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Gal) 2장 주석강해] 예루살렘 교회에서 바울(Paul)의 사도권 인정(갈2:1-10)

갈라디아서 2장 주석강해 설교말씀은 바울이 2차로 예루살렘에 방문하여 지도자들과 회담을 갖게 됩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바울의 이방인 사도권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바울의 사도권 인정(갈2:1-10)

=====2:1

십사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노니 –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은 세 번에 걸쳐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 첫번째 방문은 그가 회심한지 삼년 후에 베드로를 만나기 위한 것이었고(행 9:26), 두번째 방문은 안디옥 교회의 구제 헌금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으며(행 11:29,30), 세번째 방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사도권을 변증하러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다(행 15:1 이하).

본절에 나타난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이 이차 방문인지 삼차 방문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견해가 갈라진다. 먼저 두번째 방문이라고 주장하는 견해(Bruce, Calvin)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행 15장의 세번째 방문은 공적 회의에 참석한 것이지만, 2절에 의하면 바울은 개인적으로 예루살렘 지도자를 만났으므로 세번째 방문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 행 15장에는 디도에 대한 언급이 생략되어 있으나 본절에는 디도와 바나바가 동행(同行)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므로 본구절의 방문은 세번째 방문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다. (3) 본절의 ‘다시’를 두번째 방문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견해는, 만일 1:18에 기록된 방문이 첫번째 방문이라면 문맥상 본 구절의 방문이 두번째 방문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가진다.

다음으로 세번째 방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Berkhof, Eerdman, Findlay, Robertson). (1) 행 15장과 본장의 주제가 동일하다는 것인데, 두 곳 모두에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할례’를 다루고 있다. (2) 행15장에서 지도자들 간의 연합을(행 15:8,9) 강조하고 있는데, 본장에서도 동일하게 연합을 서술하고 있다(9절). (3) 행 15장이나 본장이 모두 유대주의자들에 대하여 단호한 입장을 주장하고 있다.

이상의 견해들 가운데 본절이 말하는 바울의 방문이 세번째 방문이라는 것이 더욱 타당한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예루살렘 공의회의 연대를 A.D. 49년경으로 보고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 연대를 추정하면 1차는 A.D. 35년, 2차는 A.D. 46년(행11:30;12:25), 3차 방문은 A.D. 49년에 이루어졌다. 여기서 만일 본장의 방문을 2차 방문과 연결시킨다면 바울의 1차 방문은 A.D. 46년에서 14년 전인 A.D. 32년의 되며 또한 그가 회심한 시기는 그보다 3년 전인 A.D. 29년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때가 예수께서 살아 계실 때이어야 하므로 불가능하다.

(2) 두번째 방문을 주장하는 자들은 디도에 대한 언급이 행15장에 없다는 이유로 세번째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디도에 대한 기록은 사도행전 전체에서 누락되어 있다. (3) 바울이 두번째 방문을 생략한 것은 무슨 속임수나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이방인의 할례 문제를 다루는 본장에서 다른 주제, 즉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구제 문제를 취급한 두번째 방문에 대하여 언급할 필요성을 못느꼈기 때문이다. (4) ‘다시'(팔린)는 두번째를 뜻하기도 하지만 요 18:27에서 베드로의 세번째 부인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두번째’를 의미하는 헬라어 ‘듀테론’을 쓰지 않고 ‘팔린’을 사용한 것은 단지 방문의 반복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바나바 – 그는 레위 지파 출신의 유대인으로 구브로에서 태어나 바울보다 먼저 복음을 받아들였던 사람으로서 이방인들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안디옥 교회로 파송되었다(행 11:22). 그의 본명은 요셉이었으나 사도들은 그를 ‘권위자’, ‘권위의 아들’, ‘위로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바나바’로 불렀다(행 4:36).그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로소(행 11:24) 초대 교회의 헌신적인 지도자였다. 그는 바울을 예루살렘 교회에 소개하고 바울의 체험을 변호하며 함께 사역하였으나 2차 전도 여행을 떠나면서 마가의 동행 문제로 바울과 결별(訣別) 하게 되었다(행 15:36-41).

디도 – 그는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으로서 고린도 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목회자이다(고후 8;23;12:18). 본절에서 이방인의 할례 문제로 등장하는 그는 바울이 ‘나의 참 아들 디도’라고 말할 만큼 바울의 총애를 받았으며 그에 대한 성경의 마지막 기록은 그가 로마에서 달마디아로 갔다는 것이다(딤후 4:10).

