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4장 성경강해] 예루살렘이 멸망 당한 이유

예레미야애가 4장 성경강해 하나님 말씀은 예루살렘이 멸망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4장: 예루살렘 거민을 낮추심

1-12절, 거름더미를 안았음

[1-2절]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하였으며 . . . .

예레미야는 말한다.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하였으며 성소의 돌이 각 거리 머리에 쏟아졌는고. 시온의 아들들이 보배로와 정금에 비할러니 어찌 그리 토기장이의 만든 질항아리같이 여김이 되었는고.”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했다는 말은 예루살렘 거민들의 낮아진 형편을 묘사한다. 예루살렘 거민은 금빛이 희미해지고 정금이 변한 것처럼 비천한 상태에 떨어졌다. 성소의 돌들은 길거리에 쏟아지고 버려졌다. 이전에 정금같이 보배로웠던 시온의 아들들은 이제는 토기장이가 만든 질그릇같이 여김을 받았다.

[3-5절] 들개는 오히려 젖을 내어 새끼를 먹이나 처녀 . . . .

선지자는 또 말한다. “들개들은 오히려 젖을 내어 새끼를 먹이나 처녀 내 백성은 잔인하여 광야의 타조 같도다.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아이가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 진수를 먹던 자가 거리에 외로움이여, 전에는 붉은 옷을 입고 길리운 자가 이제는 거름더미를 안았도다.” ‘들개들’(탄닌)은 여우와 이리 중간쯤 되는 짐승인 ‘재칼들’을 가리킨다고 한다(BDB, NASB). 재칼들은 자기 새끼에게 젖을 먹이지만, 유다 백성은 잔인하여 광야의 타조같이 자기 자식을 돌보지 않는다. 젖먹는 아기는 목이 말라 혀가 입천장에 붙고 어린아이들은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자가 없다. 맛있는 음식만 골라 먹던 아이들은 이제 거리에서 처량하고, 붉은 옷을 입고 길리우던 자들은 이제 천한 자같이 거름더미를 안았다. ‘거름더미를 안았다’는 말은 그들의 불행을 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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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절] 전에 소돔이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경각간에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전에 소돔이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경각간에 무너지더니 이제 처녀 내 백성의 죄가 소돔의 죄악보다 중하도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었다. 그들의 죄는 예전의 소돔의 죄악보다 더 무거웠다. 전에 소돔이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순식간에 멸망했듯이, 예루살렘과 유다는 하나님의 징벌로 처참하게 멸망하였다. 예루살렘의 처참한 멸망의 원인은 다른 것 때문이 아니고, 바로 그들의 죄악 때문이었다.

[7-8절] 전에는 존귀한 자의 몸이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 . . .

선지자는 말한다. “전에는 존귀한 자의 몸이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희며 산호보다 붉어 그 윤택함이 마광한 청옥 같더니 이제는 그 얼굴이 숯보다 검고 그 가죽이 뼈에 붙어 막대기같이 말랐으니 거리에서 알 사람이 없도다.” ‘존귀한 자’라는 말(네지레하)은 ‘그들의 성별된 자들’이라는 뜻이며(BDB, NASB) 그것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들을 가리키든지(KJV) 그들의 방백들을 가리킬 것이다(NIV). ‘산호’(NASB)라는 말은 ‘홍옥’(KJV, NIV)이라고도 번역된다. 유다의 성별된 자들 혹은 방백들은 그 몸이 눈보다 깨끗하고 우유보다 희며 홍옥보다 붉고 윤택함이 광나는 청옥 같았으나, 이제는 그들의 얼굴이 숯보다 더 검게 되었고 거리에서 알아볼 자가 없으며(원문 순서) 그 가죽이 뼈에 붙었고 막대기같이 말랐다.

