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Jos) 2장 복음 주석 설교] 기생 라합(Rahab)과 여리고 (Jericho) 정탐꾼(수2:1-24)

여호수아 2장 복음 주석 설교말씀은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에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정탐꾼의 정체가 발각되자 기생 라합은 여리고 성을 정탐하러 온 사람들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라합의 집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붉은 줄을 창문에 매라는 복음을 정탐꾼들은 말하고 떠났습니다.

2장: 라합의 붉은 줄

여호수아 2:18,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내리운 창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모세가 죽은 후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격려하시고 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형통하리라고 약속하셨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격려와 약속으로 힘을 얻었고 백성들에게 3일 안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갈 것이라고 알린 후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가나안 땅에 은밀히 보냈다.

라합이 정탐꾼들을 숨겨줌

가나안 땅과 여리고 성을 정탐하러 보냄을 받은 두 사람은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유숙하였다. 두 정탐꾼이 그 집에 들어간 것은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날 밤 그들을 수상히 여긴 사람이 있었고 여리고 왕은 이스라엘 사람 몇이 이 땅을 탐지하기 위해 들어왔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 정탐꾼들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14절에 그 정탐꾼들이 라합에게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땅을 주실 때에는”이라고 말한 것이라든지, 24절에 그들이 돌아가 여호수아에게 보고할 때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거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들은 옛날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하라고 보냄을 받았던 아브라함의 종처럼(창 24장) 믿음이 있었음에 틀림없고, 또 그들이 맡은 일은 하나님이 주신 선한 일이었음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리고 성에 들어간 그 날 밤에 큰 어려운 일을 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라합을 통해 그 위기를 모면케 해주셨다. 정탐꾼들이 그 집에 들어간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그들은 그 여자가 자기들을 숨겨주리라고 생각지 못했을 것이지만, 그 여자는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놓은 삼대에(베피슈테 하에츠 ‘아마 줄기들 안에’) 숨겨주었고 또 그들을 찾는 자들에게 말하기를,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서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고 하였다. 라합은 큰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을 숨겨주었다. 그들은 기이하게 위기를 모면했다.

하나님의 선한 일들에는 때때로 어려움이 있고 성도들의 정상적 삶 속에도 때때로 환난과 고난이 있지만,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일어나고(마 10:29) 환난도 하나님의 허락 속에서 오며(사 45:5-7),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결코 고난 중에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다(고전 10:13).

라합의 신앙고백

정탐꾼들을 숨겨준 라합은 여리고 성의 기생이었다. ‘기생’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조나는 오늘날 말로 ‘매춘녀 혹은 창녀’라는 뜻이다. 라합은 천한 신분과 천한 직업의 사람이었다. 왜 그가 그런 직업을 가졌는지, 왜 그가 그런 일을 했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는 너무 가난한 환경 때문에 그런 일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것이 쉽게 돈을 버는 길이라고 생각해서나 혹은 돈을 버는 다른 길을 몰라서 그런 일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실수로 혹은 어리석어서 그런 데 빠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의 육체의 젊음이나 미모는 한 때뿐이며 꽃이 시드는 것같이 사람의 육체는 조만간 늙고 병들게 될 것이다. 또 그 전에라도 사람의 심령은 그런 비정상적 삶 속에서는 참 만족과 평안을 얻지 못하고 끝없이 방황하게 될 것이다. 이 허무하고 수고로운 세상에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행복은 그런 비정상적인 생활 속에서는 맛볼 수 없다. 잠언과 전도서가 말하는 대로, 정상적 부부생활과 가정생활은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누리게 하신 행복이다.

라합이 창녀의 생활을 얼마 동안 했는지 모르나 그는 그런 생활 속에서 죄책감을 느꼈고 하나님을 찾게 되었음에 틀림없다. 사람은 자신의 죄악됨을 깨달을 때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 자신이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께로 나올 수 없고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라합은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을 만났다. 예수님 당시에 세리와 죄인들과 창녀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은 것처럼(마 9:10; 21:31- 32), 라합은 하나님을 믿는 참 믿음을 얻게 되었다.

라합의 믿음은 그가 그 정탐꾼들에게 한 고백 속에 나타나 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이 그것이다. 그는 그 두 정탐꾼들이 눕기 전에 지붕에 올라가서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하늘 위에서와 땅 아래에서] 하나님이시니라”(9-11절).

라합은 그들에게 “나는 하나님이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그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홍해를 기적으로 건넌 소식을 들었고 또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전멸시킨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런 소식들이 그를 믿음의 자리로 인도하였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롬 10:17). 라합은 또 이스라엘로 인하여 가나안 백성이 심히 두려워하고 낙담하고 있으며 그들의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다고 말했다.

라합은 하나님의 은혜로 참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믿게 되었다. 그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하늘 위에서와 땅 아래에서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했다.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 구원이요 영생이다. 예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다(요 17:3).

