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1장 새벽예배 설교문은 성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 하고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면서 육체로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은 빛으로 이 땅에 오셔서 선택한 죄인을 구원하셨다. 우리는 성육신 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Ⅰ. 그리스도와 그의 탁월성 1:1-4
1. 중보자에 대한 설명(1,2)
(1) 생명의 말씀(1절). 그는 단순하고 공허한 소리로서의 말씀이 아닌 살아있는 말씀, 곧 생명의 말씀이시다. (2) 영원한 생명(2절). 그는 태초로부터 계셨다. 또한 그는 영원히 살아 계시는 하나님아버지의 영원한 말씀이시다. (3) 생명이 나타나신바 된지라(2절). 그는 육신을 입고 나타나셨다. 영원한 생명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오셔서 그들을 위하여 영원한 생명을 획득하시고 그것을 그들에게 베푸신 것은 진실로 그의 사랑 때문이었다.
2. 중보자가 이 세상에 계셨음(1-3)
‘생명’, ‘생명의 말씀’, ‘영원한 말씀’과 같은 이러한 것들은 보이지도 않으며 느낄 수도 없다. 그러나 나타내신 바 된 말씀은 볼 수도 느낄 수도 있었으므로 이들은 실제로 그를 보고 느꼈던 것이다. (1) 그들의 귀로(1, 3절):이 생명은 입과 혀를 취하여 생명의 말씀을 전하셨다. 거룩한 말씀은 귀를 사용하고자 하시므로 귀는 생명의 말씀을 듣는 데에 온전히 사용되어야 한다. (2) 그들의 눈으로(1-3절):그들은 또한 말씀을 보았다. 눈으로 본 바요. 즉 말씀을 들었을 뿐 아니라 눈으로써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본 바가 되었던 것이다.
그의 사도들은 귀로 들은 그의 증인일 뿐만 아니라 눈으로 본 증인이기도 하다. (3) 그들의 내적인 감각, 즉 심령의 눈으로: 주목하고, 말씀은 눈으로 직접 본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그들이 본 바로부터 이성적으로 추리한 대상으로서 인식되고 있다. 그러므로 감각들은 마음의 정보자가 되는 것이다. (4) 그들의 손과 촉감으로: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보이지 않는 생명과 말씀되신 분은 결코 감각에 의한 증거를 무시하지는 않으셨다. 감각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식을 위하여 마련해 주신 하나의 수단이다.
우리 주님은 사도들이 세상에서 보다 진정한 주님의 증거자들이 될수 있도록 그들의 모든 감각을 통하여 세심하게 자신을 드러내셨다. 사도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다양하게 훈련된 감각을 그릇 이해했을 리가 없다. 감각은 분별하고 판단하는 데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분별력과 판단력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3. 사도들이 이 증거를 제시한 목적(2,3)
사도들은 우리가 만족할 수 있도록 그들이 확신한 것들을 밝힌다. 사도들은 자기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증거들을 성도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합당했다. 성도들은 자신들이 받아들인 교리의 진실성을 충분히 확신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거룩한 신앙의 증거들을 알아야 했다.
4. 사도가 거룩한 믿음에 대해 이러한 요지를 밝히는 이유(3,4)
〔1〕이를 믿는 자들이 그들과 함께 (사도들 자신과 함께) 동일한 복락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함이다(3절). 그것은 하늘나라와의 교통으로 그곳으로부터 오며 그곳으로 나아가는 축복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훌륭한 사도로부터 가장 이름 없는 신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도들에게 속해 있는 친교(혹은 특권과 존엄성에 대한 공동의 참여)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 친교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3절). 복음의 계시가 의도하는 바가 곧, 우리로 하여금 죄와 세상으로부터 멀리 떠나 하나님과 그 아들과 함께 복된 친교를 나누도록 하려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영원한 생명이 육신이 되신 목적은 그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와 그 자신과의 친교속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2〕신자들에게 거룩한 기쁨이 증대되고 깊어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기독교 신앙의 신비는(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인) 사람들의 기쁨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기독교 계시의 능력과 목적에 이르지 못한 채 사는 사람들은 신령한 기쁨으로 충만케 되지 못한다.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거룩한 믿음을 확신하게 된다면 얼마나 큰 기쁨으로 충만케 될 것인가!
