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7장 설교] 기드온의 용사 300명(삿7:1-8)

사사기 7장 설교 말씀은 하나님이 기드온을 통해서 미디안 족속을 치기 위해서 300명의 용사를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은 300명을 선택하여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인간이 너무나 많으면 교만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자기들의 힘으로 적군을 물리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삼백 용사를 데리고 전쟁을 치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있기에 기드온의 군대는 적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앞세워 나가야 합니다. 내 힘으로 인생을 살면 망하게 됩니다.

[여호수아 6장 설교] 여리고 성을 다시 건축하지 말라(수6:26-27)

여호수아 6장 설교 말씀은 여리고 성을 다시 건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주 받은 성을 다시 건축하면 여리고 성의 기초를 쌓을 때 맏아들을 잃고 여리고 성의 문을 세울 때 막내아들을 잃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저주 받은 여리고 성을 다시 쌓지 않는 것처럼 구원받은 후에 율법주의 신앙으로 돌아가면 안 됩니다.

[로마서 8장 설교]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롬8:1-4)

로마서 8장 설교 말씀은 구원은 절대 취소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절대 정죄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율법의 행위가 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나를 구원합니다.

[요한복음 8장 예수님 말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요한복음 8장 예수님 말씀 중에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알면 죄악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됩니다. 진리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모르면 진리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깨닫고 원죄에서 해방되어 자유함을 누려야 합니다.

[누가복음 24장 예수님 말씀] 육체로 부활하신 예수님(눅:24:36-43)

누가복음 24장 예수님 말씀 중에서 육체로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단들은 예수님이 영으로 부활하셨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예수님은 영이 아니라 육체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물고기도 잡수셨습니다. 디두모에게 직접 만져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육체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면서 우리도 마지막 날에 육체로 부활할 것을 소망하게 됩니다.

[산상수훈 예수님 말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5:3)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 예수님 말씀에서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는데 이것은 심령에 예수님을 모실 수 있게 되었기에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서신 성경공부] 고린도후서 배경과 수신자

바울서신 성경공부 중에서 고린도후서의 배경과 수신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성도가 올바르게 살아야 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도 많이 나타났지만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우리도 교회 생활을 하면서 많은 은사를 체험한다고 해서 꼭 구원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야 합니다.

[마가복음 하나님 말씀]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막7:24-30)

마가복음 7장 하나님 말씀은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에 대해서 예수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귀신 들린 딸을 위해서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는 던짐이 마땅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때 수로보니게 여인은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고백했습니다.

[마가복음 성경인물 설교] 악독한 강도 바라바(막15:6-15)

마가복음 15장 헬라어 원어성경 성경인물 설교에서는 악독한 강도 바라바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악독한 강도이며 민란 중에 사람을 죽이고 민란을 꾸민 바라바의 이름을 기록한 이유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보통 강도의 이름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양 편의 이름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라바는 더 악독한 데도 이름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바라바는 바로 나를 상징해 주고 있습니다. 원죄의 악독한 강도와 같은 우리가 유월절의 어린양 되시는 예수님 때문에 생명이 살아난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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