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5장 설교 말씀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었다. 땅 값을 감추었다가 죽었다. 초대 교회는 서로가 나누어 사용했다. 복음이 전파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탐욕을 부리다가 결국 하나님께 심판받았다.
Ⅰ.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5:1-11
본 장은 우울한 사건으로 시작된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모든 교회는 최상의 상태에서 예외를 갖게 된다. 제자들은 모두 대단히 선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위선자가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집단에도 선과 악이 혼합되어 있다. 가라지는 추수 때까지 알곡과 함께 자랄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부자 청년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은 일을 완전하게 행하였다. 그들은 갖고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도 위선의 껍데기가 있음을 드러났다. 지금까지 사도들이 보여준 표적과 기적은 자비의 기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사랑이신 동시에 두려운 분이심을 심판을 통해 나타내실 것이다.
1.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의 죄(2)
(1)그들은 진실로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없는데도 탁월한 제자가 되고자 하는 야망을 가졌었다. 소유를 팔아 …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2,3절). 그들은 신자들의 지도자 뒤에 가리운 것처럼 보이고 싶지가 않았다. 위선자들은 한 가지 일에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 가능할 지 모르나 그것으로 다른 일에서는 자신에게 봉사하고자 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리스도 신앙을 고백하고 그것으로 겉으로는 훌륭한 연기를 연출하였으나 그들은 신앙고백만으로 철저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으로는 믿지 못하면서 겉으로만 화려한 신앙고백을 하는 것은 종종 치명적인 결과에 이르게 한다. (2)그들은 세상의 재물을 탐하였고 하나님과 그의 섭리는 불신하였다. 소유를 팔아(2절). 솟아오르는 열정으로 판 값을 모두 경건한 용도에 봉헌하리라고 생각했지만 돈이 수중에 들어오자 마음이 변했다. 그래서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었다(2절). 왜냐하면 그들은 돈을 사랑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쓸 것을 언제나 준비해 주시겠다는 말씀을 믿지 않고 돈의 일부를 감추는 현명한 듯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재난에 대비하려 했다.
마치 그들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 풍족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만약 그들이 철저히 세상적 이었다면 그들의 소유를 팔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철저한 기독교인이었다면 돈의 일부를 감추지 않았을 것이다. (3)그들은 사도들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들이 판 값의 전부를 가져온 것처럼 믿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마치 그것이 전부인 양 얼마나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
2. 아나니아에 대한 정죄(3,4)
아나니아에 대한 정죄는 이 죄에 대한 저주이며 동시에 형의 집행이었다. 그가 그 돈을 베드로에게 가져왔을 때 베드로는 그를 책망하였다. 그는 단호하게 죄에 대한 책임 추궁을 하였고 그 죄의 본색을 보여주었다(3,4절). 베드로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성령은 사실을 밝혀냈을 뿐만 아니라, 아나니아의 마음 밑바닥에 있던 불신앙의 본질도 밝혀내었던 것이다. 그것이 갑작스런 유혹에 의한 연약함의 죄라면 베드로는 그를 집으로 보내서 그들의 어리석음을 회개하게 했을 것이다.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다음의 4가지 사실을 지적해 주었다.
[1]죄의 근원: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사단은 아나니아에게 죄를 생각나게 하고 머리 속에 주입했을 뿐만 아니라 죄악을 행하도록 이끌었다.
[2]죄 자체:네가 성령을 속이고. 사단이 그의 마음에 가득차지 않았다면 그러한 죄는 저지르지 않았을 그런 가증적 죄였다. ‘네가 성령을 속이고’란 귀절은 4절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라고 되풀이 설명되고 있다. 아나니아는 거짓말을 했다. 그는 자신의 소유물을 팔았으며, 이것이 그 판 돈이라고 베드로에게 말했다. 그는 재산 전부를 바친 사람들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고 인정을 받고 싶어했고 그렇게 한 것에 대해 칭찬을 받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가난한 사람에 대한 구제사업에 있어 교만한 마음과 사람들의 박수갈채에 유혹되어 비열한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들은 결코 하지도 않을 일을 약속한다. 또는 아나니아와 같이 거짓말하는 죄처럼 실제보다 선행을 과장한다. 그는 성령께 이러한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그 돈은 사도들에게 라기보다는 그들 안에 성령에게 가져간 것이었다. 따라서 베드로는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라고 말했던 것이다(4절).
