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5장 성경 강해 하나님 말씀은 예루살렘 백성을 위한 호소와 회개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5장: 이스라엘의 회복을 간구함
[1-5절] 여호와여, 우리의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의 수욕을 . . . .
예레미야는 말한다. “여호와여, 우리의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의 수욕을 감찰하옵소서. 우리 기업이 외인에게, 우리 집들도 외인[이방인들]에게 돌아갔나이다. 우리는 아비 없는 외로운 자식[고아들]이오며 우리 어미는 과부 같으니 우리가 은을 주고 물을 마시며 값을 주고 섶을 얻으오며 우리를 쫓는 자는 우리 목을 눌렀사오니 우리가 곤비하여 쉴 수 없나이다.”
예레미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인해 당한 비극적 상황과 수욕을 하나님께서 돌아보시고 기억해주시기를 구한다. 이 모든 불행에 대해 탄원할 곳이 하나님밖에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께 아뢸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그 백성에게 희망적인 일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들의 땅과 집들은 다 외인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들은 아비 없는 고아들이며 그들의 어미는 과부 같았다. 각 가정은 실제로 자녀들을 보호하고 지켜주고 책임져줄 어른들이 없었으며 나라 전체가 그러하였다. 그들은 물을 마시기 위해서도 돈을 주어야 하였고 땔감을 얻기 위해서도 값을 주어야 하였다. 기본적인 식생활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들을 쫓는 자들은 그들의 목을 눌렀고 그들은 피곤하며 휴식을 취할 수 없었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6절] 우리가 애굽 사람과 앗수르 사람과 악수하고 양식을 얻어 . . . .
예레미야는 또, “우리가 애굽 사람과 앗수르 사람과 악수하고 양식을 얻어 배불리고자 하였나이다”라고 말한다. ‘악수한다’는 원어는 ‘손을 준다’는 말로서 상대에게 충성을 맹세하거나 복종하겠다는 뜻이다. 에스라 10:19, “저희가 다 손을 잡아 맹세하여[손을 주며] 그 아내를 보내기로 하고.” 역대상 29:24, “모든 방백과 용사와 다윗 왕의 여러 아들이 솔로몬 왕에게 복종하니[손을 주니].” 유다 사람들은 배불리 양식을 얻기 위해 애굽 사람들과 앗수르 사람들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복종하였다.
[7-8절] 우리 열조는 범죄하고 없어졌고 우리는 그 죄악을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우리 열조는 범죄하고 없어졌고 우리는 그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종들이 우리를 관할함이여, 그 손에서 건져낼 자가 없나이다.” 그는 그들이 당하는 현실이 그들의 죄 때문임을 다시 말한다. 유다의 선조들은 범죄하였고 지금은 다 죽고 없어졌다. 자녀들은 그 선조들의 죗값을 치루고 있다. 죗값은 당대에 치르든지 그 자손 대에 치르든지 반드시 치뤄야 한다. 바벨론 나라의 종들이 유다 백성을 다스렸다. 유다 백성은 온갖 학대를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손에서 건져내어줄 자가 아무도 없었다.
[9-11절] 광야에는 칼이 있으므로 죽기를 무릅써야 양식을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광야에는 칼이 있으므로 죽기를 무릅써야 양식을 얻사오니 주림의 열기로 인하여 우리의 피부가 아궁이처럼 검으니이다[탔나이다]. 대적이 시온에서 부녀들을, 유다 각 성에서 처녀들을 욕보였나이다.” 광야에는 바벨론 군인들의 칼이 있기 때문에 양식을 얻기 위해 광야로 나가는 것은 죽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러 날 먹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피부는 아궁이처럼 탔다. ‘검다’는 원어(카마르)는 ‘달아오르다’는 뜻이다(BDB, NASB, NIV). 또 대적자들은 시온에서 부녀자들을, 유다 각 성에서 처녀들을 학대하고 욕보였다. 전쟁의 결과는 비참했다. 거기에는 인간의 기본적 도덕성도, 양심도, 인정도 없었다.