오늘날 기독교 안팎에서 종교다원주의가 유행한다. 종교다원주의는 각 종교는 다 한 하나님을 추구하고 있고 다 한 하나님께로 가는 구원의 길이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 절대적 진리나 절대적 종교는 없다고 말한다. 한 종교만 옳고 다른 종교들은 틀렸다고 하는 것은 예의 없는 생각이요 편협함과 독선이라고 말한다. 다원화 사회 속에서 모든 사상, 모든 종교를 존중하면서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기독교는 기독교대로 진리이지만, 다른 종교들은 그 종교들 나름대로 진리이며 이것이 바람직한 현대적 종교 형태라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런 종교다원주의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종교다원주의는 구약시대에 바알과 아세라 숭배가 충만했던 배교의 시대의 모습에 불과하다. 성경에 계시된 참 하나님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는 계명을 첫째 계명으로 주셨다(출 20: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고 했다(사 44:6). 선지자 예레미야는 증거하기를,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살아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열방이 능히 당치 못하느니라.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고 했다(렘 10:10-11). 또 시편은 증거하기를, “만방의 모든 신은 헛 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라고 합니다(시 96:5). 참되신 그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큰 복이다.

라합은 그 참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인지 모른다. 죄악된 가나안 땅에서, 죄악된 일을 직업으로 삼고 살았던 라합, 그가 어떻게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었는지! 그러나 이것은 이방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 의지의 나타남이었다. 라합의 구원은 그 예표(豫表)이다. 더욱이, 라합은 신약성경에서 메시야의 족보에도 기록된다. 마태복음 1:5는 증거하기를,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다”고 했다.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이었고 다윗의 자손으로 우리 구주 예수께서 오셨던 것이다.

라합이 가족 구원을 요청함

본문 12-13절에 보면, 라합은 정탐꾼들에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면서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으니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형제들과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들을 살려주기를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진실한 표를 내라’고 요청하였다.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것을 확신했고 또 자기 가족들이 살 수 있는 길은 그들에게 긍휼을 구하는 길밖에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요청한 것이다.

정탐꾼들은 그의 요청대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그에게 말하기를,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치 아니하면 우리의 생명으로 너희를 대신이라도 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고 했다. 17절과 20절에는 두 번이나 “네가 우리로 서약케 한 이 맹세에 대하여”라는 표현이 나온다. 맹세는 하나님 앞에서 하는 약속이며 그것을 어기면 하나님 앞에 죄가 되므로 죽을 수밖에 없는 엄숙한 행위이다. 그것은 사람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엄숙한 약속이다.

라합은 집이 성벽 위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창에서 줄로 달아내렸고 또 그들에게 말하기를, “따르는 사람들이 너희를 만나지 못하도록 산으로 가서 거기서 사흘을 숨었다가 따르는 자들이 돌아간 후에 너희 길을 가라”고 했다. 그때 정탐꾼들은 그에게 약속했다.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내리운 창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서 거리로 가면 그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와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누가 손을 대면 그 피는 우리의 머리로 돌아오려니와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면 네가 우리로 서약케 한 맹세에 대하여 우리에게 허물이 없으리라”(17-20절). 라합은 그들의 약속대로 붉은 줄을 창문에 매었다.

여호수아 6:25에 보면,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정복했을 때 기생 라합과 그 아비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려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라합은 그 멸망의 땅에서, 그 멸망의 때에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 그 붉은 줄은 라합과 그의 가족들에게 생명줄이며 구원의 줄이었다.

그것은 애굽에서 장자 재앙의 때에 심판의 천사를 피하기 위해 이스라엘 집의 대문 문지방과 문설주에 발랐던 유월절 어린양의 피와 같았다(출 12:6-8, 13). 이것들은 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보혈을 상징한다. 그 피를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마지막 대심판의 진노를 피할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씻음을 받고 구원을 얻을 것이다.

두 정탐꾼은 위기를 모면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라합을 통해 그들을 숨겨주게 하셨다. 그들은 가나안 백성의 동정을 잘 정탐하였다. 가나안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고 있고 그들의 간담이 녹았고 마음이 녹았음을 알았다. 그것은 그들의 패전의 징조이었다.

여호수아 1장 성경말씀 영적 지도자 여호수아

라합은 천한 신분과 직업의 이방 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알고 믿었고 구원을 요청하였고 맹세로 한 약속을 받았고 구원을 얻었다. 모든 사람은 멸망할 도시에 사는 죄인들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사람이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 있을까? 그에 대한 소식을 들음으로써, 즉 성경을 읽고 들음으로 믿을 수 있다. 우리의 과거의 죄가 아무리 클지라도, 지금 하나님께로 나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히 믿자.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마음의 문에 바르고, 마음의 창에 붉은 줄을 매자. 주 예수를 믿는 자마다 그와 그의 집이 구원을 받는다(행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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