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1장 짧은 복음 설교문]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호1:1-11)

호세아 1장 짧은 복음 설교문은 호세아 선지자와 음란한 고멜과의 결혼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에게 음행한 고멜과 결혼하라고 명령했다. 고멜은 임신하여 딸을 낳았는데 로루하마라고 이름을 지었다. 다음에 아들을 낳았는데 로암미라고 이름을 지었다.

Ⅰ. 주제 1:1

(1) 선지자의이름이 그의 예언에 앞서 나타난다. 그의 이름은 호세아(Hosea, 또는 Hoshea)인데, 여호수아와 원명에 있어 동일하게 구원을 의미한다. 그의 성은 벤 브에리 즉 브에리 집안의 아들이었다. 브에레는 “우물”을 뜻하는 말로 그것은 우리에게 생수를 생각나게 한다. 이는 거기에서 선지자들이 끊임없이 나올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2) 그에게 권위와 위임이 주어졌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는 하나님의 영감에 의하여 말하고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이 책은 구약 정경 가운데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 사실은 신약 성경에서 인용된 것으로 인하여 확증되었다(마 2:14;9:13;12:7;롬 9:25,26;벧전 2:10).

(3) 본문에는 그가 예언한 그 시대에 대하여 특별한 설명이 나타나 있다.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이는 그 당시 호세아가 예언한 시대의 통치자들에 대한 설명으로 곧 그가 오랜 기간동안 예언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다. 즉, 그는 어릴 때부터 시작하여 매우 연로해지기까지 계속해서 예언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호세아와 오래 같이 있게 됨에 따라서 그를 더욱 덜 존중히 여기게 되었다. 그들은 그가 젊었던 초창기 때 뿐만 아니라 연로하게 된 후에도 그를 멸시하였다. 이 왕들 중에 그에게 용기를 준 선한 왕이 있었던 반면에, 악하여 그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낙담케 한 왕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동일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이 번영할 때에 즉 여로보암2세 때에 예언하기 시작하였다(왕하 14:25). 그러나 그때 호세아는 담대하게 그들의 죄악에 대하여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의 멸망을 예언하였다.

Ⅱ. 하나님께 받은 명령 1:2-7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이 말은 다음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를 가리키는 것이다. 첫째, 세움을 받은 영광스러운 일련의 선지자들이 있음을 가리킨다. 이 무렵 요엘, 미가, 요나, 오바댜, 그리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었다. 그러나 호세아는 그들 중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한 첫 번째 선지자였다. 둘째, 호세아 자신의 예언들을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이 백성에게 보내어 주신 첫 번째 메시지인데, 그들에게 그들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임을 말하도록 하였다. 그는 자신이 권위와 그들의 사람을 받기까지 그런 임무를 면제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이와 같은 사명으로 출발하여야 했다. 이는 그들로 여호와의 선지자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를 알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1) 선지자는 마치 거울로 비추듯이 그들에게 그들의 죄를 보여 주어야 한다. 선지자는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는 명령을 받는다(2절). 그래서 그는 그와 같이 했다(3절). 그는 평판이 좋지 못한 여인인 디블라임의 딸 고멜과 결혼하였다. 그 여자는 독신으로 지내면서 수치스럽게 살았다. 그러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으로 제사장들에게 금지되어 있었다. 그것은 죄가 되지는 않았지만 호세아에게 고통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해석자들은 그것이 환성 속에서 행해졌거나 단지 비유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사도행전 3장 헬라어 설교말씀 앉은뱅이 치유 사건

그는 음란한 여인을 취하여야 했으며, 또한 비록 혼인 관계에서 태어났다 할지라도 모든 사람이 음행으로 낳은 자식이라고 미심쩍어 할 만한 자식을 낳아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호세아야, 음란한 아내, 음란한 자식이 너에게 그러하듯이, 이 백성이 나에게 수치, 근심, 그리고 고민이 되었느니라.” 이 나라가 크게 행음함이니라. 그들이 특히 여기서 문책받고 있는 음행은 우상 숭배이다. 우상 숭배는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악하고 큰 음행이며, 하나님을 떠나는 행위이다. ‘이 나라가 행음함이니라.’ 나라 전체가 그것으로 감염되었다.

