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아브람을 부르심
창세기 1-11장은 인류의 초기 역사에 대해 간략히 서술하고, 12-50장은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에 대해 서술한다.
1-9절, 아브람을 부르심
[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부르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의 기쁘신 뜻에 따른 것이다. 죄악이 가득했던 세상 가운데서 노아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듯이(창 6:8), 아브람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 로마서 9:15-16,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신 때는 그가 하란에 거하였을 때인 것 같다. 성경 다른 곳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내셨다는 말씀을 보면(창 15:7; 느 9:7), 갈대아 우르에서도 아브람에게 하나님의 어떤 암시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아브람이 하란에 여러 해 거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부르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심으로 그를 부르셨다. 하나님의 명령은 그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라는 명령이었다. 그것은 우상숭배와 부도덕의 환경으로부터 분리하라는 분리의 명령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한 민족을 만들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이 모든 죄를 버리고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게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데라와 그 자녀들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신 것은 분리의 시작이었다. 데라는 분리를 위한 과도기적 역할을 했다. 이제, 아브람에게 분리된 삶이 필요했다. 나이 든 친척들과의 관계 속에서는, 아브람이 죄악된 전통과 풍습을 완전히 떠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 그에게 새 가문의 시작이 필요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해 한 땅을 예정하셨고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2-3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분리를 명령하시면서 두 가지를 약속하셨다. 첫째는,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큰 민족을 이루고 그의 이름을 크게 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브람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조상으로 높임을 받는 큰 이름이 되었고 우리 모든 신자들에게도 믿음의 조상으로 높임을 받고 있다(롬 4:16).
둘째는, 그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창세기 22:18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마 1:1)로 말미암아 온 인류가 구원의 복을 받게 될 것을 암시하신 메시아 약속의 말씀이다. 성경은 구주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우리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한다(갈 3:29).
[4절]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75세였더라.
아브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였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면 가고 그가 가지 말라 하시면 가지 않는 것이 순종이다.
롯도 아브람과 함께 갔다. 롯이 아브람과 동행한 것을 보면, 그는 아브람의 영향으로 비교적 경건하였던 것 같다. 베드로후서 2:7-8은 롯을 의로운 자라고 증거한다.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하란을 떠날 때 아브람의 나이는 75세이었다. 그러면 그때는 그의 부친 데라가 아직 죽기 전이었을 것이다. 창세기 11:26은 데라가 70세에 아브람을 낳았다고 말하므로,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부친 데라는 145세이었을 것이다. 그는 205세까지 살았다(창 11:32).
[5-6절]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 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니 그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아브람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여 마침내 가나안 땅에 도착했다.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라는 표현은 그가 하란에서 여러 해 동안 살았던 것을 증거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정들었던 그의 모든 환경을 정리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다. 그는 가나안 땅을 향해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하란을 떠날 때에 아브람의 목표는 분명하였고 그는 그 목표를 달성하였다.
그는 가나안 땅에 도착하였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위해 예정하시고 그에게 지시하신 그 땅이다. 그 땅은 창세기를 쓴 모세가 강조하고자 하는 땅이다. 모세는 그 가나안 땅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땅이며 이제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갈 땅임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 중부,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렀다. 그때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함의 아들 가나안(창 9:22)의 자손이다. 그들은 후에 그들의 죄 때문에 완전히 멸망할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 땅을 차지할 것이었다(창 15:16).
[7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온 아브람에게 나타나셨다.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특별한 방식으로 종종 나타나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모습이나 천사의 모습으로 직접 나타나기도 하셨고, 구름이나 불 가운데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도 하셨고, 또 자신의 음성으로나 기적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기도 하셨다. 이 때는 아마 그가 직접 나타나신 것 같다. 하나님의 이런 직접 나타나심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이었다(요 1:14; 14:9).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지구의 한 지역을 누구에게 주실 권한을 가지고 계신가? 하나님은 온 세상의 창조자요 통치자이시며 주인이시므로 그런 권한이 있으시다(대상 29:11; 시 24:1). 출애굽기 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느니라.” 신명기 10:14,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
아브람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을 위해 단을 쌓았다. ‘단’이라는 원어(미즈베아크)는 ‘짐승을 잡아 죽인다’(자바크)는 말에서 나왔다. 그것은 ‘짐승을 죽여 제사를 드리는 곳’이라는 뜻이다.