[3]가중된 죄: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4절). 첫째, “너는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출 유혹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 땅은 팔기 전에도 네 것이었고 그것을 팔았을 때에도 너의 임의대로 그 돈을 처분할 수 있었다.” 혹은 둘째, “너는 네 땅을 팔 필요도 없었고 그 돈을 사도들의 발 아래 가져올 필요도 없었다. 네가 원한다면 너는 돈으로 가지고 있든지 땅으로 가지고 있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맹세하고 나서 지키지 않는 것보다 맹세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반쪽 선행을 하기 보다는 선행을 하는 척하지 않는 것이 낫다. “땅을 팔았을 때 너의 임의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맹세된 것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림에 있어 일부만 드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사단은 가짜 어미처럼 어린애를 나누어 가지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전한 전체를 받으시든지 아니면 하나도 갖지 않으신다.
[4]이 모든 죄는 그에게 책임이 있다.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4절). 베드로는 아나니아의 마음속에서 죄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것은 우리의 죄를 마귀에게 전가시킨다고 해서 우리의 죄가 경감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마귀는 유혹한 뿐 강요하지는 못한다. 철저한 책임성이 강조되어 있으나 그것은 정당한 것이다.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우리가 하나님을 속이려 한다면 결국은 우리 자신의 영혼을 속이는 운명에 놓이게 될 것이다.
3. 아나니아의 죽음과 장례(5,6)
[1]그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아나니아는 이 말을 듣고 아무 변명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5절). 사도들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보라. 복음이 이롭다 인정하는 삶이 있는가 하면 복음의 저주를 받는 사람이 있다. 아나니아에 대한 처벌이 가혹하게 보일지 모르나 그것은 정당했다고 우리는 확신한다. 왜냐하면 아나니아는 마치 성령을 속일 수 있는 양, 성령을 모욕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그와 같은 짓을 못하게 막기 위한 방책이었다. 그 자신도 주님을 부인하였던 베드로가 이 일을 행한 것은 베드로 자신에게 한 잘못에 분노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왜냐면 자기에게 한 죄라면 능히 용서하였을 것이고, 이 범죄자로 회개하도록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베드로 안에 계신 성령이 하신 일이었다. 왜냐면 성령이 모욕을 당하신 것이었으므로 성령께서 직접 처벌하신 것이다.
[2]유대 관습에 따라 그는 즉시 장례 되었다.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더라(6절).
4. 아나니아의 처 삽바리가 받은 처벌(7-11)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 오니(7절).
[1]베드로는 그녀에게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8절)고 질문함으로써 그녀도 그녀 남편의 죄를 함께 나누어 가졌음을 밝혔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돈 전부입니다. 더 이상은 없습니다.” 아나니아와 그의 처는 미리 같은 얘기를 하기로 합의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비밀이 지켜질 줄로 알았고 그래서 신용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서로 친한 사람들이 서로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2]그녀도 그녀 남편의 운명에 처해지리라는 선고가 내려졌다(9절).
첫째, 그녀의 죄가 밝혀졌다.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베드로는 그녀에게 선고를 내리기 전에 그녀의 죄가 무엇인지 보여 주었다. 그들은 성령을 시험했던 것이다. 그들은 사도들이 방언의 은사를 받은 것을 알고 있었으나 영을 분별하는 은사는 받았다고 생각지 않았다. 죄를 짓고도 방심하여 벌받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성령을 시험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함께 하기로 공모하였다. 선한 일에 대립되고 악행에 일치되는 경우가 부부간에 있게 될 때가 더 나쁜지, 다른 인간 관계에서 일치될 때가 더 나쁜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둘째, 그녀의 운명이 선고되었다.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3]선고는 곧 집행되었다.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간지라(10절). 하나님은 어떤 죄인은 오래 참고 어떤 죄인은 단번에 결판을 내신다. 의심할 바 없이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으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설명해 주시지 않는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처럼 어떤 비열한 죄에 대한 처벌이라고는 볼 수 없는 갑작스런 죽음이 있다. 갑작스럽게 죽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상 가는 죄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갑자기 죽는다는 것이 그들에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언제나 죽음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그들의 죽음은 분명히 심판의 결과였다. 어떤 사람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 후의 상태에 대해서 질문한다. 그리고 육의 파괴를 ‘주 예수의 날에 영혼이 구원받게 하심’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비밀은 우리에게 속해 있지 않다.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 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니.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가져온 돈은 어찌되었는지 궁금해한다. 그들이 가져온 돈은 가져온 사람들로 인해 더럽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감춘 돈은 그것을 감춘 사람들로 인해 더럽혀졌다.
