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Jon) 1장 설교 말씀] 요나(Jonah)의 소명과 불순종(욘1:1-17)

요나 1장 설교 말씀은 요나 선지자가 하나님께 소명을 받아 니느웨 성읍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 요나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풍랑을 만나게 되었다. 성도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순풍을 맞아 축복 받아야 한다.

Ⅰ. 여호와의 명령과 요나의 도망 1:1-3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치는 예언을 하라고 사명을 주셨다. 그것은 요나에게 영예로운 것이었다. ‘요나’라는 이름은 비둘기를 뜻하는 것으로 비둘기처럼 순전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땅의 죄와 재난에 대해 슬피 울어야 하는, 하나님의 모든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들에게 적합한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부친의 이름은 “나의 진리”란 뜻의 ‘아밋대’이다. 이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진리의 아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제 명령이 내려졌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2절). 니느웨는 앗수르 제국이 수도였다(창 10:11).

이 성읍은 ‘저 큰 성읍’이라고 기록되었는데 이는 거민의 수효에 있어서나 세력과 지배력에 있어서도 큰 성을 의미한다. 그 성읍은 한 때는 세상의 군왕들을 다스렸던 곳이었다. 그러나 위대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큰 성읍들 역시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다. 니느웨는 참되신 하나님을 알지도 섬기지도 않는 이방 성읍이었다. 게다가 이 큰 성읍은 악한 성읍이었다.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그들은 강포함으로 죄를 범하였다. 그러므로 요나는 ‘그것을 쳐서 외쳐야’ 했다. 즉 그는 그들의 큰 악독에 대하여 증거하고 그것으로 인해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하여야 했다. “주저하지 말고 크게 외치라.” 그는 속삭이듯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니느웨 거리 한 복판에서 크게 공포하여야 했다. 즉 들을 귀있는 자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 악독한 성읍에 대하여 하시는 말씀을 듣도록 해야 했다.

신명기 9장 금송아지와 십계명 돌판 복음 설교문

그는 니느웨로 가서 즉시 그곳의 악함을 쳐서 외쳐야 했다. 다른 선지자들은 인접한 나라들에 대해 메시지를 보내도록 지시받았으나 요나는 자신이 직접 가서 메시지를 전하여야 했다. 요나는 가기를 거절함으로 하나님께 욕되게 행하였다(3절). 요나는 일어나 니느웨로 가는 대신에 ‘일어나 다시스로,’ 즉 바다로 ‘도망하였다.’ 이는 어느 항구를 목적지로 삼아서가 아니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혈과 육’을 따라 생각함으로써 자기 민족의 특권을 잃지 않으려고 그 사명을 거절하였다. 즉 다른 민족이 하나님의 계시의 영광에 동참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이 사명을 싫어한 것은, 니느웨가 회개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욘 4:2). 이것이, 오랫 동안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에게 치욕이 되리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는 다시스로 가는 배를 찾기 위해 이스라엘의 유명한 항구인 욥바로 갔다. 거기서 그는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게’ 되었다. 하나님의 섭리가 그에게 도망할 기회를 주는 듯이 보였다. 길이 주어졌다고해서 항상 바른 길은 아니다. 그는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났으며 그곳으로 항해를 하게 되었다. 그는 배삯을 주고 선원들, 여행자들, 상인들과 함께 배에 올랐다. 함께 다시스로 가는 자라면 누구든지 그는 개의치 않았다. 요나는 자신의 의무 뿐만 아니라 자신의 체통도 잊어버린 채 그들과 함께 어울렸다.

Ⅱ. 폭풍을 만남 1:4-10

(1) 하나님께서는 추적자를 보내셨다.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4절). 이 바람의 결과로 바다 가운데 폭풍이 일게 되었다. 그 폭풍은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될 정도로 불어닥쳤다. 이 바람은 요나로 하여금 하나님과 자기의 의무로 다시 돌이키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이 아무리 폭풍에 의해서 이긴 하지만 우리가 곁길로 빠질 때 다시 돌이키도록 하시는 것은 큰 자비라고 할 수 있다.

