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장 헬라어 원어성경 설교 말씀은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다. 향유를 부은 것은 예수님이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을 상징하면서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며, 제사장이며, 예언자라는 사실을 마리아가 증거 한 것이다. 요한복음의 마리아를 통해서 기름 부음 받은 메시아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기름 부음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요12:1-8)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마리아의 향유 옥합 사건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것을 모두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옆에 있던 가룟 유다의 눈에는 보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욕심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는 것이 허비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는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제자였지만 항상 육적인 눈으로 주님의 사역을 목격한 사람입니다.
정욕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마귀가 가룟 유다를 미혹하기가 쉬웠습니다. 재물에 눈이 어두워 있었기 때문에 재물을 가지고 미혹했던 것입니다. 마귀는 가룟 유다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마리아는 영적인 눈이 열려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주님께 드려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은 마리아가 하는 행위를 칭찬했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주님은 나를 위해서 생명도 아까워하지 않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신부인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고통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께 드리는 재물도 아까워합니다. 심지어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열심히 벌어들인 재물을 헌금하는 것이 아깝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내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까워집니다. 주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마리아의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마리아가 영적으로 열려 있었는데 비싼 향유를 주님께 부은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요12: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1 Ὁ οὖν Ἰησοῦς πρὸ ἓξ ἡμερῶν τοῦ πάσχα ἦλθεν εἰς Βηθανίαν, ὅπου ἦν Λάζαρος, ὃν ἤγειρεν ἐκ νεκρῶν Ἰησοῦς.
호 온 이에수스 프로 헥스 헤마론 투 파스카 엘덴 에이스 베다니안 호푸 엔 라자로스 혼 에게이렌 에크 네크론 이에수스
요한은 예수님이 유월절 엿새 전에 베다니에 이르셨다고 기록합니다. 이곳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주님이 나사로를 살려주신 것에 대해서 부활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이것은 부활이 아닙니다. 육체가 죽은 것을 다시 살려주신 것뿐입니다.
부활은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야 하는데 나사로가 부활 된 것이라면 나사로가 부활의 첫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사로는 육체로 살아났다가 다시 죽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활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부활은 속사람이 살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육체가 살아난 것은 영과 육의 분리 가운데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주님이 죽고 부활하셔야 만이 성도에게도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베다니’ Βηθανίαν(베다니안 963)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베다니에서 유월절 엿새 전에 도착하셔서 죽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베다니는 나병환자 시몬이 있었던 곳입니다. 이렇게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이 있는 곳입니다. 주님은 제사장과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을 부르러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결국 가난하고 병든 자들이 주님을 따랐습니다.
영적으로 주님은 율법의 의로 거룩하다고 하는 자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심령이 가난하여 주님을 믿음으로 따르는 자들을 위해서 죽었습니다. 주님이 베다니에서 이렇게 가난한 자의 하나님이 되실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의 의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요12: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2 ἐποίησαν οὖν αὐτῷ δεῖπνον ἐκεῖ, καὶ ἡ Μάρθα διηκόνει, ὁ δὲ Λάζαρος εἷς ἦν ἐκ τῶν ἀνακειμένων σὺν αὐτῷ.
에포이에산 운 아우토 데이프논 에케이 카이 헤 마르다 디에코네이 호 데 라자로스 에이스 엔 에크 톤 아나케이메논 쉰 아우토
예수님이 베다니에 도착했을 때 예수님을 위해서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앉은 자 중에 있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나사로의 집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마26:6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마태는 예수님이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난한 자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히브리 사람의 가난은 정상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합니다. 시몬이 나병에 걸렸기 때문에 정상에서 벗어났습니다. 이런 집에 들어가셔서 유월절의 어린양으로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르다는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자신의 집에 오셨을 때도 육적으로 바빴습니다. 반면에 마리아는 주님 앞에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물론 육적으로 주님을 대접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것을 먼저 추구해야 합니다. 마르다는 율법주의 신앙의 표본이며 마리아는 복음주의 신앙의 표본이 됩니다.
