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 바울의 사랑의 교제
1-4절, 헌금에 대하여
[1절]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헌금에 대한 교훈이다. ‘성도를 위하는’이라는 말은 헌금의 목적을 보인다. ‘연보’라는 원어(로기아)는 ‘모금’(collection)이라는 뜻이다(Thayer).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구제헌금을 부탁했었다(행 24:17; 고후 8, 9장). 성경에 계시된 교회의 헌금의 목적은 전도와 구제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전도와 구제를 위해 헌금하기를 힘써야 한다.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같이’라는 말씀은 성경의 교훈이 어느 한 지역뿐 아니라, 모든 지역의 모든 교회들에게 적용되는 것임을 보인다.
[2절]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利)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매주일 첫날’은 일요일 곧 주일(主日)이다. 이 날 각 사람이 이익을 얻은 대로 헌금하여 저축하라는 지시는 초대교회가 이 날 공적인 집회로 모여 헌금했음을 암시한다. 사도시대 직후인 소위 속사도들의 글들에 보면 초대교회들이 더 이상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지 않았고 일요일 곧 주일에 공적 예배를 위해 모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주후 100년경의 바나바 서신은 “그러므로 또한 우리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제8일을 기뻐하기 때문에 그 날을 지킨다”고 말했고, 주후 107년경 익나시우스의 마그네시아 사람들에게 보낸 서신도, “만일 옛 습관들로 살았던 자들이 새로운 소망에 이르러, 더 이상 안식일들을 지키지 않고 주의 날을 따라 그들의 삶을 형성한다면 . . . 만일 그러하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를 떠나 살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였다. 주후 150년경 순교자 저스틴도, “일요일에 모든 도시의 사람들은 한 곳에 모여 사도들의 글을 읽으라. 이 날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이다”라고 말했다.
[3-4절] 내가 이를 때에 너희의 인정한 사람[사람들](원문)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저희가 나와 함께 가리라.
사도 바울은 헌금을 취급할 때 교인들의 시험과 오해가 없게 하기 위해 자기가 직접 관계하지 않고 그 교회가 인정하는 사람이면 누구이든지 그들을 보내도록 처리했다. 한글개역성경에는 ‘인정한 사람’이 단수명사이지만, 원문에는 ‘인정한 사람들’로 복수명사이다. 헌금은 교회에서 인정받는 두 사람 이상에 의해 바르고 깨끗하게 계수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교회의 봉사자가 마귀의 시험을 받아 거룩한 헌금을 취하거나 오용한다면 그것은 그에게 큰 화가 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헌금은 교회의 공집회의 한 중요한 순서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소득의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게 하셨다. 십일조와 감사헌금은 신약시대에도 헌금의 모범이 된다. 주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마 6:21).
둘째로, 헌금의 용도는 전도와 구제를 위한 것이다. 헌금은 전도자들과 교회의 전임봉사자들의 생활비를 위해 사용되어야 하고 또 교회 안의 물질적 어려움을 당한 교우들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셋째로, 헌금은 깨끗하고 덕스럽게 관리되어야 한다. 그것은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짐으로 사람들의 의혹을 일으키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교회에서 모범이 될 만한 사람들을 세워서 깨끗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헌금에 대한 범죄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큰 죄가 된다.
5-12절, 성도의 교제를 원함
[5-7절]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나아가서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과동(過冬)할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나의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주께서 만일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유하기를 바람이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과 교제하기를 소원하였다. 그는 지나가는 길에 그들에게 잠시 들리기를 원하지 않고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함께 지내며 겨울도 지나기를 원하였고, 또 그들이 그를 그의 갈 곳으로 보내어 주기를 원했다. 성도의 교제는 얼마나 아름답고 사모할 만한 것인지! 거짓과 미움과 이기주의로 가득한 세상에서 참된 교회처럼 진실과 사랑을 볼 수 있는 곳이 또 어디에 있겠는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뜻을 행하는 진실한 성도들에게서만 그런 교제를 기대할 수 있다.
[8-9절]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유하려 함은 내게 광대하고 공효(功效)를 이루는 문이 열리고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니라.
본절은 바울이 이 서신을 쓴 대략적 시기와 장소를 보여준다. 그것은 사도행전 19장에 해당한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은 에베소에서 회당에 들어가 석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강론하며 권면했으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그 도(道)를 비방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기를 2년 동안이나 했고 아시아에 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다 주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그의 사역이 에베소에서 큰 열매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대적하는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게 광대하고 공효(功效)를 이루는 문이 열리고’라는 말씀은 그의 전도 사역에 큰 열매가 있었음을 뜻한다. 사도행전 19:19-20은,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값을 계산한즉 은 5만이나 되더라.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고 증거한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의 은혜로 전도의 문이 열려야 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힘있는 말씀 사역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해야 한다.
[10-12절]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저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저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저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저더러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되 지금은 갈 뜻이 일절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디모데는 바울처럼 주의 일을 힘쓰는 자이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그들 가운데 있게 하고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자기에게 오게 하라고 권하였다. 여기에 복음사역자들을 존중하고 예우해야 할 성도들의 의무가 있다. 복음사역자들을 위하는 것은 곧 주님을 위하는 것이다.
바울은 형제 아볼로에 대해서도 그에게 권했지만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볼로에게 무엇을 명령하거나 그의 심령을 지배하려 하지 않았다. 주의 사역자들은 겸손히 서로 존중해야 한다. 또 주의 일은 자원적으로 행하는 것이 가장 좋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성도의 교제는 아름답고 사모할 만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귀하게 여기며 사모하자. 둘째로, 우리는 전도자들을 위해 또 복음 사역이 힘있게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하자. 셋째로, 우리는 전도자들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며 그들에 대한 합당한 예절을 갖추자. 넷째로, 우리는 자원함으로 주의 일을 하자.
