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3장 짧은 설교문] 에스겔 선지자 파수꾼 사명(겔3:1-27)

에스겔 3장 짧은 설교문은 에스겔 선지자의 파수꾼 사명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 사명을 주셨다.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했다. 에스겔 선지자는 파수꾼의 사명을 받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되었다.

Ⅰ. 두루마리를 먹는 선지자 3:1-15

어떤 주석가들은 본문이 앞의 환상의 계속이므로 전장들과 연결시켜서 생각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1) 에스겔은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야 했는가(1절). 인자야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그 두루마리를 네 마음에 새기라. 그것을 먹고 네 영혼이 양분을 얻으며 기력을 얻으라. 음식물로 네 배를 채우듯이 그 두루마리로 네 배를 채우라.”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지, 즉 말씀이신 그 분이 우리에게 가져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불평없이 영접해야 한다. 만일 두루마리를 펴시고 그의 신을 통하여 그 내용을 우리 앞에 보이시는 분이 우리의 명철을 열고 성령을 통하여 그에 대한 지식을 주시지 않고 우리로 그 두루마리를 먹게 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두루마리에 대해서는 영원히 이방인이 되고 말 것이다. 그 두루마리는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가득 차 있었지만 선지자에게는 그것의 달기가 꿀과 같았다.

(2) 선지자는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계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야 했다(1절).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 가서 갈대아 사람들의 죄를 책망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집의 죄를 책망하라는 것이다. 이는 자녀가 탈선한다면, 아비는 타인의 자녀를 훈계하는 대신에 그 자녀를 훈계하여 돌이키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선지자는 자기가 가서 말할 대상이 이스라엘 족속 곧 하나님과 선지자 자신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했다. 그 대상자들은 같은 민족일 뿐만 아니라 시련을 함께 당하고 있는 동족들이었던 것이다. 선지자 에스겔은 자신이 보내질 곳의 사람들의 성품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내용을 기억해야 했다.

이는 혹시라도 낙담하거나 실망할 일을 만날 때에 상처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7절) 죄에 대한 어떤 책망도 그들을 부끄럽게 하지 못하므로, 어떤 위협적인 경고도 그들을 떨게 만들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그 자체에 대해서 목이 굳은 자들이었다. “이스라엘 족속이 네 말을 듣지 않더라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이는 그들이 나의 말을 듣지 아니하려는 것이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법에 대하여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을 시행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일을 잘 해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내가 그들의 얼굴을 대하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내가 너를 아주 굳세고 담대하게 하였노라.

사도행전 3장 헬라어 원어성경말씀 앉은뱅이 치유 사건

하나님을 배격하는 사악한 자들이 강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욱 마음을 열고 단호하게 실천하고 방어해야 한다. 악이 대담해 진다고 해서 덕이 움츠러 들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대적자들의 어떤 비난이나 위협에도 신경을 쓰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할 일을 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 그들이 성난 얼굴로 힐난한다고 할지라도 책망의 말을 조금도 늦추지 말아야 했다. 에스겔은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의 내용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서 직접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말해야 했다.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11절). 우리의 사역의 성패가 어떤지에 대하여 무관심할 수는 없겠지만, 그 성과가 어떠하든지 간에 우리는 할 일을 다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법이다.

에스겔은 ‘크게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12절). 그것은 마치 천사들이 예언자의 취임식을 보기 위하여 모여들면서 내는 소리 같았다. 그는 천사들이 날개치는 소리와 천사들과 마주 움직이면서 어울리는 섭리의 바퀴들의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이 모든 소리는 찬미의 소리로 끝을 맺었다. 그는 천사들이 ‘여호와의 처소에서 나는 영광을 찬송할지어다’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선지자는 주저하였으나 하나님의 신의 강력한 감화로 임무 수행에 들어갔다. 하나님의 신이 강한 손으로 그를 인도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라 명하였지만 에스겔은 하나님의 신이 그를 ‘들어 올려 데리고 가실’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14절).

에스겔로서는 자기가 보고 직접 들은 내용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겠으나 예언의 추진력이 그를 움직이므로 그는 사도들 처럼 자기가 ‘보고 들은 내용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행 4;20). 그는 슬픈 마음으로 따라갔다. 주의 신이 나를 들어올려 데리고 가시는데 내가 근심하고 분한 마음으로 행하니. 그는 아마,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을 맡았으며 얼마나 부당한 대접을 받았었는지 또한 결국 그가 행한 일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것을 보았었을 것이다. “나는 요나처럼 하늘의 지시에 불복종하거나, 할 일을 발뺌하지 않고, 비록 근심하여 전혀 즐겁지 못한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수행하기 위하여 갔다.”