(2) 그 배에 탄 자들은 모두 이 폭풍으로 인해 놀랐으나 요나만은 무관심하였다(5절). 선원들은 두려워하였다. 직업상 그들은 이런 류의 위험쯤은 가볍게 여기곤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가장 경험많고, 용기있는 자들조차 두려워 떨기 시작하였다. 이는 이 폭풍은 보통 폭풍과는 다른 무엇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즉 그것은 아주 갑자기 일어났으며 또 너무 사납게 불어왔던 것이다.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많은 사람들이 놀라 두려워하기 전에는 기도하지 않는다. 그들은 각각 자기의 신에게 도움을 청한 뒤에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다.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비슷한 경우가 사도행전 27:18,19,38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 요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그는 어떤 사람보다도 더 분주했을 것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그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거기 누워 깊이 잠이 들었다. 외부의 어떤 소음도, 내면이 어떤 죄의식도 그를 깨우지 못했다.

(3) 배의 선장은 요나에게 기도할 것을 요청하였다(6절).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선장은 그에게 모욕을 주며, 일어나 살려달라고 구하든지 죽을 준비를 하든지 하라고 명하였다. 우리는 이 대목을 보면서 그 배의 선장을 칭찬하는 반면 이러한 책망을 들은 요나를 측은히 여기게 된다. 만일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지켰다면 그는 니느웨의 왕을 꾸짖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직무로부터 이탈하게 되자 그는 한 보잘것없는 선장에게서 도리어 책망을 듣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우리는 그로 하여금 이렇게 합당한 책망을 받게 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치 베드로를 깨우친 닭 울음 소리처럼 회복의 첫 단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우리 모든 사람이 각기 자기의 신께 부르짖고 있는 이 마당에 너는 어찌하여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느냐?”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들이 부른 많은 신들은 그들에게 있어 단지 그들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간의 중재자로 여겨졌던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선장은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그로부터 구원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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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요나로 인해 이 폭풍이 일어났음이 밝혀졌다. 선원들은 이 폭풍이 매우 특이하며 범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따라서 그들은, 그 폭풍이 배에 타고 있는 어떤 극악 무도한 죄인을 삼키기 위해 신이 보내신 공의의 사자이며, 그 때문에 자시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참조. 행 28:4).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나 보자. 그들은 서로를 의심하였으며 따라서 제비를 뽑아 그 사람을 찾기에까지 이르렀다. 즉 선원들은 그 배에서 마땅히 죽을 자가 누구인가를 알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는 그 한 사람으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게 함으로써 그 배 전체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 일을 위해서 그들은 제비를 뽑았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호소하였다.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지라. 만일 그가 미리 양심껏 자신 때문에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말했더라면 그들을 이러한 곤경에서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 배 안에 요나보다 훨씬 더 악한 죄인들이 많이 있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풍이 추적한 대상은 바로 그였다. 폭풍은 요나를 좇도록 보냄을 받았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하실 일이 있으시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를 데려오도록 푹풍을 보내셨던 것이다. 요나는 선장과 선원들 앞에서 심문을 받게 되었다. 그는 그들에게 있어 낯선 자였다. 따라서 그들 중 아무도 그를 고소할 만한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로부터 자백을 얻어내어 그 입에 나오는 것으로 심판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거칠게 공격하지 않고 조용히 그의 사정을 조사하였다.

범죄한 자가 발각되고 정죄받게 될 때 동정심이 발동되는 법이다.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고하라(8절). “참으로 이 재앙이 너 때문이냐? 너는 무슨 죄로 이와 같은 기소를 당하고 있는 것이냐?” 그들은 그의 직업을 물었다.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답변하는 가운데 요나는 그들에게 자신이 ‘히브리 사람’이라고 말하였다(9절). 따라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가 더욱 수치스러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평소에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히브리 사람의 죄는 더욱더 큰 죄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종교에 대해서도 설명을 하였다. 이는 그것이 그의 직업이기 때문이었다. 나는…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즉 “바다와 육지를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다스리시는 ‘하늘의 하나님,’ 또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내가 경배하는 하나님이시라.”

