, 정당한 채무와 임대료와 임금 등을 지불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서 약탈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또한 이 계명은 공금이나 세금 또는 종교적인 행사를 위하여 바쳐진 돈을 도적질하는 것을(이것은 도적질하는 죄 가운데서 가장 악한 죄이다) 금하고 있다.
(5) 제 9계명은 우리 자신과 우리 이웃의 명예에 관련된 계명이다(16절).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이 계명은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금하고 있다.
1) 어떤 일에 대하여 그릇되게 말하고 사기를 치며, 애매하게 말하는 등 이웃을 속이기 위하여 계략을 꾸미는 것.
2) 그릇된 편견으로 자기 이웃으로 불리한 말을 하여 그의 평판에 부당한 손실을 끼치는 것.
3) 자기의 이웃에 대해 거짓 증거를 하는 것 즉 그가 알지도 못하는 것을 그가 했다는 고소하며 그를 중상하고, 험담하며, 그에 대해 나쁜 소문을 퍼뜨리며, 그가 잘못 행한 것을 확대시켜 그로 인한 결과를 실제보다 더 악화시는 것,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의 이웃을 파멸시킴으로써 자기 자신에 대한 평판을 더 높이려고 노력하는 것.
(6) 제 10계명은 인간의 근원적인 죄를 경계시키는 계명이다(17절). 탐내지 말지니라. 앞에서 언급된 계명들이 우리의 이웃에게 해가 되는 행동에 대한 모든 욕구를 암시적으로 금하고 있다면 이 계명은 우리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을 소유하려는 모든 부당한 욕구를 금하지 있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벗겨져 다시 보게 되었을 때(히 9:18)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았다. 즉 그는 ‘탐내지 말지니라’한 이 계명이 우리의 모든 죄의 시초가 되는 모든 부정한 욕구와 욕망들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Ⅲ. 두려움과 더불어 주어진 율법 20:18-21
(1) 이 율법이 주어지는 것에 수반된 특별한 두려움 : 그들은 하여금 이러한 두려움을 느끼게 만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위엄을 감각적으로 깨닫게 해서 복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영혼을 준비시키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이 율법은 사람들을 겸비케 하기 위하여 그러한 방법으로 모세에 의해 주어졌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요 1:17) 은혜와 진리가 더 많은 환영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2) 두려움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인상
1) ‘그들은 떨며 멀리 서 있었다'(18절).
2)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히 12:12). 즉 그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지 말고 모세를 통해 그들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간구했다(19절). 이 사실로 말미암아 우리는 무한한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법을 이해하고 순종하게 된다.
(3) 모세는 이 두려움을 통해 의도된 하나님의 계획을 설명함으로써 그들을 격려해 주었다(20절). 두려워 말라. 이 말은 곧 “우뢰와 번개가 너희를 다 태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은 목적을 위해 주어졌다.
1) 그것은 그들이 중재자 없이 하나님을 직접 대하기를 얼마나 바라는지에 대해 시험하려는 것이다.
2)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의무를 지키게 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모세는 ‘두려워 말라’라고 말함으로써 그들을 격려하고 있다. 그러나 또한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말씀하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케 하기 위함임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혼란에 빠질 정도로 하나님을 두려워해서는 안되지만 항상 하나님의 위엄에 대하여 경외심을 품고 그의 진노를 두려워하며 우리에 대한 그의 절대 주권에 순종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두려움을 가짐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지키는 일에 자극을 받고 신중한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4) 모세의 중재로, 그들과 하나님 사이의 교제가 진전된다(21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멀리 서서 있는 동안 모세는 암흑으로 가까이 가도록 이끌림을 받았다. 유대 랍비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천사를 보내어 그의 손을 잡아 이끌어 오게 하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Ⅳ. 제단에 관한 율법 20:22-26
모세가 ‘하나님의 계신 암흑으로’ 가자, 하나님께서는 두려움을 거두셨으며 그만이 들을 수 있도록 은밀하게 이 본문에서부터 시작하여 23장의 마지막에 이르는 모든 내용을 말씀해 주셨다. 그 내용은 대체로 십계명에 대한 해설로 볼 수 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먼저는 입으로 다음에는 기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어야만 했다. 여기에서 언급된 율법들은 하나님께 드릴 예배와 관련되어 있다.
(1) 하나님은 그들에게 신상을 만들어 예배 드릴지 말 것을 명하셨다(22,23절).
1) 여기에서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존재가 적절히 추론 될 수 있음을 지적하심으로써 신상을 만들지 말라는 제2계명을 반복하신다. 하나님은 그가 그들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그들에게 충분히 보여 주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기나 한 것처럼 하나님에 대한 신상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2) 그들이 비록 그러한 상들을 단지 하나님의 표상물로서 여기고 있는 것처럼 꾸민다 해도 사실상 그들은 그 신상들을 섬김으로써 그것들을 하나님의 경쟁자로 만들었다. 하나님은 그것을 용납코자 하지 않으신다.
(2) 그들은 여기서 예배드리는 데 필요한 제단을 만들도록 지시받았다.
1) 그들은 제단을 매우 소박하게 흙으로나 다듬지 않은 돌로 만들도록 지시 받았다(24:25절). 그들은 조각한 신상을 생각나게 하는 유혹을 받지 않기 위해 제단으로 쓰일 돌조차 다듬지 말아야 했으며 다만 원래 있던 대로의 울퉁불퉁한 돌들을 가져다가 쌓아 올려야 했다. 모든 외적인 의식을 행함에 있어서 소박성은 신앙을 가장 빛내주는 요소이다. 그러므로 복음시대의 예배가 외적인 화려함에 치중되어서는 안된다. 경건의 아름다움은 아무런 장식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2) 그들은 그들이 층계를 밟고 제단에 올라가지 않도록 제단을 아주 낮게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다(26절). 제단을 높이 쌓으면 쌓을수록 하늘이 더 가까워지므로 제물이 그만큼 더 잘 열납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제단을 높은 곳으로 정했던 이방인들의 어리석은 환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제물의 높이가 아니라 마음의 높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그들은 여기에서 제단을 낮게 쌓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3) 그들은 여기서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헌신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헌신을 은혜롭게 받아주시리라는 것을 확신했다(24절). 복음 아래서 사람들은 어디서나 기도를 할 수 있도록 격려를 받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그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함께 하실 것이라는 약속이 더 완전한 형태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 가운데 오셔서 그들을 축복해 주실 것이므로 우리는 우리의 엄숙한 집회들을 미화시키기 위해 그 이상의 것을 욕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