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 1장 복음 설교말씀은 메뚜기 재앙의 엄청난 참상과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은 유다 백성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니 하나님은 메뚜기로 심판했다. 모든 먹을 것을 메뚜기가 먹어버림으로 인간이 먹을 양식이 사라졌다. 요엘 선지자는 제사장들에게 회개하라고 말한다. 영적 지도자가 타락하니 백성도 타락하게 된다.
Ⅰ. 심판의 위협 1:1-7
요엘은 이 본문을 통하여 유다가 그 죄로 말미암아 받고 있는 가혹한 심판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1) 심판은 지나간 시대에도 찾아볼 수 없었을 정도로 가혹했다(2절). 자기들의 선조들보다 더 많은 죄를 범하는 자들이 바랄 수 있는 것이란 선조들보다 더 큰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밖에 없다. 그 심판은 다가올 시대에서도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가혹했다(3절).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고하라. 이는 그들로 하여금 너희가 고난을 당했던 일들을 통하여 경고를 받고 순종을 배우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럼으로써 그 자녀들도 후세대에게 고하도록 하라. 그들로 하여금 그 후손들에게도 하나님과 그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그 앞에서 떨도록 가르치게 하라.”
(2) 유다가 큰 군대의 침략을 받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 때문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성서 해석자들은 이것을 인간의 군대 곧 앗수르의 군대로 이해하고 있다. 실제로 산헤립 휘하의 앗수르 군대는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고'(사 36:1) 그 나라를 처참할 정도로 황폐케 했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서 지명되고 있는(4절) 네 종류의 동물들이, 차례로 유대인들을 압제했던 네 왕들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실제로 한 날의 침략을 당하고 나면 다시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아 멸망의 위기를 수없이 겪어야 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군대라기보다는 오히려 문자 그대로 유대 땅에 몰려와서 그 땅의 소산을 먹어치운 곤충들의 군대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과거 애굽에 임했던 메뚜기 재앙은 며칠 동안 계속되는 것에 불과했지만 유대 땅에 임한 이 메뚜기 재앙은 4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것은 여기에서 네 종류의 곤충들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4절). 그러나 그들이 모두 1년이란 기간 내에 몰려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에서는 이 곤충들로 인한 재앙을 통하여 유대 땅이 황폐해졌다는 사실을 주로 나타내고자 했지만 이것은 외국의 군대에 의해 유대 나라가 파괴된 것도 나타낼 수 있도록 표현되었다. 만일 이 벌레의 무리들이 그들을 정복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무리가 와서 그들을 멸망시킬 것이다. 이 동물들은 ‘메뚜기’와 ‘황충’과 ‘팟종이’와 ‘늣’이다(4절).
그들은 작은 곤충에 지나지 않지만 떼를 지어 몰려오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며 그들 앞에 있는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가 약하면 약할수록 하나님의 능력은 더 크게 드러난다. 그들은 공통된 목적을 갖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약할수록 하나님의 능력은 더 크게 드러난다. 그들은 공통된 목적을 갖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이 본문에서 ‘한 이족’으로 불리고 있다(6절). 메뚜기들은 ‘임군이 없으되 다 떼를 지어’ 나아간다(잠 30:27). 그들은 매우 가공할 만한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사자의 이’를 가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메뚜기들도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움직일 때에는 사자와 같은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들은 풀과 곡식 뿐 아니라 나무까지도 멸망시킨다(7절).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이 해충들은 열매가 익어갈 때 그 열매를 보호해 주는 잎을 먹어버림으로써 나무를 죽게 만든다. 그들은 무화과 나무의 껍질까지 먹어치움으로써 그 나무를 말라죽게 하기도 한다. 이리하여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게’된다(합 3:17).
(3) 술 취한 자들에게 이 심판을 슬퍼하라는 요구가 주어진다(5절). 무릇 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이 말은 술취하는 자들에게는 아주 아픈 부분을 건드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토록 좋아하던 ‘단 포도주’를 그들의 ‘입에서 끊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감각적인 만족을 통하여 더 많은 행복을 얻고자 하면 할수록 현세적인 고통은 더 커진다. 물을 마시는 자들은 포도나무가 죽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물만 먹고 살아왔으므로 포도주 없이도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Ⅱ. 심판의 대상 1:8-13
그들은, 한 처녀가 그녀의 남편이나 다름없는 연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처럼 애통해 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혹은 갓 결혼한 여자가 그녀의 젊은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하여 슬퍼하는 것처럼 애통해 하도록 요구된다.
