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 원어성경 설교] 신약과 구약 성경의 부활 개념(요5:29)

히브리어 원어성경 설교 말씀은 신약과 구약에서 말씀하는 성경의 부활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부활은 영원히 죽지 않는 몸으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날에 부활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부활의 개념을 히브리어 원어성경과 헬라어 원어성경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부활(復活)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부활에 대하여 믿지 않는다. 사람이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활을 믿지 않는 것보다는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자신이 죄인인데 다시 부활되어 영원한 불 못으로 던져져서 영원히 죽지도 않는 고통을 당한다고 하면 누구나 좋아할 리가 없다. 부활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첫 열매가 되셔서 구원받은 자에게 부활에 대한 소망을 주셨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살다가 죽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부활되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부활의 몸은 썩지 않는 몸이다.

부활의 개념은 구약보다는 신약의 개념에서 더 확실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부활에 관하여 구약에서 고백한 사람이 있다. 바로 욥이다.

욥19:26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비아하르 오리 니키푸 조트 우미비사리 에헤제 엘로하

욥은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본다고 했다. 가죽이 벗김을 당했다는 것은 이 땅에서 죽었다는 표현이며 썩어질 것이 썩어지면 새로운 몸으로 부활된다. 욥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본다고 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부활을 소망하고 있었다. 구약의 성도들도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에 부활된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나도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한다. 부활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이 땅에서 사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살게 된다. 하지만 이 땅에서 사는 것으로 끝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열심히 주님을 섬기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부활의 개념은 구약보다는 신약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헤브라이즘 관점은 신약히브리어를 통해서 헬레니즘 관점과 함께 공부해야 한다.

히브리어 원어성경말씀 모세가 사명을 받은 호렙산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관점에서의 부활

신약에서 나타나고 있는 부활에 관하여 우리가 신약히브리어에는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통해서 부활의 관점을 공부해 보자.

요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카이 에크포류손타 호이 타 아가다 포이에산테스 에이스 아나스타신 조에스 호이 데 타 파울라 프락산테스 에이스 아나스타신 크리세오스

예수님께서는 부활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오고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고 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예수그리스도를 메시아로 고백하고 구원받은 사람이다.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예수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고 구원받지 못한 자다. 둘 다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부활하게 된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부활되어 천년 왕국에 들어가서 왕 노릇하게 된다.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천년 왕국이 끝난 후에 둘째 부활이 되는데 이때에 부활된 자들은 영원한 불 못으로 던져져 고통을 받게 된다.

여기에서 ‘부활’이라는 단어가 (아나스타시스 386) 부활, 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아니스테미 450) 일어나다, 살아나다, 서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부활의 개념은 위로부터 서는 것을 의미한다. 육체를 쓰고 살았던 인생이 죽고 나면 모든 육체는 썩어지고 다시 일으켜 세움을 받아 살아나는 것이 부활이다. 부활은 자신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일어나게 된다. 그럼 우리가 부활되기 전에는 어떤 상태로 있을까? 잠을 자고 있는 상태로 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잠을 자고 있다가 하나님께서 새로운 몸으로 부활시켜 주신다.

고전15: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에이 데 아나스타시스 네크론 우크 에스틴 우데 크리스토스 에게게르타이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부활시킬 필요가 없다.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있지만 이 사실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 교회 안에서도 부활에 관하여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 이런 자들을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가 부활되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다.

그럼 신약히브리어에서 말씀하고 있는 부활의 개념은 무엇인가? (쿰 6965) 일어나다, 일어서다, 세우다, 라는 뜻이다. 죽었던 자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 부활이다.

막5: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카이 크라테사스 테스 케이로스 투 파이디우 레게이 아우테 탈리다 쿠미 호 에스틴 메데르메뉴오메논 토 코라시온 소이 레고 에게이라이

회당장의 딸이 죽어있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통곡하면서 회당장의 집에 있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보시고 이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셨다.

막5: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카이 에이셀돈 레게이 아우토이스 티 도뤼베이스데 카이 클라이에테 토 파이디온 우크 아페다넨 알라 카듀데이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비웃었다. 현재 죽어있는 아이를 잔다고 말하고 있으니 황당하게 생각했다. 이 아이는 실제로 죽어있었다. 예수님 편에서는 잠시 잠을 자고 있는 상태다. 예수그리스도는 생명의 주관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부활될 때까지도 잠시 잠을 자고 있는 상태로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이 오셔서 잠에서 깨워주시듯이 새로운 몸으로 부활시켜 주시는 것이 바로 부활이다.

