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1장 성경말씀] 거짓 선생과 참 선생인 바울

11장: 거짓 선생과 참 선생인 바울

1-15절, 거짓 사도들

[1-2절] 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이란 그의 자랑함을 가리킨다. 앞장에서 그는 주께서 주신 사도직과 그 직분을 가지고 고린도에 가서 한 그의 사역에 대해 자랑스럽게 증거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이루신 일이었고 결코 분량 밖의 자랑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울의 사도직을 비난하고 그의 사도적 권위를 부정하는 자들 때문에 부득이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한 자랑이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전도 사역을 할 때 하나님의 열심으로 일했다. 하나님께서는 열심을 가지고 자기 뜻을 이루는 분이시다. 주의 종들은 하나님의 열심을 본받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그의 일을 중매하는 일로 표현하였다.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인 성도들 간에 중매하는 일로 표현한 것이다. 그 결혼이 복된 결혼이 되기 위해 신부된 성도들은 정결해야 한다. 그들은 한 남편인 예수 그리스도께만 드려지는 순결한 신부이어야 한다.

[3절]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하플로테스, aJplovth”)[단순함, 신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성도에게 가장 큰 문제는 신앙의 변질과 부패이다. 사탄은 옛날 에덴 동산에서 그 간계로 이와[하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오늘날도 성도들을 미혹케 하려 한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바른 지식을 버리고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그를 향한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불신앙에 떨어지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이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단순하고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믿고 따라야 한다.

[4절]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린도 교인들은 거짓 교사들이 전파한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받아들였다. ‘다른 예수’는 신약성경에 증거되신 예수가 아닌 다른 예수이다. 성경의 예수님은 처녀 마리아에게서 잉태되어 나시고 수많은 기적들을 행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삼일만에 부활하시고 사십일만에 승천하시고 장차 하늘로부터 눈으로 볼 수 있게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다.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말하는 예수는 다른 예수이다. 이름만 같지, 실제로는 다른 자이다.

‘다른 영’은 하나님의 영, 성령, 곧 진리의 영이 아닌 영이다. 그 영은 악령 곧 귀신밖에 없다. 그것은 거짓과 불결과 혼돈의 영이다. 그 영에게서 다른 사상이 나온다. 우리는 아무 영, 아무 사상이나 받지 않아야 한다. 성도들은 영을 분별해야 한다(요일 4:1).

‘다른 복음’은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통해 주신 복음, 그들이 선포하고 해설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복음,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 복음 외의 복음을 가리킨다. 다른 복음은 실상 복음이 아니다. 예를 들어,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율법주의는 다른 복음이다. 또 예수님뿐 아니라 교회를 통하여 그리고 마리아를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천주교회의 교훈은 다른 복음이다. 또 이웃을 위해 사랑과 선을 베푸는 삶이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자유주의 신학은 다른 복음이다. 또 기적 체험만을 강조하고 크게 여기는 은사주의는 다른 복음이다.

우리는 옛 복음, 옛 신앙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역사적 기독교의 바른 교리와 신앙과 삶을 보수해야 한다. 우리는 오직 신구약성경이 증거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속죄 복음만 굳게 믿고 지켜야 한다. 우리는 성경이 증거하는 옛 신앙을 가지고 그 옛 신앙을 지키고 그 옛 신앙을 전해야 한다.

[5-6절] 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 생각하노라. 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지극히 큰 사도들’은 거짓 교사들이 원사도들을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바울은 자신이 그들보다 부족함이 조금도 없다고 고백한다. 그는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않았다. 지식이 말보다 중요하다. 말도 잘하면 좋겠지만, 말은 아첨이나 위선이나 이중적인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바른 지식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전할 수 있고 성도들에게 바른 길을 가르칠 수 있다.

[7-8절]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요(料)를 받은 것이 탈취한 것이라.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위해 한 것은 그들을 존중하여 자신을 낮춘 것이요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아무 대가 없이 전한 것이요 그들을 섬기기 위해 다른 여러 교회의 지원을 받은 것이었다. 그는 다른 교회들에게서 후원금을 받은 것을 탈취한 것이라고 표현한다. 물론 그것은 탈취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에서는 아무 대가를 받지 않고 다른 교회들의 도움을 받아 그 교회를 세우고 돌아본 것이니 그것을 탈취라고 표현한 것뿐이다. 바울의 이런 행위가 죄(罪)인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선이요 사랑이었다.

[9절] 또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리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머문 동안 물질적으로 유여했던 것이 아니고 부족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않았다. 그것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 즉 아마 빌립보 교인들이 그의 부족을 보충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일에 고린도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조심하였다. 그는 앞으로도 그렇게 조심할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우리에게 좋은 본을 보여주었다. 이기적인 세상은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남에게 유익을 주고 도움을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며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을 본받는 것이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으며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

[10-12절]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어떠한 연고뇨?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내가 하는 것을 또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의 그 기회를 끊어 저희로 하여금 그 자랑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와 같이 되게 하려 함이로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진리를 품고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했다. 그가 고린도교회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한 것은 결코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고, 오히려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을 비난하는 자들은 “바울도 별 수 없다. 결국 그도 속으로는 물질을 구하는 자일 뿐이다”라는 비난을 하려고 하였다. 이 악한 자들은 바울을 비난할 기회, 그의 발에 올무를 놓을 기회, 그를 범죄케 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러한 기회를 끊어버렸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순수한 믿음과 참된 사랑의 동기로 봉사함으로 그렇게 하였다.

