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장 헬라어 원어성경 설교문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술절에 성령이 마가의 다락 방에 임했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습니다. 오순절을 통해서 초대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성령 강림을 통해서 구원받은 백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오순절의 첫 수확(행2:1-4)
하나님은 구약에서 여호와의 절기를 7개 만들었습니다. 성경 숫자 7은 완전과 성령의 임재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절기는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맥추절(칠칠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입니다. 여호와의 절기는 아니지만 성경에 등장하는 유대인의 절기는 부림절과 수전절(하누카)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가 절기라는 단어를 통해서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해 보겠습니다.
절기라는 단어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히브리어는 (모에드 4150) 정한 때, 장소, 모임, 계절이라는 뜻의 절기입니다. 절기는 계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절기는 봄 계절과 가을 계절에 치중되어 있습니다.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맥추절은 봄 계절에 있는 절기이고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은 가을 계절에 있는 절기입니다. 모에드의 절기는 정한 때와 장소와 모임이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만나 주시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신약에서 우리의 예배는 정한 때와 장소와 시간이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을 만나러 나와야 합니다. 이때 나오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시는 날도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정확하게 그 날짜를 모르지만 하나님 아버지가 정한 날짜와 시간과 장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준비하였다가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의 예배가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예배는 일생 가운데 딱 한 번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하나님을 이 시간 만나게 됩니다. 이것이 모에드의 절기입니다.
둘째는 히브리어는 (하그 2282) 축제, 순례 절기, 절기의 희생이며 히브리어 (하가그 2287) 절기를 지키다, 춤추다, 흔들거리다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그의 절기는 모에드의 절기에 모인 자들이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면서 기쁨의 축제가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신약의 예배는 기쁨이 있습니다. 찬양이 있고 말씀이 있고 교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으면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몸으로 찬양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하그의 절기에 기쁨으로 온몸을 통해서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입니다.
바로 춤을 추면서 기쁨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다윗은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때 기뻐서 춤을 추었습니다. 우리의 예배에 이런 기쁨의 찬양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모에드의 절기로 모였으니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하그로 올려 드려야 하겠습니다. 이번 맥추 절기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삶이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여호와의 절기에는 수확의 기쁨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영육으로 수확의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행2: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1 Καὶ ἐν τῷ συμπληροῦσθαι τὴν ἡμέραν τῆς πεντηκοστῆς ἦσαν πάντες ὁμοῦ ἐπὶ τὸ αὐτό.
카이 엔 토 쉼플레루스다이 텐 헤메란 테스 펜테코스테스 에산 판테스 호무 에피 토 아우토
신약에서 오순절은 구약에서 맥추절입니다. 맥추절은 유월절 주간 안식일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초실절은 첫 보릿단을 하나님께 드리는 날입니다. 이날을 기준으로 밀 추수로 끝나는 49일 다음 날이기 때문에 칠칠절이라고도 합니다. 오순절은 각 가정에서 밀을 수확하여 각 가정이 드리게 됩니다. 초실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첫 열매를 상징하는 절기였다면 오순절은 개인이 수확되는 절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개인에게 임했습니다. 절기마다 수확이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오순절을 통해서 성도를 수확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오순절’ πεντηκοστῆς(펜테코스테 4005 명사 소유격 여성 단수) 오순절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50이라는 숫자는 기쁨, 구원, 안식, 성령이라는 의미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여 개인마다 구원의 은혜와 안식과 기쁨이 충만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순절에 소유격을 사용했다는 것은 오순절을 통해서 한 자리에 모였던 자들에게 성령의 충만한 은혜가 넘칠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이 사람들이 정해진 장소에 모이지 않았다면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체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오순절은 모에드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일어났는데 이것이 하그의 역사입니다.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 때나 역사하지 않고 모이는 장소와 시간과 날짜를 통해서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모였더니’ ἦσαν(에이미 2258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복수 3인칭) ~이다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여호와의 절기 중에서 3대 절기를 지켰습니다.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순절에 디아스포라 되었던 유대인들이 오순절에 예루살렘으로 몰려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왔지만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은 사람은 오늘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 뿐입니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직설법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성령을 기다리기 위해서 실제로 한 곳에 모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미완료 시제는 성령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자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한 곳에 계속해서 모이고 있음을 말합니다. 이렇게 다 모이게 되면 성령의 역사는 시작합니다. 지금 우리의 예배도 미완료로 계속해서 모이고 있습니다. 예배 시작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모이게 됩니다. 능동태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던 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이고 있음을 말합니다. 억지로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성령을 사모하여 모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도 오기 싫은 것을 억지로 오면 은혜도 받지 못합니다. 성령을 사모하여 기쁨으로 나올 때 충만한 성령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행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2 καὶ ἐγένετο ἄφνω ἐκ τοῦ οὐρανοῦ ἦχος ὥσπερ φερομένης πνοῆς βιαίας καὶ ἐπλήρωσεν ὅλον τὸν οἶκον οὗ ἦσαν καθήμενοι
카이 에게네토 아프토 에크 투 우라누 에코스 호스페르 페로메네스 프노에스 비아이아스 카이 에플레로센 홀론 톤 오이콘 후 에산 카데메노이
사람들이 성령을 사모하여 한 자리에 모였을 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났습니다. 사람들이 앉아 있는 온 집에 바람이 가득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을 누가가 묘사하고 있습니다.