5. 이 일이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1)
이것은 이 이야기 중간에 언급되어 있다.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5절). 또한 그것이 반복해서 언급된다.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11절). 교회에 가입된 사람들이 하나님과 그의 심판에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그것이 거룩한 기쁨을 억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떨리는 기쁨으로 진지해져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다.
Ⅱ. 복음의 전파 5:12-16
1. 기적에 대한 설명(12)
본문에는 사도들이 행한 기적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12절). 하나님은 벌하시기 위해 그의 자비의 자리를 떠나셨으나 곧 그 자리로 되돌아가셨다. 그들이 행한 기적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역을 행함을 입증하였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명확히 드러내는 징표였다.
2. 기적의 효과(12-16)
우리는 본문에서 이러한 기적들의 효과를 알 수 있다.
[1]교회가 서로 연합되었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12절). 그들은 성전의 솔로몬 행각으로 모였다. 성전에서 사고 파는 것도 허락되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전도자나 병고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공중 예배에서 만났다. 그들은 거기서 한마음이 되었다. 심판으로 위선자를 가려냄으로써 신실한 신도들은 서로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다.
[2]사도들은 사람들로부터 대단한 존경을 받았다.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3절). 비록 제사장들이 백성들로 하여금 업신여기게 했을지라도 그들에 대한 칭송을 막지는 못했다. 사도들은 칭송을 받으려 하지 않았지만 백성들은 그들을 칭송했다. 왜냐하면 스스로 겸손한 자들은 높임을 받으며 오직 하나님만을 영예롭게 하는 자들은 명예를 받는다.
[3]교인 수가 증가했다(14절). 믿고 주께로 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그들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를 보고 단념하지 않고 그러한 엄격한 규율이 지켜지는 사회에 자진해 나아왔으나 주님과 연합할 사람들을 위한 자리는 아직도 많다. 남자와 마찬가지로 여자도 회개하였음을 주목하자.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실 동안 그를 따랐던 사람들 가운데에서처럼 그가 하늘로 승천하신 후에 믿음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에도 선한 여인들이 있었음은 아주 주목할 만한 일이다.
[4]사도들은 병자들을 많이 치료하였으며 그들 모두를 치료해 줌으로써 상당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남녀의 큰 무리더라 병든 사람들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우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13-16절). 그리고 그림자가 스쳤을 때에는 그리스도의 옷깃만을 만지고도 치유 받은 여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보다 더 큰 일을 행할 수 있으니라’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기적이 베드로의 그림자에 의해서 일어났다면 바울의 몸에서 나온 손수건에 의해서 기적이 일어났던 것처럼(행 19:12), 다른 사도들에 의해서도 기적이 일어났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농촌에서는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이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을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었다(16절). 그리하여 그 병든 몸과 마음이 모두 온전해졌다. 따라서 이러한 치유의 활동을 통하여 사도들은 그들이 가르친 교리의 기원이 하늘에 있음을 백성들에게 확신시키고 그들의 가르침을 더욱 신봉하게 만드는 기회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Ⅲ. 천사의 도움으로 사도들이 풀려남 5:17-25
성공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선한 일을 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오히려 반대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사도들이 아무런 제지도 당하지 않고 복음전도와 치유를 계속했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 되었을 것이다. 본문에서 우리는 이 선한 임무를 방해하는 지옥의 악한 세력과 그것을 격려해 주는 하늘의 은총의 힘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보게 된다.