그는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 줄을,’ 즉 자신이 자신의 직무로부터 도망하여 이곳에 있음 그로 인해서 폭풍이 자기를 데려가고자 불어닥친 것임을 인정하였다.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경외라고 경배한 자가 특정한 직무에서 이탈한 것으로 인해 격노하신 것을 본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호와의 선지자가 한 번의 범죄로 인해 이처럼 혹독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라면 크고 악한 죄를 그토록 많이 저지른 우리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들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너는 어찌하여 우리까지 이러한 자리에 떨어지게 하였느냐?”

Ⅲ. 요나를 바다에 던짐 1:11-17

무엇인가가 단행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는 ‘바다가 점점 흉용하여졌기’ 때문이다(11절).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13절).

(1) 그들은 요나에게, 그들이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에 대해 물었다(11절). 그는 범죄자로 나타나지만 반면에 참회자로도 나타나고 있다. 만일 그가 배를 구할 방도를 생각해 낼 수 있었다면 그들은 그를 바다에 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2) 요나는 자신의 운명을 알았다(12절).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이것은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가 할 수 있는 말이다. 진정 회개하는 자는 자신의 죄나 어리석음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요나는 즉시 모든 죄를 한 몸에 짊어지며 참된 회개자들과 같은 마음으로 그 환난을 바라보았다. “만일 폭풍이 일어난 것이 나 때문이라면 바다에 물건을 던져 봐야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너희는 나를 던져야 할지라.” 양심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폭풍이 일어났을 때 그 혼란을 야기시킨 죄와 결별하는 것 외에 달리 그것을 잔잔케 할 방도가 없다.

(3) 가련한 선원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지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다 썼으나 결국 무위로 그치고 말았다(13절).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다가. 만일 그들이 요나와 필히 결별해야만 한다면 그를 안전하게 해안에 내려 놓고자 하였던 것이다. 능히 못한지라.

(4) 그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졌을 때 그들이 먼저 하나님께 구한 것은 그의 피를 자기들의 탓으로 돌리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14절).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이는 요나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와 요나가 그들에게 알게 해준 사실을 통해서 오직 그분만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호와여…이 사람의 생명 까닭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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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와 같이 간구하고 나서 그들은 요냐를 던졌다(15절).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만일 요나의 죄처럼 폭풍을 일으키는 죄가 있다면 바다에 던져져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빠뜨려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우리를 빠뜨릴 것이다.

(6) 요나가 바다에 던져지자마자 폭풍은 즉시 그쳤다. 만일 우리가 죄에서 돌이킨다면 하나님께서는 즉시 그의 노를 푸실 것이다.

(7) 이로써 선원들은 요나의 하나님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믿음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16절). 그 증거로 그들은 이스라엘 땅에 다시 이르게 되었을 때 ‘여호와께 제물을 드렸다.’ 그러나 당장은 자신들이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며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겠노라는 서원을 하였다.

(8) 요나는 기적적으로 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 중에서라도 자비를 기억하신다. 비록 그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다가 보수하시는 손 가운데 떨어진 듯이 보이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하실 일이 있으셨기에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다'(17절). 그것은 가장 큰 종류의 고래로서 목구멍이 다른 물고기보다 더 크며 때때로 그 뱃속에서는 갑주를 입은 사람의 시체가 발견되곤 하였다. 요나가 죽지 않은 것은 여호와의 자비의 결과였다. 요나가 보호받은 것은 다음 몇 가지를 위해서였다.

1) 하나님의 자비의 기념물이 되기 위해서였다.

2) 니느웨에 성공적인 전파자가 되기 위해서였다.

3) 그리스도를 예표하기 위해서였다. 즉 그는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던 것이다(고전 5:14). 왜냐하면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마 12:40). 요나의 무덤이 낯선 무덤, 새 무덤이었는가? 그리스도의 무덤도 그러하였다. 즉 그의 무덤은 사람이 전에 장사되지 아니한 무덤이었다. 거기서 요나는 밤낮 사흘을 있었는가? 그리스도도 그러하였다. 이는 둘다 다시 일어나 이방 세계에 회개의 선포를 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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