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7장 헬라어 원어성경 설교문은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라고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재림이 노아의 때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롯의 때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 불로 심판받을 때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세상을 돌아보면 안 됩니다. 쟁기를 붙잡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인의 자세(눅17:26-37)
세상의 시간이 계속해서 흘러갈수록 종말로 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마지막 때가 온다는 것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예언한 것들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마지막 남은 것은 주님의 재림입니다. 사람들이 재림이 어디 있느냐고 생각하여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땅에 반드시 구름 타고 오신다고 약속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신부라고 했습니다. 신부가 신랑 맞을 준비를 하지 않고 있으면 신랑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서 주님을 준비해야 합니다. 영적인 잠을 자고 있으면 인자가 도둑같이 임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인자의 임함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거룩한 신부의 삶을 살면서 마지막 주님의 날을 준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눅17: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6 καὶ καθὼς ἐγένετο ἐν ταῖς ἡμέραις Νῶε, οὕτως ἔσται καὶ ἐν ταῖς ἡμέραις τοῦ υἱοῦ τοῦ ἀνθρώπου
카이 카도스 에게네토 엔 타이스 헤메라이스 노에 후토스 에스타이 카이 엔 타이스 헤메라이스 투 휘우 투 안드로푸
예수님은 재림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똑같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노아 당시에 인간들이 너무나 타락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도 세상의 딸들을 취하여 결혼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은 홍수로 심판하려고 작정하셨습니다. 노아에게 나타나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셨고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를 만들게 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도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믿음의 방주를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은 마지막 날에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그때 믿음이 없는 자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눅17: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27 ἤσθιον, ἔπινον, ἐγάμουν, ἐγαμίζοντο, ἄχρι ἧς ἡμέρας εἰσῆλθεν Νῶε εἰς τὴν κιβωτὸν καὶ ἦλθεν ὁ κατακλυσμὸς καὶ ἀπώλεσεν πάντας.
에스디온 에피논 에가문 에가미존토 아크리 헤스 헤메라스 에이셀덴 노에 에이스 텐 키보톤 카이 엘덴 호 카타클뤼스모스 카이 아폴레센 판타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에 열중했습니다. 홍수가 나서 인간을 모두 멸망시켰습니다.
‘먹고’ ἤσθιον(에스디오 2068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복수 3인칭) 먹다라는 뜻입니다. 노아 때 모든 사람이 먹는 것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직설법은 실제로 영적인 것은 준비하지 않고 육적인 먹는 것에만 치중하면서 살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미완료 시제는 노아가 방주를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는 날까지 계속해서 육체의 먹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먹는 것이 넘쳐나니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면서 먹게 됩니다. 그러면서 영혼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영혼은 곤핍하여 굶주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찾지도 않고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지금도 노아의 때와 같습니다.
‘장가들고’ ἐγάμουν(가메오 1060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복수 3인칭) 결혼하다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장가가고 시집가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이것은 에둘러 말하면 육체의 성적인 것에만 신경 쓰고 영적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육체적인 쾌락에는 관심이 있는데 영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는 관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직설법은 시집가고 장가가서 결혼하는 일에만 노아 때에 실제로 관심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이런 것에만 관심이 있지 구원받는 일에는 점점 흥미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미완료 시제는 결혼하는 일에만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살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육적인 성적 쾌락만을 추구하지 교회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영적인 기쁨과 즐거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모든 것이 미완료 시제를 사용합니다. 이것을 볼 때 노아 때나 지금이나 육체의 쾌락과 정욕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지 영적인 복음을 전해 줄 때는 관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노아는 자신만 살기 위해서 방주를 짓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방주를 만들라고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노아를 미쳤다고 생각했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벧후2:5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노아는 열심히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도 만들고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의를 전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심판하시니 방주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방주를 만들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재림의 날에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홍수심판 때에 노아의 8가족만 살아남았습니다. 이렇게 마지막 때가 되면 구원받는 숫자가 적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주님의 재림을 믿음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눅17:28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8 ὁμοίως καθὼς ἐγένετο ἐν ταῖς ἡμέραις Λώτ· ἤσθιον, ἔπινον, ἠγόραζον, ἐπώλουν, ἐφύτευον, ᾠκοδόμουν
호모이오스 카도스 에게네토 엔 타이스 헤메라이스 로트 에스디온 에피논 에고라존 에폴룬 에퓌튜온 오코도문
예수님은 종말을 롯의 때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롯의 때도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지었습니다.
