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편 오늘 성경말씀은 하나님이 세우신 메시아인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한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다. 구약에 예언된 그대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구속의 사역을 완성하셨다. 메시아인 예수님은 이 세상을 통치하실 분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여 승천하고 이제는 재림하여 이 세상을 심판한다.
Ⅰ.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한 도전 2:1-6
우리는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왕국에 관한 매우 큰 싸움, 곧 그 왕국을 차지하기 위한 지옥과 천국의 싸움을 보게 된다. 싸움이 벌어지는 곳은 이 세상이다.
(1) 메시야와 그의 나라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 있게 된다(1-3절). 혹자는, 이 세상에 대하여 그렇게 큰 축복이 되는 메시야와 그의 나라가 널리 환영받고 기꺼이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떤 학파의 철학자들의 견해나 어떤 왕의 권력도 그리스도의 교리와 통치처럼 그토록 맹렬한 반대에 접한 적은 없었다. 군왕들과 백성, 궁궐과 나라가 때로는 각자의 이권에 따라 서로 대립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단합하였다. 그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고 그들의 이권을 조금도 약화시키려고 생각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땅의 왕들과 통치자들은 즉시 반기를 든다. 블레셋 사람들과 그 방백들, 사울과 그 신하들, 불만을 품고 있는 무리와 그들의 주모자들은 다윗이 면류관을 받으러 오는 것을 반대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헤롯과 빌라도,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와 그가 인간들에 대해 갖고 계시는 관심을 대적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였다(행 4:27). 그들은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여 싸운다. 즉 모든 종교에 대하여, 특히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대적하는 것이다. 우리의 구주 예수님은 여기에서 기름부음 받은 자, 혹은 메시야, 혹은 그리스도로 불리워지고 있는데 이는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음으로 왕이 되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 원수들의 행동은 가장 심술궂고 악의에 찬 대적이다. 그들은 격노하며 초조해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왕국이 세워지는 것 때문에 원통하여 이를 간다. 그것은 고의적이고 교활한 대적이다. 허사를 경영하는고. 즉 그들은 그리스도의 왕국의 세력이 일어나는 것을 억압할 수단을 강구한다. 그것은 단호하고 완고한 대적이다. 그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대적하려고 애쓴다. 그들은 연합하고 공모해서 대적한다. 그들은 서로 돕고, 격려하기 위해 의견을 나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메시야에 대해 그러한 생각을 하는 것이 그들 자신의 통치권을 지지하도록 도와줄 것처럼 만족해 할 것이다.
그들은 만일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가 세상에서 그들을 부하게 하고 크게 할 것이라면 이들을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들이 그들의 부패된 탐욕과 정욕을 억제하려 한다면 그들은 ‘이 사람이 우리의 왕됨을 원치 아니하나이다'(눅 19:14)라고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띠와 굴레를 갖고 계시다. 그러나 그것들은 올바른 이성에 합당한 인간의 굴레이며, 우리에게 진정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사랑의 띠이다. 어떻게 사람들이 단지 속박과 의무를 참을 수 없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종교를 반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그들이 지배를 받는 양심의 띠와 하나님의 계명의 결박을 산산이 부숴버릴 것이다. 본문에서 그들의 이러한 점에 관해 이야기된다(1절).
그들은 왜 이렇게 행하는가? 그들은 그러게 옳고 거룩하며 은혜로운 통치를 반대할 만한 충분한 이유를 전혀 보여 줄 수 없다. 또한 그들은 결코 그렇게 권세있는 나라를 대적하는 일에서 성공을 거두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그것은 허망한 일이다. 그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일을 저질렀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서 영광스럽고 성공적인 교회를 갖게 될 것이다. 그 교회가 반석 위에 세워질 것임으로 지옥문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2) 이 모든 위험한 적대 행위들은 강력한 승리를 통해 사라진다. 영원한 분이신 하나님께 있는 완전한 평안은 우리에게 마음의 모든 불안을 없애는 위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땅과 바다에서 동요하지만 그는 하늘에 앉아 계시사 심판을 위한 그의 보좌를 준비하신다.
1) 그리스도의 대적들의 공격은 쉽게 조롱거리가 된다. 하나님은 그들을 어리석은 무리로 보고 비웃으신다.
2) 저들은 공정하게 형벌받는다(5절). 하나님께서 그들을 무력한 자로 멸시하시더라도 그들에게 진노하시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대적들이 분노하지만 하나님을 괴롭힐 수는 없다. 그들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의 독생자의 나라를 세우시는 것은 그들에게 가장 큰 원통함이다.
3) 그들이 패배하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따라서 그들의 모든 꾀는 무모한 짓이 되어 버린다(6절).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시며, 하나님은 그를 그의 왕이라 칭하시기를 기뻐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임명하셨고 그에게 통치와 재판의 전권을 위임하셨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왕이시다. 왜냐하면 그는 아버지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이며 하나님이 그를 매우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이 자리에 앉는 영예를 스스로 취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자리로 부름받은 것이다. 이 영광의 자리로 부름받은 그는 확고하게 그 자리를 차지하셨다. “내가 그를 세워 왕노릇하게 하였노라.” 우리는 이 시를, 위대한 능력을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기쁨을 누리면서 거룩한 환희로 노래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에 나타나는 말씀을 확고히 믿으며 기도해야 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당신의 아들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
Ⅱ. 메시야에게 주어진 약속 2:7-9
본문에는 메시야께서 그의 나라를 위하여 친히 하신 말씀이 나타난다.
