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훔 1장 설교 말씀은 나훔 선지자가 앗수르의 니느웨 멸망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다. 니느웨는 북이스라엘 백성을 고통스럽게 했던 민족이다. 하나님은 나훔 선지자를 통해서 니느웨 성이 완전히 멸망 당할 것을 예언했다. 하나님은 악인을 한 명도 남겨두지 않고 심판한다.
Ⅰ. 이 책의 책명 1:1
니느웨는 유명한 성읍으로 앗수르의 수도였다. 요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 거대한 성읍이 속히 무너져 버릴 것이라고 예언했었고, 그 당시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함으로 긍휼히 여김을 받았다. 그들은 그들이 악한 길에서 어떻게 돌이킬 것인지를 뚜렷이 알고 있었기에 그 성읍을 구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그들은 다시금 그 악한 길로 되돌아 갔고 이전보다 더욱 악해졌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제 그들이 그들의 결국을 보고 항거할 수 없도록 이 예언의 말씀을 주셨던 것이다.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니느웨에 대한 이 중한 경고는 선지자가 확실히 예견할 수 있었던 하나님의 묵시였다. 그가 죽은 뒤 사건은 모두 이 예언에 비추어 보아야 했다. 이 선지자 자신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은 그가 ‘엘고스 사람’ 이라는 것이다, 제롬은 이 엘고스를 갈릴리의 “엘크스”라는 마을이라고 본다.
Ⅱ.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 1:2-8
니느웨는 하나님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하고 있다. 세상의 주재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이 영광스러운 묘사는, 마치 이스라엘에게는 빛이요 애굽에게는 어둠이 되었던 불기둥 구름기둥이라 하겠다.
(1) 그는 불변하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니느웨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하나님 앞에서 떨게 될 것이다. 그들의 우상들은 하찮은 것들이다. 그것들에게는 두려워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크게 두려워해야 할 분이시다. 하나님은, 그의 살아계심이나 완전하심을 부인하고 다른 신들을 그와 비기며, 그의 율법과 말씀을 파괴하고 조롱하며, 그의 백성을 매도하는 자들의 모욕에 분개하신다. 그런 자들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투기하시며 섬김을 받으심에 있어서 경쟁자를 참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경배하는 자들을 위로하시기 위해, 곧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욜 2:18) 그들이 해를 입지 않게 하실 것이다. 그는 ‘진노’하시는 분이지만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달리 공의롭게 진노하신다. 그는 ‘진노의 여호와’이시다. 그는 진노를 품으시지만 그것을 제어하고 억제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는’ 자들처럼 자주 우리의 분노에 굴복해 버린다. ‘진노의 여호와’이신 하나님은 언제나 ‘그 노를 위하여 치도’하시는 분이다(시 78:50). 하나님은 진노의 날에 그의 모든 원수들과 적들에게 그의 분개하심을 맛보게 하실 것이다. 죄인을 결코 사하지 아니하시느니라(3절).
곧 죄 가운데서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그리하신다는 것이다. 대적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계시는 니느웨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8절). 그리고 여전히 죄 가운데 거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그가 범람한 물로 그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그들이 가는 곳마다 공포와 근심이 따를 것이다. 만일 그들이 그들을 뒤쫓는 흑암에서 달아나려고 생각한다면 도리어 그들 앞에 놓여 있는 흑암 속에 빠져 버리고 말 것이다.
(2) 그는 항거할 수 없는 권능의 하나님이시다. 만일 우리가 하늘을 우러러 본다면 우리는 거기서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길은 회리바람과 광풍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회리바람 속에서 욥에게 말씀하셨다. 곧 ‘폭풍이 그의 말씀을 이행하였던’ 것이다. 만일 우리가 대해로 시선을 돌린다면 우리는 바다가 그의 것임을 발견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원하시면 ‘바다를 꾸짖어 말리우시며 모든 강을 말리우시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땅을 둘러본다면 우리는 여름의 더위나 가뭄에 의해서든지, 아니면 겨울의 냉기나 서리에 의해서든지 그의 권능이 입증되는 것을 볼 것이다.
바산과 갈멜이 쇠하며 레바논의 꽃이 이우는도다. 지진이 산들을 진동하고(5절), 작은 산들이 녹아 평지와 같이 평평하게 된다. 그가 원하실 때 ‘땅은’ 태양열의 뜨거움으로 ‘그 앞에서 타버리게 된다.’ 만일 하나님이 전능한 하나님이시라면 우리는 ‘누가 능히 그 분노하신 앞에 서리요'(6절)라고 묻게 될 것이다. 니느웨 사람들은 ‘노하기를 더디하시는'(3절) 하나님을 단번에 알았었다. 확실히 그들은 그때 그 자비를 경험했음을 기억할 수 있었다. 가장 완고하고 가장 강퍅한 죄인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능력을 거스리면서도 자기들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헛일이다. 하나님의 노는 맹렬하여 그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쓰러뜨린다.
그를 인하여 바위들이 깨어지는도다. 땅 속의 불덩어리가 분출되는 것은 그 마음이 바위와 같은 죄인들을 거스려 일어나는 하나님의 진노의 맹렬하심과 어렴풋이 비슷하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불 앞에서 초개와 같다. 누가 능히 그 진노를 감당하랴. 인간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노하심으로 인한 결과 중 어떤 것은 견딜 수 있을지 몰라도 ‘그의 진노의 맹렬함’이 그 영혼을 즉각적으로 속박할 때에는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 앞에서 두려워 하라. 죄를 짓지 말고 경외함으로 서라.
