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장 짧은 설교문] 유다의 우상 숭배 죄(렘2:20-37)

예레미야 2장 짧은 설교문은 유다의 우상 숭배 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을ㄹ 버리고 자기들 멋대로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께 멸망 받았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 시켜버렸다. 유다 백성들이 죄를 지으니 하나님은 심판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죄를 지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징계를 내린다.

Ⅳ. 이스라엘의 타락의 참상 2:20-28

(1) 우상 숭배는 죄 그 자체이다.

1) 그들은 우상 숭배하는 장소에 자주 모였다(20절). 모든 높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산당과 수풀 가운데에서, 인정되지 못하고 만족을 얻지 못하면서도 몸을 굽혀 행음하도다.” 보통 영적인 간음은 육체적인 음란도 동반하는 것이 상례이다.

2)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위해 우상을 만들었으며 이것들에게 신적인 영예를 돌렸다(26,27절). 일반 백성들뿐만 아니라 왕들과 방백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까지도 나무에 대고 말을 할 정도로 그렇게 어리석었다. 너는 나의 아비다 즉, “너는 내가 은혜를 입고 있으며 의지하는 나의 신이요, 나를 지은 이라.” 그들은 또한 돌을 향하여, 돌로 만든 우상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너는 나를 낳았다. “네가 나를 이 땅에 내었다. 그러므로 나를 보호하라.”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아버지 하나님께 이보다 더 큰 모욕을 행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것들이 처음 경배의 대상이 되었을 때, 그들은 그것들이 어떤 하늘의 능력이나 영에 의해 생기가 불어 넣어지는 것으로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점점 이러한 생각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의 상상은 우상 그 자체를 저희의 아비로 간주하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우상 그 자체를 경배하였다.

3) 그들은 이 쓰레기같은 신들을 끊임없이 증가시켰다(28절).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수와 같도다. 그들은 동일한 신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한 성읍은 저희 나름의 신을, 그리고 다른 성읍은 또한 저희 나름의 신을 세웠다.

(2) 이 죄에는 증거가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 죄에서 면제되어 있는 척하였다. 그들은 잿물로 스스로를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썼다(22절). 그들은 이러한 것들을 하나님으로서가 아니라 귀신들로서 경배한 척하였으며, 그러한 것들에게 신적인 영예를 보인 것이 아니라 공민으로서의 예의를 보였을 뿐인 척하였다. 이와 같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회피하고자 하였다. 나는 더럽히지 아니하였다. 바알들을 좇지 아니하였다(23절). 그들은 그 일을 비밀리에 행하고 부지런히 감추었기 때문에(델 8:12) 결코 발각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였다. “네가 어떻게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있으며, 바알을 좇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 그 죄악은 깊든 자욱을 남겼고 더럽혀진 채 내 앞에 있도다.”

혹자는 이와 같이 해석한다. “비록 너희가, 죽은 사람의 핏자국을 옷에 묻힌 살인자와 같이, 그 자국을 씻어내려 애쓸지라도 결코 그것은 지워지지 않으리라.” 골짜기 속에 있는 네 길을 보라(그들은 높은 산 위에서 뿐만 아니라 골짜기에서도 우상을 숭배하였다, 사 57:5,6). 그들은 벧브올 맞은 편 골짜기에서(혹자는 그렇게 읽음) 우상에게 예배하였다(신 34:6;민 25:3). 그러나 만일 이것이 어떤 특정한 골짜기를 뜻하는 것이라면, 확실히 그것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그들이 저희의 자녀를 희생 제물로 몰록에게 바친 곳이며, 따라서 어떠한 다른 곳보다도 그들의 잘못에 대한 좋은 증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1장 새벽예배 설교문

(3) 이 죄악은 그들이 다음과 같은 책망을 받음으로써 더욱 가중되었다.

1)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거역하였고 그에게 반역하였다(20절). 네가 옛적부터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으며. 하나님께서 풀어 주신 그들의 멍에와 결박들은 이제 마땅히 영원토록 그들을 하나님께로 묶어두는 것이어야 했다.

2) 그들은 명쾌히 약속하였지만 그 약속을 이행치 아니하였다. 네가…말하기를 나는 순복지 아니하리라 하고(20절).

3) 그들은 하나님께서 처음 그들을 한 백성으로 이루게 하셨을 때의 상태로부터 비참하게 타락하였다(21절).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다(수24:31). 그러나 바로 그 다음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했고, 그가 행하신 일도 알지 못했다(삿2:10). 그리하여 그들은 점점 악화되었으며, 결국에는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되었다.