=====2:2

계시를 인하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 아포칼립신’은 바울의 이방인 선교가 어떠한 인간적인 동기로부터 유래된 것이 아님을 확실히 보여준다. 한편 행 13장에서는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이방인을 위해 파송되는 과정이 안디옥 교회의 결정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바울의 선교 사역이 교회의 결정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본절에서 언급된 바, 바울의 선교 사역의 동기가 하나님의 계시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은 서로 상반되지 않는다. 바울은 안디옥 교회의 결정 배후(背後)에 하나님의 계시하심이 있음을 확신하였을 것이다(Hendriksen)

달음질하는 것 – 바울은 개종 이후부터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당시의 운동 경기를 염두에 두어 묘사하였다. 그의 달음질은 향방없는 것이 아니라(고전 9:26) 분명하고 확고한 목표를 향한 것이었다.그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도자들을 사사로이 만나는 면밀한 계획을 갖기도 하였으며 교회의 화합과 일치를 위해 지도자로 서의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결국 변하거나 바울의 달음질을 헛되게 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갈라디아 교인들이었으므로 본절에는 바울 자신이 유대주의자들의 모든 거짓된 것들을 반드시 고치고야 말겠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2:3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 –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자손 대대에 이르기까지 거행하도록 명령하셨다(창 17:10-14). 그러나 세월이 경과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할례의 언약적인 의미보다는 종족적이며 문화적인 우월감의 상징으로서 외적인 할례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다. 급기야는 구원을 위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상을 배경으로 하는 교회안의 유대주의자들은 율법을 준수하는 것과 함께 할례를 시행하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 된다고 주장하여 이방인 신자들에게까지 할례를 강조했다.

한편 ‘억지로…아니하였으니’의 헬라어 ‘우데…에낭 카스데’는 할례를 주장하는 강한 압력 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는 바울의 굳건한 의지를 나타낸다. 당시 갈라디아 교인들이 거짓 교사들의 회유(懷柔)에 말려들어 할례를 중요하게 생각한 상황에서 바울이 할례받지 않은 디도를 유력한 증인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디도가 갈라디아 교회의 신임을 받고 있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2:4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 ‘거짓 형제’의 헬라어 ‘프슈다델푸스’는 ‘프슈데스’와 ‘아델포스’의 합성어이다.’프슈데스’는 ‘거짓 사도'(고후 11:13),’거짓 선지자'(벧후 2:1) 등에서 처럼 ‘거짓’이라는 의미를 가진 접두사로 사용되었다. 바울은 본절에서 ‘파레이사크투스'(‘가만히 들어온’)와 함께 이 말을 사용하여 은밀하고 은근하게 복음을 훼손시키는 거짓 교사들의 교활한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한편 바울이 1:11에서 유대주의자들에게 미혹된 갈라디아 교인들을 ‘형제’라고 부른 것은 그들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지만, 본절에서 유대주의자들을 향하여 ‘거짓 형제’라고 한 것은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공동체 속에 그들이 설 자리가 없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들이 누구인가하는 문제는 쉽지 않다. 그들은 최소한 내부에서 믿음을 배반한 사도들이나 성도들은 아닐 것이다(Lenski).아마 ‘거짓 형제’는 (1)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이방 그리스도인도 할례를 받아야 할 것을 주장하며 모세 율법을 지킬 것을 요구한 자들이거나 (2) 공의회의 결과가 갈라디아와 안디옥 교회에 소개되었다(행 15:30).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라디아에는 계속해서 교인들을 미혹하는 유대주의자들이 존재했으며 이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유케 된 성도들을 다시 율법 아래로 끌어들이려고 하였다. 더욱이 그들은 신자인 것처럼 가장하여 열심은 있으나 실제로는 복음을 거부하고 교회를 파괴하려고 하였다(고후 11:26;벧후 2:1). 이러한 갈라디아 교회의 형편 가운데서 디도가 할례 받지 않고 있다고 하는 것은 자유 얻은 자로 하여금 자유를 잃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2:5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 복종을 요구하던 자는 디도에게 할례를 요구했던 무리들로 국한시켜 이해하기보다는 더욱 광범위한 의미에서 유대주의화를 꾀하던 ‘거짓 형제’들이 라고 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사도 바울 일행은 위의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이나 율법을 강조하는 자들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어떤 서방 사본들에서는 ‘호이스우데'(‘…한 자들에게 조금도…않다’)가 생략되어 본 구절이 ‘잠시 동안만 복종하였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사본에 의하면 바울이 잠시 동안만 평화를 위하여 타협할 수도 있었던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베자(Bezae) 사본을 제외한 모든 언셜(Uncial) 사본과 오래된 파피루스 사본(P46), 그리고 고대 헬라 교부의 번역에서 ‘호이스 우데’는 생략되어 있지 않다.

