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예배를 드리면서 많이 부르는 찬송가 410장이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았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우리가 받을 수 없다. 하나님 앞에서 은혜 받은 성도가 찬송가 410장을 부르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자.
찬송가 4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확실히 아네>
딤전 1: 12, 3 : 12-16
서론 : 위대한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그의 편지 중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라고 하며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고, 딤후 3:14에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강조하였다.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진리를 항상 열심히 배워서 먼저 지식적으로 잘 체득하고 따라서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실 함이라”(딤후 1:12)고 하였다.
이 말씀의 뜻을 배경으로 삼아 지은 찬송이 곧 410장이다.
이 찬송가의 작사자인 다니웰 웹스터 휫틀(Daniel Webster Whittle 1840-1901)목사는 무디 부흥 운동에 호응하여 크게 공헌한 부흥 사이며, 또 영감에 넘친 찬송가도 많이 지었다. 우선 우리 찬송가 중에서 그의 작품이 172장 “빈들에 마른 풀같이, 400장 “주의 진리 위에 십자가 군기” 본 찬송(4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465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등등이 있다.
1. 확신한 일에 거하라.
바울이 주의 사도로 항상 용기 있게 헌신한 밑 바탕 힘은 이렇게 매사를 확신하는 데서 기인하였다. 확신이란, 자기가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것,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지식적으로 또는 신령적으로 의심 없이 분명히 믿는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 확신은 신앙의 결과로 생기는 것으로 잘 배우고 분명하게 배우고, 똑똑하게 배워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확신이 생겨지게 된다. 그러나, 신자라고 해서 다 확신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도마와 같이 매사에 의심하는 회의주의자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믿는다면 믿고 안 믿는다면 안 믿는 반신반의자들도 있다.
간질병 소년(벙어리 귀신 들린 환자)의 부친이 예수님께 부탁하기를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꾸짖었다. 이에 그 부친은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막9:14-29)라고 신앙 고백함으로 그 아들의 병이 즉시로 낫게 되었다.
우리는 매사에 의심하지 말고 확실히 믿자.
2.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주심을 확신해야 한다.
엡 1:4에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라고 하였으며, 롬 8:29, 9:11에 보면,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에 따라서 예지 하신 대로 택하셨다는 것이다.
이 선택은 누구의 권면이나 추천에 의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독자적인 주권행사이다(롬 9:15-16).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신 일이다(엡1:6). 살전 1:4에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라고 하였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을 선택하여 이 귀한 자리를 주시는가?
고전 1:27-28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으니 참 놀라운 은혜다.
국민들에게 택함을 받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도 기뻐하고 자랑하며 영광스럽게 여기는데, 하물며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자진하여 그의 기뻐하시는 주권적 의사에 따라 좋은 목적을 가지고 은혜스럽게 택하여 주셨으니 헬렐루야!
아-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왜 내게 성령 주셔서 내 맘을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아서 주 앞에 옳다함 얻음은
확실히 믿기는 어린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189:3>
3.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확신해야 한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심은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하였으니(엡1:4-6)얼마나 고맙고 감사한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목적이 어디 계신가?
종으로 삼아 죽도록 일이나 시키려는 것인가? 아니다. 당당히 아들·딸을 삼아 주시는 데 목적이 있을 것이다.
자기의 사랑하시는 자녀의 명분을 주심으로 하나님 자신도 이 일에 지극히 만족해 하셨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만물과 인생을 창조하실 때 매번 하나님께서 보시니 “좋았더라” “심히 좋았더라”라고 하셨듯이, 우리들을 선택하여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일은 너무나 확실한 축복의 열매이니 이 엄숙한 사실을 확신하자는 것이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입었는데, 우리 시조 아담 부처의 범죄로 인하여 에덴 동산에서 추방 되었다. 그러나, 사단의 노예로 전락하여 영원히 멸망의 구덩이에서 영 죽을 것을 구속하여 살려주셨다.
그러던 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제사로 인하여, 우리가 그의 속죄 공로를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의 지위를 회복하게 되었다.
아들은 아들인데 탕자와 같이 아버지 슬하를 떠나 외지에서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탕진하고 거지 꼴이 된 신세다. 이제 아버지 품으로 다시 돌아와 감히 아들의 자리를 찾을 수는 없고 품군의 하나로 보아 달라고 하였으나, 기다리시는 아버지는 무조건 아들의 회개를 인정하시고 아들의 자리를 다시 회복시켜 주셨다.
태초부터 말씀 되시는 예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또 범죄하여 멸망에 이른 우리들을 구원하시려고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강림하셨으니 이제 그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셨다(요 1:11-12). 이 얼마나 감사한가?
4. 구원 받아 영생복락 누릴 것을 확신해야 한다.
사 12:2에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요I 5:13에 보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우리들이 믿노라고 하면서 나의 영혼이 구원 받아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기본적이면서도 궁극적인 목표를 바로 찾지 못한다면 이 얼마나 한심스럽고 애석한 일이겠는가?
우리는 이 엄연한 사실을 의심 없이 확신합시다. 무조건적으로 견고하게 믿읍시다. 복잡하게도 말고, 지식의 이해적으로도 말고, 관습적으로도 말고, 회의적으로도 말고, 오직 순진하고 단순하게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아-멘” “믿습니다”라고 기쁨과 감사하심으로 받는 것이 곧 신앙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6:37)고 하셨다.
계 22:17에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 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하셨다.
하나님은 진실하십니다. 틀림없는 보증수표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8장에서 강력히 보장하기를 “누가 감히 우리를 대적할 수 있으며, 송사할 수 있으며, 정죄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고 단정적으로 선포하셨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결론 : 우리가 확신해야 할 것 세 가지는;
①하나님께서 만민 중에서 선택하여 주신 것과.
②하나님의 자녀된 것과,
③구원 받아 영생복락 누릴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 찬송가를 부를 때에는 나같이 쓸데없는 자를 왜 구속하여 주셨는지, 왜 굳센 믿음과 또 복음을 주셔서 내 마음이 항상 편한지, 왜 성령으로 동행케 하고 감동케 해 주시는지,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언제인지, 또 만나는 그 장소가 어는 곳인지,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알 수 없어도 “나의 의뢰하는 자”는 반드시 알아야 하겠다.
그는 지극한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이 모든 복이 그의 은혜로 말미암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