[8-9절]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
아브람은 그곳에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거처를 정하고 장막을 쳤고 또 그곳에서도 하나님을 위해 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그것은 노아가 홍수가 그친 후 방주에서 나와 하나님께 단을 쌓고 번제를 드린 것과 같았다. 짐승 제사에는 하나님의 긍휼로 예비하실 속죄 제물을 믿는 뜻이 있고 또 참된 헌신과 순종을 다짐하는 뜻이 있었다. 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예배와 기도의 삶, 곧 경건한 삶을 가리킨다. 그것은 셋의 아들 에노스의 삶이었고(창 4:26), 에녹의 삶이었고(창 5:22, 24), 또 노아의 삶이었다(창 6:9, 22).
우리는 본문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죄악된 세상을 떠나라고 명령하신다. 죄로 인해 멸망할 세상에 속하여 살면 세상과 더불어 멸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든 죄악을 버려야 한다. 그것이 회개이다. 회개는 죄를 청산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전도 사역을 시작하실 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마 4:17). 또 바울은 말하기를,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다”고 했다(행 17:30). 회개하자.
둘째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복을 받아 누리자. 이 복은 오늘날 온 세상에 충만하게 전파되고 있다. 우리 중 다수는 이미 그 복을 받았다. 영생의 구원은 복 중의 복, 가장 귀한 복이다. 우리는 다 이 복을 받고 또 이 복을 남에게 전하자.
셋째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경건하게 사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자. 그것은 복된 삶이요 평강의 삶이다.
10-20절, 아브람이 애굽으로 내려감
[10절]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아브람은 거하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였기 때문에 애굽으로 내려가 우거하려 하였다. 기근은 보통 하나님의 징벌로 온다. 레위기 26:26, “내가 너희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때에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주리니 너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리라.” 아마 그 땅 거주민의 죄 때문에 기근이 왔을 것이다.
아브람은 사람의 일반적 생각에 따라 애굽으로 내려갔다. 애굽에는 나일강 하류를 비롯하여 비옥한 땅이 많았다. 사사시대에 엘리멜렉과 나오미도 비슷한 생각으로 흉년을 피해 유다 땅을 떠나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다(룻 1:1). 가나안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므로 아브람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그 땅에 머물렀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인간적 지혜와 판단으로 애굽으로 내려갔다.
[11-12절]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그런데 그가 애굽에 가까이 왔을 때에 한가지 걱정을 하게 되었다. 사람이 믿음으로 행하면 담대함과 평안이 있지만, 인간적인 생각과 판단으로 행할 때는 염려와 걱정이 생긴다. 아브람의 걱정은 죽음에 대한 염려이었다. 그의 보기에 그 아내 사래는 아름다운(예파스) 여인이었기 때문에, 아브람은 애굽 사람이 자기의 아름다운 아내를 보고 자기를 죽이고 자기 아내를 빼앗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낯선 땅에 우거할 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생각과 감정일 것이다.
[13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아브람은 그런 상황에서 한가지 인간적 대책을 생각하여 아내에게 요청하였다. ‘원컨대’라는 표현은 아브람이 그 옛 시대에 평소에 아내에게 위협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고 인격적이고 사랑을 가지고 대했음을 보이는 것 같다. 그는 아내에게 사람들에게 그가 나의 누이라고 말해 달라고 요청하였고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고 말했다.
그는 실상 아내를 지켜줄 만한 힘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쓸데없이 만용(蠻勇)을 부리지 않고 자기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상황을 파악하고 인간적인 지혜를 발휘하였다. 그러나 사래가 그의 누이라는 말은 반쯤 거짓말이며 일종의 거짓말이다. 사래는 그의 아내이다. 아브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한 것이다. 거짓말은 악이다. 그러나 아브람은 그 두려운 상황에서 거짓말을 했다. 그것은 믿음의 사람 아브람의 연약한 모습이었다.
[14절]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아브람의 예상은 적중하였다. 애굽 사람들은 사래의 심히 아름다움을 보았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났을 때 75세이었고(창 12:4) 아브람과 사래의 나이 차이가 10살이므로(창 17:17), 아브람이 애굽에 내려갔을 때 사래의 나이는 65세 이상이었다. 그런데도 그 여자는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속성이며 그의 창조 세계의 본모습이다.