[9-10절] 칼에 죽은 자가 주려 죽은 자보다 나음은 토지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칼에 죽은 자가 주려 죽은 자보다 나음은 토지 소산이 끊어지므로 이들이 찔림같이 점점 쇠약하여 감이로다. 처녀 내 백성의 멸망할 때에 자비한 부녀가 손으로 자기 자녀를 삶아 식물을 삼았도다.” 굶어죽어가는 자들의 모습이 처참하기 때문에, 선지자는 차라리 칼에 죽은 자들이 굶어죽은 자보다 낫다고 말한다. 예루살렘 멸망의 가장 처참한 모습은 그 거민들이 너무 굶주려 평소에 인자하던 여인들이 손으로 자기 자녀들을 삶아 먹은 일이었다. 그것은 이미 애가 2:20에서 말한 사실이다: “여호와여, 감찰하소서. 뉘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손에 받든 아이를 먹으오며.” 원문은 한 명이 아니고 여러 명이 그러하였음을 암시하기를, ‘여인들’이 ‘그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다고 증거한다.

이것은 이미 모세의 율법에서,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그 명령을 행치 않고 그것을 멸시하고 싫어하고 그 언약을 배반할 때 내려질 것이라고 경고된 바이었다. 레위기 26:29, “너희가 아들의 고기를 먹을 것이요 딸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신명기 28:53, “네가 대적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함을 당하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자녀 곧 네 몸의 소생의 고기를 먹을 것이라.” 또 에스겔도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말했다: “그리한즉 너의 중에서 아비가 아들을 먹고 아들이 그 아비를 먹으리라”(겔 5:10).

[11-12절] 여호와께서 분을 발하시며 맹렬한 노를 쏟으심이여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분을 발하시며 맹렬한 노를 쏟으심이여, 시온에 불을 피우사 그 지대를 사르셨도다.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 열왕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 예루살렘 성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분을 발하시며 맹렬한 노를 쏟으신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시온에 불을 피우셨고 그 기초를 삼키셨다(원문의 뜻). 원수들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그 성이 그렇게 비참하게 멸망하리라고는 세상의 열왕들과 백성들이 믿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상상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하나님께서는 일반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으시고 예언된 징벌을 그들에게 내리셨다. 예루살렘 성은 멸망하였다.

본문은 무엇을 증거하는가? 본문은 예루살렘 성의 처참한 멸망의 정황을 증거한다. 예루살렘 거민들은 본래 존귀했다. 그 성에서 자란 아이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모든 아름답고 좋은 것을 누렸다. 그들은 정금에 비교할 만하였다. 그러나 지금 예루살렘 거민들은 매우 비천하게 되었다. 그것은 빛을 잃은 정금과 같았다. 정금 같은 시온의 자녀들은 토기장이가 만든 질그릇같이 취급되었다. 맛있는 음식만 먹던 그들은 거름더미를 안았다. 그들의 희고 고왔던 얼굴은 숯보다 더 검어졌다. 인간의 존귀와 영광은 다 사라졌다. 심지어 평소에 인자하였던 여인들이 자기 자녀들을 삶아 먹는 비극까지 생겼다.

예루살렘 성의 처참한 멸망의 원인은 무엇인가? 6절, “전에 소돔이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경각간에 무너지더니 이제 처녀 내 백성의 죄가 소돔의 죄악보다 중하도다.” 유다 백성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은 그들의 죄 때문에 멸망하였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미워하시고 노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망한 것이다. 11절, “여호와께서 분을 발하시며 맹렬한 노를 쏟으심이여, 시온에 불을 피우사 그 지대를 사르셨도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혜롭고 존귀하고 선하게 창조되었으나(창 1:31; 시 49:12), 범죄함으로 고생과 수고, 슬픔과 질병과 불행이 가득한 삶을 살게 되었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로마서 3:16-17,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이 세상의 불행의 원인은 죄이다.

본문은 몇 가지 실제적 교훈을 준다. 우리는 죄를 멀리해야 한다. 죄가 모든 불행의 원인이며 죄를 회개하고 죄씻음받고 이제 후로는 죄를 짓지 않는 것이 모든 행복의 시작이다. 죄를 완전히 짓지 않는 것은 불가능해도 힘써 노력해야 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 반드시 벌하시는 자이시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우리에게 거울이 된다. 또 우리는 범죄했을 때 즉시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결코 뒤로 미룰 일이 아니다.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오늘 회개하기를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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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2절, 지도자들의 죄 때문에

[13절] 그 선지자들의 죄와 제사장들의 죄악을 인함이니 . . . .

