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 3장 강해 설교문] 꿈에서도 신랑을 사랑하는 신부(아3:1-11)

아가서 3장 강해 설교문은 꿈에서도 신랑을 사랑하는 신부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술람미 여인은 꿈에서조차 솔로몬 왕인 신랑을 찾아다니고 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신부인 내가 신랑인 예수님을 열심히 찾아다녀야 할 것을 의미한다.

Ⅰ. 교회가 고통을 호소함 3:1-5

구약 시대의 교회에 존재하던 의식법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기란 무척 힘들다. 이 위로자가 오시기까지 이스라엘은 오랜 세월을 기다려 왔는데 마침내 시므온이 자기 영혼이 사모하던 그분을 자신의 품에 안게 되었다. 이 일은 특별히 몇몇 성도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종종 흑암속을 걸어가지만 끝까지 그리스도를 찾으려 함으로써 종국에는 그를 발견하게 된다.

(1) 여인은 자기 침상에서 그를 찾아보았으나 허사였다(1절). 마치 살아계신 하나님을 애타게 찾던 다윗과도 같이 그녀는 예전에 그와 나누곤 했던 교제가 다시 이루어지길 원하였다. 그녀는 그를 찾았지만 아무 기미도 발견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찾았다. 그녀는 열심히 부족했던 것이다.

(2) 그녀는 사방으로 그를 찾아 다녔지만 그것도 허사였다(2절). 그럼에도 그녀는 낙심하지 않는다. “이제 일어나야겠다. 사랑하는 이를 여기서 찾을 수 없다면 그냥 여기에 누워 있지는 않겠다. 이제 지체없이 일어나서 그가 내게서 더 멀리가지 않도록 즉시 그를 찾아 나서야겠다.” 그리스도를 찾는 자들은 환난이 닥친다고해서 놀라서는 안 된다. 내가 일어나서 성중으로 돌아다니며. “거룩한 성의 거리에서, 큰 길에서 그를 찾아다니겠다.” 왜냐하면 그녀는 눈에 띄지 않는 샛길에서는 그를 발견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복음 교회의 상징인 예루살렘 성중에서, 거룩한 의식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찾아야 한다. 그녀는 선한 목적으로 “내가 일어나리라”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내가..찾으나 만나지 못하였구나. 이 안타까운 호소는 1절과 2절에서 반복됨으로써 상당히 강조되고 있다.

(3) 그녀는 ‘행순하는 자들’에게 그에 관해 묻는다(3절). 행순하는 자들은 밤중에 성중을 돌아다니며 치안을 유지하는 자들이다. 그녀는 지나가다가 그들은 만나 그들이 자기의 사랑하는 이에 관한 소식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은혜를 입은 영혼은 그리스도를 찾는 데에서 큰 기쁨을 느낀다.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많은 기도를 드리며 규례를 지켜야 하되 이 모든 것을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는 마음가짐으로 실천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본 사람들만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보도록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4) 그녀는 마침내 그를 만나게 되었다(4절). 그녀는 행순하는 자들이 그에 관해 아무 소식도 못 주자 곧 그들을 떠났다. 그러나 행순하던 자들과 헤어지자마자 여지껏 찾아다니던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찾는 자들은 결국에는 그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를 만날 즈음에는 아마 그를 만나지 못하지나 않을까 하여 거의 좌절 상태에 빠져 있을 것이다(참조. 시 42:7,8;77:9,10;사 54:7,8).

목사님을 위한 주일예배 대표기도문

(5) 그를 만나자 그녀는 다시는 그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전에 만나려고 그토록 애썼던 그를 놓치게 될까봐 걱정을 한다. 그리스도를 믿음과 사랑의 팔로서 굳게 잡은 자들은 그를 결코 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과 함께 지내실 것이다.