13-18절, 마지막 권면
본문에서 바울은 마지막으로 몇 가지 권면을 추가하였다.
[13절]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바울은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고 말한다. 원문에서 본절은 네 개의 명령어로 되어 있다. 첫째는 깨어라(그레고레이테)이다. 세상은 악하고 마귀와 악령들은 성도들을 넘어뜨리려고 사방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주께서도 제자들에게 그의 재림을 기다리며 깨어 있으라고 교훈하셨다(마 24:42). 깨어 있는 생활은 믿음, 소망, 사랑의 정상적 신앙생활을 의미한다. 사람이 죄를 짓고 육신적 쾌락에 빠지면 영적으로 해이해지고 잠이 드는 것이다.
둘째는 믿음에 굳게 서라(스테케테)이다. 성도는 믿음에 굳게 서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엡 2:8). 우리에게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마귀는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 우리로 낙심하고 믿음을 잃게 하고 하나님을 의심하게 만들려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에 굳게 서야 한다.
셋째와 넷째는 남자다워라(안드리제스데)와 강건하여라(크라타이우스데)이다. 하나님 없고 부도덕하며 심지어 성도들을 미워하고 핍박하는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고 의와 선을 행하려면, 우리는 담대하고 강건해야 한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다(요 16:33). 바울은 에베소서에서도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라”고 교훈하였다(엡 6:10).
[14절]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바울은 또,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말한다. 고린도교회에 필요한, 그리고 모든 시대에 모든 교회들에 필요한, 중요한 덕은 사랑이다. 고린도교회는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함으로 일치단합하여야 했다. 사랑은 이상적인 인격의 덕이다. 우리 속에 참된 사랑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많은 사람에게 덕을 세우며 유익을 끼치며 주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다.
[15-18절]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 같은 자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복종하라.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자들을 알아주라.
스데바나의 집은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바쳐진 가정이었다.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 등은 교회의 봉사자들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바울에게 찾아왔고 정신적으로 또 아마 물질적으로 그를 돕고 위로하고 격려함으로써 바울과 또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을 시원케 하였다. 이것은 아첨하는 칭찬이 아니고 진심에서 나온 인정이다. 바울은 성도들이 이 같은 자들에게와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복종하고 또 이런 자들을 알아주며 인정하라고 권면하였다.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주의 복음의 일을 위해 또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헌신한 봉사자들을 존중하고 알아주고 인정하고 사랑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우셨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위해 헌신된 자들을 세우셔서 자기의 양들을 지키시고 양육하게 하시고 교회가 진리 안에서 바르고 질서 있게 진행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깨어 믿음에 굳게 서고 남자답게 강건해야 한다. 또 우리는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해야 한다. 또 우리는 주께서 세우신 교회의 봉사자들에게 복종하고, 또 그런 자들을 인정하고 사랑해야 한다.
19-24절, 문안과 축복
[19-21절]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성도들은 하나님의 집의 가족들로서 서로 진심으로 그리고 거룩한 사랑으로 교제하고 문안해야 한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救贖)함을 얻고 성령의 역사로 복음을 믿어 구원 얻은, 온 세계의 성도들은 한 교회를 이룬다. 거기에는 아시아의 교회들과 유럽의 교회들의 차별이 없다. 또 사도시대에는 성도의 ‘집에 있는 교회’가 있었다. 외적으로 훌륭한 건물이 있어야만 교회가 아니고 집에서 모이는 교회도 참된 교회일 수 있다. 교회의 교회다운 점은 성도들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히 믿고 섬기며 순종하고 서로 사랑으로 교제하는 데 있다.
[22-24절] 만일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전통사본)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하고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할지어다. [아멘].
마지막으로, 바울은 두 가지 내용을 말한다. 첫째는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사랑 없이 내뱉은 경박한 저주의 말이 아니다. 이것은 주를 사랑하는 것이 선택 사항이 아니고 모든 성도에게 필수적 사항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구원받은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강하게 표현한 것이다. 주님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다. 그 분 외에 이 세상에서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이 없다. 그 분 외에 아무 곳에서도 우리는 삶의 참된 의미와 위로를 찾을 수 없다. 그는 참으로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시다. 더욱이 그는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신을 십자가 위에서 희생하신 주님이시다. 우리는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기에 마땅한 죄인이었지만,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와 영원한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해주셨다. 이 복음의 진리를 깨닫는 자라면 어찌 주를 사랑치 않을 수 있겠는가!
둘째는 ‘주께서 임하시느니라’는 말씀이다. 이 말은 원어로 ‘마라나 다’라고 하는데, 이것은 아람어로서 ‘주여, 오소서’라는 뜻이다. 이것은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말씀이다. 신약성경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말씀으로 끝난다. 요한계시록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진실로] 오시옵소서.” 주께서 다시 오시면 모든 일이 완성될 것이다.
그가 다시 오실 때 주를 사랑한 자들은 영광과 위로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 주를 알지 못하는 자들, 주님을 배반하고 세상을 사랑하던 자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께서는 의인들과 악인들,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러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보상, 보응]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우리는 주의 사랑 안에서 성도의 교제를 나누자. 교회의 교회다운 점은 서로 사랑하는 데 있다. 또, 우리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사랑하자. 그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고, 필수적 사항이다. 또, 우리는 주의 재림을 간절히 소망하자. 주께서 오시면, 교회 안팎과 온 세상의 모든 일들을 다 이루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