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 알파벳 상형문자에서는 바브의 상형에서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히브리어 알파벳 바브는 갈고리, 못이라는 상형문자입니다.
וו(바브)
וו(바브 2053) 갈고리, 못
‘바브’는 갈고리, 못, 징, 문고리의 상형문자이다. 수직선 같은 모양의 ‘바브’는 서있는 인간을 상징한다. 또한 모든 종교적으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수직선이라는 개념을 상징한다. 원시나이 문자의 원래 형태는 ‘바브’는 배를 젓는 노였기에 강의 두 기슭 또는 두 대륙을 연결하는 것이다. 뜻은 배운 것으로 인식된 고리이다.
‘바브’가 못, 갈고리를 의미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못에 박혀 당한 고난을 나타내기도 한다. 구원받은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갈고리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십자가에서 연결시켜 주셨다. 이것이 ‘바브’의 역할이다. 이처럼 바브’의 원래 의미는 갈고리, 못, 연결, 매달림로 여기서 파생된 ‘바브’의 의미는 연합, 결합, 파이프, 관, 기둥, 유목민족의 장막을 고정하기 위한 고리와 제사용 도구 등이 있다.
이것은 창조주와 진리가 세워져야 할 대상 간에 진리로 밀착하게 하려고 연결하는 역할을 나타낸다고 본다. 카발라 학자들은 바브의 수직선은 신의 에너지가 하강하는 부호이며 인간들의 초월과 신의 내재성 사이의 만남으로 보았다. 신체적 차원에서 보면 육체가 외부에서 무엇인가를 받아들이고, 외부와 소통하도록 해주는 다양한 관들을 나타낸다.
יהוה(아도나이 3068) ‘여호와’의 단어에는 ‘바브’가 들어가 있다. ‘바브’는 윗 ‘헤’와 아랫 ‘헤’라는 두 개의 ‘헤’들 사이에 있다. 이것은 죄인된 인간을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연결하고 결합하는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이미 이 땅과 하늘을 연결하기 위한 계획이 ‘여호와’라는 단어에 계시하고 계신다. 그럼 신약의 여호와는 누구인가? 예수님이다.
요19:19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빌라도가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패를 써서 붙이라고 했다.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기록했다. 유대인들은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라고 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이유가 있다. 히브리어는(예슈아 하나체리 베멜렉크 하야후딤)이다. 이것의 첫 자를 따면 여호와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말하는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면 여호와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요19:18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예수님은 죄인인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골고다의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하나님과 끊어진 관계를 예수님이 못 박힘으로 연결시켜 주셨다.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 신약에서는 성육신하여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었다.
바브의 숫자 ‘육’은 사람이 제 6일에 창조되었기에 6은 인간을 상징하는 수가 됐다. 이 6 수는 완성을 의미하는 7수를 지향하고 있지만 하나가 부족한 수다. 그래서 6수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의미하고, 인간의 미완성의 슬픈 상태를 반영한다. 느브갓네살 왕이 사람들에게 경배받기 위해 세운 금신상의 크기가 높이 60규빗, 너비 6규빗이라는 점에서 ‘짐승의 형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요한계시록 13장 17절에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는 짐승의 이름 또는 짐승의 수를 ‘사람의 수’ 라고 하면서 666이라고 기록한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곧 666은 여섯째 날 지어진 사람의 가장 큰 반역과 가장 큰 심판을 받아야 할 타락한 인류 역사를 표현한 것이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결과를 가져왔다.
‘자식’ ולד(발라드 2056)
창11:30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사래도 임신하지 못함으로 자식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사라로 이름을 바꾸어주시면서 이삭을 허락해 주셨다. 그렇다면 사래는 구원받기 전의 모습을 나타내주는 것이고 사라는 구원받은 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식이’ ולד(발라드 2056) 자식, 자녀, 후손이라는 뜻이다. 사래는 하나님께서 자손을 허락하지 않으니 생명을 얻을 수가 없다. 영적으로 본다면 구원받지 못한 자의 삶은 생명의 역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사라의 이름으로 바꾸어주시고 나서 하나님은 이삭을 주셨다. 구원받은 이후의 삶은 기쁘고 즐겁고 자녀가 생기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발라드’의 히브리적 의미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그리스도와 연결되고 결합되어 말씀을 가르침 받고 배워서 내 몸에 습관적으로 익히면 생명을 낳는 통로가 만들어져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생명을 얻은 자가 되어야 만이 생명을 잉태하여 낳을 수가 있다. 내가 구원받은 자녀가 아닌데 어떻게 구원받은 생명을 낳을 수가 있나?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그리스도와 연결되고 결합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는 성화의 삶이 있어야 하고, 항상 주님의 진리의 문을 통과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죄를 범한’ וזר(바자르 2054)
잠21:8 죄를 크게 범한 자의 길은 심히 구부러지고 깨끗한 자의 길은 곧으니라
하나님 앞에 죄를 크게 범한 자의 길은 심히 인생이 구부러져 있다. 반면에 의롭고 깨끗한 자는 인생의 길이 곧다.
‘죄를 크게 범한 וזר(바자르 2054) 죄를 범한, 괴로워하는, 이라는 뜻이다.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한 자들은 마음이 괴롭고 영혼이 곤핍해진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은 성령님의 충만한 은혜를 통하여 구원의 확신을 얻고 죄를 씻김 받을 때에 인생의 길이 펴진다.
‘바자르’의 히브리적 의미는 십자가의 예수그리스도와 연결되거나 연합되지 않으면 복음의 무기가 없기때문에 인생이 가난해지고 처참하게 비하되어 죄를 짓고 고난을 당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십자가의 복음의 무기가 생겼다. 사탄을 물리칠 수 있는 영적인 말씀의 무기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으로 사탄을 물러가게 한다. 하지만 아직도 원죄가 있는 자들은 복음의 무기가 없기 때문에 사탄에게 당할 수밖에 없고 결국은 인생이 비참하고 가난하게 전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