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라어 원어성경말씀 중에서 소요리문답에 나오는 하나님의 예정 강해 성경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창세 전에 선택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선택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소요리문답에 나오는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내가 창세 전에 선택받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정(豫定)
제 7 문 : 하나님의 예정이 무엇입니까?
답 : 하나님의 예정은 그의 뜻대로 정하신 영원한 계획인데 이로 말미암아 자기 영광을 위 하여 장차 일어날 모든 일을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엡 1:4, 1:11, 2:10; 시 33:11; 롬 9:22-23, 11:33; 행 2:23, 4:27-28, 13:48)
기독교에서 예정교리는 생각이 분분(紛紛)하다. 예정(豫定)을 말하는 사람이 있고 예지(豫知) 예정(豫定)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 교리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17세기부터 논쟁이 되어 왔다. 알미니우스(1560~1609)의 영향을 받은 46명의 목사들이 5개 조항을 항의문의 형태로 탄원 문을 의회에 제출하면서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예정에 관한 해석에 반박했다. 이들이 주장했던 5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부분적 타락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믿지 못할 만큼 타락한 것은 아니며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믿기로 선택할 수 있다. 성경은 전적타락을 말하고 있다. 인간은 전적부패가 일어났기 때문에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선택할 수 없다.
둘째, 조건적 선택이다.
예정이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이 복음을 믿을지 미리 아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신 것을 의미한다. 구원은 일방적 구원이지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다. 구원에 관하여 인간의 의는 1%도 없다. 구원은 하나님과 인간이 협동하여 얻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적 선택이다.
셋째, 보편적 속죄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받으신 고통은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었다. 알미니안주의는 주님의 죽으심은 모든 사람을 위해 죽었다고 주장한다. 성경은 선택받은 자를 위한 제한적 속죄를 말한다.
넷째, 가항적 은혜이다.
성령님께서 어떤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베푸시는 은총을 사람은 거부할 수 있다. 구원에 관하여 선택받은 자가 성령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없다. 불가항력적 은혜이다. 가항적 은혜가 되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실패가 된다. 마지막에 인간이 하나님의 구원을 거부하여 포기하면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보내준 자들은 한 명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했다.(요6:39) 주님은 거짓말을 한 것과 같다.
다섯째, 탈락 가능성이다.
한 번 구원을 받은 사람도 미래에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한 처사다. 하나님은 구원한 백성은 생명책에서 이름을 절대 지우지 않는다고 했다.(계3:15) 구원받은 사람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인데 나중에 하나님이 이름에서 지워버린다면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전락시키게 된다. 하나님은 선택받은 자를 끝까지 생명책에서 지우지 않고 천국까지 인도한다.
이 항변 서를 알미니우스를 추종하던 자들이 의회에 제출했다. 이때에 도르토 총회가 열리게 되었고 개혁교회에서는 이에 반박하기 위해 다섯 가지 강령을 선포했다. 5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전적 타락이다.
육체적인 생명만 갖고 있는 모든 자연인은 그 본성이 타락하여 구원에 필요한 믿음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인간은 아담 이후로 전적부패 되어 구원에 관한 의지는 찾아볼 수 없다. 하나님께 나갈만한 의지는 상실되었다.
둘째, 무조건적 선택이다.
하나님은 구원을 주시는데 누구에게 참된 믿음을 줄 것인지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인간의 선행에 상관없이 선택하셨다.
셋째, 제한적 속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실효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성경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위해 주님이 죽으신 것이 아니라 창세전에 선택받은 자를 위해 속죄하셨다.
넷째, 불가항력적 은혜이다.
죄지은 인간은 하나님께 나갈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선택한 백성을 구원하실 때 인간은 거부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과 은혜를 거부할 수 있는 주권이 인간에게는 없다.
다섯째, 성도의 견인이다.
한번 구원받은 자는 타락의 길로 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이끄시고 인도하셔서 견인하신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에 성도가 구원에서 탈락한다면 하나님의 주권이 상실된 것이다.
예정의 주제를 가지고 성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예지(豫知) 예정(豫定)인지, 예정(豫定)인지를 정확하게 배워보자. 예정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며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엡 1: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카도스 엨셀렠사토 헤마스 엔 아우토 프로 카타볼레스 코스무 에이나이 헤마스 하기우스 카이 아모무스 카테노피온 아우투 엔 아가페)
하나님이 인간을 예정하신 시점이 언제인가?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선택했다. 나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선택했다.
