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 원어성경 시편 설교]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인가?(시24:1-6)

히브리어 원어성경 말씀 중에서 시편 24편 설교는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서 경배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림으로 예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교회에 나와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인가?(시24:1-6)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들을 이 땅에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선택한 자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셨습니다. 선택한 사람들을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 있었는데 눈에 보이는 창조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창세 전에 하나님께 선택받았고 이 땅에서 살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마지막은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어디에 있다가 이 땅에 왜 왔으며 내가 어디로 가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 때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분명해집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이 구원의 확신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여호와의 구원 산에 올라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영광 돌리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시24:1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라아도나이 하아레츠 우밀로아흐 테벨 비요쉬베 바흐

다윗은 고백합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여호와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나 동물들도 모두가 여호와의 것입니다.

‘세계와’ (테벨 8398) 세계, 세상이며 이 단어는 (야발 2986) 가져오다, 이끌다, 인도하다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모든 인간과 동물을 이끌어서 이 세상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인간들은 이 세상이 스스로 만들어진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무에서 유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영원이라는 세계에서 유라고 하는 눈에 보이는 세계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드시고 에덴동산을 창설하신 후에 아담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거주하고 있는 모든 사람은 여호와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소유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시24: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키 후 알 야밈 이사다흐 비알 니하로트 이코니네하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시고 강들 위에 건설하셨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바다 위에 세우시고 강들 위에 건설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세우심이여’ (야사드 3245 동사 칼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여성 3인칭 단수) 설립하다, 세우다, 기초를 세우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땅을 바다 위에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기초를 세웠는데 바다 위에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칼 능동태를 사용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실 때 바다 위에 직접 세우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완료 시제는 이 세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완벽하게 만드셨음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은 주님이 재림하셔서 선택받은 자를 구원하시기 전까지 멸망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자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면 그때 이전 하늘과 땅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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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하셨도다’ (쿤 3559 동사 피엘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여성 3인칭 단수) 확고하다, 준비하다, 확립하다, 고정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의 땅을 강들 위에 건설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확실하게 땅들을 강들 위에 고정하여 흔들리지 않게 창조하셨음을 말합니다. 피엘 강조능동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완벽하게 고정하여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실 때까지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될 때까지 흔들리지 않도록 하셨음을 의미합니다.

미완료 시제는 이렇게 건설되어 선택받은 백성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해서 존재하게 될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의 땅이 지진이 나고 화산이 폭발해도 계속해서 존재하게 됩니다. 아직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라지려면 천년왕국이 지나서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면 사라지게 됩니다. 그전까지는 계속해서 이 세상은 남아있게 됩니다.

시24: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미 야알레 비하르 아도나이 우미 야쿰 비마콤 카드쇼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선택받은 백성을 부르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을 창설하셔서 아담을 부르셔서 에덴동산에 거주하게 하셨던 것과 같습니다. 여호와의 산은 시온산을 상징합니다. 시온산은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신약적 개념으로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선택한 백성을 교회로 부르십니다.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라고 다윗은 말합니다. 여호와의 거룩한 곳에 설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자가 설 수 있습니다. 거짓 복음을 가진 자는 절대 설 수 없습니다.

‘오를 자’ (알라 5927 동사 칼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올라가다, 오르다라는 뜻입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른다는 것은 하나님께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인은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아담의 혈통으로 온 자는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칼 능동태를 사용한 것은 이 세상에 과연 누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수 있느냐는 것을 말합니다. 미완료 시제는 여호와의 산에 계속해서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에서 산은 구원을 상징합니다. 신약적 개념으로 여호와 앞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함을 받지 못한 자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습니다. 잘못하면 진노를 받게 됩니다.

‘설 자가’ (쿰 6965 동사 칼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일어나다, 일어서다, 세우다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거룩한 곳에 서 있을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말합니다. 여호와는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했습니다. 칼 능동태는 여호와의 거룩한 곳에 설 자에 대해서 말합니다. 아무나 설 수가 없고 하나님이 인정한 사람만이 설 수 있습니다. 미완료 시제는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장소에 함께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말합니다.

계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카이 에이돈 카이 이두 아르니온 헤스테코스 에피 토 오로스 시온 카이 메트 아우투 헤카톤 텟사라콘타 텟사레스 킬리아데스 에쿠사이 토 오노마 투 파트로스 아우투 게그람메논 에피 톤 메토폰 아우톤

여호와의 거룩한 산에 계속해서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십사만 사천 명입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백성을 말합니다. 구원받은 자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구원의 확증을 받은 자들이 여호와의 거룩한 산에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시24: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니키 카파임 우바르 레바브 아쎄르 로 나사 라샤베 나피쉬 비로 니쉬바 리미르마