거룩한 하나님께 그러한 백성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모욕된 일이겠는가? 이들은 그의 이름으로 불리우고 그의 전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백성이었다. 그것은 마치 유명한 창기인 디블람의 딸 고멜과 선지자 호세아가 결혼한 것과 같다. 이스라엘 나라는 디블라임의 딸 고멜과 같았다. 고멜은 부패를 의미하며, 디블라임은 두 개의 과자, 또는 무화과 덩어리를 의미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멸망이 가까웠다는 것과 그들의 사치와 육적 욕망이 그것을 유발시켰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죄가 풍요의 딸이며, 파멸이 무절제한 낭비의 딸인 것을 의미한다.

(2) 선지자는 마치 망원경을 통하여 보듯이 그들의 멸망을 그들에게 보여 주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음녀에게서 태어난 자녀에게 지어 준 이름을 통하여 파멸을 예고한다.

1) 선지자는 첫 아들에게 정해 준 이름으로 왕족의 멸망을 예고한다. 그 이름은 이스르엘이라 하라(4절). 이스르엘은 하나님의 자손을 의미한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흩어진 자를 의미한다. “그들을, 주권을 뜻하는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지 말고 분산을 의미하는 이스르엘이라고 부르라.”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리라. 그 피는 예후가 모든 바알 숭배자들과 함께 아합의 집을 멸망시킬 때 흘린 것이다. 하나님은 그가 한 일을 시인하셨다(왕하 10:30).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그의 가문에 대하여 약속된 기간이 끝나자 예후의 집에 그 피를 갚겠다고 말씀하고 계시다.

아합의 집에 내린 것은 의로운 판결을 실행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보응되었다. 그러나 예후는 의로운 방법으로 하지 않았다. 그는 죄인들에 대해 악의를 가지고 행하였을 뿐 죄에 대한 어떤 반감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금송아지 숭배를 계속했기 때문이다(왕하 10:31). 따라서 하나님이 그들과 셈하게 되셨을 때, 회계의 첫 항목은 여기서 이스라엘의 피라고 칭한 아합 집의 피에 대한 것이다. 혹자는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리라’는 말이 그 피흘린 것에 대한 복수를 의미하지 않고 그 피흘림의 반복을 의미한다고 보기도 한다. 즉 ‘내가 아합의 집을 벌했듯이 예후의 집을 벌할 것이라.” 예후의 집의 마지막 왕 스가랴의 사후에 이스라엘은 쇠망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멸망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경고가 주어졌다.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5절). 활을 꺾는다는 것은 쇠잔하여 파멸된 권세를 암시한다.

2) 선지자는 그가 둘째 아이에게 준 이름에서 전 민족을 하나님이 버리실 것을 예언한다. “이 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고 하라.” 이 말은 사랑받지 못한 자(롬 9:25), 또는 긍휼을 얻지 못한 자(벧전 2:10)라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큰 자비를 보이셨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모욕하여 잃어 버렸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셨지만, 고치기를 싫어하는 백성에게 항상 참으시지는 않을 것이다.

(3) 선지자는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하시는 동시에 유다 족속을 위하여 쌓아두신 자비가 어떠한가를 그들에게 보여 주어야 했다(7절).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앗수르 군대는 사마리아를 멸망시키고 열 지파를 포로로 잡아간 후에, 계속해서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다 족속에 긍휼을 베푸셔서 어느날 밤에 앗수르 진영에서 천사들을 보내 살육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구원하셨다.

그때 그들은 칼이나 활로서가 아니라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에 의하여 구원을 받았다. 이것은 또한 우상 숭배에서 유다가 구원받은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는 그들로 다른 구원을 받게 하는 자격과 준비가 되었다. 바로 그때 이스라엘 왕국은 호세아 아래서 완전히 사라졌고, 유다 왕국은 히스기야 아래서 영광스러운 개혁을 하였다. 바벨론에서 역시 하나님은 먼저 우상 숭배에서 그들을 구원하셨고 그후 포로에서 구원하셨다. 혹자는 이 약속을 큰 구원, 즉 때가 왔을 때, 여호와 우리 하나님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될 것으로 기대하기도 한다.