예레미야는 말한다. “그 선지자들의 죄와 제사장들의 죄악을 인함이니 저희가 성읍 중에서 의인의 피를 흘렸도다.” 유다 나라의 멸망은 백성의 죄악 때문일 뿐만 아니라, 또한 지도자들의 죄악 때문이었다. 실상, 지도자들의 죄악이 더 중요하다. 한 사회는 그 지도자가 어떤 자인가에 따라 그 평안의 정도에 큰 차이가 난다. 유다의 지도자들인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성읍 중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리는 가증한 죄를 범하였다. 의와 진리를 선포하고 공의를 시행해야 할 자들이 도리어 의인들의 피를 흘리고 악인들의 악을 용납한 것이다.

[14-15절] 저희가 거리에서 소경같이 방황함이여, 그 옷이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저희가 거리에서 소경같이 방황함이여, 그 옷이 피에 더러웠으므로 사람이 만질 수 없도다. 사람이 저희에게 외쳐 이르기를 부정하다, 가라, 가라, 가라, 만지지 말라 하였음이여, 저희가 도망하여 방황할 때에 이방인이 이르기를 저희가 다시는 여기 거하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저희’는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들은 소경같이 방황했다. 사실상 그들은 영적 소경이었다. 그들의 옷은 피에 더러워져서 사람이 만질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나병 환자에게 ‘부정하다’고 외치며 진 밖에서 살게 하였듯이(레 13:45-46), 그들은 다 부정한 자같이 되었다. 이제 그들은 이방에 포로로 잡혀갈 것이며 이 땅에 다시 거하지 못할 것이다.

[16절] 여호와께서 노하여 흩으시고 다시 권고치 아니하시리니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노하여 흩으시고 다시 권고치 아니하시리니 저희가 제사장들을 높이지 아니하였으며 장로들을 대접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여호와께서 노하여’라는 원어(프네 여호와)는 ‘여호와의 얼굴’이라는 뜻이다. 여호와의 얼굴 곧 여호와 하나님 자신께서 유다 백성을 흩으시고 다시 돌아보지 않으실 것이다. ‘권고하다’는 원어(힙비트)는 ‘쳐다보다, 존중하다’는 뜻이다. 전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방 나라들과 달리 사랑하셨고 주목하며 귀히 여기셨으나(신 11:12),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는 지금 진노의 얼굴을 그들에게 향하셨다. 본절 후반부의 ‘저희’는 유다의 원수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들은 유다의 존귀한 지도자들, 제사장들과 장로들을 높이거나 대접하지 않을 것이다. 바르게 행하며 백성을 평안케 하는 지도자들은 존중히 여김을 받을 것이지만, 악을 행하며 백성으로 화를 당케 하는 자들은 모욕을 당할 것이다.

[17-20절]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 눈이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치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 저희가 우리 자취를 엿보니 우리가 거리에 행할 수 없음이여, 우리의 끝이 가깝고 우리의 날이 다하였고 우리의 마지막이 이르렀도다. 우리를 쫓는 자가 공중의 독수리보다 빠름이여, 산꼭대기에서도 쫓고 광야에도 매복하였도다.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가 저희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저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저의 그늘 아래서 열국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

유다 백성들은 그들을 구원치 못할 나라 곧 애굽을 바라보고 헛된 도움을 기대했다. 그러나 유다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았을 때, 애굽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고 그들의 멸망을 막아주지 못했다. 그들의 외교적 노력과 군사대국과의 동맹이 무용지물이었다.

