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0장에는 사사 야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사 야일의 성경인물 원어설교문을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의 모형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사 야일은 신약에 오신 예수님의 부활의 모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사 야일은예수님의 부활의 모형(삿10:3-5)
오늘은 소 사사 야일에 관하여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야일이라는 인물은 사사 돌라의 뒤를 이어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사사가 되었습니다. 돌라는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예수그리스도의 모형을 나타내는 인물입니다. 아비멜렉의 치하에서 고통당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한 사사입니다. 이와 같이 원죄에 빠졌던 나를 구원해 주신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야일이 사사가 되었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서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인물이 야일입니다.
우리는 야일의 삶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모형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소 사사들은 많은 기록이 없기 때문에 유추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원문 말씀을 통해서 근거를 가지고 우리가 야일의 삶을 유추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야일의 삶이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삶을 살았다면 우리들도 야일처럼 구원의 확신을 얻은 후에는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부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오늘 야일의 삶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모형을 발견하고 또한 이 말씀이 나의 삶 가운데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삿10:3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니라
사사 돌라가 죽은 후에 하나님은 길르앗 사람 야일을 사사로 선택하여 사명을 주셨습니다. 야일은 22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야일의 행적을 보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22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지 어떠한 일을 했는지에 관하여는 성경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22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이스라엘을 통치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야일은 길르앗 사람이라는 정보를 주고 있습니다.
‘길르앗 사람’ 히브리어(길아디 1569) 길르앗 사람, 이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히브리어(길아드 1568) 길르앗, 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갈 1530) 무더기, 라는 뜻과 히브리어(에드 5707) 증거,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증거의 무더기’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야일이 길르앗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덤에서 살아나서 부활의 증거가 되는 예수그리스도의 모형을 증거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상징해 주고 있습니다.
마27: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신 후에 많은 사람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는 것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은 거짓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신 사건을 증거 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 사사 야일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럼 야일의 이름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모형을 발견해 보겠습니다.
‘야일’ 히브리어(야이르 2971) 야일, 이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히브리어(오르 215) 빛나다, 비추다, 밝게 하다, 빛을 주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사사 야일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서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빛난 세마포 옷을 입으신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야일의 삶은 죽어있는 자들에게 빛을 주어 살아나게 하는 자입니다.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여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세의 축복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입니다.
요12: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예수님은 빛으로 세상에 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고 선택받은 나에게 오셨습니다. 여기에서 ‘빛’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오르)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볼 때에 야일은 사사로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22년 동안 사역을 하면서 예수그리스도의 빛을 드러내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성경은 야일이 사사로 있은지 22년 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럼 우리가 숫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해 보겠습니다. 숫자 22의 의미는 해체와 분열, 빛, 히브리어 알파벳 마지막 글자, 구원과 거듭남,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야일이 사역했던 22년의 기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체와 분열의 기간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빛을 전파했지만 어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의 빛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런 자는 이미 정죄를 받아 분열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선택받은 자들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을 따라서 구원받아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22는 히브리어 알파벳 마지막 글자인 히브리어(타브)입니다. 타브는 십자가, 표시라는 상형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생명, 계약, 사역의 완료, 완성,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사 야일은 돌라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사역을 마감했다면 이것을 이어받아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완수하여 사역을 끝내시고 선택받은 백성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새겨주어 생명을 계약하시고 무덤에서 살아나신 영원한 빛을 증거한 사사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빛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인정하고 믿으면서 사사 야일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삶을 살면서 세상에서 빛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세상 사람들과 같은 행동을 가지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세상 사람들이 나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빛을 선포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사 야일은 22년 동안 사사로 있으면서 이와 같은 삶을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삿10:4 그에게 아들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가졌는데 그 성읍들은 길르앗 땅에 있고 오늘까지 하봇야일이라 부르더라
야일에게는 아들 삼십 명이 있어서 이들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가졌다고 말씀합니다. 그 성읍들은 길르앗 땅에 있고 오늘까지 하봇야일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의도가 무엇일까요?