Ⅲ. 자비의 약속 1:8-11

(1) 일시적으로 이스라엘이 버림받은 것이 호세아가 음란한 아내에게서 낳은 다른 아이의 이름으로써 예시되었다(8,9절).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혹자는 이 여인이 다른 아들을 낳은 것은 곧 백성이 그들의 악행을 고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욕심은 여전히 잉태하여 죄를 낳았다. 그 아이에게 이름이 주어졌다. 그 이름은 로암미라 하라. 즉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더 이상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으실 것이라는 말을 듣고도 상관치 않고, 자기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자기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자만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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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기둥을 뽑아 버리시고 그들과의 모든 관계를 끊으신다.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그들이 앗수르 나라로 완전히 붙들려 갔을 때, 이 예언은 이스라엘에 성취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다. 두 지파가 포로되었을 때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어떤 선지자도 보내지 않으셨고 아무 약속도 하지 않으셨다.

(2) 멸망 후에 때가 차면 회복되리라는 것이 예언되어졌다. 전과 같이 여기에서도 진노 중에 자비가 기억되었다. 버림받는 것이 전체가 될 수 없듯이 마지막이 될 수도 없을 것이다(10,11절).

1) 혹자는 바벨론 포로에서 유대인이 귀환함으로 이 약속이 성취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때 열 지파 중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유다 지파에 연합하였으며 포로로 흩어져 있었떤 여러 나라에서 자기 고국으로 돌아와, 스룹바벨을 그들의 우두머리로 정하고 한 민족으로 결합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고국에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지자를 대신하여 그들을 그의 자녀로 인정하시고자 하였다.

2) 혹자는 후일 유대인들이 전체적으로 회심하게 되기까지 이 약속을 완전히 성취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3) 이 약속은 그리스도와 왕국이 세워지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 왕국에 함께 참여하게 됨으로써 성취되었다(롬 9:25,26;벧전 2:10). 이 이스라엘은 크게 배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육체를 따라서는 감소된다 할지라도 영적인 이스라엘은 셀 수 없이 증가할 것이다. 복음이 전파됨으로 말미암아 초대 교회와 그 이후에 그리스도께로 들어온 많은 사람을 통해서, 이 약속은 성취되었다(계 7:4,9;갈 4:27). 하나님께서는 복음적인 이스라엘과 그의 약속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구약 교회를 하나되게 한 것만큼 완전한 헌장으로 복음적인 이스라엘을 교회에 하나되게 할 것이다.

각기 각 장소에서 버림받는 이방인들과 자기 방에서 배척받은 유대인들이 복을 받을 것이다. 그들의 열조가 불신앙으로 쫓겨났던 그곳에서 이제는 그 자손들의 신앙으로 말미암아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다. 특권이 확대되고 있다. 즉 이제는 전처럼 ‘너희는 내 백성이라’할 뿐만 아니라 그 혈통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간에 ‘너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음을 받게 된 것이다. 그들이 율법 아래서는 자녀이었지만, 이제 복음 아래서 장성하여 더 큰 총명과 자유를 갖게 되었다(갈 4:1,2). 신자의 아들됨이 인정될 것이다.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이다’라고 하였다. 그들이 오랫 동안 하나님의 노여움의 징표를 받았던 바로 그 장소에서 하나님의 은총의 징표로 존귀함을 얻게 되었을 때, 그것은 더욱 그들을 존귀케 해주었을 것이다.

사이가 나빴던 자들이 서로 기쁘게 돌어올 것이다(11절).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유다와 이스라엘의 이 결합은 단지 세상에 세워질 그리스도의 왕국이 복된 결과에 대한 실례 또는 한 표본으로서 언급되어진 것이다. 첫 번째 제자들은 일부 유대인들과 갈릴리 사람들이었다. 사마리아인들이 믿게 되었을 때 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매우 큰 적대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일치가 이루어졌다(행 8:14).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의식법의 벽이 헐렸다. 에베소서 2:14-16을 보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모든 영적 이스라엘의 구심점이 되실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를 우리의 머리로 정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정하심에 동의하는 것이다.

기꺼이 우리 자신을 그의 인도하심과 지배하심에 맡기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자기들의 머리로 삼은 모든 선한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그 수가 많다 하더라도 그분 안에서 하나이며 또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그들의 머리로 정한 후에 ‘그 땅에서부터 올라올 것이다.’ 모든 곳에서 온갖 사람들이 올라올 것이다. 그것은 지역적인 그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10절에서 동일한 장소를 언급하기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변화, 곧 영적으로 그리스도께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지난 후에 ‘이스라엘의 날이 클 것이다.’ 이스라엘이 여기서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씨라 불리고 있다. 이 씨는 이제 땅에 파종되어 묻힌다. 그러나 큰 날, 곧 추수기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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