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2Ki) 14장 설교 말씀] 아마샤(Amaziah)와 여로보암(Jeroboam) 2세 통치(왕하14:1-29)

열왕기하 14장 설교 말씀은 남 유다는 아마샤가 왕이 되고 북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는 시대를 말씀한다. 아마샤가 교만하여 북 이스라엘 왕과 싸우려고 도전장을 냈다. 결국 북 이스라엘에게 패배했다. 사람은 하나님이나 사람 앞에서 교만하게 행동하면 안 된다.

Ⅰ. 유다 왕 아마샤의 즉위 14:1-7

아마샤는 요아스의 아들이며 후계자이다.

(1) 그는 성전 안에서 어느 정도 잘 행하였으나, 다윗과 같지는 못했다(32절). 그는 시작은 잘 하였지만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했다. 우리의 경건한 선배들이 행한 그 관습을 그대로 지키는 것은 불충분하다. 오히려 우리는 동일한 신앙과 헌신의 원칙과 동일한 진지성과 결심 위에서 그들이 행한 그대로 행하여야 한다. ‘신당을 제하지 아니하였다’는 사실은, 전과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우리의 주위를 끈다.

창세기 12장 아브람의 소명 설교말씀

(2) 그는 재판정에서 그의 아버지를 살해한 역적들을 공정하게 처리하였다. 그는 어떤 혼란을 야기시킬까 두려워하여, 즉위 즉시 그 일을 처리하지 아니하고, 신중하게 ‘나라가 그 손에 굳게’ 설 때까지 연기하였다(5절). 그러나 모세 율법에 분명하게 ‘아비로 인하여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에 ‘왕을 죽인 자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다'(6절).

(3) 그는 전쟁에서는 에돔 사람들에게 승리하였다(7절). 에돔 사람들은 요람 시대에 배반하여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났었다(8:22). 이제 요아스는 그들과 전쟁을 벌여 그들로 다시 충성을 바치게 하였다. 이 원정에 대한 더 상세한 기록은 역대하 25:5절 이하에서 볼 수 있다.

Ⅱ. 요아스와 아마샤의 대면 14:8-14

왕국 분열 이후 서너대 동안 유다 왕국은 이스라엘의 적대감으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당하였다. 그리고 아사 이후 서너 대 동안은 이스라엘과 맺은 동맹과 정략 결혼 때문에 더 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서로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1) 아마샤는 아무런 계기나 싸울 이유를 제시하지도 않고 무작정 요아스에게 도전하였다(8절). 오라 우리가 서로 대면하자. 즉 “전장에서 우리의 힘을 서로 겨루자.” 이렇게 함으로 그는 교만하고 뻔뻔스러우며 피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이스라엘 왕국을 굴복시키고 유다를 재통일하려는 망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2) 요아스는 그의 도전을 엄히 책망하고, 철회하도록 조언하였다(9,10절).

1) 요아스는 자기를 백향목 즉 고귀한 재목에, 그리고 아마샤를 가시나무 즉 보잘것없는 잡초에 비교하고 또한 자기를 그를 두려워하기는커녕, 그를 경멸하며 자기가 그와 어떤 동맹을 맺는 것은 백향목이 자기 딸을 가시나무와 맺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이야기함으로 아마샤의 자존심을 손상시켰다. 그는 옛날 다윗의 집은 이제 예후의 집(비록 유서 깊지는 못하더라도)과 나란히 이름 불려질 가치가 없는 가문이라고 생각하였다.

2) 요아스는 아마샤의 패전을 예언하였다.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이렇게 가시나무와 백향목과의 협상은 끝이 났다. 마찬가지로 요아스는 자기 군대가 쉽게 아마샤를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3) 그는 아마샤에게 그의 도전이 어리석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너는 고작 에돔을 이긴 것을 가지고 마치 온 세상에서 공포의 대상이나 되는 것처럼 자랑으로 여기는구나”

4) 그는 아마샤에게 이미 얻은 영예로 만족하고, 능력밖에 있는 더 많은 것을 잡으려다가 손에 쥔 것조차 놓치지 말라고 권고하였다.

(3) 아마샤는 자기 결심을 고집하였고 결과는 좋지 않았다.

1) 그의 군대는 패배하여 흩어졌다(12절). 요세푸스는 아마샤 군대가 교전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공격다운 공격 한번 하지 못하고, 모두 도망가기에 바빴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2) 아마샤는 이스라엘 왕에게 포로가 되어 그를 실컷 대면하게 되었다.

3) 개선자는 별 저항없이 문이 열린 예루살렘에 입성하였다. 그러나 그는 성벽을 허물고(요세푸스에 따르면, 승리한 그는 전차를 몰고 성벽이 무너진 곳으로 들어갔다) 유다에게 치욕을 안겨주었다.

4) 그는 예루살렘을 약탈하고 가치있는 모든 것을 빼앗아 가지고, 전리품을 싣고 사마리아로 돌아갔다(14절).