(6) 그녀는 그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시키려고 애쓴다. “나는 그를 내 어머니의 집으로 이끌어 모든 친척들, 곧 내가 귀히 여기는 모든 이들과 사귈 수 있도록 하였노라.” 우리는 그리스도를 어디서 만나든지 그를 우리 집으로, 특별히 우리 마음으로 모셔들여야 할 것이다. 교회는 우리의 어머니이므로 우리는 그것의 유익에 관심을 기울여서 교회가 그리스도께 나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7) 그녀는 그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도록 배려하였다(5절). 그녀는 전에 한번 했었던 부탁을 다시 한다. 예루살렘 여자들아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우리는 모든 악한 것들과 소란스러움을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이는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엡 4:30,31).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교회를 훼방하거나 성도들의 마음을 동요케 하지 못하도록 하신 경고의 말씀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Ⅱ. 예루살렘의 여자들이 그녀를 부러워함 3:6

이 구절은 조용히 하도록 부탁받은 예루살렘 여자들이 하는 말이다(5절). 그들은 그녀의 얼굴이 거무스름하다고 해서 그녀를 흘겨 보았었지만(1:6) 이제는 그녀를 경모하여 매우 존경하는 어조로 이야기한다. 누구인고. ‘거친 들에서 오는 그녀가’ 그렇게 아름다울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이 말은 40년간의 광야 생활 뒤에 그곳을 벗어나 약속의 땅을 소유하게 되었던 유대 교회에 적용시킬 수 있다. 발람은 서서 그들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찬미하였다.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노라. 야곱이여 네 장막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민 23:9;24:5).

또한 이 말은 은혜를 입었던 영혼이 버림받아 낙담하고 있는 상태에서 다시 회복되는 것에 적용시킬 수도 있다. 그녀는 연기 기둥, 즉 제단에서 분향하여 피어오르는 연기와도 같이 메마르고 거친 들에서부터 올라온다. 이것은 영혼 속에 있는 경건하고 헌신적인 사랑의 불을 암시한다. 그리스도께서 마음 가운데 다시 돌아오시면 헌신하는 마음이 다시 살아나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이 하나님과 가지는 교제는 거친 들에서 올라올 때 가장 활발해진다. 그녀는 ‘몰약과 유향으로 향기롭게’ 하고 있다. 즉 그녀는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로 충만해져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향기로운 향료나 거룩한 향과도 같다. “누구인고?” 이 얼마나 길이 기억될 만한 은혜인가. 그녀가 자신의 몸을 향기롭게 한 은혜와 위로는 본문에 ‘장사의 여러 가지 향품’이라고 불리고 있다. 왜냐하면 그 은혜와 위로는 복된 상인이신 우리 주님 예수께서 비싼 값에 사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긴 여행을 하시고 우리를 위해 은혜와 위로를 사시려고 자신의 피를 흘리시는 비싼 대가를 치루셨던 것이다.

Ⅲ. 교회가 그리스도를 솔로몬에 빗대어 칭송함 3:7-11

예루살렘의 여자들은 그녀를 둘러서서 찬미와 칭송을 보낸다. 그러나 그녀는 모든 영광을 그리스도께 돌리며 그들로 하여금 자기에게서 눈을 돌려 그를 바라보게 한다. 본문에 세 번이나 솔로몬으로 불리워지는 분은 곧 그리스도이신데 그는 솔로몬보다 위대하시나 솔로몬은 지혜와 특히 성전을 지은 일로 인하여 그에 대한 훌륭한 예표가 된 것이다. 그녀는 세 가지 사실을 찬미한다.

(1) 그의 침대의 안전함(7절) : 이는 솔로몬의 연이라. 그것은 매우 화려하고 훌륭한 것이었다. 비록 그리스도께서는 머리 둘 곳이 없었지만 왜냐하면 그의 침대는 솔로몬의 것보다 훌륭한 것인 교회가 바로 그의 침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 대해 “그곳은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하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성도들의 마음이 또한 그의 침대이다. 왜냐하면 그가 밤새도록 그들의 마음속에 누우시기 때문이다(엡 3:17).

