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4장 강해 설교말씀] 제사장을 위한 속죄 제사(레4:1-35)

레위기 4장 강해 설교말씀은 제사장을 위한 속죄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전반적인 속죄제의 규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구약의 제사는 모두가 예수님의 제사를 상징한다. 제사장도 인간이기 때문에 죄를 속죄해야 한다. 제사장이 먼저 속죄 받고 회중을 위하여 속죄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게 된다.

I. 제사장을 위한 속죄제 4:1-12

여기서는 다른 날, 다른 회기의 법규가 시작되고 있다. 스랍들 사이에 있는 영광의 보좌로부터 하나님은 다음 법령들을 선포하셨다. 번제, 소제, 그리고 화목제는 시내산에서 율법이 주어지기 전부터 드려져 왔던 것이 분명하다.

(1) 속죄제를 드리게 되는 일반적인 경우를 살펴보자(2절).

1) 죄란 일반적으로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한 것’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왜냐하면 죄는 율법, 즉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범법 행위가 영혼, 즉 사람의 행위가 아닌 경우는 죄가 될 수 없으므로, 본문에는 ‘누구든지 죄 짓거든'(흠정역, ‘만일 영혼이 죄짓거든’-역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죄란 모름지기 ‘영혼의 죄'(미 6:7)라고 일컬어지며 그 죄로 침해를 받는 것도 영혼이다(잠 8:36).

2) 속죄제 제정의 이유가 된 죄들에 대하여 살펴보자. ①이 죄들은 명백한 행위일 경우를 전제로 하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죄된 생각이나 말에 대해서도 제사를 드려야 한다면 제사드리는 일은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죄들에 대하여는 일년에 한 번 속죄일에 속죄제가 드려졌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죄는 계명을 어긴 행동이라고 했다. ②그 죄는 해서는 안될 일을 행한 죄, 곧 범죄이다. ③그 죄는 무지로 말미암아 지은 죄이다. 그러나 만일 범죄자가 법을 알지 못해서 죄를 지은 경우나(여러 가지 금령이 많이 있었으므로 우리는 그런 경우를 능히 생각할 수 있다)또는 부지중에 죄에 빠졌을 경우, 속죄제라는 치유법으로 구제를 받을 수 있었다.

이사야 6장 히브리어 성경말씀 성전에서 환상을 본 이사야

(2) 율법은 기름 부음 받은 제사장, 곧 대제사장이 모르고 죄를 범하였을 경우부터 언급하고 있다. 왜냐하면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기’때문이다(히 7:28). 제사장이 무지함으로 죄를 범해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이지만 그에게도 속죄제를 드리는 것이 허락되었다. 대제사장이 드리는 속죄제에 관한 율법은 다음과 같다.

1) 그는 속죄 제물로 흠없는 수송아지를 드려야 했다(3절). 그것은 회중 전체가 드리는 속죄 제물과 같은 제물이었다(14절).

2) 제물을 드리는 자는 제물의 머리 위에 안수 해야 했다(4절). 속죄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한 엄숙한 회개의 고백을 의미한다(16:21).

3) 수송아지를 죽이고, 그 피를 엄숙히 처분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 피는 속죄하는 피였으며, ‘피 흘림이 없이는 용서가 없기’때문이다(5-7절). 대제사장은 속죄 제물의 피를 얼마간 취하여 비록 휘장으로 가려져 있지만 속죄소를 바라보며, ‘성소장 앞에 일곱 번 뿌려야’했다. 그리고 그 중 일부를 향단 뿔에 발라야 했다. 왜냐하면 제사장이 그 제단에서 일을 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여 죄로 인하여 더러워진 그의 직무가 정결케 되었다는 것을 나타냈다. 나머지 수송아지의 피는 번제단 밑에 쏟았다. 이러한 의식을 통하여 죄인은 자기 피도 이와 같이 땅에 쏟아졌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참된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자신의 영혼을 쏟아놓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우리의 구세주께서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하신 것을 나타내준다.

4) 내장의 기름은 번제단에 불살라져야 했다(8-10절). 이렇게 함으로써 속죄제와 속죄의 의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히 나타난다. 죄로 말미암아 치욕을 당해 오신 하나님이 제사로 말미암아 이와 같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Ⅱ. 회중을 위한 속죄제 4:13-21

이것은 속죄제로써 민족의 죄책을 속해 주는 율법이다. 만일 백성의 지도자가 율법에 대한 것을 실수하여 백성에게 죄를 범하게 했다면 잘못이 발견되자마자 전 회중에게 화가 미치지 않도록 제사를 드려야 한다.

