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1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호르 산으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할 때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다. 마실 물이 없다고 불평하고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하찮게 보았다. 하나님은 이 때 불뱀을 보냈다. 백성들을 불뱀이 물기 시작했다. 백성들은 모세에게 나와서 회개했다.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불뱀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모세는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았다.
이스라엘 백성의 요단 동편 정복
I. 호르마를 점령함 21:1-3
(1) 가나안 사람인 아랏의 왕은 이스라엘이 ‘정탐 길로 온다'(한글 개역에는 ‘아다림 길로 온다’로 되어 있다-역주)는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 진을 급습하였다. 아랏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정탐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인 것 같다. 모세가 38년 전에 보낸 정탐군들이 그들의 땅을 다녀갔을 때 그들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였었다.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이 온다는 것과 오는 목적을 알게 되자 그들은 깜짝 놀라서 이스라엘을 감시하게 된 것이다.
(2) 처음에 아랏은 이스라엘을 급습해서 성공하였다. 아랏 왕의 전위대는 대열에서 낙오한 이스라엘인 몇 명을 잡아 포로로 삼았다(1절).
(3)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겸손히 아뢰었다(2절). 이 일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는 그들의 선조들처럼 원망을 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포기하도록 만들 수도 있는 하나의 시험거리였다. 그러나 그의 섭리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신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의 은혜로 그들이 그 시련을 잘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주셨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 주시리라고 믿을 수 있도록 하셨다.
(4)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정복하고 승리를 얻었다(3절). 아마도 여호수아의 지휘를 받았던 강한 부대가 출동하였을 것이다. 그 부대는 이 가나안 사람들을 격퇴시켰을 뿐만 아니라 가나안 성읍까지 그들을 쫓아가서 완전히 소탕하고 진으로 돌아 왔다. “우리는 한번쯤은 패전할지라도 마침내는 승리한다.” 갓 지파에게 한 이 말은 하나님의 모든 이스라엘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어떤 군대가 이스라엘을 이길 수도 있다. 그러나 마침내는 이스라엘이 그 군대를 이길 것이다.
Ⅱ. 놋뱀 21:4-9
(1) 이스라엘은 에돔 땅을 둘러 먼 길로 돌아가는 오랜 행진으로 인해 지쳤다. 이는 이스라엘이 가장 가까운 길인 에돔 땅을 통과해 가는 길을 허락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4절).
(2) 이런 일로 인하여 그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며 불신앙의 말을 토로하였다(5절). 그들에게는 충분히 먹고 남을 만큼의 양식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식물도 없고’라고 불평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비록 만나를 먹고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싫증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만나 자체를 몹시 싫어하였으며, 만나를 어린 아이에게는 적합하나 어른과 군인들에게는 맞지 않는 ‘박한 식물’이라고 불렀다. 만나를 싫어하는 그들이 무엇으로 만족하겠는가?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멸한다고 해서 우리까지도 그처럼 말씀을 경시해서는 안된다. 말씀이야말로 생명의 떡이며 참으로 실속 있는 음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 떡은, 어떤 이들이 박한 식물이라고 부른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그 떡을 먹는 자들을 영생에 이르도록 자라게 할 것이다.
(3)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운 심판을 내리셨다(6절). 하나님께서는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시어 많은 사람들을 물거나 쏘아 죽게 하셨다. 그들이 지나온 광야에는 신명기 8:15에서 볼 수 있듯이 내내 그와 같은 불뱀들이 횡행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즉 그들이 원망하기 시작한 이때까지 하나님께서는 그 뱀들에게 물려 상처를 받지 않도록 그의 백성들을 기이하게 보호해 오셨다. 이 뱀들은 그 색깔이나 사나움 때문에 혹은 물렸을 때의 혹독한 아픔 때문에 ‘불뱀’이라고 불렸다. 그들이 오만하게 하나님과 모세를 대항하여 일어서자 하나님은 이같이 비천한 짐승을 사용하셔서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심으로써 그들을 낮추시고 누르셨다.
(4)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심판을 받고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탄원하였다(7절).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한다.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일 고통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자기들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모세가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기를 요청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고통은 종종 하나님의 감정을 변호시키며 또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이 전에는 경멸했던 기도를 귀하게 여기도록 가르쳐준다.
모세는 자기를 저주한 자들을 축복하며 자기에게 악하게 대했던 자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심으로 용서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모세는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신 그리스도의 전형이 되었고, 우리도 그와 같이 행하여 ‘우리의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이도록 가르쳐 주는 본보기가 되었다.