에스겔은 실망할 것을 미리 알고 ‘분한 마음’으로 갔지만, 여호와의 손은 그가 만날지도 모르는 난관을 이겨내고 분발하도록 강력하게 그 위에 임하셨다. 그리하여 그러한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는 자신의 임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일에 자신을 몰두하였다. 이에…그 사로잡힌 백성에게 나아가 그 중에서 민답히 칠일을 지내니라(15절). 이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며 무슨 행동을 하는지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여호와의 말씀이 자기에게 임하기를 기다렸다. 그는 그 곳에서 백성들의 죄악과 불행에 대해 슬픔에 쌓이기도 하고 자기가 보았던 환상에 압도되기도 하며 ‘민답히’ 지냈다.

Ⅱ. 파숫군 에스겔 3:16-21

이 계속되는 지시는 ‘칠일 후에’ 즉 그가 환상을 본 후 칠일째 되는 날에 다시 내려졌다. 지난 번 환상을 보여 주셨던 날이나 본문의 지시를 내리신 이 날은 모두 안식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칠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이셨던 일들에 대하여 일주일 내내 골똘히 생각하고 묵상하며 지내왔었기 때문에, 안식일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또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에 합당한 상태였다. 에스겔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는 사실을 비유를 통하여 분명하게 듣게 된다.

1. 선지자가 부름을 받은 직무(16,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으로 세웠으니(17절). 그는 파숫군인 것이다. 침략을 당한 나라나 포위된 성읍에서 적의 동태를 살피고 위험이 올 때 경종을 울리는 진지의 파숫군처럼 양떼를 살피는 파숫군처럼 그 성읍의 파숫군으로 임명된 것이다. 이 말은 이스라엘 족속이 전쟁 중에 매우 교활한 적에게 노출되어 있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파숫군들은 항상 적에게 목숨을 잃을 위험에 놓여 있다. 적들은 보초만 죽이면 목적을 쉽게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죽는 한이 있어도 감히 자기들의 위치를 이탈할 수 없으며 근무지를 이탈할 경우 상관으로부터 죽음을 당하게 된다. 그러한 딜레마는 교회의 파숫군들에게도 있다. 만일 교회의 파숫군들이 자기 직무에 충실하다면 사람들이 그들을 저주할 것이요, 불성실하다면 하나님께서 저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2. 파숫군의 임무(18-21)

파숫군의 임무는 동태를 살펴서 전달하는 것이다.

(1) 파숫군으로서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 민족에게 대하여 하시는 말씀을 먼저 인지하여야 한다. 그러나 에스겔은 다른 파숫군들처럼 위험을 탐지하고 정보를 얻기 위하여 두리번거릴 필요가 없고 하나님만 주시해야 했다.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17절). 그 외에 것은 살필 필요가 없었다.

(2) 그는 자기가 들은 내용을 자기의 이름으로나 자기에게서 나온 듯이 말해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으로 전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악인들이 계속해서 죄를 범하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꼭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으며 지금도 여전히 말씀하고 계신다. 악인의 죄악은 틀림없이 자기의 멸망이 되고 말 것이다. 만일 악인이 그 죄에서 돌이켜 악한 길에서 떠난다면 그는 살게 될 것이요 이미 경고받은 멸망까지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을 알고 그렇게 행할 수 있도록 악인은 처해 있는 위험에 대하여 경성함을 받는다.

