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예수님 말씀] 마태복음 족보에 들어간 5명 여인(마1:3, 5-6, 16)

마태복음 예수님 말씀에서 히브리어 원어성경 말씀은 마태복음 족보에 들어간 5명의 여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족보에는 원래 남자의 이름만 올라갔는데 마태복음 족보에는 여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들은 모두가 성경에서 부정했던 여인들입니다. 다말과 기생 라합과 룻과 밧세바와 마리아입니다. 우리는 족보에 여자의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의 신부를 의미합니다. 우리도 주님의 신부입니다. 부정한 자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갔습니다. 우리도 부정했던 자들인데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축복이 임했습니다.

마태복음 족보에 들어간 5명의 여인(마1:3, 5-6, 16)

구약의 말라기 선지자가 복음을 전파하고 400년의 기간이 흐르게 됩니다. 이 시대는 격동의 시대요, 어둠의 시대였습니다. 영적 암흑기에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살게 됩니다.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세상에도 빛이 없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이때 빛으로 나타나신 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구약의 말라기서가 마지막 예수님을 증거 하는 책으로 끝이 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으로 새롭게 신약이 시작됩니다.

마태가 예수님을 왕으로 소개하면서 시작하는데 바로 족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럼 마태는 왜 시작을 족보로 할까요? 왕은 확실한 족보가 있어야 합니다. 족보가 없으면 혈통이 없기 때문에 인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왕의 족보를 확실히 따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족보에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모두 42명의 족보를 말하고 있는데 그중에 5명의 여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마태는 기록할 때 왜 다섯 명의 여자들을 족보에 넣었을까요?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여자들의 공통점을 보면 예수그리스도의 대가 끊어지려고 할 때 다리 역할을 하던 여자들입니다. 이들은 이 시대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간 여인들을 통하여 이 시대 우리가 어떻게 신부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족보에 들어가지 않으면 우리는 진정한 신부가 되지 못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신랑 되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우다스 데 에겐네센 톤 파레스 카이 톤 자라 에크 테스 다마르 파레스 데 에겐네센 톤 헤스롬 헤스롬 데 에겐네센 톤 아람

(마 1: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예수님의 첫 번째 족보에 들어간 여인 중에 다말이라는 여자가 있습니다. 다말은 유다의 장자 엘의 부인이었습니다.

6절 바이카흐 예후다 이샤 리에르 베코로 우쉬마흐 타마르

7절 바예히 에르 베코르 예후다 라 비에네 아도나이 바이메테후 아도나이

(창 38:6-7)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유다가 자신의 첫째 아들을 위해 아내를 데려왔는데 그의 이름은 다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엘이 하나님께 어떤 죄를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엘을 죽였습니다. 다말은 아이도 없이 과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자신의 둘째 아들 오난을 주었습니다. 이때의 풍습에 수혼법이 있습니다. 형이 아이를 갖지 못하면 동생이 대를 이어주는 법입니다. 하지만 오난은 자신의 씨가 되지 않을 것을 알고 땅에 정자를 쏟아버렸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게 되어 오난도 죽게 됩니다. 마지막 남은 셀라는 아직 장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다는 다말을 자신의 친가로 보내게 됩니다. 셀라가 장성하기까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셀라가 장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말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이 시대는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하면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하여 수치를 당하고 놀림거리가 됩니다. 현재 다말은 아이를 낳지 못하고 있지만 이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남자들의 문제에 의해서 자신이 아이를 낳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말은 자신의 시아버지가 딤나에 양털을 깎으러 올라온다는 소문을 듣고 창녀처럼 변복을 하여 잠자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수치를 면하게 되었습니다. 생명을 잉태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보면 윤리, 도덕적으로 타락한 모습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유다지파에서 예수그리스도가 나오신다는 것을 예언하시고 성취하시기 위해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이미 부정한 여인입니다.

‘다말’ 히브리어(타마르 8559) 똑바로 세우다, 종려나무, 종려가지, 라는 뜻입니다. 종려나무는 유대 땅의 광야에서 자라납니다.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데 대추야자라고 합니다. 이 열매는 많이 열리기 때문에 다산의 축복을 상징하고 많은 자손을 번창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종려나무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나무는 뜨거운 날씨에도 잘 자라고 힘들고 어려운 역경을 딛고 일어서기 때문에 승리를 상징합니다.

로마시대에 디도장군에 의해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당하고 로마로 입성할 때에 디도를 위해 개선문을 만들어 주고 주화를 만들었는데 주화에 종려나무 밑에서 여인이 울고 있는 모습의 동전을 만들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었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종려나무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백성들이 흔들었던 가지입니다. 바로 승리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선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간 다말은 많은 자손을 낳고 죽음에서 승리하신 예수님을 만나 부정한 자가 거룩한 신부가 되어 영원한 구원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족보에 이름이 기록된 여인은 라합입니다.