Ⅲ. 아마샤의 죽음 14:15-22

여기 불과 몇 절 안에 세 사람의 왕이 무덤으로 갔다. 첫째로 이스라엘의 요아스왕이 죽고(15,16절) 둘째로 유다의 아마샤 왕이 죽었다. 그는 그를 정복했던 이스라엘 왕보다 15년을 더 살았다(17절). 그는 자기 신하들에게 살해되었다. 그의 악정으로 인하여 신하들은 왕을 미워하고 예루살렘은 왕에 대한 적개심으로 불타오르게 되었다. 이것은 왕의 어리석음과 허세 때문에 성벽이 치욕스럽게 허물어졌기 때문이었다. 아마샤는 라기스로 도망갔다. 우리는 그가 거기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숨거나 보호 받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결국 거기에서 살해 되었다(19절). 셋째로 아사랴가 아마샤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그이 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는 네 살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12년 동안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고, 그가 16세가 될 때까지 정치는 섭정하에 있었다. 그는 무척 오랫동안 통치하였지만(참조15:2) 그의 통치 기록은 다 건너 뛰어 갑자기 끝나버렸다(22절), 아사랴가 엘닷을 건축하였다. 엘랏은 에돔 족속에게 속한 땅이었다.

Ⅳ.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Ⅱ 14:23-28

이것은 여로보암 2세의 치세 기록이다.

(1) 그의 치세는 길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왕들 중에서 최장의 통치 기간이다. 사십 일년을 위에 있으며(23절). 그러나 그와 동시대 사람, 유다왕 아사랴는 그보다 더 긴 52년 간을 다스렸다. 이 여로보암은 아사가 통치한 기간 만큼 통치하였는데(왕상 15:10), 한 사람은 선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악하였다. 사람의 성품은 수명이나 외적인 번영을 가지고 측정할 수 없다.

(2) 그의 성품은 다른 왕들과 동일하였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24절). 그는 송아지 숭배를 계속하였다. 어떤 죄가 옛부터 내려오는 습관이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 죄를 덜 악하게 보시는 것은 결코 아니다.

(3) 그러나 그는 다른 대부분의 왕들보다 번창하였다. 그가 한편으로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안에 선한 것이 있었던 것 같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를 인정하셨다.

1) 예언으로 그를 인정하셨다. 하나님은 갈릴리 사람 아밋대의 아들 요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이것은 그의 충성스러운 사역자가 계속 백성을 다스리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도 그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은 요아스의 손을 강하게 한 엘리사를 데려가시고 요아스의 아들을 격려하기 위해 요나를 보내셨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신 일, 그리고 그가 도망갔고, 그후 니느웨로 가면서 짜증을 부리던 일은 아마도 그가 젊었을 때의 일인 것 같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이 후에 요나를 자비의 사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신 것은 그의 실수와 여러 가지 어리석음을 다 용서하셨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하나님의 위임장은 곧 용서를 의미한다.

2) 보호하심으로 인정하셨다. 여로보암의 군대가 승리한 사건은 여호와의 말씀에 의한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 지경을 회복하되’ 북쪽 하맛에서부터 아라바 바다에 이르기까지 모든 변경 성읍과 촌락을 회복하였다(25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승리의 복을 주신 이유는 두가지이다.

레위기 1장 번제의 규례 설교말씀

①이스라엘의 고난이 극심하였기 때문이다. 이 고난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이 되었다(26절). 적들이 지배하는 촌락에 살던 사람들은 비참하게 억압받는 노예 생활을 하였고, 나머지 지방 주민들도 적들의 잦은 침입과 약탈 때문에 가난하게 되었다.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이 비참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비로 위안을 얻도록 하자.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자비하신 심정과(사 63:15; 렘 31:20), 하나님의 마음은 긍휼로 가득차 있다는 사실(시 86:15)을 알 수 있다.

②하나님께서 아직까지 ‘이스라엘의 이름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27절). 이 말씀을 북방 열 지파의 분열로 이해한다면, 머지 않아 하나님께서 그것을 말씀하시고 실행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완전한 근절이라고 이해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말씀하지 않으셨고, 또한 하려고 하지도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 이름은 아직까지 복음 이스라엘 속에서 여전히 세상에 있으며, 세상 끝날까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4) 여기에 여로보암 통치의 결말이 설명되어 있다. 우리는 28절에서 그의 전력과 그가 어떻게 싸웠는가에 대한 기록을 본다. 이스라엘에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예언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었으나 이제 비로소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호세아가 예언을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여로보암이 통치할 때이다. 그는 예언을 기록한 최초의 선지자이며, 따라서 호세아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여호와의 말씀의 시작’이라고 부른다(호1:2). 동시에 아모스가 예언하고 그 예언을 기록하였으며, 그후 곧 미가, 그리고 아하스와 히스기야시대에 이사야가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자신을 증거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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