‘집을 짓더니’ ᾠκοδόμουν(오이코도메오 3618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복수 3인칭) 짓다, 세우다, 다시 세우다라는 뜻입니다. 롯의 때는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자신의 상업에 정신이 없었고 자신의 집을 짓는데 정신이 없었습니다. 노아 때보다 더 추가되고 있습니다. 직설법은 자신의 집을 넓히는데 실제로 열심을 냈다는 말입니다. 미완료 시제는 자신의 집을 더 넓고 아름답게 열심히 꾸몄다는 말입니다. 영혼이 살아가야 할 천국의 집에는 관심이 없고 이 세상에서 육체가 살아가는 집에만 관심을 가지면서 살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불이 떨어질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집에 대하여 관심을 더 갖게 되었습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넓은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육체의 집은 열심히 넓히고 아름답게 꾸미지만 영혼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성도는 육체의 집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영혼이 살아가야 할 천국의 집이 더 중요합니다. 천국은 영원히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속 사람의 집을 지어야 합니다. 겉 사람의 집은 이 땅에 100년 정도 살면 됩니다. 그러나 속 사람의 집은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 이 집을 짓지 않으면 결국 종말에 심판을 받아 지옥의 불 못으로 던져지게 됩니다.
눅17: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29 ᾗ δὲ ἡμέρᾳ ἐξῆλθεν Λὼτ ἀπὸ Σοδόμων, ἔβρεξεν πῦρ καὶ θεῖον ἀπ᾽ οὐρανοῦ καὶ ἀπώλεσεν πάντας.
헤 데 헤메라 엑셀덴 로트 아포 소도몬 에브렉센 퓌르 카이 데이온 아프 우라누 카이 아폴레센 판타스
하나님은 롯을 구원시켰습니다.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내려 그들을 멸망시켰습니다.
‘롯’ Λὼτ(로트 3876) 롯은 히브리어는 (루트 3874) 감싸다, 덮어 싸다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롯의 이름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롯을 감싸서 유황 불에 심판 받지 않고 구원해 주셨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롯에게 덮이니 롯은 심판을 받지 않았습니다.
벧후2: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하나님은 소돔에서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다고 말합니다. 롯은 소돔에서 의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덧입혀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롯을 보호하셨습니다. 우리도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의인입니다.
눅17:30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30 κατὰ τὰ αὐτὰ ἔσται ᾗ ἡμέρᾳ ὁ υἱὸς τοῦ ἀνθρώπου ἀποκαλύπτεται.
카타 타 아우타 에스타이 헤 헤메라 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 아포칼뤼프테타이
주님은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불이 내리는 것과 같은 심판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마지막 종말을 준비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지 않으면 준비할 수가 없습니다.
‘나타나는’ ἀποκαλύπτεται(아포칼륍토 601 동사 직설법 현재 수동태 단수 3인칭) 폭로하다, 덮개를 벗기다, 나타내다, 드러내다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시는 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 이유가 문법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수동태를 사용한 것은 인간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예측도 할 수 없고 짐작도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확실한데 하나님께서 성도에게는 깨닫는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는 항상 영적으로 깨어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합니다. 현재 시제를 사용한 것은 주님의 재림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니 항상 준비해야 할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항상 말씀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깨어 있으면 마지막 종말의 날에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눅17:31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31 ἐν ἐκείνῃ τῇ ἡμέρᾳ ὃς ἔσται ἐπὶ τοῦ δώματος καὶ τὰ σκεύη αὐτοῦ ἐν τῇ οἰκίᾳ, μὴ καταβάτω ἆραι αὐτά, καὶ ὁ ἐν ἀγρῷ ὁμοίως μὴ ἐπιστρεψάτω εἰς τὰ ὀπίσω.
