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 원어성경 아가서 설교 말씀은 술람미 신부와 솔로몬 왕의 뜨거운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구속사 관점에서 거룩한 신부인 성도를 상징하고 솔로몬 왕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술람미 신부처럼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술람미 신부와 솔로몬의 뜨거운 사랑(아8:5-7)
술람미 신부와 솔로몬 신랑은 함께 수넴 지역의 술람미 신부의 고향에 왔습니다. 그곳에서 둘만의 은밀한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렇게 주님과 사랑을 나눌 때에 다른 사람의 방해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은 주님과 나와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골방과 같은 곳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항상 은밀한 대화를 하면서 신랑과 신부의 기쁨을 만끽할 때에 신앙생활이 더 활력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님과 소홀해졌던 영적 관계가 더 뜨거운 주님의 사랑으로 바꾸어지기를 바랍니다.
아8:5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너로 말미암아 네 어머니가 고생한 곳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미 조트 올라 민 하미드바르 미트라페케트 도다흐 하타푸아흐 오라리티카 샤마 히빌라티카 임메카 샤마 히빌라 일라다티카
술람미 신부가 솔로몬 왕과 함께 고향집으로 오고 있습니다. 이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을 만나지 못했다면 인생 자체가 별 볼일 없는 인생으로 끝날 사람입니다. 그런데 솔로몬 왕을 만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금의환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술람미 신부로 말미암아 어머니가 고생한 곳에서 수고로이 신부를 낳은 사과나무 아래에서 술람미 신부가 솔로몬 왕을 깨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지하고’ (라파크 7514 VTPPFS 동사 히트파엘 분사수동 여성 단수) 기대다, 의지하다, 라는 뜻입니다. 술람미 신부는 천박한 삶을 살았던 여인입니다. 이런 여인이 솔로몬 왕을 만나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다시 수넴의 고향집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때에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솔로몬 신랑을 의지하고 돌아오는 여인이 누구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술람미 신부는 솔로몬 왕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맡겼더니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의지할 수밖에 없도록 솔로몬 왕이 술람미 신부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습니까? 신랑 되신 예수그리스도께 나의 모든 삶을 맡겨야 합니다. 전적으로 주님을 믿고 있다면 이제부터 주님께 전적으로 기대어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에게는 평강이 찾아오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영예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주님을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의지할 수 있도록 찾아오셨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내가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모두가 주님께 의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오직 주님의 역사로 기대고 의지하여 나의 마음에 속죄의 평강과 세상의 축복이 넘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과나무 아래에서’ (탑푸아흐 8598) 사과나무, 사과,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나파흐 5301) 숨 쉬다, 불어넣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술람미 신부가 솔로몬 신랑이 사과나무 아래에서 깨웠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술람미 신부는 자신의 고향집으로 와서 솔로몬 신랑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옛날 일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면서 솔로몬 신랑이 아니었다면 현재의 자신의 모습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솔로몬 신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깨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그리스도가 아니면 원죄에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사과나무에서 쉬고 계시는 예수그리스도를 깨었기 때문에 우리가 원죄에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영혼이 죽었던 나에게 주님이 생명을 불어 넣어주신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셔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원죄에 빠져있었을 때에는 숨을 쉬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가 이제는 숨을 쉬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랑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깨우지 않으면 절대 숨을 쉴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막4:36-39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36절 카이 아펜테스 톤 오클론 파랄람바누신 아우톤 호스 엔 엔 토 플로이오 카이 알라 데 플로이아리아 엔 메트 아우투
37절 카이 기네타이 라일랍사 아네무 메갈레 타 데 퀴마타 에페발렌 에이스 토 플로이온 호스테 아우토 에데 게미제스다이
38절 카이 엔 아우토스 에피 테 프륌네 에피 토 프로스케팔라이온 카듀돈 카이 디에게이루신 아우톤 카이 레구신 아우토 디다스칼레 우 멜레이 소이 호티 아폴뤼메다
39절 카이 디에게르데이스 에페티메센 토 아네모 카이 에이펜 테 달랏세 시오파 페피모소 카이 에코파센 호 아네모스 카이 에게네토 갈레네 메갈레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은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광풍에 놀라 주무시고 있는 주님을 깨우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힘으로 되지 않으니 신랑 되신 예수님을 깨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주님께서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가 잔잔하여졌습니다. 우리들은 신부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신랑 되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힘들고 지칠 때에 주님을 깨워야 합니다. 나의 힘으로 하려고 하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의 힘으로는 죄악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절대 없습니다. 살아계신 주님께서 나에게 숨을 불어 넣어주실 때에 내가 살아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8:6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시메니 카호탐 알 리베카 카호탐 알 지로에카 키 아자 카마베트 아하바 카샤 키쉐올 킨아 리샤페하 리쉬페 에쉬 샬리헤베티야
