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사도 바울의 변증
1-7절, 우리의 싸우는 병기
[1-2절] 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또한 우리를 육체대로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을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려는 것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10-12장은 사도직에 대한 바울의 변증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대면할 때 겸손했다고 말한다. 겸손은 사람을 대면할 때 나타난다. 위선적 겸손도 없지 않지만, 사람을 오래 대해 보면 그가 교만한지 겸손하지 알 수 있다. 바울은 지금 떠나 있을 때에도 그리스도의 온유와 너그러움을 가지고 권면하기를 원한다. ‘관용’이라는 원어(에피에이케이아)도 ‘온유, 너그러움’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겸손하고 온유하고 너그러운 직분자와 성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거짓 교사들은 사도 바울을 육체대로 행하는 자라고 비난했다. ‘육체대로 행한다’는 말은 인간적, 육신적 생각이나 세상적 욕심이나 명예심을 가지고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이 육체대로 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를 그렇게 비난했다. 하나님의 종들은 세상에서 잘못된 비난을 받을 각오를 항상 하면서 살아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겸손과 온유와 너그러움으로 대하려 하였으나, 자신을 그릇되이 비난하는 그런 자들을 향해서는 담대한 마음으로 대하려 하였다.
[3-4절]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우리는 다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는 육신적 생각이나 세상적 욕심과 명예심이 없지 않겠지만, 주의 종들은 육체대로 싸우지 않는다. 즉 육신의 생각과 세상적 욕심에 이끌려 행하지 않는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하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고자 하는 새 원리의 지배를 받고 있다.
복음 사역은 죄악과의 전쟁, 사탄과의 전쟁, 그리고 악한 자들과의 전쟁이다. 그때 주의 종들의 무기는 육신적 힘이나 육신적 지혜와 생각이나 육신적 수단과 방법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한 능력이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원어(토 데오)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KJV)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나아보인다. ‘견고한 진’은 인간의 생각을 가리킨다. 구원받기 전의 인간의 무지하고 불경건한 생각은 심히 완고하다. 그것은 견고한 진과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깨뜨리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롬 1:16). 전도는 하나님의 영혼 구원의 방법이다. 전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다. 그 능력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견고한 진을 파하는 다이나마이트 같은 강한 능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도자를 위해 또 전도할 때마다 ‘오 주여, 영혼을 구원하소서! 견고한 진을 파하소서!’라고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
[5-6절]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적 이론들, 즉 세상의 잡다한 인간의 사상들을 다 파한다.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그 모든 것을 다 파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요 지식의 근본이며(잠 1:7; 9:10) 가장 중요한 복인 영생의 길이다(요 17:3).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 지식을 대항하여 높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이것들을 다 깨뜨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복음을 통하여 인간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킨다.
복음은 죄인들의 구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이다. 죄인들은 복음을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 복종이 온전히 된다는 말은 복종에는 부족한 복종이 있고 온전한 복종이 있음을 나타낸다. 그것은 복종의 정도를 나타낸다. 그것은 성화(聖化)의 과정을 나타낸다. 그것은 불순종하던 옛 사람의 요소들이 점점 죽고 순종하는 새 사람의 요소들이 점점 살아나는 과정이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온전히 복종할 때, 교회 내의 모든 복종치 않는 요소들은 징벌을 받을 것이다.
[7절]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고린도 교인들은 사도 바울을 외모로 평가하고 판단하고 있었다. 사도 바울은 외모로는 그렇게 훌륭해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종들을 외모로 보는 것은 큰 잘못이다. 사람의 가치는 그의 외모나 외적 조건들에 있지 않고 그의 내면성, 즉 그의 영적, 신앙적 상태에 있다. 우리는 다른 성도의 내면성을 보아야 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본받아(마 11:29)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복종하는 자가 되자.
셋째로, 우리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치 말고 내면성을 보고 하자.
넷째로, 우리는 복음 사역이나 교회 봉사에서 하나님의 능력만 의지하고 일하자.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다. 사람들은 무지하고 완고하나 하나님의 능력이 오늘날도 우리와 함께하여 사람들의 완고함의 견고한 진을 파하기를 기도하자.
8-18절,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
[8-11절]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이는 내가 편지들로 너희를 놀라게 하려는 것같이 생각지 않게 함이니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 이런 사람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들로 말하는 자가 어떠한 자이면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자도 그와 같은 자인 줄 알라.
하나님께서 사도들에게 주신 영적 권세는 교인들을 허물기 위한 것이 아니고 세우기 위한 것이다. 주께서는 오늘날 복음의 일꾼들에게도 영적 권세를 주셨다. 그것은 영혼들을 죄에서 건져내고 구원받은 자들을 영적으로 돌보는 권세이다. 전도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요 목회는 구원받은 자들을 돌보며 양육하는 일이다.
바울은 몸이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바울에 대해 그의 편지는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울을 약하게 보고 그 말이 시원치 않다고 보는 것은 그의 외모만 본 것이다. 그의 내면에는 하나님의 귀한 은혜와 그의 풍성한 진리가 들어 있었다.
[12-14절] 우리가 어떤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저희가 자기로서[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그러나 우리는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어리석은 자들은 자기밖에 모르고 자기 스스로 비교하고 평가하며 칭찬한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유의 사람이 아니고 그런 자들과 감히 비교될 수도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이방세계에 전하다가 고린도에까지 갔던 것이므로 그의 자랑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한계의 분량에 맞는다. 다른 이는 몰라도 그 교회의 개척자인 바울은 그 교회로 인하여 기뻐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정당한 일이었다.
[15-18절]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량 밖에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더할수록 우리의 한계를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위대하여지기를 바라노라. 이는 남의 한계 안에 예비한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사도 바울은 복음의 계속적 확장을 위한 소원을 가지고 있었다. ‘너희 가운데서 더욱 위대하여진다’는 말은 ‘너희에 의해 풍성히 넓어진다’는 말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낫다. 넓어진다는 것은 그의 마음과 자랑과 전도 영역이 넓어진다는 뜻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주의 은혜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자랑은 주님밖에 없고, 주의 은혜와 주의 능력밖에 없었다. 참으로 주 앞에서 인정받는 일꾼은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고 주께 칭찬 듣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성경의 바른 지식과 믿음과 선한 인품을 구비한 자는 주님께 칭찬을 들을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자신을 지나치게 자랑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자.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기가 판단 기준이 되어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칭찬한다. 우리는 그런 자가 되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자랑하자. 우리의 우리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뿐이며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고 일한다.
셋째로, 우리는 주께 칭찬받는 자가 되기를 소원하자. 주께서 옳다고 인정하시고 칭찬하시는 자가 참으로 옳은 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