(3) 그는 무한한 자비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죄 가운데 거하는 시온의 죄인들은 두려워하게 하실 것이나, 그 앞에서 떨림으로 그를 신뢰하는 자들은 두려워하지 않게 하실 것이다. 그는 ‘노하시를 더디하시며'(3절), 자비를 베풀고자 하신다. 행악하는 자들에 대한 그의 분노의 표시가 널리 퍼져갈 때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돌보신다(7절).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들의 ‘환난 날에 산성이 되신다.’
Ⅲ. 산헤립과 앗수르 군대의 멸망 1:9-15
본문은 산헤립이 거느리는 앗수르 군대의 멸망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다. 그 군대의 멸망은 아 제국의 수도인 니느웨에 대한 중한 경고의 일부로, 그리고 약 100년 후에 있을 니느웨 자체의 멸망에 대한 징표로 볼 수 있다.
(1) 공의로우시면서도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앗수르인들로 인하여 크게 격분하신다. 그는 비록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이시나 또한 보복하시는 분이다(11절).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너희 중에서 나와서. 이는 산헤립과 그의 대변인 랍사게를 말한다. 그들은 악한 글과 악한 말을 꾸며 히스기야와 그 백성들을 대적 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조차 다른 이방신들에게 했던 것처럼 조롱과 모욕을 가했다. 그들은, 하나님도 다른 이방신들이나 마찬가지로 자신을 경배하는 자들을 보호하지 못할 것이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스스로 나아와 ‘앗수르 대왕’에게 보호를 구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악한 변론에 대하여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9절). 너희가 여호와를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마치 너희가 하나님의 지혜를 넘보며, 그 전능하심을 이길 수 있는 듯이 하나님을 거스려 꾀를 부리는 악한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으냐?”
(2)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큰 파멸이 임하게 하신다. 온 나라에 파멸이 즉시로 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군대와 왕에 대하여는 파멸이 즉시 임하게 된다.
1) 군대에 대하여 : 하나님이 그 군대를 ‘온전히 멸하실 것이다.’ 즉 군대는 완전히 멸절을 당하고 일격에 파멸될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소행과 행위로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했다(10절). 그들은 마치 ‘가시덤불같이’ 서로 함께 ‘엉크러졌던’ 것이다. 그들은 서로 서로 보다 악하여진다. 그들을 떼어놓을 수 없을 때 하나님은 농부들이 가시덤불을 불에 던지듯이 그들을 함께 던지실 것이다. 자만과 격노로 ‘술을 마신 것같이 취한 그들’은 역시 한 가지로 멸절될 것이다. 곧 화염에 항거할 수도 회복할 수도 없이 소멸되는 ‘마른 지푸라기같이 다 탈 것’이다. ‘그들이 비록 강장하고 중다한’ 큰 군대(12절)일지라도, 즉 수자가 많기 때문에 아주 안전하다 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이 쓸어 버리실 때, 풀과 곡물처럼 멸절을 당할 것이다.
2) 왕에 대하여 :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그가 피할 수 있겠는가?(14절) 나 여호와가 네게 대하여 명하였나니 네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않을 것이라. “그로 인해 너를 기억함이 없게 될리라.” 그가 숭배하던 우상들은 그들의 신전에서 멸절될 것인데, 혹자는 이 일이, 산헤립이 그의 두 아들에 의해 살해되었을 때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때 그는 그의 신인 니스록의 묘에서 경배하고 있었다. 그 신전은 더러워진 채 버려졌으며, 쓸모없이 되었고 그 우상들은 소멸되어 버렸다. 그곳은 산헤립의 무덤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비루’하였다. 이 말은 또한 앗수르 군주국 자체의 굴욕적인 멸망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그 파멸 후에 바벨론 제국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은 여기서 그의 백성과 그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읍을 위해 큰 구원을 베풀고자 하신다. 그 에워싸던 것이 풀어지게 될 것이다. “너희가 노예 상태에 빠져 있었기에 이제 네게 지운 그의 멍에를 내가 깨뜨리고, 너희가 그 앗수르인의 진노에 묶여 있게 되었기에 너의 결박을 끊으리라.” 이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 자유하게 되어짐으로 큰 구원이 이루어진 표적이었다. 그 원수는 쇠약해졌고 낙담케 되었으므로 다시는 결코 그런 공격을 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는 감히 예루살렘을 공격하지 못할 것이다(15절). 모든 것을 황폐케 하고자 했던 ‘악인이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않을 것이다.’ 악인의 군대가 멸절될 것이며 그의 마음도 그러할 것이고 마침내는 그 자신도 멸절되어질 것이다. 15절은 그 큰 구원의 소식이 그 나라 곳곳에서 환영을 받게 될 것을 말하고 있다. 산헤립이 전쟁에서 이겨 모든 사람을 자신 앞에 복종시켰을 때에는 매일 나쁜 소식이 들려왔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보하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그 소식을 전하는 자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빨리 멀리에서부터 산으로 올랐다. 우리가 많은 욥의 사자들을 만난 후에 한번 더 평화의 사자를 본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사야와 나훔이 말한 이 말씀은 사도에 의해서 인용되어졌다. 그리고 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큰 구속과 그것이 영원한 복음에 의해 선포되는 것에 적용되어졌다(롬 10:15).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화평을 전파하는 좋은 소식의 전파자들이다. 환난이 있을 동안에는 대개의 절기들이 일시 중단되었었다. 그들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였을 때에는 예배하기 위해 그 쪽으로 갈 수 없었으나, 이제는 그들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구원이 이루어졌으므로 그들은 그들의 서원을 이행하라는 부르심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