‘급하고’ φερομένης(페로 5342 동사 분사 현재 수동태 소유격 여성 단수) 가져오다, 운반하다라는 뜻입니다. 오순절에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령 하나님이 임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람과 같이 성령이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운반해 준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 오순절 성령의 충만한 역사로 교회가 탄생이 되었으며 성도의 수확의 열매가 있었습니다. 분사는 오순절에 모였던 사람들에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을 말합니다. 다른 장소에 있었다면 성령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현재 시제는 모였던 그 시점에 있었던 자들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것을 말합니다.
수동태는 성령 하나님이 바람 소리와 같이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성령 하나님은 오실 수밖에 없습니다. 오순절에 때를 맞추어 성령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소유격은 이 바람과 같이 급하게 운반된 것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성령의 충만한 은혜가 있었습니다. 한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이 성령을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도 성령님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여 왔으니 성령님의 은사를 받아 구원의 확증을 얻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행2: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3 καὶ ὤφθησαν αὐτοῖς διαμεριζόμεναι γλῶσσαι ὡσεὶ πυρὸς καὶ ἐκάθισεν ἐφ᾽ ἕνα ἕκαστον αὐτῶν,
카이 오프데산 아우토이스 디아메리조메나이 글롯사이 호세이 퓌로스 카이 에카디센 에프 헤나 헤카스톤 아우톤
성령 하나님이 임하니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였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였습니다. 초실절은 이스라엘 전체에서 보릿단을 드렸다면 맥추절은 모든 가정에서 드렸습니다. 이렇듯 오순절에 성령 하나님도 각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 위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ἐκάθισεν(카디조 2523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단수 3인칭) 앉다, 앉게하다라는 뜻입니다.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모여 있는 사람들이 모두 보았습니다. 이 성령의 역사가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습니다. 직설법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실제로 임한 것을 말합니다. 과거 시제는 성령이 임하는 시점은 현재인데 과거 시제를 사용했다는 것은 오순절에 성령이 이미 임할 것이 작정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승천하면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정되어 있었던 일입니다. 능동태는 성령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임재하여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지금도 성령 하나님은 성도에 각 사람에게 임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허락하여 주십니다.
행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4 καὶ ἐπλήσθησαν πάντες 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 καὶ ἤρξαντο λαλεῖν ἑτέραις γλώσσαις καθὼς τὸ πνεῦμα ἐδίδου ἀποφθέγγεσθαι αὐτοῖς.
카이 에플레스데산 판테스 프뉴마토스 하기우 카이 에륵산토 랄레인 헤테라이스 글롯사이스 카도스 토 프뉴마 에디두 아포드뎅게스다이 아우토이스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모든 사람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으면 성도가 된 것입니다. 성도는 새로운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세상의 언어가 아닌 하나님의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충만함을 받고’ ἐπλήσθησαν(플레도 4130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복수 3인칭) 가득차다, 충만하다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가 사람들에게 임했습니다. 직설법은 한자리에 모였던 사람들에게 실제로 성령의 충만한 은혜가 가득 채워진 것을 말합니다. 과거 시제는 오순절에 모인 사람들에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도록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을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되는 것이 없습니다. 수동태는 성령의 충만한 은혜의 주권자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때 인간은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지금도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허락해 주십니다.
막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7 σημεῖα δὲ τοῖς πιστεύσασιν ταῦτα παρακολουθήσει· ἐν τῷ ὀνόματί μου δαιμόνια ἐκβαλοῦσιν, γλώσσαις λαλήσουσιν καιναῖς,
세메이아 데 토이스 피스튜사신 타우타 파라콜루데세이 엔 토 오노마티 무 다이모니아 에크발루신 글롯사이스 랄레수신 카이나이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는데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백성은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언어로 말을 해야 합니다. 바로 새 방언입니다.
‘새’ καιναῖς(카이노스 2537) 새로운, 전혀 없는, 신기한, 전대미문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이 세상에 없는 전대미문의 새로운 방언을 하게 됩니다. 새로운 말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는 하늘의 언어입니다. 이 세상의 추악한 말을 버리고 성령님이 말씀하시는 새로운 언어를 우리가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삶에 불평불만과 원망의 소리가 사라지고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의 언어가 있어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는 맥추 절기를 통해서 아직 구원의 확신도 없이 신앙생활을 했다면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 구원의 확신을 얻어 하나님의 첫 수확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수확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얻은 성도라면 이 예배를 통해서 새 방언을 말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악한 세상의 언어를 사용했다면 이제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의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오늘도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고 성령의 충만한 은혜가 넘치게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