(1) 메시야 나라는 계율, 즉 아버지 하나님의 영원한 계율 위에 세워졌다. 그것은 갑자기 결정된 것이 아니며 실험적인 시도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지혜에서 나온 생각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그 어느 것도 변경될 수 없다.
(2) 이 왕에게 스스로 복종하도록 부름받고 명령받은 자들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그리고 이 왕이 자기들을 다스리지 못하도록 하려는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을 내버려두기 위하여 필요한 만큼 그 계율이 선포되었다. 그리스도는 여기에서 그의 나라에 대한 이중적인 자격을 갖게 되었다.
1) 유업에 의한 권리(7절) :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히브리서 1:5에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천사보다 더 뛰어난 이름을 갖고 계시지만 그는 그 이름을 유업으로 얻으신 것임을(4절) 증명하기 위하여 이 성경을 인용한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아버지와 동일한 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함, 무한한 지혜, 능력, 그리고 거룩함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그를 왕으로 맞이하여야 한다.
이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기’ 때문이다(요 3:35;5:20).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는 만물의 후사이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을 지으셨으므로, 또한 그로 말미암아 만물을 다스리실 것이다. 이러한 추정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영원한 지혜이며 영원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직후, 나라의 통치를 시작하셨다. 그때에 ‘모든 권능이 내게 주어졌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 사실을 의미한 것이다.
2) 계약에 의한 권리(8,9절). : 간단히 말해서 계약은 다음과 같다. 이들은 중재자의 직무를 맡아야 한다. 그리고 그 조건으로 그는 우주적인 왕권의 영예와 권능을 갖게 될 것이다. 아버지는 그 왕국의 절반 이상, 심지어 그 왕국 자체도 허락하실 것이다. 그는 유업으로 열방을 얻을 것이라고 본문에서 그에게 약속하셨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유업에 포함되었다. 복음이 처음 전파되었을 때 이방 세계의 많은 무리가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복음이 더 많이 전파되어야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다(계 11:15). 그 왕국은 승리를 거둘 것이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그들 가운데 네 나라를 반대하는 자들을) 깨뜨림이며(9절).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불신하고 계속하여 적의를 품었던 자들인 유대 민족이 로마의 무력에 의해 멸절되었을 때, 일부 성취되었다. 기독교가 자리잡히게 되었을 때, 이교도의 세력이 파괴되어 더욱 성취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반대하는 정사와 권세와 능력이 전멸될 때에야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고전 15:24;참조. 시 110:5,6).
이것을 노래하고 기도할 때에,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의로운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려야 하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증대되고 견고해져서 모든 반대자들을 물리치리라는 이 약속에서 위로를 얻어야 하며, 하나님께 그것을 탄원해야 한다.
Ⅲ. 세상 주관자들에게 주는 경고 2:10-12
메시야 왕국에 관한 이 복음 교리는 세상의 왕들과 관원들을 훈계하는 방식으로, 실제적으로 적용되어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대적하는 것이 무익하다는 것을 전해 듣는다. 따라서 그들은 지혜롭게 그리스도의 통치에 복종하여야 한다. 그들을 멸망시킬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은 그들을 멸망시키기를 기뻐하지 않으심을 보여주신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길로 이끌기 원하시기 때문이다(10절). 그들에게 말한 것은 모든 사람에게 말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훈계해 주고 있다.
(1)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편에 서야한다(11절). 이것은 종교의 큰 의무이다. 우리는 경외하는 마음을 갖고 모든 예배의 의식 속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해야 하지만, 여전히 거룩한 떨림을 갖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빌 2:12) 이뤄야 한다.
(2)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12절). 이것이 기독교의 큰 의무이다.
1) 이 목적에 주어진 명령 :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12절). 그리스도는 ‘너는 내 아들이라'(7절)고 선포된 분이기에 아들로 불리운다. 그는 영원한 세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 때문에 마땅히 우리로부터 숭배를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의무는 여기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되어있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 입맞춤은 유다가 그리스도께 입맞춘 것처럼 배반의 입맞춤이 아니라 믿음의 입맞춤이다. “애정과 신실한 사랑을 가지고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분과 우정의 약속을 맺으라. 그리고 그분을 너에게 매우 사랑스럽고 귀중한 분이 되게 하라. 무엇보다도 그를 사랑하라. 용서함을 받은 여인이 구분에게 한 것처럼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고 많이 사랑하라. 그리고 사랑의 표시로 그의 발에 입맞추라”(눅 7:38). 우리는 충성과 성실의 입맞춤으로 그분의 통치에 복종하고 그분의 멍에를 메야 한다.
2) 이 명령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이유.
①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거부한다면 분명히 파멸에 부딪칠 것이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왜냐하면 만일 너희가 그리하지 아니하면 위험에 부딪치기 때문이라. 그리 행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그가 노하시리라.”
②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께 자신을 내어드린다면 행복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신뢰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자기의 피난처와 보호자로 삼는 자는 진노의 날에 복이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낙심할 때 그들은 기쁨으로 그들의 머리를 들것이다.
이것을 노래하고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두려움으로 우리 마음을 채워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께 대한 즐거운 확신을 굳게 지켜야 한다. 그러게 할 때 우리는 그분의 중재하심 가운데서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