4) 그들은 우상 숭배를 열심으로 행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나 그의 배려로써도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은 그 길을 어지러이 달리는 발이 빠른 젊은 암약대와 광야에 익숙한 들 암나귀(23,24절)에 비유되고 있다. 그들은 길들여지지 않았으며 대단히 분방하여 쾌락을 좇아 헐떡거리고 있으니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누가 암나귀와 암약대가 욕구를 좇아 달려나가는 것을 가로막을 수 있겠는가? 암나귀를 찾는 자들은 이러한 상태의 암나귀를 좇아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암나귀가 새끼를 가질 때까지 참고 기다려.

그 후에 잡고자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암나귀가 더 이상 그들을 앞질러 달아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열망하는 정욕은 야만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에서 돌이키려 하지 않는 자들은 야생 짐승들로 간주되어질 것이다. 그들을 이성적인 존재로 간주해서는 아니된다. 우상 숭배는 묘하게 도취시키는 힘이 있다.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 가장 격렬한 것도 길들여질 때가 올 것이다. 고통과 번민이 저희에게 임할 때, 저희의 귀는 계율에 대해 열려질 것이다.

5) 그들은 저희의 죄로 완악하였다. 그들은 죄에 있어 제어되어질 수 없었던 것과 같이, 또한 개혁되어질 수도 없었다(25절). 하나님은 확실히 그들을 비참하게 하실 것이며, 그때에 그들은 벗은 발로 걷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는 신선한 물 한 모금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며, 그리하여 저희의 목은 갈증으로 타는 듯할 것이다. 이방 신들을 공경하고, 낯선 예배 방식을 좇던 자들은 이제 그에 적절하게, 이방 땅의 낯선 왕의 죄수가 될 것이다. 그들은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라고 권면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니라 이는 헛된 말이라.

“우리가 우상들을 버리기를 기대하지 말라.” 내가 이방 신을 사랑하였은즉 그를 따라 가겠노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 낙담해서는 아니된다. 그리고 우리의 죄가 아무리 흉악하다 해도, 만일 회개하고 그의 자비를 구하기만 하면 충분히 우리의 죄는 용서받게 된다는 점을 믿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도 절망해서는 아니된다. 아무리 우리가 크게 타락했다 해도, 만일 기도하고, 은혜를 더하시기를 그에게 구하기만 하면, 우리의 타락은 극복되어진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사람은 그가 지옥 이편에 있는 한 결코 희망이 없다고 말해서는 아니된다.

6) 그들은 저희를 도울 자를 멀리 함으로써 스스로 수치를 당하게 되었다(26-28절). 도적이 붙들리면 수치를 당함같이(그리고 형벌을 받게 되는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집이 수치를 당하였느니라. 그것은 저희가 지은 죄를 뉘우치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죄 가운데에서 저희가 부딪치게 되는 절망에 대한 형벌적인 수치이다. 저희가 흥할 때에 그들은 하나님께 등을 도렸으며, 환난을 당할 떼에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만족도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환난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그들은 회개에 이를 수 있도록, 이러한 수치를 당하게끔 저희가 섬기던 그 신들에게 보내질 것이다(삿 10:14). 그들은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만든 네 신들이…너의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28절). “너희에게는 내가 그렇게 해 주기를 기대할 아무런 연고도 없느니라.”

Ⅴ.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2:29-37

(1) 죄과가 있음은 논쟁의 여지가 없이 자명한 사실이다(29절). 너희가 나와 다툼은 어찜이뇨. “너희는 너희가 한 가지 일에서 뿐 아니라 다른 일에 있어서도 모두 범죄했음을 알고 있으면서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뇨?”

(2) 그는 저희의 돌이킬 수 없는 타락과 배은 망덕을 상기시킴으로써 저희의 죄과를 부각시킨다. 그들은 갖가지 일에 대해 하나님의 책망 아래 있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은 그들을 회개에 이르게 하고자 하셨다. 그렇지만 그것은 허사였다. 그들의 양심은 일깨워지지 않았으며 그들의 마음은 녹아지지 않았다. 그들은 징계를 통한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더 나아지지도 않았다. 그들은 징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의 매 맞은 것은 무익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종, 선지자의 입을 통해 그들에게 준 말씀에 의해서도 아무런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그 메시지 때문에 선지자들을 죽였다. 너희 칼이 사나운 사자같이 너희 선지자들을 삼켰느니라(30절).

에스라 1장 성경말씀 바사왕 고레스 칙령 사건

너희 이 세대여(그는 “너희 이 세대 사람들아”라고 부드럽게 말씀하시고 있다) 여호와의 말을 들어 보라(31절). “그러나 단지 듣는 것에 그치지 말라.” 우리는 미가 6:9에서 매를 받도록 명해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 매는 소리를 발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여기에서 ‘말씀을 보도록’ 명해지고 있다. 이는 그것이 환상과 전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햇빛으로 써놓은 것과 같으므로 달려가는 자도 읽을 수가 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 흑암한 땅이 되었었느냐. 하나님의 도우심은 불쾌한 것도, 무익한 것도 아니었다. 하나님은 때때로 그의 백성을 광야와 흑암의 땅을 통과하도록 이끄신다.