술람미 신부는 솔로몬 왕에게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해서 불길 같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나를 품고’ (숨 7760 VQMMYS.CXS 동사 칼 명령법 남성 2인칭 단수. 공성 1인칭 단수) 베풀다, 관리하다, 덮다, 지키다, 라는 뜻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 신랑에게 말하기를 자신을 품어달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며 인생을 맡기겠으니 관리하여 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도 명령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당신이 아니면 내 인생을 책임져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그리스도 품 안에 있을 때에 안정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신부인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을 오직 주님께만 맡기고 책임져 달라고 부탁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십자가 은혜가 나의 인생에 함께 하셔서 인생의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덮어주시는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주님께 맡길 때에 주님께서 나를 지켜주시고 함께 해주시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이 아니면 절대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실 분이 없습니다. 사람도 아닙니다. 부와 명예와 권세도 아닙니다. 오직 주 예수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술람미 신부가 솔로몬 신랑의 팔에 자신을 두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신랑의 권세와 힘 아래에 자신을 두어 세상의 세력들이 자신을 공격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우리들도 예수그리스도의 팔에 있으면 사탄의 공격이 있다하더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힘의 권능 자 되신 나의 신랑이 나가서 사탄을 처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사랑은 죽음과 같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독생자를 나 대신에 십자가에서 죽이신 것입니다.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신부를 위해 바치는 것입니다.
딤전2:5-6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5절 헤이스 가르 데오스 헤이스 카이 메시테스 데우 카이 안드로폰 안드로포스 크리스토스 이에수스
6절 호 두스 헤아우톤 안틸뤼트론 휘페르 판톤 토 마르튀리온 카이로이스 이디오이스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가 계시는데 바로 사람이신 예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신부인 나를 위해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으로 나를 살려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
출34: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 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키 로 티쉬타하베 리엘 아헤르 키 아도나이 카나 쉐모 엘 카나 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에게 질투하셔서 진노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신부인 내가 세상의 물질의 우상과 권력과 명예의 우상을 따라가면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오직 예수그리스도 신랑만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8:7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마임 라빔 로 유켈루 리카보트 에트 하아하바 우니하로트 로 이쉬티푸아흐 임 이텐 이쉬 에트 콜 혼 베이토 바아하바 보즈 야부주 로
술람미 신부는 많은 물도 자신의 사랑을 끄지 못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홍수라도 솔로몬 신랑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을 삼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로 솔로몬 신랑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다 주고 자신의 사랑과 바꾸려고 해도 오히려 멸시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술람미 신부가 솔로몬 신랑을 향한 뜨거운 열정의 사랑이 식을 줄을 모른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끄지’ (카바 3518 VPNG 동사 피엘 부정사연계형) 꺼지다, 소멸되다, 사라지다, 라는 뜻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자신의 사랑을 많은 물이 꺼뜨리려고 해도 꺼지지 않으며 절대 소멸되어 사라지지 않을 것을 말씀합니다. 불이 났을 때에 소방 수들이 물을 뿌리면 아무리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라도 잡히게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술람미 신부가 솔로몬 신랑을 사랑하는 마음은 절대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사랑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세상의 시련과 어려움 때문에 꺼진다면 주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현실의 문제 때문에 포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세상의 폭풍처럼 강력한 문제가 나를 엄습해 온다하더라도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식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를 위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바쳤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어떠한 시험에도 주님은 절대 흔들리지 않으시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헌신하여 주셨습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사탄의 시험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절대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사탄의 시험과 세상의 환란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포기해서야 되겠습니까?
이 세상의 어떤 문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을 식게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세상의 물질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바꿀 수도 없습니다. 술람미 신부는 마음이 확고부동하여 절대 어떠한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식어져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서도 안 됩니다. 주님만을 사랑하는 마음이 내 마음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사탄의 시험에도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주님만 바라보면서 갈 수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술람미 신부처럼 오직 주 예수그리스도 신랑만을 바라보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 안에 있는 우상의 신랑을 버리고 예수그리스도 신랑만을 사랑하면서 인생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