살몬 데 에겐네센 톤 에크 테스 하카브 데 에겐네센 톤 오베드 에크 테스 루드 오베드 데 에겐네센 톤 이엣사이

(마 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라합은 여리고성에 살고 있었던 여인이었습니다. 창녀의 삶을 살면서 여리고 성에 들어가고 나가는 자들에게 몸을 파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고 인생에 소망도 없이 살았던 사람입니다. 여인의 몸으로 혼자 살아가는 고달픈 인생이었습니다. 하지만 라합에게는 신앙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이쉘라흐 예호쉬아 벤 눈 민 하쉬팀 쉐나임 아나쉼 미라길림 헤레쉬 레모르 리쿠 리우 에트 하아레츠 비에트 예리호 바옐리쿠 바야보우 베이트 이샤 조나 우쉬마흐 라하브 바이쉬키부 샤마

(수 2:1)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기생’ 히브리어(자나 2181) 더럽히다, 음탕하다, 간음하다, 매춘하다, 라는 뜻입니다. 라합은 자신의 몸을 팔아 인생을 살아가던 자입니다. 몸과 마음은 이미 무너졌지만 그의 정신만큼은 무너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정탐꾼을 숨겨준 사건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소문을 듣고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창녀였기 때문에 많은 남자들을 상대하다보니 소문이 빨랐을 것입니다. 라합은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줍니다. 그러면서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당신들이 여리고를 점령할 때에 우리 집을 멸망시키지 말라는 약속입니다. 약속의 증표로 빨간 줄을 내리라고 말하면서 정탐꾼들은 떠났습니다.

바토리뎀 바헤벨 비아드 하할론 키 베타흐 비키르 하호마 우바호마 히 요샤베트

(수 2:15) 라합이 그들을 창문에서 줄로 달아 내리니 그의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 위에 거주하였음이라

라합이 정탐꾼들을 줄을 이용하여 창문에서 달아 내리고 있습니다. 라합의 집이 성벽 위에 있어서 용이하게 줄을 내려 정탐꾼들을 성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도와준 것입니다.

‘줄로’ 히브리어(헤벨 2256) 괴로움, 산고를 겪다, 슬픔,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하발 2254) 단단히 감다, 휘감다, 묶다, 매다, 라는 뜻에서 왔습니다. 라합은 정탐꾼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줄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 줄은 지금까지 라합이 살아온 인생의 고통과 괴로움과 슬픔의 결정체인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줄입니다. 이 줄에 정탐꾼들을 단단히 휘감아 묶어서 내려주고 있습니다. 이 줄 때문에 라합은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정탐꾼들의 약속은 자신들이 내렸던 이 줄을 붉은 줄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집에 있는 모든 자들이 멸망되지 않고 살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힌네 아나흐누 바임 바아레츠 에트 티크바트 후트 하샤니 하제 티키쉬리 바할론 아쎄르 호라디테누 보 비에트 아비크 비에트 임메크 비에트 아하이크 비에트 콜 베이트 아비크 타아시피 엘라이크 하바이타

(수 2:18)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정탐꾼을 매달았던 줄을 붉은 줄로 매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줄이 매인 것을 보면 라합의 집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붉은’ 히브리어(샤니 8144) 홍색 실,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샤나 8138) 변화시키다, 변하다, 바뀌다, 라는 뜻에서 왔습니다. 붉은 색은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합니다. 바로 생명입니다. 라합이 죽을 상황에 처해져도 붉은 줄을 보면 저주가 넘어가는 것입니다. 또한 붉은 줄을 통해 인생이 바뀔 것인데 창녀의 인생에서 유다지파의 살몬을 만나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가는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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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을’ 히브리어(후트 2339) 실, 줄이라는 뜻입니다. 정탐꾼들이 붉은 줄을 내리라고 했는데 붉게 생긴 줄을 매달라고 했습니다. 이 줄을 보면 여리고성이 멸망될 때에 하나님께서 이 줄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가족들을 살리겠다는 약속입니다.

바토메르 키디비레켐 켄 후 바티샬리헴 바옐레쿠 바티키쇼르 에트 티크바트 하샤니 바할론

(수 2:21) 라합이 이르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

라합이 정탐꾼들의 말을 믿고 붉은 줄을 창문에 즉시 매달았습니다. 창녀의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의 말을 믿었던 신실함이 있었습니다.

‘줄을’ 히브리어(티크바 8615) 소원, 소망,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카바 6960) 소망하다, 앙망하다, 기다리다, 사모하다, 라는 뜻에서 왔습니다. 정탐꾼이 떠나자마자 라합은 믿음으로 구원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주님을 앙망하고 기다리고 사모하면서 붉은 줄을 매달았습니다. 현재 자신의 처지는 창녀의 삶을 살고 있지만 앞으로의 삶은 신랑을 만나 온전한 삶을 살 것을 기대하면서 소망에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라합’ 히브리어(라하브 7343) 넓히다, 많게 하다, 크게 열리다, 라는 뜻입니다. 라합은 창녀의 삶을 살았지만 그의 인생 속에는 꿈이 있고 생각을 크게 열며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인생을 살았던 여인입니다. 이렇게 인생의 바닥 같은 삶을 살아도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라합은 이렇게 구원을 받아 살몬을 만나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라합은 보아스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간 여인은 룻입니다.