그렇지만 그러할 때, 그는 스스로 저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되셨다. 그는 그들을 만나로 먹이셨고,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으며 기름진 땅과 빛의 땅으로 안내하셨다. 이제 그들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오만하고 불경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와 같이 말한다. 우리는 놓였으니 다시 주께로 가지 않겠다. 구걸하는 자들인 우리가 스스로 “우리는 놓였으니, 즉 우리는 부유하니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겠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3)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악함에 대한 책망을 그들이 하나님을 잊은 것에 두고 있다(32절).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들은 저희 심중에서 하나님을 생각케 하는 모든 것들을 피하였다. 그들은 날 수를 계산할 수 없이, 시간 의식이 없이 오랫동안 하나님을 잊어왔다. 우리 생애의 얼마나 많은 날들이, 마땅히 있어야 할 하나님에 대한 생각없이 흘러가는가! 그 헛된 날들을 누가 계수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젊은 처녀들이 흔히 저희의 옷에 대해 가지기 마련인 그러한 정도의 관심조차 하나님에 대해 쏟지 않았다. 처녀가 어찌 그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 고운 옷을 잊겠느냐. 그렇다. 그들은 시시 때때로 그것들을 생각하며 그것들에 대해 말할 것이다.

(4) 하나님은 그들의 죄가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 주신다(33절). 네가 어찌 사랑을 얻으려고 네 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느냐. 여기에 얼굴을 꾸미고 머리를 장식한 이세벨과 같이 추파를 던지고 화려한 옷을 입음으로써 자신들을 아름답게 보이려는 추잡한 여인들에 대한 비유가 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저희 이웃들을 끌어들여 죄의 공모자가 되게 했고, 그들에게 우상 숭배하는 습관과 하나님의 규례를 혼합시키는 저희의 사악한 방식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그들은, 저희의 무익한 흑암의 행위를 따름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빠지게 되었을 악한 상태보다 훨씬 더 사악하게 된 자들에게 엄청난 책임을 지게 되었다.

(5) 하나님은 그들에게 살인죄의 책임에 대해 묻고 계시다(34절). 네 옷단에 죄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이 언급은 몰록에게 희생 제물로 바쳐진 어린 자녀들에 관한 것이거나 아니면 보다 일반적으로는 므낫세가 흘린 모든 무고한 피, 그것으로 그가 예루살렘을 가득 채운 일(왕하 21:16)을 말하는 것일 수 있다. 이 피는 은밀한 탐색에 의해서나, 혹은 구멍을 뚫어 파헤침으로써 나타난 것이 아니다(본문 구절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오직 ‘이 모든 일 위에’, 땅 위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는 죄과가 공공연하게 숨김없이 드러나 있음을 의미한다.

(6) 하나님은 무죄하다고 하는 그들의 변명을 물리치신다(35절).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주님과 변론하여 주님의 오류를 확인시키겠나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행동을 중단하시고 그의 진노를 돌이키실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이는 대단히 격노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진노가 옳은 것임을 그들에게 확인시키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를 의롭다하는 대신에 스스로를 심판하고 죄가 있음을 자복하기까지 멈추시지 않을 것이다.

(7) 하나님은 그들이 그를 적으로 삼고 피조물들을 의뢰함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저 수치스러운 좌절감에 대해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을 질책하신다(36,37절). 그들이 사람의 힘을 의지하고, 그들의 마음이 여호와를 떠난 것은 영적인 우상 숭배의 한 단면이었다.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뇨. 하나님을 저희의 소망으로 삼고 그를 의뢰하며 계속 나아가는 자들은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혼은 그에게로 돌아가며 휴식처와 같은 그분 안에서 편안히 쉴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처음에 앗수르를 의지했으며, 그것이 한낱 상한 갈대에 불과함이 드러나자 다시 애굽을 의지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더 나을 것이 없음이 드러나게 되었다.

“너희는 이전에 너희를 돕지 아니하고 도리어 군박했던(대하 28:20) 앗수르를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했던 것과 같이 이제 다시 애굽을 의지함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라. 너희가 구원을 청하기 위해 보낸 대사나 사절들은 낙심하여 애굽으로부터 돌아오며, 너희 백성의 절망적인 상태를 애통해 할 것이라. 너희는 여기에서 멀리 추방될 것이라. 즉, 두 손으로 네 머리를 싸고 낯선 땅에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이라. 그리고 너희가 의지하는 애굽은 너희를 지키지도 못할 것이며 포로된 것으로부터 구해 주지도 못할 것이라.” 여호와를 대항하여 이길 모사나 꾀가 없음같이 그분 없이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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