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 4장 설교문은 신랑인 솔로몬이 신부인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아가서를 통해서 우리는 신랑이신 예수님을 생각할 수 있다. 신랑인 예수님은 나를 신부로 맞이하여 영원한 천국에 들어간다.
Ⅰ. 신부의 아름다움에 대한 칭송〔1〕 4:1-7
(1) 본문에는 교회의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와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변모하여 거룩한 아름다움이 충만한 은혜로운 심령에 대한 묘사가 자세히 나타난다. 그리스도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그리스도께서도 존중히 여기실 것이다(삼상 2:30).
1) 그는 그녀를 치켜세우지는 않지만 절망 상태에 빠진 그녀에게 용기를 준다. 그녀는 그와 정혼하였으며, 따라서 그것이 그녀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2) 본문에는 교회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기 위해 매움 밝은 이미자와 강렬한 명암, 그리고 뚜렷한 비유가 사용되고 있다. 각 일곱 항목은 구체적으로 설명되고 있는데, 그 하나 하나가 완벽하다. 왜냐하면 교회는 보좌 앞의 일곱 영을 통해 다양한 은사로 풍족해지기 때문이다(계 1:5;고전 1:5,7).
① 그녀의 눈 : 아름다운 눈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해준다. “내 눈은 맑고 순결하며 종종 하늘을 쳐다보는 비둘기 눈과 같구나.” 지혜와 지식은 새 사람에게는 두 눈과 같다. 그 지혜와 지식의 눈은 정결해야 하나, 우리 자신에 비해 너무 높은 것들을 바라보는데 쓰여서는 안 된다. 우리의 목적과 뜻이 진실하고 순수할 때 비로소 우리의 눈은 비둘기같이 되는 것이다. 비둘기 눈은 그 머리털 속에 가리워져 있으므로 그 눈으로는 완전히 볼 수 없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한 우리는 단지 일부밖에 알지 못한다.
② 그녀의 머리털 : 이 머리털은 ‘무리 염소’에 비유되었다. 염소들이 산꼭대기에 있을 때는 하얗게 보여 마치 아름다운 머리털과 같다 혹자는 이 머리털을 신자의 언행으로 해석한다. 신자의 언행은 합당하고 점잖으며 마음의 경건함에 어울리는 것이어야 한다.
③ 그녀의 이(2절) : 목회자들은 교회의 이 와 같다. 즉 그들은 유모처럼, 그리스도의 어린 아이들에게 음식을 씹어서 먹여주는 것이다. 이들은 본문에서 ‘양’에 비유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과 목회자들을 ‘양떼’로 부르셨다. 본 구절은 ‘목욕장에서 나온 양’처럼 한결같이 고르고 희며 청결한 이에 대한 찬미이다.
④ 그녀의 입술 : 입술은 ‘홍색 실’에 비유되고 있다(3절). 창백한 입술이 무기력하고 나약함을 나타내듯이 붉은 입술은 건강함을 나타내며 또한 보기에도 좋다. 우리가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구원받기 위하여 입으로 신앙을 고백하면 입술과 입은 홍색 실과 같이 된다 우리의 모든 언행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피로 씻겨져 홍색 실처럼 물들여져야 한다. 바로 그때에 우리의 언행이 하나님께 열납되어지는 것이다.
⑤ 그녀의 뺨 : 뺨 또는 관자놀이는 ‘석류 한쪽’에 비유되고 있다. 마치 사람이 얼굴을 붉힐때처럼, 석류는 돌로 자르면 그 안에 수많은 맥과 반점들이 얽혀 있다. 죄를 기억하고 우리에게 내려진 영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음을 깨달아 얼굴이 붉어지는 겸손과 수줍음은 그리스도의 눈에 우리를 아름답게 보이도록 할 것이다.
