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십자가 설교 말씀 중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장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죽고 난 후에 아리마대 요셉은 빌라도에게 가서 당돌하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시체를 요셉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예수님의 시체를 자기가 판 새 무덤에 장사 지내고 묻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장례(막15:33-47)
Ⅳ. 예수님의 죽음 15:33-41
여기서 나타나는 설명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설명이다.
(1) 세 시간 동안 온 땅에 어두움이 임했다(33절). 유대인들은 종종 그리스도에게 ‘하늘로서 오는 표적'(막 8:11)을 구했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한다는 뜻의 표적을 받았던 것이다. 그 나라에 이미 왔으며 또 오게 될 것은 어두움의 표적이었다. 이 표적이 그들에게 암시했던 것은 그들이 평화로울 때 소유했던 모든 것은 이제 그들의 눈으로부터 숨기워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제 어두움의 권세 아래 놓여있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일은 어두움의 일인 것이다.
(2) 이 어두움의 때가 가까워지자 우리 주 예수님은 영혼의 고통을 당하시고 크게 소리지르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34절). 이 어두움이 뜻하는 것은 사람의 몸을 입은 그리스도의 영혼이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리고 있었을 때 그를 덮었던 현재의 구름이었다. 우리 주 예수님은 고난을 받고 있었을 때 하나님의 도움도 끊겼다는 것을 뜻하기 위하여 태양 빛으로부터도 부인을 받았다. 그는 이것을 어떤 것보다도 더 한탄하셨다. 그의 제자들이 그를 버렸을 때에도 그는 제자들이 그를 버린 것에 대해 한탄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자 그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한탄하셨던 것이다. 첫째로 그 이유는 이 일이 그의 영에 대해 상처를 주었으며 또 그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 이유는 특히 예수님께서 이 일을 통하여 우리를 위한 죄인이 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나타난 이 징조들은 때때로 희생 제물을 태우기 위하여 보내졌었던 하늘의 불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하나님께서 열납하셨다는 것을 상징했다.
하나님이 죄인으로 말미암아 흡족히 여기지 않았을 경우 그 죄인에게 떨어질 불은 제물 위에 떨어져 하나님이 흡족히 여기셨다는 표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그 불은 이제 그리스도에게 떨어졌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 대해 말하기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 2:17)라고 했다. 그러나 죄인들의 죄를 위하여 드리는 제물은 또 다른 것이다.
(3) 그리스도의 기도가 곁에 섰던 자들에 의하여 조롱을 받았다(35,36절).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엘리 엘리’라고 외쳤기 때문이다. 마가는 이 말을 아람어에 따라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리스도가 말한 것 뿐 아니라 그 말의 뜻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그가 엘리야를 부른다고 말했다. 그때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해융에 신 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게(36절) 했다.
그들이 이 일을 한 것은 예수님에게 더 모욕을 주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일을 했던 사람에게 이 일을 하도록 지시를 내린 자가 누구든 그는 예수님을 더 비난했을 것이다. 그는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내려주나 보자’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만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내려주지 않는다면 엘리야도 그를 버린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을 것이다.
(4) 그리스도께서 다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셨다(37절).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큰 소리를 지를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말조차 나오지 않겠지만 하나님께서 심령에 힘을 부어 주신다면 말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큰 소리를 지르신 후 실제적으로 죽으셨다. 그 이유는 그의 영혼이 떠났기 때문이다. 그의 영혼이 영의 세계로 떠나자 그의 육신은 호흡이 끊어져 흙덩어리와 다를 바 없게 된 것이다.
(5)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언덕 위에서 운명하신 바로 그 순간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38절).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첫째로 이 사건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상당히 큰 두려움을 주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이 그들의 교회와 국가와 오래지 않아 초토화된다는 전조였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 사건은 모든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상당히 큰 위로를 주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우리에게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새롭고 산 길'(히 10:19,20)을 열어 주는 희생을 뜻하기 때문이다.
(6) 처형을 감독하던 백부장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시인했다(39절). 그에게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납득시켰던 한 가지 사실은 그리스도가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셨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말함으로써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렸으며 그리스도에게 모욕을 준 사람들을 부끄럽게 했다. 그러나 그 백부장이 어떤 이유로 그런 말을 해야 했는지 알아보자.
첫째로 그는 그리스도께서 부당하게 고난을 받으셨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고난을 받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부당하게 고난을 받으셨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은 참되며 그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둘째로 그는 그리스도께서 하늘이 사랑하는 자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죽을 때 하늘이 그에게 얼마나 영광을 돌렸는지 눈으로 직접 보았던 것이다. “분명 이 사람은 하나님과 같은 분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지극히 사랑을 받는 자가 틀림없다”라고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 주 예수님은 심한 고난과 모욕을 당했을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이제 하나님의 권세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공언된 것이다.
(7) 그리스도를 가까이 따르며 섬기던 선한 여자들이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었다(40,41절).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남자들은 감히 나타나지 못했다. 여자들도 감히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멀리 서서 슬픔에 차 있었다. 이 여자들 가운데 이름이 기록된 여자들도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가 그 중에 하나였다.
