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학위 논문 중에서 교회 성장에서 평신도의 역할에 관한 연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교회 성장에 있어서 평신도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목회자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교회가 부흥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평신도에게 직무를 주어서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신하므로 교회가 건강해지고 평신도는 교회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기게 됩니다. 교회에서 평신도를 잘 활용하여 교회가 성장하고 하나님 나라 복음이 퍼져나가야 하겠습니다.
평신도에 관한 이해
본 장에서는 교회 조직제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원인 평신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성서적, 그리고 교회사적 고찰을 하겠다. 그것은 성서를 통해서 전통적인 평신도상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될 때 현대 교회에서의 평신도의 위치와 그 직무까지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1. 성서적 고찰
평신도에 관한 어의는 영어로 “라이티”(Laity)이다. 이 라이티는 희랍어의 “라이코스”(Laikos), 라틴어의 “라이쿠스”(Laicus)에서 유래되었다. 그보다 더 근원적인 어원은 구약에 나타난 “선택된 백성”(chosen people) 즉 “라오스”(Laos)에서 온 것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특별한 관계를 표현한 말로서 “라오스”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이방인과 구별하여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을 뜻하는 것이었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행위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타협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총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신명기 14장 2절에 의하면 “너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의 기업에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고 말씀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총에 의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들의 신으로 믿게 되었고, 그 분께서 자기들을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보다 우선적으로 사랑해 주고 보호해 준다고 생각하였다. 곧 하나님은 자기들의 하나님이요, 자기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구약에서 “라오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자신의 백성으로 삼은 것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이러한 사상이 변천되었다. 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스라엘 외의 사람도 택하셔서 그에게 속한 자녀가 되게 하고 또한 자신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선민사상의 변천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이제 새로운 종류의 사람들을 의미하게 되었다. 바울 사도에 의하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여자나 남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고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유업을 이을 자’라고 했다. 하나님의 백성의 자격이 구약에는 아브라함의 혈육과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에 있었으나 신약의 오순절 성령의 역사 후부터는 그 표준이 예수께서 속하느냐 속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이방인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즉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부름 받은 자”라는 것이다. 성서는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는, 전체가 그리스도의 지체이므로 부름받은 자는 똑같은 책임과 소명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 책임과 소명은 하나님의 부르신 목적에 의하여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부르신 목적에 대하여서는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왕같은 제사장으로 삼기 위함이다. 제사장의 기능은 하나님을 대변하여 세상에 그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과 하나님 앞에서 세상을 변호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평신도들은 세상 안에서 이 기능을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평신도들이 이 기능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은총을 주시기도 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삼기 위함이다. 평신도를 불러모아서 교회에 모이게 하는 목적에 대해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게 함이라” 고 말한다.
평신도들은 선교적 사명을 위해 부름 받고 파견된 사절이다. 이런 의미에서 평신도는 하나의 거룩한 사도적인 선민이다. 셋째, 이들로 하여금 인간 역사에 동참케 하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평신도가 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의 뜻을 준행하기 위해서이며 여기서는 하나님께 봉사하는 생애의 절박한 초청이 첨부된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성서는 평신도를 사명을 받아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 앞과 모든 사람들 앞에 진정 신앙과 헌신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2. 교회사적 고찰
(1) 초대교회 시대에서의 평신도
유대교적 입장에서 말한다면 그리스도교는 평신도 운동으로 일어난 종교이다. 초대교회의 발달과정을 보면 세례 요한을 제외하고는 유대교의 제사장 계급 출신의 지도적 참여는 거의 없었다. 예수는 혈통적으로 제사장 계통이 아니었으며, 그의 제자들도 아니었다. 그런 뜻에서 초대교회는 교역자와 평신도의 구별 없이 출발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도행전 2장의 기록을 보면 그것은 더욱 명백한 사실이다. 2장의 내용을 간추려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 승천 후, 그를 다르던 추종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한다. 이때 하늘에서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였고 그들은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변화를 받아 그리스도의 증거자가 된다. 그들의 열심있는 전도로 인하여 자연히 예수를 믿게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고, 그들은 종교적 집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처럼 교회의 기원은 평신도들의 모임으로 출발했으며, 초대교인들의 열심있는 전도로 말미암아 교회 수는 많아지게 되었다. 이러한 교회가 특정한 문화 속에서 존재하게 됨에 따라 교회는 일정한 조직체를 가지게 되었다. 하나의 조직체로 형성된 교회는 직무 분담이 있어야 했으며, 그 직무에 따라 직책이 정해지게 되었다. 그 직무 분담에 대해서는 바울 사도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와 사도행전, 디모데전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사도, 전도자, 목사, 교사, 그리고 집사와 장로가 그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이러한 직책이 나뉘어 있다고 해서 교회 조직체 안에서의 신분적 차이가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베드로 사도의 명백한 선언대로 그들은 다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별없이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소유된 백성이다.
