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Eph) 원어성경 설교 말씀] 하나님(God)의 전신 갑주를 입어라(엡6:10-17)

에베소서 6장 헬라어 원어성경 설교 말씀은 종말에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악한 영들과 상대하기 때문이다. 복음의 신발과 믿음의 방패를 준비하지 않으면 종말에 마귀에게 당할 수 있다. 에베소서를 통해서 종말에 복음으로 무장하여 사탄과 싸워서 승리하는 성도가 되자.

말세를 사는 삶의 지혜(엡6:10-17)

하나님은 항상 말세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종말의 때가 있었습니다. 노아 당시에도 종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포악해져 가고 하나님의 믿음에서 떠나가니 심판하기로 작정했습니다. 하나님은 종말의 때에 항상 남은 자를 구원하십니다. 노아 때는 노아 가족 8명을 구원하였습니다. 노아에게 말세를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준비는 방주를 짓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선택받은 자에게 나타나셔서 피할 길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방주를 만들어 홍수 심판 때에 방주 안에 들어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노아를 비웃었습니다. 방주를 짓는 꼴이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나가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비웃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아가 방주를 만든 것은 옳은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8가족 외에는 홍수에 살아남은 사람이 없습니다.

에베소서 6장 헬라어 원어성경 설교말씀

또 종말의 심판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롯은 소돔에 살고 있었습니다. 롯은 아브라함과 헤어지고 소돔까지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 소돔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도시였습니다. 이곳을 심판하기로 작정하시고 하나님은 천사를 보냈습니다. 롯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성경은 롯을 의인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의로운 롯을 구원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유황 불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때도 남은 자 롯을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럼 지금은 어떤가요? 지금도 마지막 종말입니다. 우리는 종말의 시대를 살면서 신앙을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은 마지막 때에 구름 타고 이 땅에 재림하신다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믿음과 구원입니다.

엡6: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0 Τοῦ λοιποῦ, ἐνδυναμοῦσθε ἐν κυρίῳ καὶ ἐν τῷ κράτει τῆς ἰσχύος αὐτοῦ.

투 로이푸 엔뒤나무스데 엔 퀴리오 카이 엔 토 크라테이 테스 이스퀴오스 아우투

사도바울은 에베소 성도에게 권면합니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라고 말합니다.

‘강건하여지고’ ἐνδυναμοῦσθε(엔뒤나무스데 1743 동사, 명령법, 현재, 수동태, 복수, 2인칭) 견고하여지다, 강건하여지다, 힘을 얻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육으로 강건하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가능합니다. 반대로 주님 밖에 있으면 힘도 없고 능력도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견고해지기 위해서는 항상 주님 안에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힘을 얻고 믿음이 견고 해야 될 것을 말합니다. 명령법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실 때까지 계속해서 우리는 주님 안에서 믿음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현재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내가 내 믿음을 세우고 싶다고 해서 세워지지 않습니다. 내가 힘을 얻고 강건하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내가 영육으로 강건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며 은혜라고 말합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믿음이 좋고 영적으로 은혜를 받고 육적으로 건강하다고 해서 교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엡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1 ἐνδύσασθε τὴν πανοπλίαν τοῦ θεοῦ πρὸς τὸ δύνασθαι ὑμᾶς στῆναι πρὸς τὰς μεθοδείας τοῦ διαβόλου

엔뒤사스데 텐 파노플리안 투 데우 프로스 토 뒤나스다이 휘마스 스테나이 프로스 타스 메도데이아스 투 디아불루

마지막 종말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마귀의 간계를 대적하는 일입니다.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가룟 유다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지 못했기 때문에 마귀와 대적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마귀에게 져서 마귀가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집어넣었습니다.

‘입으라’ ἐνδύσασθε (엔뒤사스데 1746 동사, 명령법, 과거, 중간태, 복수, 2인칭) 옷을 입히다, 옷을 입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마귀의 미혹을 능히 대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옷은 내가 입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입혀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 전신 갑주는 반드시 입어야 합니다. 명령법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반드시 하나님이 옷 입혀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이 옷을 입으라고 하는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이미 나에게 입혀 주실 전신 갑주를 준비해 놓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과거 시제를 사용합니다. 그 옷을 입은 사람은 마귀와 대적하여 싸울 수 있습니다. 중간태는 하나님께서 옷을 입혀 주시니 자신의 옷으로 취함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지었을 때 무화과 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가죽옷을 지어서 준비해 놓으시고 입혀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언제 우리가 입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순간 입었습니다.

