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0장 설교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후를 사용하여 악한 아합 왕가를 전멸 시키는 내용이 기록되었다. 열왕기하에서 예후가 아합의 자손 70명을 살해 했다. 아하시야의 형제 42명도 살해 했다. 하나님은 악한 아합의 일가를 모두 전멸 시키고 예후가 종교를 개혁하게 했다.
Ⅰ. 아합의 집을 진멸함 10:1-14
예후는 아합의 집이 반드시 멸절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 아합의 아들들은 사마리아에서 자신들의 후견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아합의 아들들은 사마리아에 있었다. 그곳은 견고한 도성으로서 아마도 그들은 아람과 전쟁할 당시 안전을 위해서 그곳에 있었던 것 같으며 지금 예후의 반란이 있자 마찬가지로 그곳으로 피했던 것 같다. 그들과 더불어서 이스르엘 방백들, 즉 왕궁의 높은 장관들이 있었는데 그들도 안전을 위해서 혹은 앞으로 할 일을 의논하기 위해서 사마리아로 갔던 것이다. 예후는 아합의 아들들을 죽이기 위해서 직접 자기의 군대를 이끌고 사마리아로 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후견인들로 하여금 죽이게 하려고 하였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손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할 것이다.
1) 그는 아합의 아들들과 함께 있는 그들의 후견인들에게 도전장을 보냈다(2,3절). 이는 예후가 그들이 자기를 대적하기를 정말로 원했거나 그들이 그렇게 하리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비겁함과 하나님의 계획을 대적하기에는 그들이 완전히 무능력하다는 것을 드러내어 그들을 꾸짖기 위함이었다.
2) 예후는 그들의 항복을 얻어냈다. 그들은 신중하게 생각을 해보았다. 두 왕이 저를 당치 못하였거든 우리가 어찌 당하리요(4절). 그의 진노 앞에서 희생 제물로 쓰러진 두 왕을 본 그들은 예후에게 항복할 것을 알려 왔다. 우리는 당신의 종이라 무릇 명하는 것을 우리가 행하고(5절).
3) 예후는 더 나아가서 그 아들들을 교육하는 자들로 하여금 그들을 죽이도록 하였다(6절). 이 이스르엘의 장로들은 사악하게도 전에 나봇을 죽이라는 이세벨의 지시를 따랐었다(왕상 21:11). 이세벨은 아마도 그들을 지배하는 자신의 권세를 과시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똑같이 에후에게 고분고분하게 행하고 있으며 아합의 아들들을 죽이라는 그의 명령을 기꺼이 따르고 있다. 그들이 아합의 아들들의 머리를 가져왔을 때 예후는 죽인 자들을 책망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이 그렇게 하였음을 인정하였다.
①그는 이러한 보복을 행한 자들을 책망하는 듯하다. “나는 단지 한 사람을 죽였으나 그들은 이 모든 자들을 죽였다. 사마리아 사람들이나 아합의 집의 친분이 있는 어느 누구도 이 일에 대해서 나를 비난할 수는 없다. 이는 그들의 장로들과 후견인들이 이 일을 행하였기 때문이다.”
②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으로 결론짓는다(10절) 여호와께서 그 종 엘리야로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
(2) 예후는 계속 아합의 집의 남은 모든 자들, 즉 그의 자손들 뿐 아니라 그와 인척 관게에 있는 모든 자들을 죽여나갔다. 이스르엘에서 이 일을 행한 후에 그는 사마리아에서도 같은 일을 행하였다. 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 남아 있는 바 아합에게 속한 자를 죽여 진멸하였으니(17절). 이것은 피비린내 나는 학살이었다. 따라서 지금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와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해서는 안된다. 죄인은 고통을 당해야 하나 죄인으로 인해 죄 없는 자까지 고통을 당해서는 안된다.
(3) 예후가 이 일을 계속 행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섭리로 길에서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났고 마찬가지로 그들을 죽였다(12-14절).
1) 그들은 아달랴로부터 난 아합의 집의 자손들이었다. 따라서 그들 역시 진멸의 대상에 포함되었다.
2) 그들은 아합의 집의 악에 물든 자들이었다.
3) 그들은 그 때 아합의 집의 왕자들을 알현하러 가는 중이었다.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하려 내려가노라(13절).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은 요람과 이세벨의 후손들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혈연으로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Ⅱ. 바알 숭배자들을 진멸함 10:15-28
1. 여호나답과의 관계(15-17)
선한 사람인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과 예후가 서로 교분을 맺게 된다(15,16절). 이 여호나답의 가문은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고 성읍 중에 거하지도 않는 가문으로 삼백년 동안을 그와 같이 지내왔다(렘35:6이하). 여호나답도 이와 같이 세상과 세상의 일에 대해 거의 무관심했으나 일부러 예후를 만나기 위해서 찾아갔다. 이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수행하고 있는 예후를 북돋워 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여호나답은 비록 선지자도, 제사장도, 그리고 레위 지파 사람도 아니었으나 자기 부인과 헌신의 삶으로 인해 널리 존경 받던 사람이었다. 예후는 군인이었지만 그를 알고 있었으며 존경하였다. 여호나답을 만났을 때 예후는 전과 마찬가지로 거칠게 말을 몰고 가는 중이었을텐데도 멈추어 서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1) 예후는 그에게 인사를 하였다. 안부를 묻고(15절). 즉 그에게 존경을 표했다는 말이다.