살몬 데 에겐네센 톤 에크 테스 라카브 데 에겐네센 톤 오베드 에크 테스 루드 오베드 데 에겐네센 톤 이엣사이

(마 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라합이 낳은 보아스를 만나는 여인은 룻입니다. 룻은 원래 엘리멜렉의 아들 말론의 아내였습니다. 이 여인은 이방여인으로 절대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갈 수 없는 여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들어가게 됩니다. 룻은 모압에서 자신의 남편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시어머니를 따라 믿음을 지키면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나오미를 따라와 고생하면서 보리 이삭을 주어 생활하는 삶을 사는데 이런 모습을 보아스가 보고 아주 좋게 생각하게 됩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자신의 집안에 기업무를 자라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며느리인 룻과 보아스를 연결시켜줍니다. 룻은 나오미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고 결국 룻과 보아스가 만나 오벳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룻’ 히브리어(루트 7327) 이웃, 짝, 이라는 뜻입니다. 룻은 예수그리스도와 친구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랑과 짝지어지는 신부를 상징합니다. 룻은 이미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가 복을 받을 여인이라는 것을 이름 속에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룻은 이미 신랑 되신 예수님과 짝을 이루는 복을 받고 이방의 부정한 여인이 정결케 되는 신부가 된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간 여인은 밧세바입니다.

밧세바는 우리야의 아내로서 다윗과 강간함으로 부정하게 된 여인입니다. 이런 여인이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가는 복을 받았습니다. 집에서 목욕을 하다가 다윗의 눈에 띄어 강간을 당하게 됩니다. 강간으로 인해 아이를 잉태하지만 이 아이는 금방 죽습니다. 그 다음으로 낳은 아이가 솔로몬입니다. 이 아이가 다윗의 대를 이어 왕이 됩니다.

‘밧세바’ 히브리어(바트셰바 1339) 맹세의 딸이라는 뜻입니다. 밧세바는 하나님께 맹세된 딸인데 결국 강간의 사건으로 인생이 부정한 자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회복되어 솔로몬을 낳고 은총을 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밧세바는 부정한 자인데 우리야 남편이 죽고 다윗을 남편으로 맞이하여 왕의 족보를 잇게 되었습니다.

비엘레 누리두 로 비루샬라임 쉬미아 비쇼바브 비나탄 우쉘로모 아리바아 리바트 슈아 바트 암미엘

(대상 3:5) 예루살렘에서 그가 낳은 아들들은 이러하니 시므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네 사람은 다 암미엘의 딸 밧수아의 소생이요

밧세바의 다른 이름은 밧수아입니다. 밧세바는 암미엘의 딸입니다.

‘밧수아’ 히브리어(바트슈아 1340) 풍요와 번영의 딸이라는 뜻입니다. 밧세바는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풍요해지고 번성하는 복을 받았는데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가는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밧세바를 축복하셔서 강간의 음행으로 부정한 자를 신랑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정결한 신부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다섯 번째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간 여인은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직접 낳음으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다는 예언을 성취했던 여인입니다.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자입니다. 네 명의 여인은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주었다면 마리아는 열매로 직접 맺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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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히브리어(미르얌 4813) 거역하다, 배역하다, 반역하다, 순종하지 않다, 라는 뜻입니다. 마리아도 죄가 있던 부정한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된 자들의 불순종과 예수그리스도의 반역과 거역함을 한 몸에 받고 예수그리스도를 잉태하여 탄생시킨 여인입니다. 이 여인도 예수님을 잉태하여 낳았지만 자신의 죄를 해결할 수 없는 부정한 인생이었습니다. 이런 여인이 예수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맞이하여 부정한 자가 정결한 신부가 되는 여인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가는 복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족보에 들어간 다섯 명의 여인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여인들의 공통점은 부정한 여인들이며 절대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갈 수 없는 이방여인과 창녀도 있습니다. 강간의 죄와 시아버지와 부적절한 성적인 관계들 이 모든 것들은 절대 족보에 들어갈 수 없는 자격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찮은 이런 자들을 뽑아 예수그리스도가 탄생되는 통로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오시는데 이 다섯 명이 없다면 절대 예수님은 탄생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사람들이 볼 때 가장 추하고 수치스러운 장면들도 성경에 노출하고 있고 이런 자들을 사용하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나를 위해서입니다. 이 다섯 명의 여자처럼 내가 이렇게 추하고 더럽고 악독한 자였고 부정한 자였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가게 해 주시는 정결한 신부로 삼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오늘 우리는 절대 구원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어서 족보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런 자격도 없고 조건도 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하심에 의해 족보에 들어오는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잘난 체 할 것도 없고 교만할 것도 없습니다. 오직 감사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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