‘창’은 (카타볼레스 2602 NGFS 명사, 소유격, 여성, 단수) 기초, 시작, 창설, 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카타볼레) 라는 어근이다. 이 단어는 (카타발로 2598) 아래로 던지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창세라는 것은 창세기에 말씀하고 있는 태초를 말한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 세상을 기초하셨다. 땅에 식물이 없지만 씨를 뿌려 자라나면 곡식이 나오듯이 하나님은 이 세상을 무에서 유로 창조하셔서 시작하셨다는 의미다. 하나님이 태초에 이 세상을 만드실 때에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있었음을 말한다. 그 이유가 소유격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도 어떠한 일을 할 때 계획하고 실행한다. 하물며 하나님의 계획은 어떠하랴? 하나님은 모든 계획을 세우시고 변함없이 태초에 세상을 창조했다.
‘세’는 (코스무 2889 NGMS 명사, 소유격, 남성, 단수) 질서, 꾸밈, 장식, 세상, 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코스모스) 라는 어근이다. 하나님은 태초에 창조하실 때 계획하신 대로 질서정연에게 이 세상을 창조했다. 하나님의 창조는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아도 될 만큼 완벽하게 창조했다. 이렇게 완전하고 완벽하게 창조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계획이 완벽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설계하신 그대로 이 세상을 꾸미고 장식하듯이 만들었다. 소유격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완벽하게 창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택하사’는 (엨셀렠사토 1586 VIAMS3 동사, 직설법, 과거, 중간태, 단수, 3인칭) 골라내다, 선택하다, 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에클레고) 라는 어근이다. 이 단어는 (에크 1537) ~로부터, 라는 뜻과 (레고 3004) 모으다, 열거하다, 말하다, 라는 뜻의 합성어다. 하나님이 예정하신 시기는 창세전이다.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선택받은 나를 예정했다. 창세전에도 이미 예수 그리스도는 존재하고 있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함께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창세전부터 빛 되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여 구분했다.
그렇다면 창세전부터 이미 선택받은 자가 있고 선택받지 못한 자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신 일이 실제로 있다. 직설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창세전에 실제로 선택하셨다는 것을 증명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선행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을 것을 알고 예정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과거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인간의 선행의지를 알고 선택한다면 현재 시제를 통해서 인간이 잘 믿으면 예정하여 구원을 주게 된다. 과거 시제는 하나님의 선택은 조건이 없는 무조건적 선택이며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말해준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조건 없이 인간을 선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며 영광받기 위해서다. 그 이유가 중간태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직접 나를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여 구원을 주시고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존귀와 찬송과 영광받기를 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선택받은 것은 선행을 했기 때문에 뽑힌 것이 아니다. 나의 선행으로 뽑힌 것이라면 구원은 삯이 된다.
엡 1: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엔 호 카이 에클레로데멘 프로오리스덴테스 카타 프로데신 투 타 판타 에네르군토스 카타 텐 불렌 투 델레마토스 아우투)
하나님이 하신 일은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내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다.
‘일하시는’은 (에네르군토스 1754 VPPAGMS 동사, 분사, 현재, 능동태, 소유격, 남성, 단수) 역사하다, 일하고 있다, 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에네르게오) 라는 어근이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계획하시고 뜻하신 대로 결정하셔서 일하신다. 하나님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계획하신 대로 일하시는 분이다.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이 일하시는데 지금 현재 창세전에 선택한 백성들을 구원시키기 위하여 부르고 있다. 그 이유가 현재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직접 선택한 백성을 부르고 있다. 능동태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현재도 이 세상에서 일하고 계시는데 아무런 계획도 없이 하지 않는다. 소유격을 썼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선택한 백성들이 예정되어 소유되었기 때문에 이들을 찾으려고 지금도 일하고 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계획하고 결정하신 뜻대로 지금도 선택받은 자를 부르신다.