⑥ 그녀의 목 : 이 목은 본문에서 ‘다윗의 망대’에 비유되고 있다(4절). 이것은 몸이 목을 통해 머리와 하나가 되듯이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있게 하는 믿음의 은혜에 일반적으로 적용된다. 이 목은 다윗의 망대와 같다. 즉 무기들이 그 망대에서 무기들을 제공받듯이, 그것이 우리에게 전쟁 무기, 곧 둥근 방패와 방패를 제공받는다. 왜냐하면 믿음이 바로 우리의 방패이기 때문이다(엡 16:6). 믿음을 가진 자들은 결코 방패가 부족하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마치 방패처럼 그의 은총으로 그들을 감싸실 것이기 때문이다.
⑦ 그녀의 두 유방 : 이것은 ‘쌍태 노루 새끼’ 같다(5절). 교회의 유방은 위로를 주는 유방이다(사 66:11). 어떤 학자들은 이 두 유방을 두개의 언약 곧 구약과 신약에 적용시키며 다른 학자들은 은혜의 계약에 인치는 두 성례전에 적용시킨다. 또 다른 학자들은 그것을 목회자들에 적용시키는데, 이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영적 유모이며, 그들이 말씀으로 자랄 수 있도록 말씀의 순전한 젖을 주는 자들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이 목회자들을 백합화 가운데서 먹이신다(2:16).
(2) 이어서 신랑은 ‘몰약 산’으로 들어가(6절) 거기서 거처할 결심을 한다. ‘몰약 산’은 성전이 세워진 모리아 산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성전에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하여 매일 향이 피워졌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대표자격인 제자들을 떠나시면서 하신 약속이 이에 대한 답변이 된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하나님의 규례가 충실히 집행되는 곳에 그리스도께서 계실 것이다. (어떤 학자들이 생각하듯이) 거룩한 산(Holy Hill)이 여기서는 쓰라린 ‘몰약 산’과 향기로운 ‘유향의 작은 산’으로 불리우고 있다. 즉 그 거룩한 산에서 우리는 슬픔과 기쁨을 함께 맛보는 것이다. 회개는 쓰고도 달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는 유향만 있을 것이요, 몰약은 전혀 없을 것이다.
(3) 그는 반복해서 신부의 아름다움을 칭송한다(7절).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그는 그녀의 각 부분 하나 하나가 모두 매우 훌륭하다고 단언한다. “너는 흠잡을 데가 없구나. 너는 하나 하나가 모두 아름답구나. 너는 각 지체가 완전히 성결하구나.”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즉 얼굴과 이름만 새것이 아니라 사람과 성품도 새로워질 것이다.
Ⅱ. 신부의 아름다움에 대한 칭송〔2〕 4:8-14
본문에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에게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시는 말씀이 계속 된다.
(1) 그는 그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여 그 사랑을 그녀에게 확신시키고 그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북돋우기 위해 애정이 넘치는 이름과 명칭으로 그녀를 부른다. 그는 그녀를 ‘나의 신부'(8,11절)라고 거듭해서 부르며, ‘나의 누이'(9,10,12절)라고 세 번이나 반복해서 부른다. 그녀가 그의 ‘신부’로 불리우는 것은 ‘그의 혼인날’전이 아니라 그 후에 언급된다(3:11).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곧 그리스도와 모든 참된 신자 각각의 사이에는 혼인계약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교회를 자신의 ‘신부’라고 일컬으신다. 인간들 사이의 어떠한 관계도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며, 또 이 모든 것은 영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에도 부족하므로 그는 그녀를 ‘나의 누이, 나의 신부’라는 두 가지 관계로 인정한다. 그가 그녀를 ‘누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육신을 입으심으로써 우리의 성품을 취하셨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2) 그는 그녀가 그의 정숙한 신부로서 자신을 잘 따라오도록 그녀를 인자하게 부른다.