요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3 ἡ οὖν Μαριὰμ λαβοῦσα λίτραν μύρου νάρδου πιστικῆς πολυτίμου ἤλειψεν τοὺς πόδας τοῦ Ἰησοῦ καὶ ἐξέμαξεν ταῖς θριξὶν αὐτῆς τοὺς πόδας αὐτοῦ· ἡ δὲ οἰκία ἐπληρώθη ἐκ τῆς ὀσμῆς τοῦ μύρου.
헤 운 마리암 라부사 리트란 뮈루 나르두 피스티케스 폴뤼티무 엘레이센 투스 포다스 투 이에수 카이 엑세마크센 타이스 드릭신 아우테스 투스 포다스 아우투 헤 데 오이키아 에플레로데 에크 테스 오스메스 투 뮈루
마르다는 열심히 육적으로 잔치집에서 육적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비싼 향유인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마태는 주님의 머리에 부었다고 기록합니다. 머리에 부은 것이 발끝까지 흘러내렸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복음서 기자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마리아의 사건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었더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했습니다.
‘붓고’ ἤλειψεν(엘레이센 218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단수, 3인칭) 기름을 붓다, 기름을 바르다라는 뜻입니다. 마리아가 귀한 향유를 주님께 부었다는 것은 영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은 기름 부음 받은 자입니다. 이제 주님은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십자가에서 하나님 앞에서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제물이 되기 위해서 마리아는 기름을 붓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기름을 붓고 세우는 사람이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삼중 직을 모두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구약에서는 따로따로 세웠지만 이것을 통합적으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마리아는 영적인 눈이 열려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깨달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직설법은 마리아가 실제로 자신의 가장 귀한 향유를 예수님께 부었다는 의미입니다. 과거시제는 이미 마리아는 마음에 결심을 하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향유를 예수님께 붓는다는 것이 충동적으로 마음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이미 작정하고 준비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도 주일예배를 드릴 때 미리 준비하고 나오게 됩니다. 갑자기 교회에 가야겠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리 헌금도 준비하여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 이제 주님은 마리아의 향유를 통해서 유월절의 어린양으로서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미련한 인간들만 모르지 주님은 알고 있습니다.
‘가득하더라’ ἐπληρώθη(에플레로데 4137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단수, 3인칭) 이루어지다, 완전하게 하다, 별세하다라는 뜻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부은 향유를 머리털로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해졌습니다. 우리는 단지 집안에 냄새가 가득했다는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구속사 관점으로 보면 이제 주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별세하실 것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일을 완전하게 십자가에서 이루게 됩니다. 이 십자가의 향기가 전 세계로 퍼져나갈 것을 의미합니다.
직설법은 주님의 십자가 죽음이 전 세계로 퍼져나갈 것이 확실하다는 의미입니다. 과거 시제는 마리아가 행한 향유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행하신 십자가 사건은 이미 퍼져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의미합니다. 수동태는 향유 냄새가 퍼지지 않게 막으려고 해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향유 냄새가 너무나 진하기 때문에 막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도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시작한 주님의 십자가 향유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서 죄인들이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게 하여 구원해 주실 것을 의미합니다.
요12:4-5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 사건을 주시하고 있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잡아 줄 가룟 유다입니다. 가룟 유다는 자신의 욕심에 의해서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버렸습니다. 가룟 유다가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보면 얼마나 고귀하고 가난한 자를 생각하는 사람입니까? 겉으로는 거룩한 척하는 율법주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겉으로는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척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정욕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 말 한마디로 가룟 유다의 신앙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영적인 눈이 열리지 못한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열심히 옆에서 따라다닌 제자였지만 돈에 눈이 멀어지면 영적인 맹인이 되어버립니다.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2 καὶ δείπνου γινομένου, τοῦ διαβόλου ἤδη βεβληκότος εἰς τὴν καρδίαν ἵνα παραδοῖ αὐτὸν Ἰούδας Σίμωνος Ἰσκαριώτου,
카이 데이프누 기노메누 투 디아볼루 에데 베블레코토스 에이스 텐 카르디안 히나 파라도이 아우톤 이우다스 시모노스 이스카리오투
가룟 유다는 며칠이 지난 후에 유월절 만찬에서 예수님을 팔아버리려고 합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기 때문입니다. 육적인 사람은 마귀가 그 마음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마음을 주관하셔야 합니다.