그러나 3세기 전반에 걸친 역사적 조건이 평신도간의 상하적 구분이 없었던 교회의 구조를 유지하기 어렵도록 만들었다. 당시 이단 사상의 도전과 박해는 정통적인 신앙의 유지 및 개체 교회의 존속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교회는 자연히 정통신앙의 수호와 개체 교회의 존속을 위해 장로나 감독의 위치를 중요시하게 되었다. 유독 그들의 위치를 중요시하게 된 이유는 그들이 다른 신자들보다 지적으로 앞섰으므로 신학연구를 하기에 용이했고 신자를 지도하기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장로와 감독들은 이러한 여건에 편승하여 그 권위가 날로 굳어져 갔다. 크래머(H. Kraemer) 박사는 그들의 권위행사에 대하여 말하기를 “영적인 인간으로서의 신적인 훈련상의 그리고 교리상의 권리를 행사하였으며, 또 그 집단성에서 모든 사물을 심판할 수 있었으나 그들 자신은 아무에게도 심판되지 아니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3세기 전까지는 교회 안에 여러 직책이 있었으나 그 신분적 차이는 없었다. 그러나 3세기 이후에 이르러 감독과 장로 부류인 “클레로스”(Kleros)와 일반 신도의 부류인 “라오스”(Laos)의 구별이 명백해졌다.
(2) 중세교회시대에서의 평신도
중세시대에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이 현저하게 나타났다. 초대교회 말기 현상의 “클레로스(Kleros)”와 “라오스(Laos)”의 구별이 있는 상태로 중세시대로 넘어 오면서 그 구분은 상하적인 것이 되었다. 로마 천주교회의 교회에서도 교회에는 두 가지 종류의 신자가 있다고 가르쳤다. 수도사를 포함한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다. 성직자는 초자연적인 법에 따라 성역에 속한 사람이며, 언제나 성례전의 집행과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반면에 평신도는 가르침과 성례전을 받기만 하는 사람들로 규정하였다.
평신도는 자연법에 따라 속역(俗域)에 속하는 사람들로서 성직자와는 달리 그 운명과 존재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로 구분이 되었다. 한마디로 중세시대의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은 성직자는 우월한 계급이요, 평신도는 열등한 계급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이토록 성직자들의 권위와 우월성을 강조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구원의 은총을 계속 세상에 전달하는 권한을 로마 천주교회가 가졌고, 그 은총을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직책이 바로 성직자들의 직책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3)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의 평신도
중세 로마교회 안에서의 고정화되었던 성직자와 평신도의 이론적 구분은 루터에 의해서 전적으로 부인되었다. 그는 “독일 크리스챤 귀족에게 보내는 글”에서 주장하기를 “사제나 주교나 교황이나 모두는 다른 기독교인보다 나을 것이 없고 다를 것도 없다. 오직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전을 관리하는 직책상의 임무만 가졌다는 것 밖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루터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상하구분은 비성서적인 것으로 보고 성서에 입각해서 그 제도를 반대했다.
그리하여 루터는 믿음을 통하여 세례로 모두가 하나님 앞에 제사장직을 가진다는 만인제사장직을 내세웠던 것이다. 그것은 성직자와 평신도의 동등권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직자의 무용론을 말한 것은 아니다. 그는 그 동안 교회에서 무시되어온 평신도의 위치를 회복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만인제사장이란 사상도 모든 교회에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크래머(H. Kraemer) 박사는 그 이유를 네 가지로 들어서 설명한다.
첫째, 실제에 있어서 세례를 받은 사람이 모두가 반드시 진정한 크리스챤이 아니라는 것. 둘째, 오랫동안 수동적이던 평신도들이 갑자기 제 기능을 발휘키 어려웠고, 셋째, 종교개혁이 이론적으로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간격을 제지하였지만 교회에서 설교의 기능이 강화됨으로 설교자가 비례적으로 높아졌고, 넷째, 사회가 종교개혁 때 보다 훨씬 다원화하여 교회 일은 성직자가 교회 밖의 세상일은 평신도들의 분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종교개혁일 후 얼마동안은 평신도의 활동이 활발하였으나 또 다시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두 가지 종류의 교인이 생기게 되었다. 근대에 이르러 미국의 특수 사정에 의해서 평신도의 역할이 강화되고 새로 인식되었으나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을 없게 할 수는 없었다.
3. 평신도의 위치
성서의 원리에 있어서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이 없다. 초대교회는 그들 사이의 차별 없이 다같이 교회 발전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교회의 조직과 질서를 위하여 신도를 지도할 책임을 맡은 성직자와 그 외의 여러 직책을 맡은 평신도를 구분하였다. 즉 성직자는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일과 성례전을 집행하는 일을 맡은 사도직 계승자이며 평신도는 그의 지도를 받는 자들이다. 이들의 구분은 제도상으로나 의미상으로나 구분될 수 없는 불가침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중세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위치를 새롭게 이해하려 하였다. 성직자와 평신도는 직능의 차이일 뿐 같은 것으로 보려고 하는 시도가 그것이다. 성직자는 말씀과 성례를 통하여 평신도를 준비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사역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하게 하며 평신도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은총을 가지고 부름에 따라 사역에 역사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질적인 그리스도의 직무의 수행자는 평신도들이다. 평신도는 교회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