(1) 농부들과 포도를 재배하는 사람들은 슬퍼해야 한다(11절). 그들은 눈 앞에서 자기들의 수고로 맺어진 여래가 먹히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바라보게 되며 그 가운데 하나도 건지지 못할 것이다. 밭이 황무하고(10절). 밭에서 생산되는 모든 열매가 소멸된다. 토지가 처량하니. 땅은 우울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들은 ‘밀과 보리’가 상실되고 결핍되는 것 때문에 슬퍼하게 된다. 그리고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뿐 아니라(7절)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까지도 멸망을 당한다 곧 과수원의 나무와 밭의 나무 혹은 과일 나무와 목재용 나무가 모두 멸망을 당한다. 우리는 우리가 왜 하나님과 그의 섭리를 끊임없이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깨달아야 한다. 그것을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는 우리를 구원하기에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2) 여호와의 사역자들인 제사장들은 슬퍼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도 재난에 깊이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13절). ‘단에 수종드는 자’들도 곡을 해야 한다. “그는 특별한 의미에서는 바로 너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그의 성소를 수종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 어떤 국가적인 환난으로 인하여 신앙적인 행위가 장애를 받는다면 특별히 여호와의 사역자들인 제사장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슬퍼해야 한다.
Ⅲ. 금식 선포 1:14-20
메뚜기들이 땅의 소산을 다 먹어버리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 손실로 인하여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 이제 그들의 눈물은 올바른 방향으로, 즉 하나님 앞에서 회개와 겸손의 눈물로 나타날 수 있어야 한다.
(1) 전국적인 금식이 제안되었다. 제사장들은 금식일을 정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국가적인 심판을 받을 때에는 온 국민의 겸손함이 수반되어야 한다.
1)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한 날이 정해져야 한다. 이 날에 백성들은 일상 업무를 하지 말아야 한다.
2) 이 날은 음식과 주류는 물론 꼭 필요한 음식조차도 경건한 마음으로 삼가는 금식일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필수적인 음식을 먹을 가치조차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3) 엄숙한 성회가 열려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국가적인 죄를 범했고 국가적인 재난에 동참했으므로 참회의 고백을 하는 일에도 동참해야 한다.
4)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집인 성전으로 모두 모여야 한다. 왜냐하면 성전은 곧 기도하는 자의 집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성전에서 하나님과 만나기를 기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전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기 위하여 선택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5) 그들은 이 금식일을 성별하여 진실로 헌신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켜야 한다.
(2) 그들로 하여금 이 금식을 선포하고 엄격하게 지키도록 하기 위하여 몇몇 이유들이 제시되고 있다.
1)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논쟁을 시작했다. 따라서 지금이 여호와께 부르짖을 때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15절). “그의 심판의 날이 매우 가까이 다가왔도다. 그 날은 졸지 않을 것이므로 너희도 깨어 있으라.” 그 날은 또한 매우 두려운 날이 될 것이다. 그에게로 도망치는 것 외에는 달리 도망갈 곳도 전혀 없게 된다.
2) 그들은 자기들이 이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지금은 금식하며 기도해야 할 때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고통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16절). 그들은 하나님의 전을 살펴보고 그곳에서 그 심판의 의도를 깨달아야 했다. 그것은 ‘기쁨과 즐거움이 하나님의 전에서 끊어졌기’ 때문이다.
3) 요엘 선지자는 몇 가지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면서 재난의 비참한 모습을 다시 묘사하고 있다. 곡식과 가축은 농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 본문에서 농부는 두 가지를 모두 빼앗기고 만다.
① 황충이 곡식을 다 먹어 버렸다(17절). 씨가 흙덩이 아래서 썩어졌고. 이것은 비가 너무 많이 왔거나 아니면 너무 적게 왔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곤충들이 그 씨를 먹어 버렸을 것이다.
② 가축들도 또한 풀이 너무 부족하여 죽었다(18절). 생축이 탄식하고…양떼도 피곤하도다. 곧 아주 작은 풀을 먹고 사는 양들조차도 피곤해질 정도로 메뚜기들이 모든 풀을 먹어버릴 것이다.
(3) 선지자는 하나님께 부르짖도록 그들을 고무하고 있다.
1) 선지자 자신의 솔선수범(19절) :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그로 하여금 하느님께 부르짖도록 만든 것은 어떤 개인적인 고난이라기보다는 국가적인 재난이었다. 불이 거친 들의 풀을 살랐고. 이 불은 모든 풀을 태워 버리는 태양의 열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2) 사람보다 열등한 짐승들이 보여 주는 모범 :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20절). 여기에서 야수들이 하소연하는 것은 물과 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짐승도 하나님께 부르짖는데 사람이야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