그녀는 침대를 옹위한 근위대를 들어 그것을 다시 찬미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하는 자들은 편히 거할 뿐만 아니라(아직 큰 위험에 빠져있는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거한다) 안전하게 거한다. 이 침대는 잘 무장된 용사 60명이 마치 근위병처럼 옹위하였다. 다 칼을 잡고. 그들은 다들 칼을 잘 쓸 수 있는 자들이다.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그들은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즉 그들은 ‘각기 허리에 칼을 차고’ 첫 경보가 울리는 순간 뺄 수 있도록 칼에 손을 얹어놓고 있는데 이는 신부가 ‘밤의 두려움을 인하여’ 위험한 일이 발생하지나 않을까 하고 염려하기 때문이었다. 이 근위병들은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하여 배치한 것으로 이로써 그녀는 악의 공포로부터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믿는 자들의 마음이 암울한 것은 악의 공포에 눌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아버지의 특별하신 보호 아래 계셨다. 즉 그는 휘하에 천군 천사를 거느리고 계셨던 것이다. 교회는 잘 보호받고 있다. 다시 말해서 교회를 대적하는 무리보다도 교회와 함께 하는 무리가 훨씬 많은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속성은 성도들의 안전을 위해 약속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어거하시는 분안에 있는 성도들을 지키신다(빌 4:7). 이 세상에 있는 어둠의 권세가 우리를 위험에 빠지게 하지만 빛의 전신갑주를 입고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안전하다.

(2) 그의 연의 휘황 찬란함(9,10절) : 이 연은 솔로몬 자신이 고안하여 만든 것으로서 재료는 은, 금, 백향목, 자주색 물감 등 매우 값진 것들이었다. 어떤 학자들은 이 연(chariot, 이 단어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을 통해 그리스도의 인성을 이해한다. 즉 그의 인성은 마치 출입이 자유로운 이 연과도 같이, 그 안에 신성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솜씨였다. 구조도 매우 훌륭하였거니와 그것의 근저에 깔려 있는 것은, 사랑 곧 인간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었다. 다른 학자들은 그것이 영원 무궁한 복음을 묘사하는 것으로 본다.

즉 그들은 마치 활짝 열린 연과 같은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인간들에게 나타나신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 기둥은 은이요. 즉 여호와의 말씀은 ‘단련한 은’과 같다(시 12:6). 그 연에는 왕권을 의미하는 자주색 휘장이 드리워져 있다. 그것을 장식한 것들은 온통 그리스도의 보혈로 물들어 있다. 그러나 그것의 영화로움을 완전케 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그 안에는 예루살렘 여자들의 사랑, 곧 거룩한 사랑이 안감으로 입혀져 있다. 은은 백향목보다 좋으며 금은 은보다 좋으나 사랑은 금보다도 좋으며 어떤 것보다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맨 마지막에 입혀지게 되는데 이는 어떤 것도 사랑보다 좋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복음이야말로 전적인 사랑이다.

에베소서 1장 강해설교말씀 성령으로 인침 받은 자

(3) 그가 매우 화려한 모습으로 왕과 같이 나타날 때의 영화로움(11절) : 시온의 여자들아 나와서 솔로몬 왕을 보라.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복음 안에서 나타나신다. 우리들도 각자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무리 가운데 참여하도록 하자. 영광 중에 계신 그리스도를 기쁨으로 바라보자. 한눈 팔지 말고 믿음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가 대관식날 머리에 쓰신 보석으로 꾸민 금 면류관이든 그의 혼인식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그의 어머니가 만든 화관, 곧 꽃과 잎사귀를 장식띠로 묶은 면류관이든, 바로 그 면류관에 주목하자.

이것은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께 적용시켜 볼 수 있다. 와서 아버지께서 거룩한 시온산에서 임금으로 에우시고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선포하시며 내리신 면류관을 쓰고 계신 임금 예수를 보라. 어떤 학자들은 그것을 가시관에 적용시키기도 한다. 그 가시관은 그의 어머니라 할 수 있는 유대 교회가 그를 십자가에 못박던 날 씌웠던 것인데, 그가 죽으신 그 날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사'(엡 5:25) 교회와 혼인하신 날이었다. 면류관은 특히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교회, 곧 그의 어머니에게서, 그리고 모든 참된 성도들에게서 받으실 영광을 의미하는 것 같다.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그와 영원한 언약을 맺는 그 때에 그를 마음속에 임금으로 모시게 되는 것이다. 회개하기 전에 그들은 자신들이 왕위에 앉았으나 회개하는 순간 그들은 그리스도를 임금으로 삼고 이후에 계속 그를 섬기는 것이다. 그 날은 바로 혼인날이다. 그날에 그리스도께서는 인자와 자비로써 영원히 그들과 정혼하시는 것이다. 그날은 그리스도의 마음이 기쁜 날이다. 그날에 그는 자기 백성들이 자기에게 돌리는 영광으로 인하여 기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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