(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놀라운 준비를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불뱀의 모형을 만들라고 명령하셨다. 모세는 놋으로 그 모형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아 세워 진 사방에서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불뱀에 물린 자마다 이 놋뱀을 쳐다보고서 다 낫게 되었다. 조금 전에 백성들은 하나님께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해주시기를 구했었다(7절).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음을 아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비록 우리가 원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구원을 이루시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아시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치유된 것을 놋뱀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놋뱀을 쳐다보면서 하나님을 치료하시는 여호와로서 우러러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놋뱀을 바라보도록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방법에는 복음적인 의미가 많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구주께서도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15)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여기서 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오늘날의 우리 사이의 다음과 같은 유사점들을 살펴보자.
1) 이스라엘 백성들의 질병과 우리의 질병이 유사하다. 마귀는 옛 뱀, 곧 불뱀이다. 그리고 그는 ‘큰 붉은 용’으로 나타난다(계12:3). 죄는 곧 이 불뱀이 무는 것이다. 죄는 놀란 양심에는 고통스럽고 마비된 양심에는 파괴적이다. 그래서 사단의 시험은 사단이 쏘는 ‘불화살’이라고 일컬어 졌다(엡 6:16).
2) 그들이 받은 치료와 우리가 받은 치료가 유사하다.
①이 불뱀에 대한 해독제를 고안하시고 처방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셨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우리의 구원도 무한하신 지혜자의 계획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구속의 원리를 고안해 내셨던 것이다.
②놋뱀을 통한 그 치료 방법은 매우 가망이 없는 것 같았다. 그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는 우리의 구원도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헬라인에게도 미련한 것’이었다.
③치료하는 도구인 놋뱀은 상처를 내게 한 불뱀과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졌었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도 비록 자신은 죄와 전혀 상관이 없으시지만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지심으로써(롬 8:3) ‘저 사람은 죄인이라’는 말이(요 9:24) 당연히 여겨질 만큼 되셨다.
④그 놋뱀은 높이 들렸다. 그리스도도 그와 같이 들리셨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들리셨던 것이다(요 12:33,34). 이는 그가 세상에 구경거리가 되셨기 때문이다. 그는 복음 전파에 의해서 들리셨다. 여기서의 ‘장대’라는 단어는 ‘기치’ 혹은 ‘기호’를 의미한다. 이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가 ‘만민의 기호로 설 것’ 이기 때문이다(사 11:10). 혹자는, 여기서 놋뱀이 높이 들린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 머리를 상하게 하신 옛 뱀, 곧 사단을 이기시고 승리하실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때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정사와 권세를 폐하여 밝히 드러내셨다(골 2:15).
3) 그들의 치료제와 우리의 치료제의 사용에 있어서 유사하다. 그들은 놋뱀을 보고서 살았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보는 것은 바로 믿음으로 보는 것이다(히 12:2),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사 45:22). 이 치료의 표적을 바라본 자들은 비록 진의 맨 끝에서 볼지라도 또는 희미한 눈이거나 눈물을 흘리는 눈으로 볼지라도 누구나 다 반드시 나았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누구든지, 비록 그 믿음이 연역한 상태일지라도,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Ⅲ. 이스라엘 진의 진행 21:10-20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 이르기까지 지나온 여러 여정과 이동에 대한 기사를 본다. 여호수아는 처음 부분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이 모압 평지에서 나와 마침내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 갔다. 자연계의 운동은 그 중심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욱더 빨라지는 법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약속된 안식처에 가까이 이르렀다. 그래서 그들은 10절의 표현대로 진행했다. 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하여. 우리가 천국을 행해 가는 길에서 이와 같이 행한다면, 그리고 천국에 가까이 갈수록 더욱더 주의 일에 애쓰고 열심을 낸다면 좋겠다. 여기서 특별히 다음의 두가지 점이 주목할 만하다.
(1) 하나님께서는 아르논 시내 근처에서 그의 백성들에게 은총을 베푸심으로 놀라운 성공을 거두게 하셨다(13-15절).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돔 땅을 돌아서 왔다. 가나안에 이르는 데에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들이 그들의 통행을 방해할 수는 있으나 그들을 막아 약속된 안식처에 들어갈 수 없게 하지도 못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행진하는 동안에 의로운 롯의 후손으로서 모압 족속이 그들에게 결코 적대 행위를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신 2:9)을 경건하게 지킨 것을 주의하지 않을 수 없다.
(2) 하나님께서는 우물 혹은 샘을 뜻하는 ‘브엘’이라는 곳에서 그의 백성들에게 놀라운 방법으로 물을 공급해 주신다(16절).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을 공급 받았던 경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당한 불평을 하면서 물을 구했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정당하신 진논가 발하여 진 후에야 비로서 그들에게 물이 주어졌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와 다른 사실들을 보게 된다.