(2) 예후는 자기 마음이 그에 대해 진실하다고 고백하였다. 즉 그의 인격과 그가 나실인의 영예로움을 가진 것에 대해 진심으로 존경을 표하였다. 아울러서 예후는 그도 자기에 대해 마찬가지의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고자 하였다. 네 마음도 진실하냐. 여호나답은 그에게 그러하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마음의 표시로 예후에게 자기 손을 내밀었다.
(3) 예후는 그를 자기 병거에 올라오게 했으며 함께 사마리아로 갔다. 사람들은 여호나답이 예후와 함께 병거에 타고 있는 것을 보고는 예후를 더 좋게 생각했을 것이다. 경건한 사람들이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무슨 일을 계획하는 사람들은 선한 사람들을 자신들의 정책에 끌어들임으로 자신들을 더욱 강하게 해왔다. 여호나답은 세속적인 지혜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만일 예후가 하나님의 종이요 바알의 적이라면 여호나답의 신실한 벗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예후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가로되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16절). 이 말은 종종 그가 여호와를 위하는 체 가장하였고 그 열심은 실상은 자신과 정권 쟁취를 위한 것이었다는 의심을 자아내게 하는 근거로 취해진다.
1) 그는 그 일을 자랑하며 마치 하나님과 사람이 자기에게 큰 빚을 지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기 때문이다.
2) 그는 마치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행동하던 바리새인들처럼 자기 하는 일이 보여지고 드러나기를 바랬다. 여호나답은 그와 함께 사마리아에 가서 아합과 관계된 모든 사람들을 진멸하는데 있어서 그를 격려하고 도와주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잔인함은 미워하되 공의는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2. 바알 숭배자들을 진멸함(18-28)
예후는 모든 바알의 숭배자들을 진멸한 계획을 세웠다. 그의 계획은 그들을 한꺼번에 처단하는 것이었다.
(1) 그는 교묘한 계책으로 그들을 바알의 전에 모았다. 그는 아합보다 더 바알을 섬기려 하는 체 하였다(18절). 그는 모든 바알의 숭배자들에게, 자기와 함께 바알에게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다 나아오라는 포고령을 내었다(19,20절).
(2) 그는 여호와의 종은 아무도 그들과 함께 있지 않도록 주의하였다(23절).
(3) 그는 모두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으며 그 자리에는 여호나답도 함께 있었다(23절). 그러자 호위병들이 그들을 진멸하기 위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4) 이렇게 해서 우상숭배자들이 진멸되고 난 뒤 우상 자체도 철저히 파괴되었다. 바알의 당 주변의 건물들도 파괴되었다. 즉 바알의 전을 아름답게 꾸며 주었던 작은 조각, 그림, 성체용기, 목상, 그리고 바알 자신의 큰 상 등은 모두 내어 불살라졌으며(26,27절) 바알의 전은 훼파되었다. 이로써 바알 숭배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언젠가는 이방의 모든 신들을 부수고 승리를 거두실 것이다.
Ⅲ. 예후의 범죄 10:29-36
여기에 예후의 통치에 대한 간략한 기록이 나타난다.
(1) 예후가 행한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인정하셨다.
1) 하나님께서는 그가 잘 행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우상 숭배자들과 우상 숭배를 근절시킨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잘한 일이었다.
2) 하나님께서는 그 보상으로 그의 자손 사대를 ‘이스라엘 왕위’에 세우실 것을 약속하셨다.
(2) 예후는 더 이상 개혁하지 못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의 마음이 하나님께 대해 온전하지 못하였고 개혁이 부분적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
1) 그는 모든 악을 제거하지는 않았다. 그는 아합의 죄로부터는 떠나지 아니하였다. 즉 바알을 버리고 금송아지를 쫓았던 것이다. 금송아지 숭배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열 지파가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행해진 것이었다. 지역적인 사정으로 시작되었던 그 금송아지 숭배는 계속 이어져 내려 왔으며 결국 예후도 그것에 집착하게 되었다. 진정한 회심은 세속적인 이익에 해가 되는 죄뿐 아니라 세속적인 이익에 도움이 되는 죄도 내어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의뢰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그 죄를 내어버리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2) 그는 악을 제거했으나 선한 것을 마음에 두지는 않았다.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31절). 그는 거짓 종교를 근절하는 데 매우 큰 관심과 열심을 보였었다. 그러나 참 종교에 대해서 첫째,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전혀 힘쓰지 않았다. 둘째, 그는 전혀 열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신앙심이라고 거의 없는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 이스라엘을 개혁시키는 도구로 쓰신 것으로 보인다.
(3) 그에 대해 이스라엘에 심판이 내렸다. 일반적으로 경건함은 시들해지고 불경함이 점점 더 심해질 때 다음 내용을 듣게 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비로소 이스라엘을 찢으시매(32절). 이웃 나라들이 사방에서 침입해 왔다. 모든 나라 중에서 아람의 하사엘 왕은 이스라엘을 가장 괴롭히고 해를 입혔다. 하사엘이 그 사방을 치되, 마지막으로, 우리는 34-36절의 내용에서 예후의 통치의 종말을 보게 된다. 그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했기에 그의 뛰어난 업적과 용기는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