엔 에케이네 테 헤메라 호스 에스타이 에피 투 도마토스 카이 타 스큐에 아우투 엔 테 오이키아 메 카타바토 아라이 아우타 카이 호 엔 아그로 호모이오스 메 에피스트렙사토 에이스 타 오피소
주님이 오시는 그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라고 합니다.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라고 합니다. 재림의 긴박성을 말합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재물을 한 손에 잡고 어떤 이는 성경책을 잡았다고 합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죽어가는 순간에도 재물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심판하실 때도 긴박합니다. 이때 우리는 무엇을 붙잡아야 할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심판의 긴박한 상황에서 집안의 재물을 가지러 가지 말고 밭에 있는 자도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욕심을 버리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눅17:32 롯의 처를 생각하라
32 μνημονεύετε τῆς γυναικὸς Λώτ.
므네모뉴에테 테스 귀나이코스 로트
예수님은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 롯의 아내가 심판 중에 뒤를 돌아보다가 결국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생각하라’ μνημονεύετε(므네모뉴오 3421 동사 명령법 현재 능동태 복수 2인칭) 기억하다, 언급하다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너희들이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명령법을 사용한 것은 마지막 때는 반드시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만약 이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재림 때에 육적인 재물을 손에 넣기 위해서 집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밖에 있는 자들은 뒤를 돌아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육체의 정욕을 따라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나의 영혼을 살려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롯의 아내가 왜 죽었는지를 생각하고 심판받는 곳을 쳐다볼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눅17: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33 ὃς ἐὰν ζητήσῃ τὴν ψυχὴν αὐτοῦ περιποιήσασθαι ἀπολέσει αὐτήν, ὃς δ᾽ ἂν ἀπολέσῃ ζῳογονήσει αὐτήν.
호스 에안 제테세 텐 프쉬켄 아우투 페리포이에사스다이 아폴레세이 아우텐 호스 드 안 아폴레세 조오고네세이 아우텐
주님은 말합니다.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고 잃는 자는 산다고 말씀합니다. 육체의 생명을 보전하려고 하는 자는 영혼의 생명이 죽을 것이고 육체의 목숨을 잃는 자는 영혼이 살아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육체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게 되면 영혼의 생명을 신경 쓰지 못합니다.
육적인 것에만 관심을 두고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집을 넓히는 일에만 정신을 쏟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영혼의 생명은 관심이 없으니 결국 영원한 지옥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나의 속 사람에 관심을 갖고 구원 얻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눅17:3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34 λέγω ὑμῖν, ταύτῃ τῇ νυκτὶ ἔσονται δύο ἐπὶ κλίνης μιᾶς, ὁ εἷς παραλημφθήσεται καὶ ὁ ἕτερος ἀφεθήσεται
레고 휘민 타우테 테 뉘크티 에손타이 뒤오 에피 클리네스 미아스 호 에이스 파랄렘프데세타이 카이 호 헤테로스 아페데세타이
주님은 재림의 긴박성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데려감을 얻고’ παραλημφθήσεται(파랄람바노 3880 동사 직설법 미래 수동태 단수 3인칭) 데리고 오다, 받아들이다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밤에 한자리에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간다고 말합니다. 직설법을 사용한 것은 실제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확실하게 있는 일이라고 직설법을 통해서 강력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래 시제는 앞으로 반드시 일어날 일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설마 설마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 시제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수동태는 하나님의 전적 의지에 의해서 취함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구원받는 사람의 의지는 1도 없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의지로 재림의 날에 구원받게 됩니다. 이 사람은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ἀφεθήσεται(아피에미 863 동사 직설법 미래 수동태 단수 3인칭) 내보내다, 버려두다, 용서하다라는 뜻입니다. 한 명은 버려둠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직설법은 이와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됩니다. 미래 시제는 밤에 같이 있지만 한 명은 버림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 사람은 원죄를 용서함 받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심판을 받게 됩니다.
수동태는 이 사람이 버림을 당하지 않으려고 모든 노력을 해도 결국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율법의 행위로 열심히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수동태를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의 행위로 열심히 살았다고 해서 하나님이 구원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구원받게 됩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의지이며 취할 권세도 있고 버릴 권세도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 취함을 받았다는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눅17: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35 ἔσονται δύο ἀλήθουσαι ἐπὶ τὸ αὐτό, ἡ μία παραλημφθήσεται, ἡ δὲ ἑτέρα ἀφεθήσεται.