1. 사도들이 옥에 갇힘(17,18)
제사장들은 사도들에 대하여 격분하여 그들을 옥에 가두었다(17,18절). (1)사도들의 적과 핍박자는 누구인가.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가 주모자였다. 그리고 대제사장과 솔선하여 합세한 사람들은 사두개파였다. 그들은 특별히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적의를 품고 있었는데 복음은 그들이 부인했던 죽은 자의 부활과 내세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2)그들은 사도들에게 악랄한 태도를 취하여 극도로 격분하였다. 그들을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며 병을 치료하고 또한 사람들이 사도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병자를 데리고 와서 치료받는 것을 보고 마음에 독기가 가득하여 참지 못하고 흥분하여 일어났다.
(3)그들이 사도들에게 어떻게 대적했는가(18절). 그들은 사도들을 잡아다가 가장 흉악한 범인들을 가두는 옥에 가두었다. 첫째, 그들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즉 그들은 사도들을 옥에 가두어 둠으로써 사도들이 임무를 계속하지 못하게 막으려 했던 것이다. 둘째, 사도들을 폭력으로 위협하여 그들의 일을 그만두게 하기 위함이었다. 지난 번에는 사도들을 그들 앞에 불러 세워놓고 단지 위협만 하였다(4:21). 그러나 이번에는 그들을 옥에 가두어 겁먹게 하려 하였다. 셋째, 사도들이 치욕을 당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사도들을 옥에 가두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2. 천사를 보내심(19,20)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시어 그들을 감옥에서 풀어주셨다. 어둠의 세력이 그들과 대적하여 싸우지만 빛의 아버지는 그들을 위하여 싸우신다. 주님은 그의 증인들과 옹호자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반드시 그들 곁에 계실 것이다.
[1]사도들이 감옥에서 풀려났다(19절).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주의 사자는 지킨 사람들이 문서 섰으되 죄인들을 도망시켰다(23절). 그 옥이 아무리 어둡고 견고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안에 있는 당신의 백성들을 찾아내실 수 있으며 그들을 이끌어 내실 수도 있다.
[2]그들은 그들의 임무를 계속할 책임을 가졌다. 천사들은 그들에게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20절)라고 명령했다. 그들이 기적적으로 자유롭게 되었을 때 그들은 더욱더 담대하게 그들의 임무를 수행해야만 했다. 질병에서 회복되고 고통에서 벗어남은 우리가 우리 삶의 위로를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삶의 봉사로 명예롭게 되셔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은 성전에 서서 말하라고 명령받았다. 사람들은 한적한 곳에서 말씀 전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니다. “성전에서 전하라. 왜냐하면 그곳이 집회처이며 너희 아버지의 집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대중집회에서 설교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한 그리스도도 복음의 전도자는 구석으로 물러나 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백성에게 말하라고 명령받았다. 그들은 배우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며 그들의 영혼은 위대한 자의 영혼만큼이나 그리스도에게 귀중한 것이다. 말씀을 전할 때에는 가서 서서 말하라. 이런 방법은 그들이 공식적으로 말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담대하고 결단력 있게 전해야 된다는 것과 관련된다. 그들은 이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받았다. 너희 자신이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것과 동일한 위로의 말씀을 세상에 가서 전하라.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도 같은 위로를 받게 하라. 또한 현세적인 지상의 생명이 그 이름을 황폐케 하지 못하는 하늘의 생명, 신적인 생명을 특히 강조하라. 복음은 생명과 죽음에 관계된 것이며 따라서 목회자는 그것을 설교해야만 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들어야만 한다. 그들은 이 생명의 말씀을 말해야만 하며 조금도 감추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증인은 모두 진리를 말할 것을 서원해야 한다.
