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1장 설교 말씀은 스가랴 선지자가 붉은 말 탄 사람을 환상 중에 보았다.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서 있었다. 두 번째 환상은 네 뿔과 대장장이 환상을 보았다. 스가랴는 유다 백성이 회개하기를 말씀했다.
Ⅰ. 회개할 것을 촉구함 1:1-6
(1) 스가랴의 사역의 기초 : 여호와의 말씀이…스가랴에게 임하니라(1절). 그는 하나님의 대언자가 되라고 하는 거룩한 사명을 받았다. 그것은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로써 성령께서 증거하심으로써 이루어진 일이었다. 여호와의 말씀이 먼저 ‘다리오 왕 이 년’에 그에게 임하였다. 포로되기 이전에 선지자들은 유다와 이스라엘 왕들의 통치 년수로 자신들의 저작물 연대를 밝혔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들이 속해 있는 바사 왕들의 통치 년수로 연대를 밝히고 있다. 스가랴는 ‘다리오 왕 이 년 팔 월’에 처음으로 자신의 설교를 행하였다. 반면 학개는 같은 해 유월에 그리하였다(학 1:1). 스가랴는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이었으며, 학개와 마찬가지로 선지자라고 불리운 사람이었다(학 1:1).
(2) 스가랴의 첫 사역 : 그는 긍휼의 약속들을 선포하기 전에 먼저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는 ‘주의 길’이 먼저 예비되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율법이 먼저 전파되고 나서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 스가랴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의 열조들과 다투신 것을 기억케 하였다(2절). 여호와가 무리의 열조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너희는 그 비참한 결과를 너희 눈으로 보았느니라.” 우리 앞서 간 자들이 겪었던 하나님의 심판은 회개케 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저주를 없애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을 복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돌이켜 하나님과 화평할 것을 그들에게 촉구하였다(3절).
“패역한 자리에 있는 자들은 충성된 자리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선한 백성이 누리는 온갖 특권을 누리게 될 것이다.” 여기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실은 하나님이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만군의 하나님’으로 불리우고 있다는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두 번째의 ‘만군의 여호와’는 명령의 권세와 의무를 보여 주며 마지막의 것은 약속의 효력과 가치를 보여 주는 것으로 결코 무익한 반복이 아니다. 그는 그들에게 그들의 열조처럼 완고함을 고집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너희 열조를 본받지 말라(4절).
우리는 선조들에 의해 좌우 되기가 아주 쉽다. 어떤 이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우리 열조보다 더 현명하겠는가? 그들은 결코 선지자들에게 마음을 쓰지 않았도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들에게 마음을 써야 하는가? 그들은 선지자들을 거스리는 법을 만들었도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들에게 관대해야 하는가?” 그러나 본문은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의 열조들은 선지자들을 무시했도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 일로 인해 그들에게 심히 진노하셨도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선지자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에 관심을 쏟을 수 있어야 하리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실을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이것인 그 선지자들이 말한 내용이었다.
“이제 우리다 너희에게 전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것이라. 속히 돌이키는 것이 임박한 멸망을 막는 유일한 길이라.” “너희 열조와 그들에게 전파한 선지자들은 지금 어찌 되었는가? 그들은 모두 죽어서 이 세상에 있지 않도다”(5절). 우리와 우리의 선지자들은 저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 따라서 저 세상을 준비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가장 큰 관심이자 일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전파하는 자들도 죽고 듣는 자들도 죽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죽지 않았다. 그것은 효력을 나타냈으며 일점 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만일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그들을 회개시키지 못한다면 경고된 재난이 그들에게 임할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그 경고된 재난을 피할 수가 없었다. 인간의 불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의 경고를 결코 효력없게 하지 못한다. 만일 지시된 방법으로 그것을 막지 않는다면 곧 그 경고대로 재난이 닥치게 될 것이다. 그들이 돌쳐 이르기를(6절). 그들은 마음을 돌이켰다. 그러나 그들이 인정했을 때는 이미 민족을 멸망에서 건져 내기에는 너무 늦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고 뜻하신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도다. 우리는 그의 참되심과 공의로우심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Ⅱ. 말탄 자들의 이상 1:7-17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주의를 불러 일으키고자 이상과 계시로써 스가랴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방법을 택하셨다. 앞으로 계속되는 이상들의 대부분은 유대인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즉 포로된 자리에서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하고자 하는 자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의도된 것처럼 보인다. 다른 모든 이상들의 서론격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이상의 목적은 유대인들에게, 비록 그들이 현재는 버림받은 것 같고 그들의 형편이 비참한 것 같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고 계심을 확신케 하는 데 있다. 이 이상은 그가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한 지 삼개월 뒤인 ‘십일 월 이십 사일’에 임하였다(7절). 그 설교가 좋은 효과를 거두었으므로, 당연한 귀결로 백성들은 하나님께 돌아왔으며 하나님께서는 긍휼로 그들에게 임하셨다.