[13-15절]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假裝)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假裝)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假裝)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초대 교회때부터 하나님의 교회 안에는 이런 거짓된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칭 그리스도의 사도이지만 실상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들이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저런 거짓 사도들이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사탄이 자신을 빛의 천사로 위장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사탄의 종들이 의의 일꾼으로 위장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저 악한 종들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될 것이다.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무는 그 열매로 안다. 마귀의 종은 마귀 일을 하고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 일을 한다. 우리는 그가 하나님의 종인가 마귀의 종인가를 그에게 의와 사랑과 진실의 행위가 있는지를 보아서 판단할 수 있다.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는 악과 거짓을 행하는 사탄과 그 종들을 영원한 지옥에 던져 넣으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신앙의 변질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 사탄은 사도 시대 이후 줄곧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해왔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교회를 부패시키는 각종 이단사설들, 특히 자유주의 신학과 은사주의 운동을 경계해야 하고, 말씀과 기도, 그리고 계명 순종의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지켜야 한다.

둘째로, 복음사역자들은 교회 봉사를 할 때 물질적 이익을 구하지 말고 교회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해야 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세상을 사랑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세상을 초월한다.

셋째로, 우리는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거짓 교사들을 분별하고 그들의 결국을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시키는 사탄의 사자들이다. 주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공의로 보응하실 것이다.

16-33절, 고난과 수고를 증거함

[16-20절]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나로 조금 자랑하게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없이 자랑하노라. 여러 사람이 육체를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사도 바울은 육신적으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자기도 육신적으로 대하려고 한다. 잠언 26:5는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그에게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고 말했다. 고린도 교인들은 저 어리석은 거짓 사도들을 기쁘게 용납하였다. 거짓 사도들은 교인들을 종으로 삼아 자기의 왕국을 건립하는 자들이었고, 교인들을 잡아먹듯이 그들의 재산과 돈을 삼키는 자들이었고, 교인들을 사로잡아 속이고 이용해먹고, 또 자신들을 높이고 교만하며, 심지어 교인들을 윽박지르고 구타하며 폭력을 사용하는 자들이었다. 그래도 고린도 교인들은 그 거짓 사도들, 거짓 교사들을 지도자라고 맹종하였던 것이다.

[21-27절] 우리가 약한 것같이 내가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몽둥이]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一晝夜)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린도교회에 들어온 거짓 사도들은 자신들이 히브리인이며 이스라엘인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응수하여 자신도 히브리인이며 이스라엘인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한다. 거짓 사도들은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자처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어떤 수고와 고생을 하였는지 증거한다. 그것은 그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증거가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수고를 넘치게 하였다. 그는 옥에도 여러 번 갇히었다. 그는 매도 수없이 맞았다. 그는 여러 번 죽을 뻔하였다. 그는 40에 하나 감한 매(신 25:3)를 다섯 번이나 맞았다. 그는 몽둥이로 매를 맞은 것이 세 번이었다. 또 한 번 돌로 맞았다. 그것은 루스드라에서 있었던 일이었다(행 14:19). 또 그는 전도여행 중 세 번이나 배가 파선하는 일이 있었고 한 번은 하루를 꼬빡 깊음에서 지냈다. 그는 여러 번 전도여행에서 강을 건너는 위험, 강도들의 위험, 유대인들의 핍박의 위험, 이방인들의 핍박의 위험, 또 도시 안에서의 위험, 광야에서의 위험, 바다에서의 위험, 게다가 거짓 형제들이 있어서 바울을 비난하고 해치는 위험도 있었다.

또 바울은 수고하며 애쓰며 피곤할 정도로 고생하였다. 또 그는 여러 번 자지 못했다. 그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었던 때도 있었다. 그는 여러 번 먹지 못하고 굶었다. 또 그는 따뜻한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하여 추위에 떨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본서는 사도 바울이 전도 사역을 위해 많은 고난과 수고를 겪었음을 증거한다. 또 그는 그의 고난과 수고를 고린도전서에서도 증거하였다(고후 6:4-5; 고전 4:9-13).

[28-33절]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새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위에서 말한 고난과 수고뿐 아니라, 바울의 심령에는 교회를 위한 염려가 항상 있었다. 그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고 순종으로 사는 것을 원하는 염려이다. 주의 종들은 마치 자신들이 대신 심판대 앞에 설 것처럼 교인들을 염려하며 가르치며(히 13:17)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나의 약한 것[들]’은 그가 간증한 여러 가지 고난과 염려들을 가리킨다. 그의 간증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그 고난의 목록에 자신이 다메섹에서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도피한 사실을 첨가하였다(행 9:23-25).

바울의 수고와 고난은 그가 참된 사도임을 증거한다. 거짓 사도들은 그의 사도직을 비난했다. 만일 그의 사도직이 부정된다면 그가 고린도에서 전한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룬 복음 사역에 큰 손상이 있었을 것이다. 또 그로 인해 마귀는 더욱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혔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을 참으로 바치며 많은 고난과 수고 가운데서도 충성한 자는 거짓 사도일 수 없다.

고린도후서 10장 성경말씀 사도 바울의 변증

그가 당한 많은 고난은 그가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랑하며 죽어가는 영혼들을 사랑한다는 증거이었다. 주 예수께 대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영혼들을 향한 사랑은 고난을 통과할 때 그 진실함이 증거된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복음으로 구원할 영혼들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육신적 고난과 수고를 참고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난 중에 사랑을 실천했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모든 종들과 성도들에게 모범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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