3. 임무를 계속 수행함(21)
저희가 듣고 새벽에…들어가서 가르치더니(21절). 이러한 생생한 명령은 그들에게 대단한 만족을 주었다. 천사가 그들에게 성전에서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했으므로 그들의 길은 분명해졌다. 그래서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모험을 강행하였으며, 성전으로 들어갔을 그 때 그들의 얼굴에는 두려운 빛이 조금도 없었다. 만일 우리가 주어진 임무에 만족할 수 있다면 우리가 할 일은 이에 전력하는 것이며 그 때 우리는 기쁘게 안심하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즉시 명령을 수행하였다. 그들은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그들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들을 해칠까 두려워하지 않았다. 복음의 모든 보화가 그들의 수중에 있었다. 그들이 이제 침묵한다면 복음의 샘은 막혀 버리고 모든 임무는 땅에 떨어져 중지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할 기회를 주셨을 때 비록 인간 권세의 공포와 위협 속에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기회를 잃지 말고 위험을 무릅쓰고 나아가야 한다.
4. 계속되는 기소(21-25)
대제사장과 그 무리들은 기소를 계속했다(21절). 그들은 대규모의 긴급 공회를 소집하였다. 그것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소집하기 위해서였다.
[1]그들은 모든 사람들을 다 모으고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전도자들을 분쇄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었다. 지난번에 그들은 제자들을 구금하고 대제사장의 일가 앞에서 그들을 심문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모든 원로들을 다 불러모았다. 따라서 이러한 섭리로써 하나님은 그 적대자들의 혼란과 그들에 대적하는 사도들의 증언이 더욱 공개되고, 그 법정에서가 아니면 복음을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정하셨던 것이다.
[2]그들은 낙담했고 얼굴은 수치로 일그러졌다. 관원들은 죄인들이 감옥에 없다고 즉시 보고했다. 첫째, 관원들이 와서 감옥에는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22,23절). 관원들의 보고에 의하면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이 문에 섰으되 문을 열고 본 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천사들이 어떤 방법으로 그들을 이끌어 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들은 사라졌다. 우리는 모르지만 주님은 경건한 자들을 어떻게 시험에서 건지며 갇힌 자들을 어떻게 석방시켜야 하는지를 알고 계신다. 본문에서와 같이 그가 필요로 하실 때 그는 행하신다(24절).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의혹에 빠졌다.
그리하여 ‘이 일이 어찌될까’하고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들은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그들은 살아오는 동안 이처럼 낙심한 적이 결코 없었다. 그리스도를 막고 방해하려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와 같이 된다. 둘째, 부분적으로 그들의 의혹은 풀러나갔다. 그리고 그들의 근심은 다른 보고자로 인해 더욱 커졌다. 그는 바로 그 죄수들이 성전에서 설교하고 있더라고 전했던 것이다.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들을 가르치더이다(25절). 무엇보다도 이것은 그들을 당황하게 하였다. 보통 죄수들은 감옥을 탈출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들이 탈출하고 나서 그것을 공언할 용기를 가진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Ⅳ. 사도들에 대한 심문 5:26-42
본문에서 우리는 사도들이 백성들에게 전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과 공회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고난을 통하여 그들이 설교했을 때보다도 더 강한 하나님의 능력과 위력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1. 사도들이 두 번째 체포당함(27)
사도들은 두 번째로 체포되었다. (1)이 때에는 폭력이 사용되지 않았다. 우리는 성전에 대한 존경심과 그들이 사도들을 때린다면 아나니아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큰 폭력의 억제 요인은 백성들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백성들을 사도들을 존경했기 때문에 그들이 사도들을 함부로 다룬다면 돌에 맞아 죽을까 염려했던 것이다. (2)그러나 그들은 사도들을 핍박하려는 자들에게 사도들을 데려왔다(27절). 그들은 저희를 끌어다 공회 앞에 세웠다. 이 사실은 악한 일과 악한 자에게 폭력을 행해야 되는 권력이 선한 자에게도 폭력을 행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2. 그들의 심문(28)
대제사장은 그들이 체포된 이유를 설명하였다(28절). (1)그들은 당국의 명령을 거역했다(28절).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명령을 지키지 않았도다.” 물론 그들은 그렇게 명령했었다. 그러나 동시에 베드로는 하나님의 권위는 그들의 명령보다 우위에 있으며 하나님의 명령을 먼저 따라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2)그들은 거짓 교리를 백성들에게 유포시켰다.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공공의 안녕을 파괴시켰다” (3)그들은 하나님과 인간 앞에 정부를 가증한 것으로 만들고 있었으므로 이는 그들이 정부에 대해 악의를 품은 것이다.