그 여자가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지 그리스도의 권능과 선하심 뿐이었다. 그 여자는 일곱 귀신들린 병을 앓다가 그리스도의 권능과 선하심에 의해 병고침을 받았었다. 그 여자는 그것이 감사하여 그리스도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를 섬겼던 것이다. 마리아도 그곳에 있었는데 그 여자는 작은 야고보의 어머니였다. 이 마리아는 글레오바 곧 알패오의 아내인 동시에 동정녀 마리아의 자매이기도 했다. 이 여자들은 남자들처럼 굳이 잔치에 참석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하여 갈릴리로부터 왔던 것이다.
이제 보좌 위에 앉게 될 것으로 생각했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는 것을 보자 그 여자들은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 크게 출세할 것을 기대하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아마도 몹시 실망하게 될 것이다.
Ⅴ. 무덤에 장사된 예수님 15:42-47
여기서 대하게 되는 것은 우리 주 예수님께서 장사되는 내용이다.
(1) 어떻게 그리스도의 시체를 달라는 부탁이 이루어졌나(42-44절). 그리스도의 시체는 로마 당국이 처분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살펴 볼 수 있다.
1) 언제 그리스도의 시체를 달라는 부탁이 이루어졌으며 어째서 그리스도의 시체를 그렇게 서둘러 장사지냈나. 이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 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42절). 유대인은 어느 절기일보다도 안식일을 더 열심히 엄수했다. 그러므로 이 날이 비록 어떤 절기일이라 해도 안식일에 더 종교적인 비중을 두어 그 달을 절기일보다 안식일 전날로 준수했을 것이다. 안식일 전 날은 곧 안식일을 위한 예비일이었다. 우리는 하루 전날 안식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나간 안식일의 결실을 맺으며 다음 안식일을 준비하는 일에 한 주간을 배당해야 한다.
2) 그리스도의 시체를 달라고 부탁한 사람은 누구였나. 그것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었다. 그는 여기서 인격적이고 신중한 성품을 지닌 ‘존귀한 공회원’으로 불렸다. 그는 바로 산헤드린 공회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더 훌륭한 특성이 있었다. 그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던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며 그 나라의 특권을 통해 얻는 유익을 바라는 자들은 자진하여 그리스도의 주장을 시인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감히 그 일을 할 수 없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을 세워 이처럼 필요한 봉사를 하게 하셨던 것이다.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갔다. 비록 요셉은 그것이 얼마나 대제사장들의 비위를 건드리는 일인지를 알고 있었지만 용기를 가지고 그 일을 수행했다. 처음에는 요셉도 아마 좀 두려워했을 것이다.
3)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상당히 놀랐다. 빌라도는 그리스도께서 죽었는지 안죽었는지에 대해 의혹을 품고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죽은 것처럼 속여 그 몸을 산채로 십자가에서 내리게 하는 일이 생길까봐 두려워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의 부하인 백부장을 불러 그리스도께서 ‘죽은지 오래냐'(44절)라고 물었던 것이다. 백부장은 빌라도에게 그리스도의 죽음을 확신시킬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특별히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운명하셨는지를 주목해 봤었기 때문이다(39절). 빌라도는 그 의문 속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가 산 채로 장사되었다고 말하여 그리스도께서 부활하리라는 진리를 헛되게 하는 구실을 주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종종 그리스도의 진리는 이와 같이 그 원수들에게서도 확증을 얻게 된다.
(2) 어떻게 그리스도의 시체가 장사되었나(45-47절). 빌라도는 요셉에게 그리스도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려 그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위임했다.
1) 비록 시체를 싸는 일에 사용할 세마포는 낡은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으나 요셉은 그리스도의 시신을 싸기 위하여 새로운 세마포를 샀다.
2) 그리스도의 시신이 비록 온 몸에 상처투성이고 야위었지만 요셉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시신을 내린 뒤 값진 보물처럼 세마포로 쌌다.
3) 요셉은 자신을 위해 만들어 놓은 바위 속에 판 무덤에 그리스도의 시신을 넣어 두었다. 이 돌 무덤은 요셉의 소유였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머물고 있었을 때 아무런 땅도 소유하지 못했지만 묘실만은 갖고 있었다. 이 돌 무덤은 바위를 파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무덤을 성도들의 피난처로 만들기 위하여 죽으셨던 것이다.
4) 요셉은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았다. 요셉이 이렇게 한 이유는 그것이 유대인의 장사하는 관습이었기 때문이다.
5) 몇몇 선한 여자들이 그리스도의 시신을 장사하는 곳에 참석하였으며 안식일이 지난 뒤에 그의 시신에다 기름을 바르러 오기 위하여 예수 둔 곳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지금 그 할 일을 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위대하신 중보자이시며 새 계명을 주신 분인 예수께서 장사되자 그의 무덤은 특별한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가 부활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의 몸에 대한 관심은 그리스도 자신이 그의 몸인 교회에 관하여 갖게될 관심을 나타낸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장사된 것을 명상하면서 우리 자신이 장사된 것으로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무덤을 우리에게 친숙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며, 어두움의 때를 만날 경우 즉시 만들어야 할 편안한 안식처가 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