‘생각을 넣었더니’ βεβληκότος (베블레코토스 906 동사, 분사, 완료, 능동태, 소유격, 남성, 단수) 내버리다, 가두다, 꽂다라는 뜻입니다. 마귀는 벌써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 생각을 집어넣었습니다. 결국 가룟 유다는 자신의 생각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만 생각하면 다른 것을 보지 못합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팔 생각을 꽂아 넣어버리니 가룟 유다의 생각에는 온통 돈 생각만 나게 됩니다. 이렇게 됨으로 가룟 유다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분사는 마귀가 순간에 주님을 팔 생각을 넣은 것이 아니라 가룟 유다의 성격과 생각을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다가 집어넣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완료 시제는 한 번 들어간 생각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절대 그 생각이 빠지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도 사고체계가 굳어졌기 때문에 주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절대 빠지지 않습니다. 소유격은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 생각을 집어넣어 계속해서 마음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육적인 사람이 되면 마귀의 주관을 받게 됩니다. 육적인 생각만 하게 됩니다. 우리는 영적인 사람이 되어 생명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롬8:5-6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가룟 유다는 육신을 따르는 자였기 때문에 육신의 일을 하다가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요12: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
6 εἶπεν δὲ τοῦτο οὐχ ὅτι περὶ τῶν πτωχῶν ἔμελεν αὐτῷ, ἀλλ᾽ ὅτι κλέπτης ἦν καὶ τὸ γλωσσόκομον ἔχων τὰ βαλλόμενα ἐβάσταζεν.
에이펜 데 투토 우크 호티 페리 톤 프토콘 에멜렌 아우토 알르 호티 클레프테스 엔 카이 토 길롯소코몬 에콘 타 발로메나 에바스타젠
가룟 유다의 육신 생각이 무엇입니까?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도둑이기 때문에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갔다고 요한은 기록합니다. 이미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육신의 정욕적인 행동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훔쳐감이러라’ ἐβάσταζεν(에바스타젠 941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단수, 3인칭) 옮기다, 용납하다, 몰래가져가다라는 뜻입니다. 가룟 유다는 회계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돈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돈을 자신의 것으로 훔치기 위해서 몰래 위치를 옮겨놓았습니다. 똑같은 돈이지만 위치를 변경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교회 공금을 자신의 계좌로 위치 변경시킨 것과 같습니다. 직설법은 가룟 유다가 실제로 공금에 손을 대어 훔친 사실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미완료 시제는 한두 번 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훔친 것을 다른 사람이 알 때까지 계속해서 훔쳤다는 것을 말합니다. 꼬리가 길어지면 밟히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자신이 행한 일에는 용납을 잘하면서 마리아가 주님께 부은 향유에 대해서는 용납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철저한 율법주의 신앙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행한 일에는 너그러우면서 남이 한 일에는 절대 용납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요12:7-8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두어 나의 장례 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가룟 유다에게 말합니다. 마리아를 가만두라고 합니다. 자신의 장례 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항상 있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이 무엇을 염두에 두고 하시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미 영적인 눈이 열려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습니다. 영의 사람은 영의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리아가 영의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의 향유를 아까워하지 않고 영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주님은 며칠 있으면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다른 제자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구약에 오실 메시아의 사역을 준비한 사람입니다. 마지막 십자가 제물이 되실 것을 깨닫고 기름을 부었습니다.
마26: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사건은 실로 엄청난 사건입니다. 주님이 직접 말씀합니다.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역을 준비했던 마리아는 하나님께 큰 복을 받았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마리아가 행하였던 일이 회자 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영적인 생각을 하니 영적인 일을 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도 영적인 생각을 하여 하나님이 기뻐하는 영적인 일을 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세상에 널리 전파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