원수들은 유다 백성을 가까이서 엿보았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에서 예루살렘 거민들을 관측하고 있었다. 예루살렘의 멸망 곧 유다의 멸망이 가까웠고 그 마지막 날이 이르렀다. 그들을 쫓는 바벨론 군대는 공중의 독수리보다 빨라서 유다 백성은 산꼭대기로도 광야로도 도망칠 수 없고 멸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20절의 ‘우리의 콧김’은 ‘우리의 코의 호흡’이라는 말로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자 곧 왕을 가리켰다고 본다. 유다 멸망 때의 왕은 시드기야이었다. 유다 백성은 그 왕이 그들을 잘 다스려 열국 가운데서 평안하게 살 줄로 생각했으나, 그는 원수들의 함정에 빠졌고 사로잡혔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헛된 소망과 기대, 헛된 의지물들을 다 파하셨다. 애굽 나라도 그들의 왕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 아닌 모든 인간적 소망과 의지물들은 다 헛되었다.

[21-22절] 우스 땅에 거하는 처녀 에돔아 즐거워하며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우스 땅에 거하는 처녀 에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려무나. [그러나](NASB) 잔이 네게도 이를지니 네가 취하여 벌거벗으리라. 처녀 시온아, 네 죄악의 형벌이 다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가지 않게 하시리로다. [그러나](NASB) 처녀 에돔아, 주께서 네 죄악을 벌하시며 네 허물을 드러내시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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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돔은 우스 땅에 거하는 자들이라고 표현된다. 이 ‘우스’는 욥의 고향인 우스(욥 1:1)와 같은 지역일 것이다. 에돔 사람들은 멸망하는 유다를 보면서 기뻐하고 있었다. 예레미야는 이제 에돔에 대해 비꼬며 “에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려무나”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상 그는 에돔이 슬퍼해야 할 소식을 전하고 있다. 에돔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을 벌하시며 그들의 허물을 드러내실 것이다. 그러나 반면 유다 백성에게는 그들의 죄의 형벌이 끝나고 다시는 포로로 잡혀가는 일이 없는 날이 올 것이다. 유다와 예루살렘 성의 멸망이라는 고통스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소망과 위로의 말씀을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세계 열국을 공의로 섭리하신다. 그는 자기 백성 유다라도 범죄할 때 혹독하게 징벌하셨다. 유다의 멸망을 비웃고 기뻐하던 에돔은 장차 하나님의 공의의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인 유다는 때가 되면 회복될 것이다. 세계 역사는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가운데 진행될 것이다.

본문은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세계 역사의 진행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섭리자 하나님만 바라보자. 온 세상은 하나님의 섭리의 손 안에 있다. 세계사는 하나님의 손 안에서 진행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암울하게 보이는 일들까지도 섭리하셔서 그의 뜻을 이루신다. 개인의 일도, 교회의 일도, 국가의 일도, 세계의 일도 다 그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 세상의 창조자요 섭리자이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삼위일체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고 섬기자. 이것이 인생에게 가장 귀하고 중요한 일이다.

둘째로, 우리는 헛된 소망을 버리자. 하나님 없이 가진 혹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가진 모든 인간적 소망과 기대는 헛되다. 불경건은 가장 근본적 죄악이다. 개인뿐 아니라, 국가의 소망도 하나님께 있다. 국가의 안전은 정치 외교나 경제나 군사력에 있지 않다. 미사일이나 이지스함 같은 최첨단 무기를 몇 대 더 만드는 것이나 한미동맹을 견고히 하는 것이 나라의 평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는 모든 인간적 소망과 의지물들은 실상 다 헛되다. 하나님께서는 불경건하고 우상숭배적이고 부도덕한 나라를 지키지 않으실 것이다. 현세의 평안과 형통, 미래의 영생과 천국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건과 도덕성을 위해 기도하고 전도해야 한다.

예레미야애가 3장 강해 예레미야 선지자의 탄식 기도

셋째로, 우리는 오직 경건하게 살고 의와 선을 행하자.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공의로 섭리하신다. 죄를 짓고 악을 행하는 자는 누구든지 다 엄한 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경건하게 살고 의와 선을 행하는 자는 평안과 형통을 누릴 것이다. 참된 믿음은 의롭고 선한 행실로 증거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오직 신구약성경에 증거된 그의 모든 명령과 교훈을 힘써 지키고 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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