(1) 스가랴는 ‘골짜기 속’에, 즉 두 언덕 사이에 어둡게 그늘진 작은 ‘화석류나무’ 숲을 보았다. 이것은 당시에 유대 교회가 처한 낮고 어둡고 쓸쓸하고 슬픈 형편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는 이 그늘진 화석류나무 사이에 한 사람이 홍마를 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사람은 곧 그리스도 예수로써 그는 전에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여호수아 앞에 나타나시기도 했었다(수 5:13,14). 교회가 형편없는 처지에 놓여진다 하더라도 그리스도께서는 그 가운데서도 나타나시는 것이다. 그는 급박한 가운데 전쟁에 임하는 사람처럼 말을 타고 계셨다.
즉 자기 백성을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계셨다(신 33:26). 그는 ‘홍마’를 타고 계셨는데 바로 이 승승장구하는 왕은 이사야 63:1,2에서는 ‘홍의’를 입고서 나타났었다. 붉은 색은 격렬한 색깔로, 이는 곧 그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14절) 그의 대적들에 대하여 격노하고 있음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율법 아래서 그리스도는 홍마를 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그가 피를 흘리는 싸움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복음 아래서 그는 승리를 얻었기 때문에 ‘흰말’을 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계 6:2;19:11).
그 뒤에는 홍마와 자마와 백마가 있기로. 이들은 주 예수를 수종드는 천사들로 그의 명령에 따라 그의 교회를 받들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심판을, 또 어떤 이들은 자비를, 그리고 또다른 이들은 갖가지 사건을 수행할 것이다. 스가랴는 자신을 가르치는 한 천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천사에게 이렇게 질문하였다. 내 주여 아들이 무엇이니이까(9절). 그에게 다음과 같은 답변이 주어졌다. 이는 여호와께서…보내신 자들이니라(10절). 즉 그들은 여호와의 사자들이었던 것이다.
(2) 스가랴가 들은 것과 그가 받은 지시 : 그는 천사들이 보고하는 것을 들었다(11절). 그들은 사자로 파견되어 밖에 나가 있다가 돌아와서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사자’에게 이와 같은 보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보니 온 땅이 평온하여 정온하더이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 세상이 매우 태평함을 알 수가 있다. 즉 교회가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해서’ 평안치 못한 반면, ‘온 땅은 평안하여 정온하였던’ 것이다. 교회와 상관이 없는 자들이 안전한 가운데 지내며 교회를 대적하는 자들이 잘 되어가고 있었다. 비천한 유대인들이 계속해서 고통 중에 있는 동안 갈대아인들과 바사인들은 편안히 지내고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고통당하는 교회를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중보하고 계신 것을 들었다(12절). 천사들은 이 세상일의 형세를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고통을 제거해 달라고 하는 천사들의 어떠한 기도도 찾아 볼 수가 없다.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사자’가 바로 위대하신 중보자가 되신 분이시다. 천사들의 보고를 듣자마자 그는 곧바로 하늘을 향하여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당신의 교회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라고 말하였다. 언제까지…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불쌍히 여겨야 할 대상은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과 현재 폐허가 되어 있는 유다의 성읍들이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것들에 대해 노하신지 칠십 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진노가 너무 오래 계속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잠깐 은혜를 베푸사 그들을 조금 소성케 하셨으나(9:8) 그 칠십년의 포로 생활의 자국은 매우 깊이 남게 되었다. 그들이 점차로 포로가 되었듯이 포로된 그들의 형편 또한 점차로 풀렸다. “여호와여 우리는 여전히 칠십 년 동안의 무거운 진노의 짐 아래 있나이다.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려나이까?” 그는 이 중보자에게 은혜로운 답변이 주어지는 것을 들었다(13절).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 언약의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 즉 자비와 구원의 약속으로 그리고 시작하신 일을 이루신다고 하는 약속으로 대답하셨다. 