1)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모든 사람들은 그에 대한 경건한 순종심과 복종으로 그와 함께 가야 한다. 이것은 그가 매일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것이다. 나의 신부야 너는…나와 함께 하고(8절). “아버지 하나님께로 나와 함께 가자. 나와 함께 위로, 하늘 나라로 가자.”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굴과…내려다 보아라. 위에서 언급된 산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① 이 산들은 외관상 기쁨이 넘치는 곳으로 생각할 수 있다. 레바논은 신명기 3:25에서 ‘아름다운 산’으로 불리우고 있다. 우리는 성경에서 ‘헐몬의 상쾌한 이슬'(시 133:3)과 ‘헐몬의 즐거움'(시 89:12)이라는 말을 찾아 볼 수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부로 하여금 세상에서 벗어나고 모든 즐거움에 무관심하도록 하는 그의 부르심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들의 꼭대기로 벗어 나와 그 위에서 살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하늘나라와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비스가와 마찬가지로 요단 저편에 있는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그들은 가나안 땅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보다 좋은 나라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② 이 산들은 참으로 쾌적한 곳이나 산중에는 ‘사자굴’이 있다. 또한 그 산들은 비록 영화롭고 존귀하지만 ‘표범 산’ 곧 먹이를 노리는 산들이다(시 76:4). 이 산들의 꼭대기에는 수많은 위험한 유혹들이 있다. “우상 숭배자들의 신전과 사악한 무리들로부터 떠나 나와 함께 하자. 그들 가운데서 벗어나라. 그러면 네가 구별되리라. 사자와 표범과 같은 너의 소욕에서 벗어나라.”
2) 그가 그녀를 인자하게 부르는 것은 하나의 약속으로 여겨질 수 있다. “너는 레바논으로부터, 그리고 사자 굴에서부터 나와 함께 갈 것이니라.” 즉 “많은 사람들이 사방에서 즉 북으로는 레바논, 서로는 아마나, 동으로는 헤르몬, 남으로는 스닐에서,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앉기 위해 도처에서, 교회의 살아있는 신자들로서 나에게 돌아올 것이라”(마 8:11;참조. 사 49:11,12).
(3)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교회안에서 큰 기쁨을 누리신다.
1) 본문보다 더 열정적인 사랑에 대한 표현은 결코 없을 것이다. 여기서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드러내신다. 그렇지만 그의 사랑을 나타내는 위대한 증거 곧 교회를 위해 죽으신 사건은 본문에 나타난 모든 사랑의 표현보다 훨씬 뛰어나다. 매우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신부는 큰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다.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이 말은 본문에만 사용되었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이,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이 형언할 수 없는 것임을 보여 준다. “네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구나.” 즉 “네가 내 마음을 황홀하게 하였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그 눈은 1절에서 칭송되고 있듯이 비둘기 눈같이 맑고 순결한 눈이다. 그녀가 그에게서 받은 장신구는 그에 대한 그녀의 순종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받은 것은 바로 그녀의 ‘목의 구슬 한 꿰미’ 곧 그녀의 영혼을 풍요롭게 해주는 은총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묶여 있는 우리 목의 줄을 떨어버릴 때(사 52:2), 우리는 금 구슬 꿰미와 같은 사랑의 끈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매이게 되어 우리의 목이 그의 즐겁고 편한 멍에 아래 이끌리게 된다.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10절). 그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신자가 되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어떠한 것도 이처럼 우리를 그리스도께 사랑 받게 하는 것은 없다. 기름, 곧 그녀가 바른 향수는 성령의 은사와 은총인 그녀의 선한 행실로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재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빌 4:18).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순종은 제사나 분향보다 그리스도를 더욱 기쁘시게 한다 그녀의 ‘의복의 향기’ 또한 그녀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그와의 관계를 뚜렷이 알리는 고백으로서 ‘레바논의 향기’와도 같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말도 감미롭다.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11절).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꿀과 꿀송이보다 더 달다면'(시 19:10), 우리가 기도와 찬미를 통해 그에게 드리는 말씀도 역시 그를 기쁘시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달콤하고 건강에 유익한 자양분, 곧 어린 아이에게는 젖이, 성장한 자들에게는 꿀이 들어 있다.
2) 교회가 ‘동산’으로 적절히 비유되고 있다. 그 동산에는, 흔히 그렇듯이 ‘샘’이 있다(12-14절). 이 동산은 ‘잠근 동산’ 곧 속세로부터 떨어져 있는 낙원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그것을 따로 떼어 두셨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몫이다. 그것은 비밀을 위해 잠겨 있다. 이처럼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숨겨 두신 동산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그의 동산을 거니신다. 그것은 안전하게 잠겨 있다. 동산 주위에는 그것을 보호하기 위한 장벽이 쳐져 있다. 이로써 모든 어두움의 권세가 그것을 찾아낼 수 없는 것이다.
