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냐 3장 복음 설교 말씀은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심판할 것과 그 중에서도 남은 자를 구원할 것에 대해서 말씀했다. 하나님은 타락한 예루살렘을 심판한다고 했다. 포악한 성이 되어 버렸다. 하나님이 심판하면서도 선택한 백성은 구원하신다.
Ⅰ. 예루살렘의 사악함에 대한 책망 3:1-7
1. 예루살렘에 내려진 아주 나쁜 평판(1,2)
예루살렘이 스스로 부끄러워할 것은 ‘패역하고 더러운 곳’이 됨이다(1절). 즉 그곳은 항상 육체를 위하는 수치스러운 성읍(혹자는 그렇게 본다), 탐욕스러운 성읍으로 전락하였다. 예루살렘은 이웃 성읍과 거민들에게 악을 행했다. 즉 ‘포학한 성읍’이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진노케 하였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셨으나 예루살렘은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다.’ 예루살렘은 하나님과의 언약보다 열국과의 동맹을 의지하였다.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 예루살렘은 머릴 선 채로 전능자에게 “떠나소서”라고 말하였다.
2. 사악함을 지지하는 지도자들(3,4)
예루살렘의 의사가 되어야 할 그들이 도리어 예루살렘의 고질적인 병자들이었다. ‘그 가운데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같이 야만스러웠으며 따라서 널리 미움을 받는다. ‘그 재판장들은 저녁 이리’들로서 탐욕스러우며, 그들의 잔혹함과 탐심은 만족할 줄을 모른다. 그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두는 것이 없는. 즉 그들은 자기들에게 먹이를 가져다 주는 선한 사람들을 삼키면서 그 압제로 기쁨을 삼는다.
백성들에게 자기들이 하늘로부터 온 특별한 사자들인 체하는 ‘그 선지자들은 위인이 경솔하고 간사한 자요,’ 견실함이 없는 자들이며, 따라서 그들 중에 누구에게도 신뢰를 둘 수가 없다. ‘그 제사장들은’ 사람들의 신뢰에 거짓되고 그 신뢰를 배반한다. 그들은 ‘성소’의 청결을 보존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그들 스스로 그것을 ‘더렵혔다.’ 그들은 ‘율법을 범하였고’ 그것의 의미를 부패시켰다. 율법에 대한 억지 해석으로 그들은 그 율법을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었으며 따라서 사실상 율법을 무효하게 만들었다.
3. 예루살렘의 전반적인 타락(5-7)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를 가지고 있었으나 여전히 불순종을 계속하고 있었다(5절). 그중에 거하신 여호와는 의로우사. 따라서 그들의 더러움은 더욱 죄악된 것이 되었다(신 23:14) “의로우신 하나님께선 너희가 구에게 준 모욕과 너희가 서로에게 행한 악행들을 벌하실 것이라.” 그는 그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시되 일찍부터 그들을 일으켜 보내셨다. 아침마다 간단없이 자기의 공의를 나타내시거들. 그는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그의 선지자들을 일깨워 평화에 속한 일들을 나타내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앞에 그의 공의의 표적을 두게 하여 경계를 삼고자 하셨다(6절).
내가 열국을 끊어 버렸으므로. 즉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끊어 버리셨다(레 18:28). 그 ‘열국’은 자기들의 사악함으로 황폐케 된 몇몇 이웃 나라들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망대가 황무하였고 내가 그 거리를 비게 하여 지나는 자가 없게 하였으므로 그 모든 성읍 황폐하며 사람이 없으며 거할 자가 없게 되었느니라. 적들이 그것을 행하였으나, 하나님은 ‘내가 끊어 버렸으므로’라고 말씀하시면서, 그것을 인정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훈계하시고자 이러한 것을 계획하셨던 것이다. 그는 만일 그들이 그를 경외하고 그 교훈을 받는다면 그들의 번영이 계속될 것을 보증하셨다. 왜냐하면 그 이웃 나라가 당한 것처럼 ‘그들의 거처가 끊어지지는 아니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들을 칼에서 면하게는 하셨으나 채찍의 징계를 가하셨다. 그들은 여태까지보다 악한 행식을 더욱 열심히 그리고 결연히 행했다. 하나님은 ‘부지런히’ 그의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셨으나 그들은 그 앞에서 그들을 거스려 문을 닫아 걸었다.