‘예정을 입어’는 (프로오리스덴테스 4309 VPAPNMP1 동사, 분사, 과거, 수동태, 주격, 남성, 복수, 1인칭) 예정하다, 미리 정하다, 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프로오리조) 라는 어근이다. 이 단어는 (프로 4253) ~전에, 앞에, 라는 뜻과 (호리조 3724) 결정하다, 작정되다, 선포되다, 라는 뜻의 합성어다. 우리가 예정을 가지고 많은 논쟁이 있지만 원어를 보면 논쟁할 필요도 없다. 예정은 하나님의 작정에 의하여 미리 정하셔서 결정하신 것을 선포한 것이 예정이다. 인간이 잘 믿을 것을 알고 예지하셔서 작정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미리 조건 없이 정하셨다.
하나님이 언제 예정하셨는가? 분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창세전에 이미 나를 선택했음을 정확하게 말해준다. 내가 예정된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며 번복되지 않는 사실임을 증명한다. 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단어에는 현재 시제를 사용했다. 하지만 예정이라는 단어는 과거 시제를 사용한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예정하신 선택된 백성들을 현재 부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잘 믿을 것을 알고 지금 돌아다니면서 일하는 것이 아니다. 창세전에 예정하여 끝난 사람을 현재 돌아다니면서 찾고 있다. 알미니안주의는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지 아시고 예정하셨다고 말한다.
이렇게 되면 인간이 주권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끝이다. 하나님의 예정은 조건적이지 않다고 확실하게 말씀한다. 수동태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잘 믿을 것을 아시고 예정하신 것이 아니다. 조건 없이 하나님의 의지에 의하여 인간은 수동적으로 예정을 받았다. 인간의 의지가 있어서 예정을 입은 것이라면 중수디포를 사용해야 한다. 내가 열심히 믿어서 하나님이 나를 현재 선택하여 하나님께 돌아가게 했다는 문법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는 수동태만을 사용한다. 능동태가 없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예정은 인간의 의지는 전혀 포함되지 않고 하나님의 의지만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예정을 입은 자가 누구인가? 바로 내가 하나님의 전적인 예정을 입었다. 1인칭을 사용하고 있다. 복수는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내가 하나님께 예정을 입어야 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존재이지 내가 하나님을 선택하는 존재가 아니다.
‘기업이 되었으니’는 (에클레로데멘 2820 VIAPP1 동사, 직설법, 수동태, 복수, 1인칭) 제비 뽑다, 제비로 결정하다, 라는 뜻이다. 예정을 입어 기업이 되었다는 말은 구원받았다는 의미다. 우리가 하나님의 예정을 입어 기업이 된 것은 인간의 의는 전혀 없다. 사람이 추첨하여 제비를 뽑을 때 뽑히는 대상에게는 의지가 전혀 없다. 하나님은 나를 창세전에 예정하여 기업이 되게 한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으로서 제비 뽑아 결정했다. 내가 기업이 된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의지로 선택된 사실이 있다. 직설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업이 된 것은 취소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의 기업이 된 것은 현재 열심히 주님을 믿었기 때문에 얻은 것이 아니다. 이미 창세전에 주님 안에서 예정을 입어 기업이 되었다. 내가 기업이 되었는데 나의 의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업을 받을 자에게는 전혀 의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전적으로 제비뽑듯이 뽑아준 은혜다. 1인칭을 사용한 것은 내가 하나님께 예정되어 기업을 얻었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하게 하려함이다.
엡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우투 가르 에스멘 포이에마 크티스덴테스 엔 크리스토 이에수 에피 에르고이스 아가도이스 호이스 프로에토이마센 호 데오스 히나 엔 아우토이스 페리파테소멘)
우리는 하나님께 창조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 받았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다.
‘지으심을 받은 자니’ (크티스덴테스 2936 VPAPNMP1 동사, 분사, 과거, 수동태, 주격, 남성, 복수, 1인칭) 창조하다, 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크티조) 라는 어근이다. 하나님께 예정을 입고 선택받은 자는 무에서 유로 창조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창조된 시점이 어디인가?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바이브라 엘로힘 에트 하아담 베찰르모 베첼렘 엘로힘 바라 오토 자카르 우네케바 바라 오탐)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이때는 아담도 창조되기 전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는데 이때의 시점이 창세전을 말한다. 그 이유가 ‘창조’라는 단어가 (바라 1254)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 단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이미 남자와 여자를 무에서 유로 창조하셨음을 밝히고 있다. 분사를 사용한 것이 증거다. 창세전에 하나님은 이미 선택자와 불택자를 창조하셨다. 과거 시제를 쓴 것은 창세전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으로 무에서 유로 창조되었음을 말한다. 그 이유가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전적인 피조물이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주권에 맞설 수 없다.