이사야 6장 히브리어 성경말씀 성전에서 환상을 본 이사야

죄의 위험에 대하여 죄인들을 경성시키는 일과 죄인들에게 회개의 특혜에 대하여 확신시켜 주는 것이 사역자의 임무이다. 신실한 사람들은 비록 성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보답을 받게 될 것이다. 에스겔이 접해야 했던 사람들 중에는 의로운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의에서 돌이키지’ 말라고 경고를 해야 했다(20,21절). 넘어지지 않는 좋은 방법의 하나는 넘어지는 일에 대하여 ‘두려움’을 갖는 것이다(히 4:1). 사람이 의에서 떠나면 곧 불법을 행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소홀히 하고 그러한 의무를 등한시하게 되며 쉽게 시험하는 자의 희생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중도에서 의를 포기하는 자들은 그것을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악에게 아부를 해서도 안되겠지만, 의가 마치 어디에서고 전적으로 안전한 것처럼 의에게 아부해서도 안된다. 지혜로운 책망을 순종하는 귀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 이는 듣고 따르는 자는 경고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살게 될 것이고, 견책을 한 사람은 그 사람의 영혼을 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Ⅲ. 다시 나타난 여호와의 영광 3:22-27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하여 선지자들에게 나타내신 이 모든 계시와 충분한 지시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는 그의 부름에 비례할 만큼의 역할을 못해낸 듯하다. 선지자가 여러 난관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광에 대한 또 다른 환상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기 위하여 그를 들로 불러내신다(22절). 비천한 포로일 뿐만 아니라 죄인이요, 하나님의 지시에 근심하는 마음으로 간 사람이며 게다가 이번 경우엔 자기 임무에 대하여 의욕이 없는 그런 사람과 대화하시기 위하여 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라. 하나님과 의논을 하고 그 분에게 말씀드리기 위하여 세상에서 물러나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은 대단히 큰 위로가 아닐 수 없다.

선지자는 많은 백성들 사이에서, 오히려 이보다 더한 외로움을 맛보았었기 때문이다. 에스겔은 포로들 가운데로 들어갔을 때보다 훨씬 즐겁게 평원으로 나아갔다(15절). 선지자는 평원에 나아가 그가 이전에 그발강 강가에서 보았었던 환상과 동일한 환상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이야기를 해주기 위하여 선지자를 불러 내셨던 것이지만 그에게 자신의 영광도 보여주셨다(23절). 지금은 우리가 그러한 환상들을 기대할 수 없지만 우리가 여호와의 영광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그의 신으로 말미암아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된다면 우리에게 이미 그러한 은혜가 주어졌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혹자는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곧장 군중들이 모여있는 광장 한가운데에 보내 그들이 선지자와 선지자의 전갈을 받아들이도록 만드시고, 에스겔이 자기에게 넓게 열려져 있는 기회를 갖게 하셨을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성경 산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

그러나 여기에서 에스겔이 들은 내용은 이와는 정반대였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공공 회합에 파견하시는 대신에 집안에 있으라고 명하셨다. 너는 가서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24절). 에스겔은 공중 앞에 나서기를 꺼려했을뿐더러 나서더라도 백성들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과 그 백성들에 대하여 정당한 책망을 하신다. 에스겔은 수줍어하는 태도에 대하여 책망을 받았고 백성들은 냉담한 태도에 대하여 책망을 받았다. 이로써 에스겔은 공중 앞에 나가는 것이 금지된다. 따라서 에스겔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또 다른 계시를 받기 위하여 문들 닫고 집안에만 있어야 하였다. 우리는 유다의 장로들이 에스겔을 찾아와서 그 앞에 앉아 그가 환상을 보느라고 무아경에 빠지는 것을 직접 목도하였음을 볼 수 있다(8:1).

에스겔은 11:25에 가서야 포로된 자들에게,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보이셨던 모든 일을 비로소 말해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그 백성들에게 보내시면 그들은 에스겔에게 존경과 사랑을 주는 대신 평화를 어지럽히는 자라는 구실로 그를 ‘줄로 동여매’ 결박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25절). 그 백성들은 자기들이 선지자들을 핍박하였던 탓에 바벨론에 사로잡힌 몸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곳에서도 선지자들을 핍박한다. 그들은 미쳤다는 명목으로 에스겔을 포박해 버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 대한 찬송을 드러내도록 에스겔의 입술을 열어 주는 대신에 적절한 시가가 오기까지는 말하지 말도록 침묵을 요구하셨다(26절).

최상의 것을 말할 수 있는 그에게 전혀 말하는 것이 금해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그들 자신에게 보내진 사람에게 ‘패역한 족속’이기 때문이며 그런 사람을 ‘책망자’로 가질 만한 하등의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셨을 때, 즉 그를 통하여 말씀하시고자 계획하셨던 때가 이르면 그의 입을 열어 주실 것이다(27절). 언제든 에스겔이 백성들에게 말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성공에 대한 확신을 해주는 대신에 그 문제를 불투명하게 남겨 놓으신다. 그리고 에스겔은 그 문제로 인하여 당황하거나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서는 안되며 그 문제가 앞으로 어떻게 되든지 그대로 버려두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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