“너희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되고 사람 앞에서는 수치가 되도록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우리는 그렇게 뻔뻔스럽게 악한 일을 하고자 한 자들이 나중에는 그것에 대해서 듣는 것조차 회피하려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은 열광적으로 그리스도를 핍박할 때에는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소서’하고 대담하게 외쳤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을 대단한 수치로 여기고 있다.
3. 사도들의 항변(29)
그들이 문책에 대하여 베드로와 사도들은 모두 똑같이 대답하였다. 그들은 한 분이신 성령이 그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려준 대로 말했던 것이다.
[1]사도들은 그들의 명령 불복종에 대하여 그들의 옳음을 변호하였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29절).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르치라고 명령하셨었고 따라서 비록 대제사장이 금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렇게 해야만 했다. 자기들의 명령에 불복하는 자를 처벌하는 통치자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2]사도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온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한 것에 대해 자신들의 옳음을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만일 그로 인해 그들이 대제사장들에게 그리스도의 피를 전하게 되었다면 그들은 감사하였을 것이다.
1)사도들은 대제사장들이 예수께 행하였던 일들을 정면에서 폭로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30절). 사람들이 자기 잘못에 대해 책망 받기를 싫어하더라도 신실하게 그들의 잘못일 지적해 주어야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밝혀진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죄를 책망하는 것을 회피하는 일상적인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죄를 책망해야 할 직책에 있는 사람들은 세월이 약이다라는 말을 즐겨 사용해서는 안 된다.
2)사도들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이 예수를 어떻게 명예롭게 하였으며 그의 가르침을 핍박하는 것과 그것을 가르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옳은지 판단한 것을 종용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라고 칭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어떻게 명예롭게 하셨는지 살펴보자. ①하나님은 그를 살리셨다. “너희는 그를 죽게 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생명을 되돌려 주셨다. 그러니 하나님과 너희가 이 예수에 관하여 다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우리가 어느 편에서야 마땅하겠느냐?”
②하나님은 그를 오른 손으로 높이셨다. “너희는 그에게 치욕을 주었으나 하나님께서 명예의 왕관을 씌어 주셨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명예롭게 하신 분을 우리가 명예롭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다. ③하나님께서는 그를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다. 우리가 그를 우리의 임금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세주가 되실 수 없다. 우리가 그의 통치를 받지 않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의 구원과 치료를 기대할 수 없다. 신앙은 죄에 빠진 상태 그대로의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시는 온전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다.
④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고자 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사랑은 원칙적이고 우선적으로 그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왜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통치자들은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용서의 그 큰 축복을 주러 오신 분에게 반대하는가? 그러나 죄의 회개와 용서는 그들이 그 가치를 인정치도 않았고 필요하지도 않았던 축복이었다. 회개와 죄 사함은 동시적인 것이다. 회개가 있는 곳에 예외없이 죄 사함이 따른다. 한편 회개 없이는 죄 사함도 없다. 회개와 죄 사함을 주시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에게 회개가 주어졌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회개를 주시는 분으로 정하셨다. 변화된 새 마음은 그의 업적이며, 그의 희생으로 상한 심령이 회복된다. 그가 회개는 주시고 죄 사함을 주시지 않는다면 그는 스스로 자신의 업적을 포기하는 것이 될 것이다. ⑤이 모든 것이 잘 지켜졌다. 첫째, 사도들 자신에 의해서였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요, 너희가 우리에게 요구하듯이 우리가 침묵한다면 우리는 진리의 배신자가 될 것이다.” 소송을 심리할 때는 증인들이 침묵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데 그 소송의 결과가 그 증인들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였다. 성령도 그러하니라. 이는 하늘로부터 온 증인이다. 이 목적을 위해서 성령이 우리에게 주어졌으며 이 성령의 역사를 우리 마음대로 누를 수 없다. 그들로 하여금 신앙에 복종하게 하고 그 안에서 그들을 유능한 일꾼으로 만들기 위해서 신실한 성도들에게 임재하시는 성령은 기독교의 진리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된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자들에게 성령이 오심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그리스도께서 그에 복종하신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그리하여 그에게 대적하여 너희에게 복종해야 하는지 판단해 보라고 그들은 외칠 수 있었던 것이다.