또한 본장의 문맥상 바울이 거짓 형제들과 조금이라도 타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지금까지 달려온 길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할례는 초대 교회의 최대 논쟁이며 또한 복음에 대한 최대의 도전(挑戰)이었다. 이 논쟁 앞에서 바울이 진리를 양보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Lenski).

복음의 진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 알레데이아 투 유앙겔리우’는 본절과 14절에만 나오는 것으로 ‘결함이 전혀 없는 복음'(Lightfoot) 또는 ‘진리가 담겨 있고 진리에 속해 있는 복음'(Burton)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복음을 들어 언급하는 것은 디도의 할례 문제는 한 개인의 구원 문제에만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진리 문제에 직결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2:6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 바울은 세 번에 걸쳐 ‘호이 도쿤데스'(‘유력한 자들’)를 사용하여(2절) 베드로, 요한,야고보 등 예루살렘의 사도를 지칭하였다(9절). 이러한 호칭 후에 곧바로 하나님은 외모로 취하지 않는다고 언급하는 것을 보면 바울이 이 호칭을 풍자적 의미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Cole).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 – 헬라어 본문에 나와 있는 후치사 ‘가르’는 선행 구절을 보다 충분하게 설명해 주는 삽입구가 시작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본 구절은 선행 구절에서 제시된 ‘외모를 취하지 않는 하나님’의 속성 때문에 어떤 유명한 자들일지라도 조금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복음이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과 동시에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 가르치는 것과 전혀 다른 복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2:7

내가 무할례자에게…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한 것을 보고 – 여기서 ‘할례자’와 ‘무할례자’는 구체적인 어떤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리킨다(롬 4:9;엡 2:11 등). 유대주의자들은 베드로와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서로 다른 것이 있다고 주장한 것 같다(Lenski). 그러나 바울은 사역상 서로 다른 책임이 있을 뿐 어디까지나 복음의 내용은 동일(同一)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바울이 할례자에게 복음 전하는 자로 열 두 제자 가운데 베드로를 대표로 내세운 이유는 다음과 같이 추정해 볼 수 있다.

(1)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을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Lenski, Huxtable). 그러나 전자는 타당하지 않다. 그 이유는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 복음을 전했을 뿐만 아니라 가 이사랴와 다른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또한 그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행 15:7). 바울 역시 이방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한 바 있다(행 23:11). 그는 또한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행 26:20ff.)보아, 본절에서 바울이 의도 하는 바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는 자신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와 자신이 전파하는 복음의 동질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2:8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 – ‘사도로’의 헬라어 ‘에이스 아포스톨렌’은 베드로의 지도자로서의 자리를 명확하게 인정하는 표현이다. 바울은 베드로보다 가문이나 학문에서 뛰어난 자로소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자신을 베드로보다 우월한자로 여기지 않는다. 여기에는 바울의 겸손함이 포함되어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바울이 이와 같이 겸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사도로 세우신 이가 동일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바울은 본절에서 자신을 사도로 세우신 하나님과 베드로를 사도로 세우신 하나님을 동일시함으로 자신의 사도됨을 증거하고 있다. 두 사도 중에 하나는 유대인을 중심으로, 또 하나는 이방인을 중심으로 사역했으나 그들의 사역의 내용은 같은 것이었으며 둘 다 동일한 섭리와 은혜에 의하여(고전 15:9,10)사도로 세우심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서 맺어지는 열매도 무할례자이거나 할례자이거나 동일한 것이었다.

=====2:9

기둥같이 여기는 – ‘기둥'(스튈로이)이라는 표현은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탈무드에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이스라엘의 세 ‘기둥'(암무딤)이라 하였고 이스라엘의 계약 공동체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그들 위에 세워졌다고 한다(Longenecker). 이러한 개념을 사용하여 바울은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을 ‘기둥’에 비유한 것 같다.실제로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를 이끌어가는 권위와 영향력을 가진 지도자들이었다. 바울은 유대주의 자들을 향해 의도적으로 히브리적 개념을 도입해 논리를 펴나가면서 세 사도가 갖는 비중(比重)을 강조하였다.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 – 이 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공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지도자적 입장에 서 있었던 사실에 역점을 둔 것이다(행 15장). 먼저 야고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바울은 1:19에서 ‘주의 형제 야고보’라고 구체적으로 기록하였으나, 본절에서는 그냥 ‘야고보’라고 칭하고 있다. 이는 본장의 전체 맥락이 예루살렘 공의회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 야고보는 예루살렘 공의회의 의장이었다(1:19 주석 참조).