일단 고대근동에서 나귀를 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지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도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야일은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여기에 야일의 아들이 삼십 명이 있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부활될 것을 예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어린 나귀를 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어린 나귀’ 히브리어(아이르 5895) 나귀 새끼, 어린 나귀, 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히브리어(우르 5782) 깨다, 일어나다, 깨우치다, 눈뜨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야일의 아들들이 어린 나귀를 탔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을 통해서 함께 죽음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죽음에서 깨어나서 새로운 부활의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영광의 주를 새롭게 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아무것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에 예수그리스도께서 부활시켜 주시면 우리가 새롭게 눈을 뜨게 되어 주님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요12:14-16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예수님께서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셨습니다. 이것은 구약에 예언된 대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셔서 영광을 받으신 후에 이것이 예수님에 대하여 기록된 말씀인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실 때에 예수그리스도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영광중에 오신 분이지만 고난을 받으심으로 선택받은 자들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린 나귀를 타신 것도 영광의 주로 나타나실 것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야일의 아들들은 나귀 새끼를 탔고 성읍 삼십 개를 가졌습니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구원받은 무리들이 함께 부활되면 영광 받을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성읍 삼십 개를 가졌다는 것은 새 예루살렘의 예표로서 천년동안 왕 노릇하면서 다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아무나 이렇게 나귀 새끼를 타고 성읍 삼십 개를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야일의 아들들이 다스렸던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부활의 소망이 있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그럼 숫자 30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해 보겠습니다.
숫자 30은 그리스도의 피, 헌신,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야일은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야일의 아들들은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구원받아 탄생된 아들들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자가 성읍을 다스리게 됩니다. 그럼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고 죽은 자들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부활되어 들어가게 됩니다. 야일의 아들들이 통치하고 다스렸던 성읍들처럼 우리들이 천년동안 왕 노릇하면서 다스리게 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성경은 이곳을 하봇 야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봇 야일은 ‘야일의 촌락’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 통치하고 다스리는 새 예루살렘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이곳은 야일의 아들 외에는 들어올 수 없는 곳임을 말씀합니다. 새 예루살렘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 날에 구원받아 부활된 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입니다. 우리들은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았고 마지막 날에 부활되어 영원한 새 예루살렘에서 주님과 함께 살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야일이 22년 동안 사사로서 사역을 마치고 장사된 곳이 어디입니까? 가몬입니다.
삿10:5 야일이 죽으매 가몬에 장사되었더라
야일이 때가 되어 죽었습니다. 그리고 가몬에 장사지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야일이 가몬에 장사지낸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해 보겠습니다.
‘가몬’ 히브리어(카몬 7056) 가몬이며 이 단어는 히브리어(쿰 6965) 일어나다, 세우다, 확정되다, 라는 뜻입니다. 야일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삶을 살다가 죽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장사된 가몬도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다시 부활되어 살아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일의 삶은 확실히 예수그리스도가 부활될 것을 확정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야일을 마지막 날에 일으켜 세워서 부활시킬 것을 말씀합니다. 지금은 가몬의 무덤에 있지만 하나님은 야일을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이것은 야일의 삶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보여주기 위해서 야일을 사사로 부르신 것입니다.
고전15: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예수님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을 거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의 첫 열매로 하나님께서 부활시켜 주셨습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들도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여기에서 ‘다시 살아나지’라는 단어가 히브리어(쿰)입니다. 가몬에 야일이 장사지내게 된 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가 부활될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들은 야일이 사사로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사역을 한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역을 감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일이 사사로 있었던 22년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삶을 선포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보게 된 것입니다. 야일의 삶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죽어서까지도 가몬에 장사됨으로 야일 자신은 부활을 소망함으로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야일이 사사로서 사역했던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성도의 삶으로 보면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났으니 이제부터는 죽을 때까지 부활의 소망을 잊지 않고 살아야 할 것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일은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부활의 소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우리들도 때가 되면 죽게 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야일이 가몬에 들어가서 부활될 때까지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우리들도 마지막 부활할 때까지 무덤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때가 되매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우리들도 부활되어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마음에 고통이 있거나 어려움이 있거나 괴로웠다면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났습니다.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주님은 어느 곳에 있든지 나와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이런 주님을 믿고 선포하시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