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성경인물 설교말씀은 겟세마네에서 입을 맞춤으로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서 제자로 선택하여 불렀지만 사탄의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에 예수님을 팔 것이라고 예정되어 있는데 그 사람이 가룟 유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주제1 : 가룟 유다
제목 : 가증한 입맞춤
1. 가증스러운 행동의 동인
1) 악에 속함(요 8:44, 요일 3:12)
입맞추는 행위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친근과 사랑을 표시하는 행동입니다. 따라서 자기 스승을 배신하여 팔아 넘기고자 하는 가룟 유다가(참조, 막 14:10-11) 스승을 적대자들에게 넘겨줄 때에 그와 같이 친근과 사랑을 표시하는 행동으로 적대자들에게 넘겨주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가증스러운 행동을 한 것인가를 분명히 알게 해 주는 증거입니다. 가룟 유다가 그와 같이 가증스러운 행동을 서슴없이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선에 속하지 못하고 악에 속한 거짓된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본질적으로 악에 속한 자였기 때문에 가증스러운 악을 행하면서도 아무런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2) 나쁜 일을 하는 데 민첩함(잠 1:16, 롬 3:15)
가증스럽고 교활한 행동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일은 악한 머리라도 잘 꾀할 수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가룟 유다는 단순히 악에 속한 자였을 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서도 나쁜 일을 하는 데 머리와 행동이 민첩한 자였기에 본문이 보여 주는 바와 같이 선한 것으로 악한 일을 하는 가증스러운 행동을 능히 해낼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선을 행하는 데에 민첩하고 악을 행하는 데에는 무능한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완악함(사 46:12, 마 13:15, 약 1:14)
가룟 유다는 대적자들에게 자기 스승을 넘겨주기로 약조한 후에도 자기의 어리석고 무서운 죄악의 행위를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얼마든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결정적으로 예수께서 모든 사실을 미리 아시고 그에 관해 말씀하실 때에 예수께 모든 일을 자백하고 용서를 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모든 기회 앞에서도 자기 행악을 뉘우치지 않고 마음을 완악하게 하였으며, 끝내는 본문이 묘사하고 있는 것과 같은 가증스러운 죄악의 행동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연약하여 죄의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않는 다면 그 죄에서 속히 빠져 나올 수 있습니다. 성도 된 우리는 이 사실을 명심하여 우리의 마음을 굳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고 항상 주께 우리 마음을 열고 우리의 의지를 내어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2. 가증스러운 행동의 목적
1) 돈(딤전 6:10, 딤후 3:2)
가룟 유다가 사랑과 믿음과 친근을 표시하는 선한 행동, 곧 입맞추는 행동으로 스승을 대적자들에게 팔아 넘기는 가증스러운 행동을 한 목적은 돈 때문입니다. 그는 돈에 대한 탐심을 버릴 수가 없어 예수님과 열두 제자 모임의 회계 일을 맡아 보면서 공금을 횡령했으며(참조, 요 12:6), 급기야는 은 삼십을 위해 자기 스승을 팔아 넘겼던 것입니다(참조, 마 26:15). 돈을 사랑하는 자는 이와 같이 선을 버리고 악을 서슴없이 행하는 지경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에 대한 탐심을 버리도록 해야 할것입니다.
2) 일신의 안위(단 3:18, 마 6:24, 계 3:15)
가룟 유다는 이 세상의 것, 곧 이 세상의 재물과 자신의 육신의 영달 따위에 모든 관심을 둔 자였습니다. 그는 그러한 자였기 때문에 이적을 행하는 예수님이 자기에게 이 세상에서의 성공을 가져다 주리라고 기대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예수님을 섬겨도 그러한 기미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권력자들의 미움을 받자 그는 자기 일신의 안위를 위해 예수님과 당시 권력을 가진 자들의 틈바구니에서 권력을 가진 자의 편에 서고 예수님을 버리는 가증스러운 기회주의적 행동을 취했던 것입니다. 성도 된 우리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최후의 승리를 바라보며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망설이지 말고 오직 하나님 편에 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가증스러운 행동의 결과
1) 지은 죄를 돌이키지 못함(막 3:29, 히 10:29)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았지만 예수님을 대적자들에게 넘겨주는 마지막 범죄를 아직 저지르지 않았을 때에(참조, 막 14:10-21) 회개하지 아니하고 그 마음을 완악하게 함으로 끝내 가증스러운 행위, 곧 입맞추는 선한 행위로 스승을 팔아 넘긴 행악을 저지른 결과는 자기 죄를 돌이키지 못하는 지경게 빠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가 스승을 대적자들에게 넘겨주는 순간 이제 그 일은 그의 손에서 떠났으며, 따라서 그는 자기의 죄악을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 사실을 명심하여 한번 저지르면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지 말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2) 양심의 가책(잠 15:7, 딛 1:15)
가룟 유다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나서야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책은 너무 커서 자신의 목을 매달 만큼 그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다 주었습니다(참조, 마 27:3-5). 이처럼 죄는 참을 수 없는 양심의 가책이라는 심판의 형벌을 안겨다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 범죄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3) 사망(히 6:4-6)
가룟 유다는 자기 육신이 비참한 죽음에 처해졌을 뿐만 아니라(참조, 행 1:18), 그 영혼이 영원한 죽음의 형벌에 처하게 되었습니다(참조, 막 14:21). 행악의 결과는 이와 같이 사망밖에 없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