‘전에 예비하사’는 (프로에토이마센 4282 VIAAS3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단수, 3인칭) 미리 준비하다, 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프로에토이마조) 라는 어근이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선택하여 예정된 사람을 무에서 유로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이 미리 준비하신 일이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계획하시고 준비하셔서 선택받은 자가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도록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기 전에 준비하신 사실이 실제로 있다. 직설법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은 계획과 준비도 없이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전에 예비했다는 것은 영원 전부터 준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창세전에 창조하려면 하나님의 준비는 그 이전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미리 직접 준비하시고 내가 선하게 행동하도록 하려고 창조하셨다. 나는 창세전에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음을 믿어야 한다.
창세전에 예정되어 선택된 자는 이 땅에 태어나도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는 한 명도 잃어버리지 않는다.
행 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아쿠온타 데 타 에드네 에카이론 카이 에돜사존 톤 로곤 투 퀴리우 카이 에피스튜산 호소이 에산 테타그메노이 에이스 조멘 아이오니온)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모두 믿는다. 복음은 내가 거부하고 싶다고 해서 거부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로 작정된 자는 믿을 수밖에 없다.
‘작정’은 (테타그메노이 5021 VPRPNMP 동사, 분사, 완료, 수동태, 주격, 남성, 복수) 정리하다, 지명하다, 임명하다, 지정하다, 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탓소) 라는 어근이다. 이방인들에게 십자가 복음을 선포했을 때 이방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찬송했다. 이방인들도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기로 지명되어 임명된 사람들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 하나님의 작정은 창세전에 예정하여 구원주기로 지정된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작정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로마인이나, 그 외의 이방인들이나 상관이 없다.
창세전에 이미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주기로 작정하셨다. 분사를 보면 우리가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구원주기로 작정된 이방인들은 이미 구원받기로 작정되어 끝났다. 현재 이들이 열심히 선행을 했다고 해서 지금 작정되는 것이 아니다. 완료 시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줄자는 이미 임명하셔서 끝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작정 안에 들어온 사람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상관없이 무조건적인 선택이다.
수동태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조건 없이 창세전에 선택하여 이 땅에 왔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두 믿게 하셨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 없다. 만약에 작정된 사람의 의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다면 중간디포를 사용해야 한다. 내가 믿고 의롭게 되어 하나님께 돌아가는 문법을 써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작정은 전적인 수동태를 사용하여 오직 하나님의 주권으로 선택되어졌음을 증명하고 있다.
‘믿더라’는 (에피스튜산 4100 VIAAP3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복수, 3인칭) 믿다, 라는 뜻이다. 십자가 복음을 전해주었을 때 모두가 믿지 않았다. 율법주의자들인 유대인들은 복음을 전해주었을 때 안 믿었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었다. 그 이유가 이들은 창세전에 예정되어 선택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선택되었기 때문에 믿었다는 사실이 있다. 과거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믿고 있는 것인데 현재 시제를 사용하지 않았다. 과거에 이미 하나님의 작정 안에 있었기 때문에 믿게 된 것을 말한다.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현재 믿게 된 것은 만세전에 이미 하나님께 선택되어졌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불가항력적 은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죽을 것도 만세전에 예정하셨다. 악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일 것도 함께 예정되었다.