[12-14절] 방백들의 손이 매어달리며 장로들의 얼굴이 존경을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방백들의 손이 매어달리며 장로들의 얼굴이 존경을 받지 못하나이다. 소년들이 맷돌을 지오며[돌리오며] 아이들이 섶을 지다가 엎드러지오며 노인은 다시 성문에 앉지 못하며 소년은 다시 노래하지 못하나이다.” 방백들의 손이 매어달리기까지 했고 장로들의 얼굴이 존경을 받지 못했다. 이전에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던 자들이 이제는 모욕과 부끄러움을 당했다. 이전에 그렇게 힘든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어린 소년들이 무거운 맷돌을 돌렸고 어린아이들은 땔감을 지다가 힘들어 엎드러졌다. 노인들은 이전처럼 성문에 앉아 담소하거나 성안의 재판사건을 처리하는 일을 하지 못하였고 소년들은 이전처럼 즐거운 노래를 부르지 못하였다.
[15-18절] 우리 마음에 희락이 그쳤고 우리의 무도가 변하여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우리 마음에 희락이 그쳤고 우리의 무도가 변하여 애통이 되었사오며 우리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함을 인함이니이다. 이러므로 우리 마음이 피곤하고 이러므로 우리 눈이 어두우며 시온산이 황무하여 여우가 거기서 노나이다.” 그들의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이 그쳤고 춤이 애통으로 변하였다. 그들의 머리에서 아름다운 면류관이 땅에 떨어졌다. 이스라엘에게서 영광이 떠났다. 예레미야는 이 모든 비극적인 현실이 그들의 죄 때문이라고 말한다. 불행은 죄 때문에 온다. 그것은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나 마찬가지이다. 죄의 결과로, 그들의 마음은 피곤하였고 그들의 눈은 어두웠으며 시온산은 황무해져서 사람들이 거하는 대신 여우들이 뛰노는 곳으로 변하였다.
[19-20절]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세세에 미치나이다.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 예레미야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앙망한다. 그는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그의 영원한 통치자 되심을 고백한다. ‘영원히 계신다’는 말은 영원히 통치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NASB, NIV). 시편 9:7, “여호와께서 영영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예비하셨도다.” 시편 29:10,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선지자는 영원하신 통치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영원히 잊으시고 버리실 것인지 질문한다. 사람들은 현재의 비극적 징벌과 재앙으로 인해 낙심하고 조급해하지만, 선지자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그때에도 진행되고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고 있다.
[21-22절]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특심하시니이다[만일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지 않으셨고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특심하지 않으시다면](NASB, NIV).”
선지자 예레미야는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의미심장한 기도의 말씀을 아뢴다.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선지자가 성령의 감동 가운데 올린 이 기도는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하고 무능력해져 있음과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귀한 진리를 증거한다. 사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쓴 예레미야서는 이 진리를 밝히 계시하고 강조한 성경이다.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예레미야 13:23,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이 진리는 신약시대에 사도 바울을 통해 밝히 증거되었다. 로마서 8:7-8,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로마서 9: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구원과 회복은 인간의 본래의 복되고 영광스런 상태로의 회복이다. 그것은 성경이 예언하는 바로 그 회복이다. 사도행전 3: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요한계시록 21:1, 5,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본장의 교훈은 분명하다. 첫째로, 죗값은 크고 무섭다(7, 16절). 하나님께서는 심판자이시다. 그는 죄에 대해 고생과 파멸, 영육의 죽음과 영원한 지옥으로 벌하신다(계 21:8).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죄의 대가를 치루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둘째로, 그러므로 우리는 범죄치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이며, 구원받은 자는 다시는 죄를 범치 말아야 한다. 죄 없는 인격과 세상이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이며 섭리의 목표이다. 구원은 죄사함이며 신앙생활의 일차적 목표는 죄 안 짓는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 의지하자. 21절,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9: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 의지하고 감사하며 찬송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