그 안에는 우물과 샘이 있다. 그러나 우물은 덮혀 있고 샘은 봉해져 있는데 이는 어느 누구도 흐리게 하거나 더럽히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신자들의 영혼은 ‘잠근 동산’과 같다. 그들 가운데의 은총은 사람의 숨겨진 심령 속에 있는 ‘덮은 우물’과도 같다. 그리스도께서 물을 주시는 우물은 생수의 우물이다(요 4:14;7:38). 구약 교회는 의식법이라는 간막이 벽에 의해 잠겨진 동산이다. 그 당시 성경은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었다. 그것은 한 민족에게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가로막았던 장벽은 사라졌고 복음이 온 민족에게 전파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헬라인이나 유대인이 다를게 없게 되었다.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13절).
14절에는 각종 아름다운 과수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곧 각종 유향목과 모든 귀한 향품 등이다. 이 동산에는 수많은 과수가 자라는데 이것들은 가장 좋은 품종들이다. 그 동산의 ‘귀한 향품’은 우리가 가장 좋은 꽃이라고 여기는 것들보다도 훨씬 더 귀중한 것이다. 교회 안의 성도들, 그리고 그 성도들 가운데의 은혜들은 이 ‘과수와 향품’에 아주 적합하게 비유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의의 나무는 여호와께서 심으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불변할 것이며 선한 목적을 위해 보존될 것이다. 반면 꽃들은 시들며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영화롭게 성숙한 은혜는 영원할 것이다.
Ⅲ. 신부의 기원 4:15,16
본문은 신부된 교회가, 그녀를 각종 아름다운 과수맺는 동산으로 표현한 신랑되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찬사로서 응답하는 말인 듯싶다.
(1) 그녀는 이 동산에 열매를 맺게 하신 그리스도 자신께 의지한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녀는 ‘동산의 샘’으로서 그에게 주의를 기울인다(15절). 그녀는 그가 없이는 무가치한 존재이므로, 자신이 결실을 맺는 것에 대해 모든 영광을 그에게 돌린다. 교회는 그리스도께 찬양을 보낸다. 또한 그에게 “나의 모든 우물은 당신 가운데 있나이다. 당신은 생수의 근원이 되시나이다”(렘 2:13)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동산된 자들은, 그들이 그의 충만함을 받으며 그들의 심령이 그로 말미암아 ‘물댄 동산’처럼 된다는 사실로써(렘 31:12), 그를 자신들의 샘으로 인정해야 한다.
(2) 그녀는 복된 성령이 감화하사, 이 동산을 향기롭게 해주시기를 간원한다(16절).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이것은 일반적으로 교회를 위한 기도이다. 이러한 기도로써 교회에 성령이 넘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기도는 오순절 성령이 부어짐으로 응답되었는데(행 2:1) 이때 성령은 ‘강한 바람’으로 임하셨다. 그러자 전에는 어눌하던 사도들이 거침없이 말하게 되었으며 ‘하나님 앞에 향기’가 되었다(고후 2:15). 성결케 된 영혼들은 동산, 곧 여호와를 위해 잠겨진 그의 동산과 같다. 심령 가운데의 은총들은 이 동산 가운데의 향품들과 같다. 심령에 역사하시는 복된 성령은 북풍과 남풍같은 존재이시다. 성령에게는 죄를 깨닫게 하는 북풍과 위로를 주는 남풍이 있다. 성령의 미풍이 은혜의 향품을 넘치게 만드는 것이다.
(3) 그녀는 동산이 할 수 있는 최상의 환대로 그리스도를 초대한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그가 그것들을 받으심으로써 내가 위로를 얻기를 원하노라.” 성도는, 그의 영혼이 사랑하는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오시지 않거나 동산의 실과를 조금도 맛보시기 않는다면, 자기의 동산 가운데서 아무런 즐거움도 누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