신구약 헬라어 히브리어 원어성경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2 ὅτι οὐκ ἔστιν ἡμῖν ἡ πάλη πρὸς αἷμα καὶ σάρκα, ἀλλὰ πρὸς τὰς ἀρχάς, πρὸς τὰς ἐξουσίας, πρὸς τοὺς κοσμοκράτορας τοῦ σκότους τούτου, πρὸς τὰ πνευματικὰ τῆς πονηρίας ἐν τοῖς ἐπουρανίοις.

호티 우크 에스틴 헤민 헤 팔레 프로스 하이마 카이 사르카 알라 프로스 타스 아르카스 프로스 타스 엑수시아스 프로스 투스 코스모크라토라스 투 스코투스 투투 프로스 타 프뉴마티카 테스 포네리아스 엔 토이스 에푸라니오이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과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의 존재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악한 영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죽이려고 노리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옷을 입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기바랍니다.

엡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3 διὰ τοῦτο ἀναλάβετε τὴν πανοπλίαν τοῦ θεοῦ, ἵνα δυνηθῆτε ἀντιστῆναι ἐν τῇ ἡμέρᾳ τῇ πονηρᾷ καὶ ἅπαντα κατεργασάμενοι στῆναι.

디아 투토 아날라베테 텐 파노플리안 투 데우 히나 뒤네데테 안티스테나이 엔 테 헤메라 테 포네라 카이 하판타 카테르가사메노이 스테나이

하나님은 이번에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굳건히 서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취하라’ ἀναλάβετε(아날라베테 353 동사, 명령법, 과거, 능동태, 복수, 2인칭) 집어 올리다, 취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전신 갑주를 이제는 취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은 먼저 구원의 은혜로 옷 입혀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전신 갑주를 내 것으로 들어서 취해야 합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전신 갑주만 입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칼과 방패를 내 것으로 취하여 악한 영들과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나의 것으로 전신 갑주를 취해야 할 것을 말합니다. 명령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과거 시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신 갑주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할 것을 이미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내 앞에 펼쳐 놓고 네가 스스로 칼과 방패와 투구를 취하여 입으라고 말합니다. 능동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성화는 쌍방적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았어도 내가 그것을 내 것으로 취해야 내 것이 됩니다. 내가 취하지 않으면 그것은 평생 가도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과 성화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전신 갑주를 내 것으로 취해야 만이 악한 영들과 상대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이것을 취하지 않으면 악한 영들 앞에서 싸울 수가 없습니다.

엡6: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4 στῆτε οὖν περιζωσάμενοι τὴν ὀσφὺν ὑμῶν ἐν ἀληθείᾳ καὶ ἐνδυσάμενοι τὸν θώρακα τῆς δικαιοσύνης

스테테 운 페리조사메노이 텐 오스퓐 휘몬 엔 알레데이아 카이 엔뒤사메노이 톤 도라카 테스 디카이오쉬네스

구원의 전신 갑주를 취하기 위해서는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의의 호심경을 붙여야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 복음이 없으면 안 됩니다. 복음의 진리로 허리띠를 띠어야 합니다. 그 당시 옷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옷이었습니다. 이 상태로는 전쟁에 나가서 싸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옷을 잡아매는 띠가 필요했습니다. 우리도 마귀와 싸우기 위해서는 거추장스럽게 하면 안 됩니다. 간결하게 정리를 하고 나가서 싸워야 합니다. 군인이 전쟁터에 나가는데 집안 사정 때문에 사업 때문에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면 전쟁에 전념할 수가 없습니다.

적들과 싸우는 생사를 오가는 곳에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마귀들과 싸워서 승리해야 합니다. 가슴에는 의로운 호심경을 붙이라고 했습니다. 심장과 폐를 보호하는 장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마귀와 싸울 때 능력이 나갑니다. 마귀는 나의 약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약점을 파고 들어옵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살지 않으면서 거룩을 외친다면 마귀는 절대 수긍하지 않습니다. 말에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호심경을 붙이라고 말씀합니다.