그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이것을 알려 그들을 위로하라는 사명과 함께 그 천사에게 주어진 답변이 자신에게 반복되는 것을 들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씀하셨다.’ 스가랴는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소리’가 되었다. 그 소리는 “외치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 허물을 보여 주었던 선지자들이 이제는 그들에게 큰 소리로 그들의 평안을 보여 주기 위해 외쳐야 한다(사 40:2,3,6). 그는 하나님의 진노가 예루살렘의 원수들에게 임박했음을 선포하여야 했다(14절). 온 땅은, 자신들이 예루살렘 대해 행한 온갖 악행을 조금도 후회함이 없이(15절) ‘평안하여 정온하였다'(11절. 하나님께서는 고통당해야 할 자들에 대해서 그리고 너무 지나치게 고통케 한 자들에 대해서 공정하게 진노하셨다. 이는 그런 경우에 있어서는 참된 인간애가 곧 선한 신성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외쳐야만 하였다. 그러므로 여호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16절). “내가 진노로 인해 멀리 떠나 있었으나 이제 사랑으로 다시 돌아왔도다”(17절).
만군의 여호와되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비록 많은 시련에 봉착하게 되겠지만 성전이 완성될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께서 현존하신다는 징표를 가제 되리라는 사실을 확신케 하셨다. 예루살렘은 다시 ‘조밀한 성읍과 같이 건설될 것이다.’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 이는 그 성읍을 정밀하고 동일한 양식으로 재건하기 위해서였다. 이 나라가 다시 부해질 것이며 중다하게 될 것이다. 예루살렘 뿐만 아니라 쇠퇴해 있는 다른 ‘넘치도록 풍부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흥왕케 된 성읍들을 자신의 성읍이라고 부르고 계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그에 의해 축복받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소출이 풍성하고 백성이 중다하게 되어 그 땅을 가득 채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시온과 모든 애통하는 자들을 위하여 안위를 남겨 두고 계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애굽으로 인도해 내셨을 때 처음 그들을 한 백성으로 세우셨듯이 바벨론에서 인도해 내신 지금도 그들을 한 백성으로 다시 세우실 것이다.
Ⅲ. 네 뿔과 네 공장에 대한 이상 1:18-21
스가랴 선지자가 본 이 두 번째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선두에 서서 교회의 대적들의 가공할 만한 힘에 대항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1) 우리는 여기서 교회를 위협하고 멸절케 한 원수들을 보게 된다. 내가 눈을 들어 본즉 네 뿔이 보이기로(18절). 19절에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되어져 있다. 이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헤친 뿔이니라. 즉 그 뿔들이 그 나라와 성읍에 있는 유대인들을 헤친 것이다. 그 뿔들은 마치 광포한 황소가 뿔로 들이받듯이 그들을 받았다. 그 뿔들이 유다를 헤쳐서 사람으로 능히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며(21절). 그 뿔들은 네 개였다.
즉 유대인들은 사방으로 그것들에 둘러싸였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거민들, 그리고 그들과 뜻을 같이 하는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전 건축에 착수했으나 사방에서 대적들이 그 일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르훔과 심새, 그리고 성전 건축을 반대하는 다른 모든 사마리아인들이 바로 이 뿔들이었다(스 4:8).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로 성곽 건축을 반대하였다(느 4:7).
(2) 우리는 여기서 유력하고 적극적인 교회의 후원자들을 보게 된다. 스가랴는 직접 네 뿔을 보았으나 이 뿔들을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네 명의 공장들은 여호와께서 보여 주셨다(20,21절). 육신의 안목으로 볼 때 우리는 교회를 대적하는 자들의 세력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교회가 안전함을 보게 되는 것은 신앙의 안목으로 보기 때문이다. 공장들(어떤 이들은 그 뿔들이 철로 되었으리라고 생각하기도 한다)은 그 뿔들을 쳐서 떨어뜨릴 기술과 능력을 지닌 자들이다. 어떤 이들은 이 네 명의 공장들을,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을 수행한 스룹바벨, 여호수아, 에스라, 느헤미야로 이해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