4. 법정에 미친 영향(30-33)
사도들의 자기 변호가 법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확실히 그들이 제시한 정당한 이유는 죄인들을 결백케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재판관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격분하였다.
[1]그들은 분노로 충만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가 그들 앞에서 차근차근 폭로되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크게 노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와 같이 변증되는 것에 대해 광분하였다. 같은 목적에서 이러한 설교를 백성들에게 하였다면 그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아 자책과 슬픔에 잠겼을 것이다(행 2:37). 그런데 핍박자들은 분노로 마음이 찔렸던 것이다.
[2]그들은 사도들에게 악의를 품었다. 사도들의 숨을 끊어 놓기 전에는 어떤 방법으로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았기 때문에 ‘사도들을 없이 하고자’ 하였다. 사도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전과 마음의 평안을 가지고 그리스도께 대한 봉사를 계속하는 반면에, 그들의 핍박자는 끊임없는 혼란과 마음의 동요 속에서 스스로 괴로와하며 그리스도에 대한 반대를 계속했다.
5. 가말리엘의 충고(34-39)
이 때에 기말리엘이 일어나 충고하였다. 이 가말리엘은 바리새인의 학자이며 직책은 교법사였다. 바울이 그의 문하에서 배웠다(행 12:3). 그는 모든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는 자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온건한 사람이었으며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온건하고 자애로운 사람은 마땅히 존경을 받게 되는데 이는 세상에 불을 지르는 선동자를 제지하기 때문이다.
[1]그의 경고(35절):그는 공회에 필요한 경고를 하였다.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34,35절). 그는 이 경고를 강조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라고 그들을 불렀다. “너희는 이성으로 판단하는 자들이다. 너희는 계시로서 판단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다. 너희 자신을 조심하라”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자는 자기가 파 놓은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2]사례를 인용함(36절):그는 무리를 지어 선동하다가 결국 실패한 사람들의 경우를 두 가지 제시하였다. 이 사람들이 그 같은 사람들이라면 제풀에 꺾일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1)드다라는 자가 있어 스스로 자랑하였다. 36절에 드다에 관하여 그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사람이 약 4백이나 따랐으나 그의 자랑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죽임을 당하매 쫓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다 “이제 이 경우와 비교해 보자. 너희는 이 무리의 주모자인 예수를 죽였다. 그가 만약 사기꾼이요, 위선자라면, 그의 죽음은 그의 목적의 소멸이 될 것이다.”
2)’갈릴리의 유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37절). 첫째, 그가 일어난 것은 그후라고 되어 있는데 ‘그 외에도’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건들이 언제 일어났는지 단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마도 그 사건들은 아주 최근에 일어났으므로 그들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던 것 같다. 둘째, 본문에 보면 그의 시도도 실패하였다. 그도 망한즉 쫓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3]전반적인 문제에 대한 그의 의견(38,39절).
1)그들이 사도들을 핍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38절). 그가 이 말을 정책적으로 말한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어쨌든 사도들은 외적인 무력으로 무슨 일을 당하지는 않았다. 그들을 대적하는 데 있어 왜 외적인 무력이 사용되겠는가? 혹은 그것은 온유하고 사려 깊은 정신에서 나온 말인지도 모른다. 혹은 하나님께서 그도 모르게 그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게 하셨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는 그 말속 에 그리스도의 종을 명예롭게 석방하시려는 초월적인 섭리가 들어 있음을 확신한다.
2)그들에게 이 문제를 섭리에 맡기자고 하였다. 결과를 기다려라.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38,39절). 사악하고 부도덕한 것은 분명히 탄압되어야 하지만 선한 것처럼 보여서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인지 인간에게서 난 것인지 의심스러울 대에는 내버려두고 운명에 맡기는 것이 상책이다. 그리스도는 칼이 아니라 진리의 힘으로 다스리기 때문이다.