Ⅱ. 예루살렘의 개혁에 대한 약속 3:8-13
모든 일들이 나쁘게만 보였다. 예루살렘은 이제 악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 완고하고 구제하기 어려우며, 자비를 받지도, 심판을 받지도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의 부요함을 보라. 그들은 더욱 악하여졌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너희는 나를 기다리라(8절).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하므로 더 나은 소망에도 나아가야 한다. 교회의 부패를 애통해 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다려야 한다. 곧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가운데서 나아온 특별한 백성을 그 자신에게로 정결케 하시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따라서 예루살렘에서 구속을 기다리는 자들이 있게 되었으며, 마침내는 오래도록 열망했던 그것이 오게 되었다(눅 2:38).
(1) 그리스도의 복음이 각 피조물에게 전파된 것으로 인해 모든 족속들이 소집되어졌다. 말하자면 사상에 자신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시는 주 예수 앞에 나타나도록 되어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류가 그의 소환에 순종하지 않을 것이기에 그는 ‘그의 분한을 쏟으실’ 것이다. 이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정죄되었기’ 때문이다.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 즉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그 복음에 적의를 둔 것으로 인해 보응을 받을 것이다.
(2)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고자 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들을 개혁시키고 그들의 덕, 경건을 소생시키신다. 왜냐하면 먼저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고, 그런 후에 그들의 행복되게 하시는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약속들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온 후에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일반적으로 부패된 인간의 대화 속에 개혁이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이 약속되었다. 이제는 은혜로 정결케 된 입술을 가져야 한다(9절). 그때에 내가 열방의 입술을 깨끗케 하여. 회심케 하는 은혜는 말의 재치로써가 아니라 그 실체의 지혜로써 언어를 세련되게 한다.
포로 후에 유대인들은 아스돗의 방언과 가나안의 방언을 혼합하여 사용하였다(느13:24). 그러나 항상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즉 그들의 언어는 모든 모독, 더러움, 거짓으로부터 깨끗케 될 것이다. ‘내가 그들을 선택된 언어로 돌이키리라'(어떤 사람은 그렇게 읽는다). 제사나 분향 대신에 그들은 ‘주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틀림없이 영화롭게 하는 영적인 번제이다. 그들은 ‘일심으로,’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하나가될 때 그 일은 즐겁게 진행된다. 정결은 화합의 길이다. 그리고 관습의 개혁은 포용의 길이다. 하나님께 쫓겨난 자들이 그에게 돌아올 것이며 그는 그들을 받으실 것이다(10절). ‘구스 하수 건너편에서부터,’ 혹은 몇몇 다른 먼 나라에서부터 그들은 마치 탕자가 먼 나라에서 아버지의 집을 기억함같이 그를 기억케 될 것이다.
그가 멀리 흩어 버렸던 자의 딸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람들 중에 있게 될 것이다.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비록 구스 하수 건너편에 있더라도, 즉 그의 기도하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간구하는 자들이다.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드릴지라. 즉 그들은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영적 제물로 삼을 것이다(롬12:1). 그 날에 네가 내게 범죄한 모든 행위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죄를 회개하는 것으로는 수치를 당할 것이나(참조. 겔 16:63), 다시 어리석은 죄인으로 돌아가게 될 때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희 중에서…제하여. 즉 “모독하는 자 뿐만 아니라 위선을 부리는 자, 겉으로 아름답게 꾸미는 자, 그리고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를 거룩한 성, 거룩한 집에서 제하여 버리리라.”
그들은 ‘성산’으로 인해 거만하였으며 자만에 빠지게 되었고, 하나님의 심판을 무시하고 조롱하였다. 그러한 오만함은 하나님께 대한 가장 큰 반역으로, 거룩함을 구실로 생겨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고 겸손하며 진지한 백성들을 남기실 것이다(12절).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너희 중에 남겨 두리니. 이 선택된 남은 자는 정결과 평안으로 말과 행실 모두에 있어 복을 받게 될 것이다(13절). 그들은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할’ 것이다.