1) 하나님은 사랑 가운데서 물을 주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놀라운 일을 목격하고 함께 은총을 나누게 하시기 위해서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명하셨다.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16절). 즉 그들이 구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주신 것이다.
2) 그들은 기뻐하며 감사하는 태도로 그 물을 받아 마셨으며, 그들의 그러한 태도는 그 물의 맛을 갑절이나 더 달콤하게 만들었다(17절). 그때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서로를 격려하기 위하여 노래를 불렀다. 우물물아 솟아나라(17절). 그들은 이와 같이 우물물아 솟아나라(17절). 그들은 이와 같이 우물물이 솟아나도록 기도하였다. 왜냐하면 약속된 자비는 반드시 기도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장대에 달렸던 놋뱀이, 우리를 치료하기 위해 십자가에 들리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듯이, 이 샘은,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임하시며 우리에게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시는 성령을 상징한다(요 7:38).
3) 이전의 기적들의 경우에서는 그 기적이 일어난 장소에 붙여진 백성들의 다툼과 불평을 의미하는 이름에 의해 그 기적이 영원히 기억되곤 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찬양의 노래에 의해 이 기적이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이 우물은 ‘족장들’, 곧 칠십 인 장로들이 팠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족장들이 판 구멍에서 기적적으로 물이 솟아나오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물을 주시마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 물을 받기 위하여 땅을 파고 구멍을 내야 했다.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사용하면서 기대해야 한다. 그러나 그 탁월한 능력은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Ⅳ. 시혼 왕과 옥 왕을 정복함 21:21-35
본문은 이스라엘이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정복하여 얻은 승리에 대한 기사이다.
(1) 이스라엘이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평화의 사절단을 보냈으나 불화의 답변을 받았다(21-23절). 그리하여 발생한 전투에서 시혼의 군대는 참패하였다. 뿐만 아니라 아모리의 모든 땅도 이스라엘의 소유로 돌아가고 말았다(24,25절).
1) 이스라엘이 아모리 땅을 점령한 행위는 아모리 사람들에 대해서 정당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먼저 침략하여 이스라엘에게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2) 이 점령은 이 땅의 전 소유자였던 모압 사람들에 대해서도 정당하였다.
①비록 이 땅이 모압 족속에게 속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얼마 전에 아모리 족속이 모압에게서 이 땅을 빼앗아 완전히 아모리의 소유지로 장악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점령은 정당한 것이다(26절). 이 땅은 때가 차면 이스라엘에게 넘겨 주기로 예정된 것으로서 먼저 아모리 사람들의 손에 넘어갔던 것이다. 그러나 아모리 사람들은, 자기들은 다만 그 땅이 보관인에 지나지 않으며 이스라엘이 나이가 찰 때까지 그 땅을 맡고 있다가 이스라엘에게 넘겨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의 광대한 범위를 다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본문이 보여 주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행사를 이미 알고 계시다.
②이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모세는 이 땅에 관한 믿을 만한 기록을 인용하였다. 그 기록은 그들의 속담과 노래에서 나타나 있는 것들이다. 여기서 모세는 자기가 주장하는 것을 잘 입증해 주는 시 몇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27-30절). 첫째, 본문에 그 이름이 열거되고 있는 그러한 땅들은, 전에는 모압 자손들의 소유였으나 전쟁으로 인해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모압 자손들은 전적으로 무능했고 심지어 모압의 신 그모스조차도 그 땅들을 시혼의 손에서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포기해 버렸다는 것이다(29절).
(2) 바산 왕 옥은, 그의 이웃인 아모리 족속의 운명을 보고 경고를 받아 이스라엘과 화평하려고 노력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결국은 아모리와 같이 파멸하는 신세가 되게 할 전쟁을 이스라엘과 벌이려고 하였다. 바산 왕 옥 역시 아모리 사람이었고 게다가 그는 자신의 장대한 키와 힘 때문에 더욱 이스라엘을 이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여기서 다음 몇 가지 점을 주목해보자.
1) 아모리인이 먼저 싸움을 걸었다(33절). 아모리 땅은 매우 비옥하고 좋았다. 바산은 아주 좋은 재목(바산의 떡갈 나무가 이를 입증한다)과 아주 좋은 품종의 가축들과(바산의 황소와 수소가 이를 입증한다) 그리고 신명기 32:14에서 칭송되고 있는 양과 어린 양들로 유명하였다.
2) 하나님은 이 사건에 관심을 보이시고 이스라엘에게 바산의 위협적인 무럭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거인이라도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한낱 벌레에 불과할 뿐이다.
3) 이스라엘은 적의 군대를 패주시켰을 뿐만 아니라 적의 땅까지도 획득하였다. 이 땅은 나중에 요단 강 저편에 먼저 자리 잡은 두 지파와 반 지파의 기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