엡6: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5 καὶ ὑποδησάμενοι τοὺς πόδας ἐν ἑτοιμασίᾳ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 τῆς εἰρήνης,

카이 휘포데사메노이 투스 포다스 엔 헤토이마시아 투 유앙겔리우 테스 에이레네스

우리는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신발을 신어야 합니다. 나의 추악한 신은 벗어야 합니다. 이것으로는 마귀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출3: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나님은 호렙산에서 모세가 다가왔을 때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합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죄악으로 돌아다녔던 신발은 신을 수가 없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추악한 죄악의 발로 돌아다녔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 거룩한 땅에는 그 신발을 신고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그 신발을 신고 들어온다면 하나님은 모세를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어떤 신발을 신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평안의 복음의 신발을 신고 들어가야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신발을 신고 마귀와 싸우러 전쟁터에 나가야 합니다.

엡6: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6 ἐν πᾶσιν ἀναλαβόντες τὸν θυρεὸν τῆς πίστεως, ἐν ᾧ δυνήσεσθε πάντα τὰ βέλη τοῦ πονηροῦ [τὰ] πεπυρωμένα σβέσαι

엔 파신 아날라본테스 톤 뒤레온 테스 피스테오스 엔 호 뒤네세스데 판타 타 벨레 투 포네루 타 페퀴로메나 스베사이

누가복음 17장 헬라어 원어성경 설교말씀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믿음의 방패입니다. 신발을 신었다면 이제는 방어할 수 있는 방패를 가지라고 말합니다. 마귀와 싸울 때 중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마귀와 싸워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고대 근동의 전쟁은 나타티 전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전쟁은 아무리 적군이 많아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나타티는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너에게 적군을 주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나가면 승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적군을 우리의 손에 붙여주시지 않았는데 나가서 싸우면 지게 됩니다. 그 전투가 아이 성 전투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인간의 생각으로 작은 성이니까 쉽게 보고 쳐들어갔다가 망신만 당하고 왔습니다. 여리고 성을 함락했기 때문에 교만했던 것입니다. 여리고 성은 하나님께서 나타티로 주셨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나에게 믿음의 방패가 있으면 악한 자들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시켜 버립니다.

엡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7 καὶ τὴν περικεφαλαίαν τοῦ σωτηρίου δέξασθε καὶ τὴν μάχαιραν τοῦ πνεύματος, ὅ ἐστιν ῥῆμα θεοῦ.

카이 텐 페리케팔라이안 투 소테리우 덱사스데 카이 텐 마카이란 투 프뉴마토스 호 에스틴 레마 데우

마지막으로 우리가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입니다. 투구는 머리를 보호합니다. 이것은 사상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사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로 덮여 있어야 합니다. 행위의 의로 덮여 있으면 악한 영들에게 패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검을 가져야 적들과 싸울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헬라어 원어성경 설교말씀

‘말씀’ (레마 4487) 말씀이며 (레오 4483) 말하다, 흐르다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우리가 말씀이라는 단어가 (로고스 3056) 말씀이 있습니다. 레마는 말을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의미한다면 로고스도 말을 하는 것이지만 기록된 말씀을 의미합니다. 이 두 가지를 비교했을 때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입으로 선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복음의 말씀을 가져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도 레마의 복음 선포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예수님의 이름이 능력입니다.

우리가 말세를 살아가면서 준비해야 할 것은 구원의 전신 갑주입니다. 이것을 준비하지 않으면 주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우리는 심판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의 투구도 쓰고 있지 않다면 구원받은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의의 흉배를 달고 있지 않다면 거룩한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진리의 허리띠를 띠지 못했다는 것은 예수님의 의가 나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평안의 신발을 신지 않고 있는 것은 죄악의 발로 이 세상을 누비고 다니면서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서 제사장의 위임식 제사를 할 때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에 피를 묻히게 됩니다. 세상에서 돌아다녔던 발을 속죄하는 의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일을 전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함의 은혜를 받아야 함을 말합니다. 우리도 주님의 피로 속죄를 받아야 합니다. 방패가 없다는 것은 믿음이 없는 성도입니다. 마지막 우리는 입술에서 선포하는 레마의 성령의 검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으로 악한 영을 찌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전신 갑주를 입고 믿음 생활을 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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