(1) 교회도 잘못을 범할 수 있고 교회의 지도자가 교회를 잘못 인도할 수도 있다. 본문에서는 전 회중이 죄를 범할 수 있으며, 무지로 말미암아 죄를 지을 수도 있다고 전제되어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세상에 교회를 갖고 계실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교회가 무오해야 한다거나 하늘 이편에 있는 부패로부터 완전히 정결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2) 전 회중을 위해 제사를 드려야 할 때는 장로들이(적어도 세 사람) 백성의 대표자로서 그리고 중재자로서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였다.

(3) 앞에서와 같이 이 속죄 제물의 피도 ‘여호와 앞에 일곱 번 뿌려야’했다(1절). 그러나 그것을 거기에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뿌리기만 하면 되었다. 왜냐하면 피를 뿌리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의 피의 정화력을 의미하고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사 52:15). 그것을 일곱 번 뿌려야 했다. 일곱은 완전수이다. 하나님이 육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는 쉬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음을 의미하며 또한 그로 말미암아 신실한 영혼을 완전히 깨끗케 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히 10:14). 제사가 완료되면 ‘속죄한즉 그들이 사함을 얻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20절). 용서의 약속을 속죄라고 하는 기초 위에 세웠던 것이다.

Ⅲ. 족장의 속죄제 4:22-26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 하나님은 족장의 죄를 주목하시고 불쾌히 여기신다.

(2) 무지로 말미암아 범한 족장의 죄도 그 후에 자신의 양심의 가책이나 아니면 친구의 책망으로써 깨닫게 되리라고 전제되어 있다(23절).

(3) 족장을 위해 드리는 속죄 제물은 수송아지를 드리는 제사장과 전 회중의 경우와는 달리 수염소였다. 또한 속죄 제물이 피를 회막으로 가져가지 않고 모든 피를 번제단에 쏟았다(25절)는 점과 그 고기를 진 밖에서 불사르지도 않았다는 점에서도 앞의 두 경우와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족장의 죄가 보통 사람의 죄보다 더 악하다 할지라도 대제사장의 죄나 전 회중의 죄처럼 그렇게 극악한 것은 아니며 따라서 그렇게 치명적인 결과를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4) 그가 회개하고 돌이킨다면 속죄 제물이 열납되어 그 죄가 용서받으리라는 약속이 주어져 있다.

Ⅳ. 평민을 위한 속죄제 4:27-35

1. 평민의 속죄 제사법(27-35)

본문에는 평민이 드려야 할 속죄 제사법이 기록되어 있다. 족장의 속죄제와 다른 점은 개인이 사적으로 속죄제를 드릴 경우 양이나 염소 모두를 드릴 수 있는 반면에 족장은 염소만을 드리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한 족장은 수염소를 드려야 하나 개인이 사적으로 드릴 경우에는 암컷을 드리도록 되어 있었다.

예레미야 35장 히브리어 설교 레갑 족속의 교훈

(1) 상황이 다음과 같이 가정되어 있다. 만일 평민의 하나가…부지중에 범하는 허물이 있었다면(27절). 만일 평민이 부지중에 죄를 범했으면 그들도 속죄제를 드려야 했다. 우리도 다윗처럼 숨은 허물, 즉 우리가 깨닫지도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는 잘못에 대해서도 깨끗하게 되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릴 필요가 있다(시 19:12).

(2) 어느 미천한 사람이 부지중에 범한 죄라 할지라도 희생 제물이 요구되었다.

(3) 심지어 평민의 한 사람에게까지 속죄제가 허용될 뿐만 아니라 받아들여졌으며 그것을 통하여 속죄가 이루어졌다(31,35절). 여기에서는 부자와 가난한 자, 방백과 농부가 서로 동일하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모두 다 같은 자로서 영접하시기 때문이다(욥 34:19).

2. 속죄제에 관한 율법의 교훈

(1) 죄는 미워하고 경계해야 한다.

(2) 위대하고 진정한 속죄 제물이신 그리스도의 진가를 알아야 한다. 사실상 송아지나 염소의 피가 죄를 제거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피만이 모든 사람을 그 죄에서 깨끗케 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기도 가운데서도 부지중에 범한 죄에 관한 이 율법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제물로 드리실 때,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던 것이다(눅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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