첫째,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그것이 어리석고 우매한 자들의 소행이라면 그들은 스스로 기진 할 것이며 스스로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만일 이 사상과 소행이 간사하고 모사꾼인 인간의 것이라면 잠시만 내버려두면 그들의 속임수가 모든 사람에게 드러날 것이다. 섭리는 그것을 결코 묵인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그것은 무너질 것이요 시간이 조금만 있으면 그것은 스스로 무너질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무너뜨릴 필요가 없다. 권력의 불필요한 사용은 권력의 남용이다.
둘째, 이 사상과 소행이 하나님께로만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핍박할 수 있겠느냐? 너희가 그들을 없이하고자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그들과 대적하여 무익한 결과만 얻게 된다.”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아무리 핍박을 받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속한 것은 궁극적으로 전혀 정복당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 편에 신실하게 선 자들은 그것으로 위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흥할 것이며 쇠해질 수는 없다.
“너희 자신에게 위험한 시도가 될 것이다. 내버려두어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을 학대하고 증오하는 자들, 하나님의 신실한 사역자를 억압하고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대적하여 싸우는 것이다. 이것이 가말리엘의 충고였다. 우리는 이 말이 양심의 거리낌 때문에 핍박하는 자들에게 충분히 고려되기를 바란다.
6. 전반 문제에 대한 공회의 결정사항(40)
그리하여 그들이 가말리엘의 충고에 전적으로 따르지는 않았지만 사도들을 죽이려던 계획은 취소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분노를 폭발시키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 저희가 사도들을 채찍질하여. 그들을 악인처럼 매질하였고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게 하였다(41절). 그리하여 그들은 이제 사도들의 복음 전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백성들도 복음 듣기를 부끄러워하리라 생각하였다.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40절).
7. 사도들의 태도(41,42)
사도들은 놀라운 용기와 지조를 보였다. 저희가 … 공회 앞에 떠나니라. 그리고 그들은 한마디도 법정을 비난하지도 않았으며 다만 가말리엘이 언급했던 대로 ‘하나님께 그들의 사정을 의탁하였다.’
[1]고통을 기쁨으로 견딤(41절):사도들은 그들의 고난을 무한한 기쁨으로 견뎌냈다. 그러므로 공회 앞을 떠날 때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악행을 저지를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이 겪은 수치를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실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 그러하듯이 분개하기보다는 오히려 비통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수치를 당한 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한 것으로 여겼고 그들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널리 전파시키는 데 공헌을 하라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능욕 받은 일에 합당하게 여기진 것과 그리스도를 위하여 불명예스럽게 되는 명예를 얻는 것’을 기쁘게 여겼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치욕을 당하는 것이 진정한 승진이다.
그들은 그들이 첫 번째 전도 여행을 떠날 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수치 당함을 기뻐하였다(마 5:11,12). ‘너희를 욕하고 핍박할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들은 자신들이 고통당함을 기뻐하였다. 만일 우리가 선한 일에 치욕을 당하고도 잘 견뎌낼 수 있다면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게 해 주신 은총을 기뻐해야 한다.
[2]사명을 계속 수행함(42절):그들은 지치지 않고 근면하게 그들의 사명을 계속 수행하였다(42절). 그들은 말하지 말라고 명령받았다. 그러나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그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설교하였다. 그들은 공적으로는 성전에서, 사적으로는 각자의 집에서 말씀을 전했다. 비록 대적자들의 감시를 받는 성전이었지만 그들은 자기 집에만 머무르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 성전으로 갔다. 또한 그들은 성전을 사용할 자유가 있었지만 오두막집이라도 각 가정에서 설교하는 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았다. 그들의 설교 주제는 무엇이었는가? 예수는 그리스도라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전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만 전하였다. 이것은 제사장들에 대한 가장 큰 공박이 되는 가르침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마음대로 설교 주제를 바꿀 수 없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영광 받으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야말로 복음 전도자들의 영원한 임무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