에손타이 뒤오 알레두사이 에피 토 아우토 헤 미아 파랄렘프데세타이 헤 데 헤테라 아페데세타이
이제는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게 됩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전적 의지라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이 열심히 했느냐 안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느냐 받지 못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눅17:36 (없음)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느니라
우리 성경에는 36절이 없음으로 나오지만 다른 번역본에는 두 사람이 밭에 있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게 된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신약 히브리어로 보면 좀 더 명확해집니다.
‘데려감을 당하고’ 히브리어는 (아사프 622 동사 니팔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모으다, 제거하다, 거두어 들이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추수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추수하여 천국 창고에 들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니팔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밭에 있는 성도는 추수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알곡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추수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수동태로 버려짐을 당했습니다. 가라지이기 때문입니다.
마13: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가라지를 종들이 뽑으려고 할 때 주인은 놔두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추수할 때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서 내 곳간에 넣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내 곳간인 천국에 집어넣게 됩니다. 가라지는 버려짐을 당했기 때문에 불사르게 단으로 묶어서 영원한 지옥의 불 못에 던져버리게 됩니다.
눅17:37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이르시되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37 καὶ ἀποκριθέντες λέγουσιν αὐτῷ, Ποῦ, κύριε; ὁ δὲ εἶπεν αὐτοῖς, Ὅπου τὸ σῶμα, ἐκεῖ καὶ οἱ ἀετοὶ ἐπισυναχθήσονται.
카이 아포크리덴테스 레구신 아우토 푸 퀴리에 호 데 에이펜 아우토이스 호푸 토 소마 에케이 카이 호이 아에토이 에피쉬나크데손타이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주여 어디오니이까 이르시되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인다고 말씀합니다.
‘주검’ σῶμα(소마 4983) 몸이라는 뜻입니다. 이 몸은 육체가 죽은 시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몸이 죽은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눅23:52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52 οὗτος προσελθὼν τῷ Πιλάτῳ ᾐτήσατο τὸ σῶμα τοῦ Ἰησοῦ
후토스 프로셀돈 토 필라토 에테사토 토 소마 투 이에수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했습니다. 이때의 시체가 σῶμα(소마)입니다. 요셉은 예수님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될 것을 믿음으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육체가 죽은 것을 사용하는 단어는 πτῶμα(프토마 4430) 떨어짐, 시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육체의 시체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막6:29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29 καὶ ἀκούσαντες οἱ μαθηταὶ αὐτοῦ ἦλθον καὶ ἦραν τὸ πτῶμα αὐτοῦ καὶ ἔθηκαν αὐτὸ ἐν μνημείῳ.
카이 아쿠산테스 호이 마데타이 아우투 엘돈 카이 에란 토 프토마 아우투 카이 에데칸 아우토 엔 므네메이오
세례요한이 헤롯에 의해서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그때 요한의 제자들이 자신의 스승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와서 세례요한의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를 지냈습니다. 여기에서 시체는 πτῶμα(프토마)입니다. 썩어지는 육체의 시체를 말합니다. 그럼 주님이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인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영혼이 죽어있는 곳에는 사탄의 역사가 일어나고 영적으로 죽어있는 자들이 모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 때가 될수록 신령한 몸인 소마의 몸이 죽어있는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자들은 이 세상의 육적인 몸인 프토마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집을 짓는 일에만 신경을 쓰면서 세월을 허비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릅니다. 주님과 함께 부활하였으니 소마의 몸이 살아났습니다. 소마의 몸이 살아난 사람은 독수리가 모일 수 없습니다. 영혼이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소마의 몸이 살아있으니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으면 어느 날 주님이 오신다고 해도 우리는 만날 수 있습니다. 영혼이 살아있는 자들은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게 됩니다. 천국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육적인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정욕과 쾌락에 빠져 살다가 마지막 날에 후회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복음 말씀 안에서 기쁨을 누리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마지막 날에 후회하지 않고 웃는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재림의 신앙을 가지고 주님이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감지하시고 복음의 말씀을 들으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