Ⅲ. 예루살렘에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 3:14-20
죄를 제하여 버리신다는 약속 후 환난을 제하시겠다는 약속이 여기에 잇달아 나타나고 있다. 왜냐하면 그 동기가 제하여졌을 때에는 그것으로 인한 결과도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기뻐하고 노래하라.”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14절). “기쁨으로 노래하라.”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온 마음을 그를 기뻐할 기회를 갖는다.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하나님이 그의 섭리에 의해, 그의 선지자들로 그것을 말하게 하실 것이다. 그들의 이웃들이 그것을 말할 것이고 그들이 서로 서로 그것을 말할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손을 들어 하나님께 기도하라. 손을 들어 너희 자신을 도우라.”
(1) 그들의 모든 환난과 곤경은 끝나게 될 것이다(15절).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희의 죄로 인한 대가인 모든 재난들을 제하셨도다.” 따라서 전쟁의 소문은 잠잠케 되고 기근의 징치는 사라지게 되며 포로들은 돌아오게 될 것이다.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거들은 너희 땅에 기대어 살던 자들이라.”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을 그가 너희 적을 쓸어 버렸도다”라고 읽기도 한다. 환난의 해악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죄의 악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그렇게 곤란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악이 없는 법이다.
(2)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증표를 주실 것이다.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시온이여! 마치 태양이 온누리에 그 빛과 영향을 발산하도록 우주의 중앙에 있는 것처럼 너의 중에 있는 예루살렘이여! 그는(15절) 백성들 중의 왕같이 너의 가운데 계시다. 그는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시며 너의 언약의 분깃이시며, 너의 하나님으로, 네 가운데 계시고, 너는 그의 것이라. 그가 구원을 베푸시리라.” 그는 바로 예수이실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에 합당하게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자이다.
(3)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선을 행하는 것으로 인해 기뻐하실 것이다. 그는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죄인들의 회심과 성도들의 위로는 천사들의 기쁨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 자신의 기쁨이기 때문이다. 그는 ‘잠잠히 사랑하실’ 것이다.
(4) 하나님은 시온의 애통하는 자들을 위로하시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내실 것이라(18절). 내가 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모으리니…너의 치욕이 그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느니라. 시온은 슬픔 중에 있다. 시온은 많은 재난을 당하였다. 그 성은 파괴되었으며, 그 궁전들은 뒤엎어져 버렸고 교역은 끝이 났다. 그러나 온 이스라엘 백성이 매년 세 번식 거룩한 절기마다 함께 모여 들어오곤 했던 성전과 제단이 파괴된 것에 비교할 때 이 모든 것들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이 슬퍼하는 것은 그런 신성하고 엄숙한 집회로 인하여서이다. 종교적인 예배로 모이는 공공의 집회가 제한 당하거나 적들로 인해 흩어지게 되는 것이나, 혹은 벗들에게 버림을 받는 것은 모든 선한 백성들에게 슬픈 일이다. 엄숙한 집회에 대한 징계는 바로 그들에 대한 경고이다.
(5) 하나님께서는 포로들을 회복하실 것이며 쫓겨났던 추방자들을 집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19,20절).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즉 “내가 그들의 권세를 깨뜨릴 것이며, 그들의 지혜를 분쇄하여 그들로 그들이 취한 노략물을 돌려 주도록 할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자비와 은총으로, 그들의 흩어진 곳에서 그들을 모으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그들의 본향으로 이끄실 것이다. 백성들의 마음이 예비될 때 그 일은 순식간에 이루어질 것이다.
(6) 하나님은 이 모든 것으로써 누구나 다시금 그들을 존중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자비롭게 그의 교회로 돌아오실 때에는 교회가 그 신뢰를 되찾을 것임이 여기에 약속되어 있다. 내가 온 세사에서 수욕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돌볼 자가 없는 시온이로다”고 말하던 자들은 “크신 하나님이 돌보시는 시온이로다”고 말할 것이다. 유대 교회가 그렇게 된 것은 ‘유대인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의 이웃 민족에게 미쳤을 때였다(에 8:17). 또한 기독교 교회가 그렇게 된 것은 기독교가 세계에 가득하게 되었을 때였다. 왜냐하면 기독교 안에는 모든 사람들이 기독교를 존중하게끔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