행 2: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투톤 테 호리스메네 불레 카이 프로그노세이 투 데우 에크도톤 디아 케이로스 아노몬 프로스펰산테스 아네일라테)
하나님은 의인이나 악인이나 모두 예정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것도 예정되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악인들에게 내주었다.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팔았고 로마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정하신’은 (호리스메네 3724 VPRPDFS 동사, 분사, 완료, 수동태, 여격, 여성, 단수) 결정하다, 지정하다, 임명하다, 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호리조) 라는 어근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만세전에 이 선택받은 자를 위해 십자가에 죽기로 지정되어 결정되었다. 하나님이 언제 작정하셨는가? 만세전에 작정하여 결정하고 주님을 임명했다. 하나님의 계획은 변함이 없고 다시 계획을 수정하신 적이 없다. 그 이유는 완료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한 번 정하신 뜻은 사람들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나님 스스로 정하셨고 계획하셨다. 그 이유가 수동태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수동태를 사용하여 뜻을 굽히지 않고 선택된 백성들을 위해 죽으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너희가 죽였으나’는 (아네일라테 337 VIAAP2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복수, 2인칭) 취하다, 죽이다. 폐지하다, 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자들은 만세전에 선택받지 못한 자들이다. 자신의 의로 구원을 받으려고 했던 율법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의를 취하여 하나님 앞에 나가려고 했던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제한적 속죄를 말씀하셨지만 이것을 폐지하고 보편적 속죄를 주장하는 자들이다. 악인들이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것도 하나님의 예정이다.
예수님의 제자인 가룟유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은 30에 판 것도 예정이다. 하나님은 구원받을 자와 구원받지 못할 자를 만세전에 예정하셨다. 악인이 예수그리스도를 죽일 것을 예정하신 일이 있었고 그들은 예정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였다. 그 이유가 직설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인들이 갑자기 욱하는 마음으로 화가 나서 순간에 예수님을 죽였다면 현재 시제를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과거 시제를 쓰고 있다. 이것은 구원받지 못한 악인들이 스스로 죽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예정가운데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 4: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쉬네크데산 가르 에프 알레데이아스 엔 테 폴레이 타우테 에피 톤 하기온 파이다 수 이에순 혼 에크리사스 헤로데스 테 카이 폰티오스 필라토스 순 에드네신 카이 라오이스 이스라엘)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들과 합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다. 선택받지 못한 이들은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로 주님을 죽이게 되었다.
행 4: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포이에사이 호사 헤 케이르 수 카이 헤 불레 수 프로오리센 게네스다이)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하나님의 뜻을 행동에 옮기려고 이 성에 모였다. 악인들도 하나님의 예정가운데 역사하신다.
‘모였나이다’는 (쉬네크데산 4863 VIAPP3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복수, 3인칭) 소집하다, 모으다, 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쉬나고) 라는 어근이다. 헤롯과 빌라도와 이방인과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일을 이루려고 모였다. 이들은 실제로 한 자리에 모여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뜻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데 찬성했다. 자신들의 의지대로 모여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데 판 것이 아니다. 만약에 이들의 뜻대로 한 것이면 현재 시제를 써야 한다. 하지만 과거 시제를 썼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예정하신 대로 이들은 모여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뿐임을 말해준다. 이들이 모인 것은 자신의 의지대로 모인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의지로 모였다면 능동태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수동태를 쓰고 있다.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서 이들은 모이게 되었다. 하나님은 악인들도 예정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데 동의하도록 하셨다. 결국 이들은 만세전에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한 자라는 것을 말해준다.
‘예정하신’은 (프로오리센 4309 VIAAS3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단수, 3인칭) 예정하다, 미리 정하다, 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프로오리조) 라는 어근이다. 하나님은 만세전에 선택받은 자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리기로 미리 정하셨다.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다. 하나님은 예정하신 일을 십자가에 달게 하는 자들까지도 예정하셨다. 과거 시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이미 만세전에 의인과 악인을 갈라놓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을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와 유대인들과 로마의 이방인들까지 예정하셨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실에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만세전에 이미 구원받을 자와 구원받지 못할 자가 구분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원문을 통해 확실히 갈라놓으셨다고 증명하고 있다. 그럼 나는 사람의 말을 믿을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것인가? 판단해야 한다. 내가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화를 내게 된다. 내가 선택받지 못한 자로 만세전에 예정되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원의 확신이 있는 자는 기쁨이 있고 평안하다.
하나님의 예정은 인간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선행을 해서 구원에 이르는 것도 아니다. 원문을 통해서 알아본바, 예정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며 하나님이 전적으로 행하시는 일이다. 인간은 예정에 대하여 왜 이런 사람을 선택했냐고 반문할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만세전에 하나님은 악인과 의인을 갈라놓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중에 내가 의인으로 구원받아 선택되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예정교리를 정확하게 알면 하나님께 감사가 나오고 믿음이 확고해지며 구원이 흔들리지 않는다. 예정교리를 통해서 구원은 탈락되지 않고 취소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