여호와의 거룩한 장소에 설 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설 수 있다고 말합니다. 허탄한 데에 마음을 두지 않고 거짓 맹세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손이 깨끗하며’ (나키 5355) 결백한, 무죄한, 깨끗한, 자유로운, 면제된이라는 뜻입니다. 손이 깨끗하다는 것은 죄가 사해졌음을 말합니다. 손은 행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흠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나키라는 단어는 흠이 없고 죄가 사라진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가 사라져 속죄함을 받은 자가 여호와의 거룩한 산에 서게 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행위로 구원받으려고 하는 자는 여호와의 거룩한 장소에 설 수 없습니다. 이것은 무형교회에 들어갈 수 없음을 말합니다. 무형교회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가 없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하며’ (바르 1249) 깨끗한, 순결한이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깨끗하다는 것은 구원받은 백성의 심령에 예수 그리스도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겉 사람과 속 사람이 있습니다. 겉 사람의 마음도 있지만 속 사람의 마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형교회에 들어가서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속 사람의 마음이 청결하여 완전히 깨끗하게 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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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히브리 사람들의 언어유희라고 볼 수 있는데 청결이라는 단어가 바르인데 이처럼 똑같은 단어에 아들이라는 아람어가 있습니다. (바르 1247)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아람어로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에 우리가 잘 아는 바라바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라바의 이름이 바르 아바입니다.

마27:16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에이콘 데 토테 데스미온 에피세몬 레고메논 바라브반

바라바는 유명한 죄수입니다. 바라바는 민란을 꾸미고 민란 중에 살인하여 체포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놓아주고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됩니다. 바라바의 이름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럼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바라바와 같은 죄인 중의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마음이 깨끗하게 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바라바와 같은 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고 나를 살려주셨기 때문에 내가 살아난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본다고 했습니다.

마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카리오이 호이 카다로이 테 카르디아 호티 아우토이 톤 데온 옵손타이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라고 했는데 신약 히브리어 성경에는 (바르 1249)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여호와의 거룩한 산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고 속 사람의 마음이 완전히 깨끗하게 된 사람은 무형교회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가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겉 사람의 마음만 깨끗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사람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겉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속 사람의 마음은 아직도 청결하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가능합니다.

‘허탄한 데에’ (샤베 7723) 공허, 헛됨, 허무, 거짓이라는 뜻입니다.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않는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허탄한 데에 뜻을 두는 사람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것들도 허탄한 데에 뜻을 두는 것입니다. 공허하거나 허무한 것을 의지하면 안 됩니다.

출20: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로 티사 에트 솀 아도나이 엘로헤이카 라샤베 키 로 이나케 아도나이 에트 아쎄르 이사 에트 쉬모 라샤베

하나님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망령되게’라는 단어가 (샤베)입니다. 거룩한 산에 설 수 없는 자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헛되게 부르고 망령되게 부르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 앞에서 죄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이 무엇일까요? 구원자로 보내주신 예수님을 배척하여 믿지 않는 것입니다.

요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페리 하마르티아스 멘 호티 우 피스튜우신 에이스 에메

예수님은 말합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보내주셨는데 믿지 않고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고 여호와의 거룩한 산에 설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무형교회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시24:5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공의를 얻으리니

이사 베라카 메에트 아도나이 우체다카 메엘로헤 이쉬오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공의를 얻는다고 했습니다.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하며 허탄한 데에 뜻을 두지 않고 거짓 맹세하지 않는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됩니다. 구원의 하나님께 의롭다고 불림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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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받고’ (나사 5375 동사 칼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들어올리다, 가지고 가다라는 뜻입니다. 여호와께 복을 받는다는 것은 높이 세워짐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 중에 하나님께서 높이 세워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평평하게 있는데 장대를 세우듯이 높이 세우면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렇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높여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칼 능동태는 많은 사람 중에 나를 높이 세워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완료 시제는 하나님께서 높여주셔서 계속해서 세워짐을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시면 인간이 내려오게 할 수 없습니다. 모르드개가 복을 받으니 하만이 떨어지게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르드개를 높이 달려고 세웠던 장대 위에 자신이 달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복을 받아 높이 세워지게 할 수도 있지만 수치를 받게 높이 세울 수도 있다는 것을 하만을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복을 받아 많은 사람 앞에서 높이 들려지게 되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런 자들이 의롭다라고 칭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시24: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제 도르 도르쇼 미바카셰 파네이카 야아코브 셀라

이렇게 복을 받은 사람은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며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여호와를 찾는 족속은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죄악 가운데 살고 있지만 속 사람은 항상 여호와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에서 족속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선택했습니다. 야곱 족속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위하여 찾게 됩니다. 우리도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은 야곱 족속입니다. 야곱 족속이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야 합니다. 이것은 무형교회에 들어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의 유형교회에는 나왔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이 살아간다면 무형교회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천국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여호와의 산에 서야 합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주님의 보혈로 원죄가 완전히 깨끗하게 씻김을 받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고 속 사람의 마음이 완전히 깨끗하게 됨으로 거짓 복음을 따라가지 않는 믿음의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구원받은 것으로 끝나지 말고 항상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과 함께하여 여호와의 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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