아름다움의 주된 한 요소는 조화로움이다. 사람의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그의 얼굴을 아름답다고 말한다. 오늘날 아름다움에 대한 잘못된 개념이 유행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음란한 자태와 아름다움을 혼동하는 것 같다. 그러나 참 아름다움은 음란함과 아무 상관이 없다. 참 아름다움은 오히려 단정함을 포함한다.
[15절]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라.
애굽 왕 바로는 대신들의 칭찬을 듣고 사래를 궁으로 취하여 들였다. 아브람은 아내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는 기근을 피하고 평안한 삶을 누리려고 애굽으로 내려갔지만, 그곳에서 아내를 빼앗기는 슬픔과 낭패를 당했다. 그는 믿음으로 행하는 대신에 인간적 지혜와 판단으로 행했을 때 큰 것을 잃어버렸다.
아브람의 슬픔과 낭패는 하나님의 징책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훗날에 엘리멕렉과 나오미 가족의 경우와 같았다. 룻기 1:3-5에 보면, 기근을 피해 약속의 땅을 떠나 모압으로 간 나오미는 그곳에서 남편을 잃었고 두 아들을 위해 며느리를 얻었으나 10년 즈음에 두 아들도 다 죽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라고 말했다(룻 1:13). 또 그는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후 이웃 사람들에게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다”고 말했다(룻 1:21).
아브람은 처음부터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았어야 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했더라면,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진실했을 것이며 어려울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응답을 얻었을 것이다. 후에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을 받아 1,754명의 유대인들을 인도하여 파사 나라로부터 유대 땅으로 돌아오고자 했을 때 길에 대적들의 위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에게 군대의 지원을 요청치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였고(스 8:21-23) 무사히 잘 도착하였다.
[16절]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애굽 왕 바로는 사래를 인해 아브람에게 후한 선물을 주었다. 비록 아내 대신 양과 소와 남녀 종들과 암수 나귀와 약대를 많이 얻었지만, 그것이 아브람에게 무슨 기쁨이 되었겠는가? 아내를 잃은 아브람은 비로소 애굽으로 내려오려 했던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잘못이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는 기근 중에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머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17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사래 때문에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다. 그것은 아마 무서운 질병이었을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런 큰 재앙을 내리셨는가? 그것은 바로의 행위가 간음죄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신성하고 중요한 제도이며 그것을 어기는 것은 간음죄가 된다.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지켜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며 결혼 관계를 잘 지켜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혼을 미워하시며 음행하는 자와 간음하는 자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한다(말 2:16; 히 13:4). 더욱이, 사래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이며 남의 아내가 되어서는 안 될 자이었다.
[18-20절]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바로는 그 재앙이 사래 때문에 온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양심이 있어서 옳지 않은 일에 가책을 느낀다. 살인, 간음, 도적질 등이 죄악임을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은 양심 때문이다. 요나의 탄 배가 큰 풍랑을 만났을 때 선원들은 그 재앙이 누구 때문에 왔는지 알기를 원했다(욘 1:7). 헤롯 왕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려 하였고 또 그의 말을 들을 때 크게 번민을 느끼면서도 달게 들었다(막 6:20). 그들은 다 양심의 음성을 듣는 자들이었다.
바로가 양심적으로 두려워하고 사래를 돌려보낸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베푸신 크신 은혜이었고 긍휼하신 간섭과 도우심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내를 빼앗겨 슬퍼하며 낙심했을 아브람을 위해 비상하게 개입하셨고 그를 도우셨다. 그는 세상의 모든 일을 주권적으로 섭리하시며 선한 뜻을 이루신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했다(롬 8:28).
본문은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기근이 있다고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자. 우리는 어려움이 있다고 세상으로 돌아가지 말자.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 안에 거하고 그의 말씀 안에 거하고 교회 안에 거해야 한다. 그곳이 약속의 땅 가나안이다. 거기에 하나님의 평안과 기도 응답과 그의 보호하심이 있다.
둘째로, 우리는 목숨 때문에 거짓말하지 말자.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진리 안에서 소망을 굳게 가지자. 주께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고(마 10:28), 또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하셨다(마 10:39). 우리가 죽음 문제를 해결하면, 우리는 바르게 살 수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자. 굶어 죽을까봐, 맞아 죽을까봐, 아파 죽을까봐 두려워하지 말자. 의인은 죽을 때도 소망이 있다(잠 14:32).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의 섭리를 믿자.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연약과 실수를 용서하시고 그들을 끝까지 지키시고 도우신다. 주께서는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0:28).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롬 8:35, 38-39).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믿자(롬 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