Ⅱ. 빛 가운데 행함으로 얻는 유익 1:5-7
〔1〕여기에서 우리는 주 예수로부터의 메시지를 보게 된다(5절). 사도들은 주 예수의 사자들이다. 그러므로 그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파하는 것은 그들의 영광이었다. 인성을 지니신 그는 흙으로 지어진 질그릇들을 영화롭게 하신다. 사도들의 소망은 자신들이 받았던 메시지를 신실하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본서의 저자인 사도요한은 이렇게 선언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5절). 우리에게 있어서 그는 빛으로 말미암아 볼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과 완전함이 되신다. 그에게는 결함이나 불완전함이 결코 있을 수 없다. 이 어두운 세상에 대하여 위대한 하나님이 순수하고 완전한 빛으로서 나타나게 되시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이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느니라’는 말보다 하나님에 대해 보다 함축된 표현이 과연 있겠는가?
〔2〕이 메시지로부터 필연적으로 귀결되는 사실이 있다. (1) 하나님과의 진정한 사귐이 전혀 없는 신앙고백자들을 깨닫게 한다. 만일 우리가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6절). 어두운 가운데 행한다는 말은 우리의 거룩한 신앙과 반대되는 무지와 그릇된 행위를 좇아서 살고 행동한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렇게 사는 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고백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들의 생활은 비신앙적이고 비도덕적이고 또한 불순하다. 사도는 그러한 자들의 말이 거짓임을 두려움없이 주장하였다.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그들의 행동은 그들의 고백과 겉치레가 거짓임을 보여주며 그들의 어리석음과 허위성을 증명한다.
(2)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자들을 확신케 하고 이에 따른 만족을 얻게 한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7절). 빛 가운데 행하는 자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있음을 보여 준다.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즉, 그들은 우리와 함께, 우리는 그들과 함께, 또한 우리와 그들 모두는 하나님과 함께 사귐이 있게 된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적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의 피는 우리를 위하여 거룩한 능력을 행하셨으며, 이로써 죄는 더욱더 뿌리뽑혀지고 종국에는 온전히 소멸될 것이다.
Ⅲ. 우리가 죄있음을 부인하는 죄악 1:8-10
〔1〕사도는, 이러한 신성한 교제를 하고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아직은 죄를 지니고 있다고 전체 하였는데 여기 8절에서 그 전제가 옳음을 진술해 가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부인하거나 변명함으로써 자신을 속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기독교는 죄인들의 종교이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계속되는 회개의 생활이며, 구속자에 대한 지속적인 믿음과 감사와 사랑 속에서 영위되는 생활인 것이다. 우리의 죄를 부인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실성에 도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끊임없는 죄악에 대하여는 모든 시대에 필요하게 될 속죄물을 제공하심으로써, 또한 신자들 자신의 계속되는 범죄에 대하여는 그들에게 자신들의 죄를 끊임없이 고백하도록 요구하시는 것으로써 그의 증거를 주셨던 것이다.
〔2〕사도는 신자들의 죄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용서받는 방법을 제시한다. (1) 용서 받기 위해 우리 죄를 자백해야 할 의무가 있다(9절). 죄를 시인하고 참회하는 것은 정죄함으로부터 구원받는 수단이 된다. (2)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확신을 얻게 된다(9절). 이 확신은 그러한 고백을 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하심이다. 그 말씀하시는 바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 속에서 참회하는 신앙고백자들에게 용서를 약속하셨다. 그렇게 그는 자비하시며 은혜로우시므로 통회하며 고백하는 자에게는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그를 깨끗게 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