바울이 다른 두 사도보다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의 이름을 먼저 기록한 것은 우연의 일치라기보다는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의장으로서의 야고보를 설명하기 위함인 것 같다(Boice). 그러나 다른 사도들의 이름이 뒤에 나왔다고 해서 예루살렘 교회 속에서 이들의 서열이 정해져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 다음으로, 바울은 모두 아홉 번에 결쳐 베드로를 언급하는데 일곱번은 ‘게바’라고 불렀으며(14절;1:18;고전 1:12;3:22;9:5;15:5) 두 번은 ‘베드로’로 칭하였다(7,8절). 특히 유대주의자들과 논의할 때 게바라는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베드로와 자신의 관계를 오해없이 설명하려 한 것 같다(Huxtable). 끝으로, 요한이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하였다는 기록은 성경에서 본절에만 나타난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다른 여러 곳에서 함께 등장하며 또한 사역하였다(행 3:1;4:13;8:14 등)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덱시아스 에도칸 코이노니아스’는 ‘교제의 오른손을 주었다’라고 직역된다. 이는 고대 사회에서 우정을 돈독하게 하고 동의한다는 의사 표시였다(Longenecker). 본절에 언급된 다섯 사람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었음이 분명하다. 즉 야고보와 게바, 요한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였고,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을 위한 복음 전파에 주력하였다. 이 두 그룹은 서로 독자적이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사역에 협력하였다(행 15:25,26). 이들은 서로의 손을 잡았다는 것은 사적(私的)인 장소에서 서로의 손을 잡았다는 의미보다는 예루살렘 공의회의 공식 석상에서 결의한 사항을 실행할 때에 함께 협력하기 위하여 공식적으로 손을 잡았다는 것을 의미한다(Lenski).

=====2:10

가난한 자들 – 이에 해당하는 헬라에 ‘톤 프토콘’은 ‘가난’을 뜻하는 일상 용어로서 돈이나 재산이나 생활 수단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는 뜻으로 쓰인 단어이다. 신약에서 이 말은 ‘거지’에게도 사용되었으며 (눅 16:20) 주로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자들에게 사용되었다(마 19:21;눅 19:8;요 13:29). 당시 가난한 자들은 복음 전파의 주요 대상이었다(마 11:5).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을 부요하게 하기 위해 스스로 가난한 자가 되셨으며 자신을 찾아온 부자들에게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마 19:21) 자신과 제자들이 함께 거하는 공동체 속에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해 준비된 공동궤를 가지고 있었다(요 13:29). 사도행전에 와서는 ‘엔데에스’라는 말이 등장하는데(행 4:34)

이는 초대 교회 안의 ‘가난한 자’,’궁핍한 자’로서 다른 사람들이 재산을 팔아 나누어 준 덕분에 살아가는 자들을 뜻한다. 초대 교회에 있어서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구제 문제는 할례와 같이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당연히 행하여야 되는 임무로 인식되어 있었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임무는 공의회의 결정에 의하여 수립된 것이 아니라 구약에서(요 13:29), 또한 초대 교회의 출발부터 교회가 감당했던 사명이다(행 24:17).

마태복음 4장 헬라어 주석강해 사탄의 시험을 이긴 예수님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 – 바울은 믿음과 구제 문제를 믿음과 할례 문제처럼 대립시키지 않는다. 바울의 힘써 행하는 구제는 남에게 보이고자 하는 외식적인 것이 아니다. 본절의 구제가 구체적으로 언제인지 알 수는 없으나 바울의 생애 가운데 구제의 사건은 여러 번 등장한다.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 교회가 모은 구제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으며(행 11:29,30) 여러 서신서에서 구제에 대하여 강조하였다(행 24;17;롬 15:25-27;고후 8:1-5). 또한 그는 구제에 대한 교훈을 남겼으며(롬 12:13;엡4:28;딤전 6:18)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에 게으르지 말고 그 일을 위하여 정직하게 살 것을 요구한다(엡 4:28). 이러한 삶의 요구는 선행이 신앙의 살아 있는 증거요(약 2:14-17) 신앙 고백의 진실성을 측정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요일 3: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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