예수님께서는 죽어있는 여자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 하시면서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소녀야 일어나라는 말씀이다. 여기에서 굼이라는 단어가 (쿰)이다. 죽었던 아이를 살리시는 주님을 말씀한다. 마지막 날이 되면 이와 같이 예수님은 잠을 자고 있던 자들을 일으켜 세워주신다. 새로운 몸으로 일으킴을 받아 천년 왕국에 들어가게 된다. 우리들은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 열심히 주님을 섬기면서 살다가 마지막 날에는 반드시 생명의 부활로 탄생된다.

마27: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카이 엑셀돈테스 에크 톤 므네메이온 메타 텐 에게르신 아우투 에이셀돈 에이스 텐 하기안 폴린 카이 에네파니스데산 폴로이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많은 사람들이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성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였다. 부활 사건은 확실한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마태는 강조하고 있다. 또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 후에 무덤에서 잠자던 자들이 부활된 것은 마지막에 있을 성도들의 부활의 예표이다. 거룩한 성에 들어갔다는 것은 예루살렘을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더 나아가 새 예루살렘에 부활한 성도들이 들어가는 것을 보여준다.

느헤미야 히브리어 성경말씀 느헤미야의 회개 기도

여기에서 ‘부활’이라는 단어가 (에게르시스 1454) 깨어남, 부활, 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에게이로 1453) 일어나다, 잠자다, 깨우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예수그리스도도 스스로 부활되지 않았다. 성부하나님께서 무덤에서 삼일 만에 부활시켜주셨다. 이것은 잠자던 자를 깨워 부활시켜 주셨고 죽음의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셨다. 우리가 부활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을 자게 된다. 잠이 들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한다. 그러다가 아침이 되면 눈을 뜨고 일어나게 된다. 그러면 새로운 하루가 우리에게 펼쳐져 있다. 이와 같이 부활의 때도 마찬가지다. 이 땅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죽은 자들은 잠자는 상태로 들어가서 있다가 주님이 잠에서 깨워 일어나게 해주신다. 그러면 나의 몸은 새로운 썩지 않을 몸으로 변화되어 있고 새로운 신천신지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이곳에 단 한번만 사용되었다.

신약히브리어에는 (하유트 2424) 삶, 생명, 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하야 2421) 소생하다, 보존하다, 살아나다, 일으키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예수그리스도가 부활되고 난 후에 우리들에게도 이와 같이 나의 영혼이 보존되어 마지막 날에 소생되고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난다. 주님께서 나를 잠에서 깨워주시고 일으켜 세워주셔서 영원한 몸으로 부활시켜 주신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생명의 부활이 될 것이 확실하다. 나는 부활에 관하여 소망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토론해 보자.

빌3:10-11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0절 투 그노나이 아우톤 카이 텐 뒤나민 테스 아나스타세오스 아우투 카이 텐 코이노니안 톤 파데마톤 아우투 쉼모르푸메노스 토 다나토 아우투

에이 포스 카탄테소 에이스 텐 엑사나스타신 톤 네크론

사도 바울은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한다고 했다. 바울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여기에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인데 ‘부활’이라는 단어가 (엑사나스타시스 1815) 부활, 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도 이곳에서 한 번 사용되었다.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워주심을 원하고 있는 단어다. 부활에 동참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살기를 간절히 원하는 부활을 의미한다.

우리들도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주님이 마지막 날에 나를 죽음에서 일으켜 세워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고전15:42-44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 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42절 후토스 카이 헤 아나스타시스 톤 네크론 스페이레타이 엔 프도라 에게레타이 엔 아프다르시아

43절 스페이레타이 엔 아티미아 에게이레타이 엔 독세 스페이레타이 엔 아스데네이아 에게이레타이 엔 뒤나메이

스페이레타이 소마 프쉬키콘 에게이레타이 소마 프뉴마티콘 에스틴 소마 프쉬키콘 카이 에스틴 소마 프뉴마티콘

헬라어 원어성경말씀 삼위일체 소요리문답 해설 강해

우리의 부활은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아나게 된다. 욕된 몸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 약한 몸으로 심고 강한 몸으로 살아난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 육의 몸이 있은즉 또한 신령한 영의 몸도 있다. 이렇게 부활되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다. 그 이유가 살아나는 것이 모두가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다. 구원받은 자들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의지에 의하여 반드시 부활될 것이 확정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이 아니라 신령한 몸으로 부활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죽음에 관하여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부활에 관하여 공부를 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부활에 대한 소망이 있어야 한다. 신앙의 마지막 꽃이 부활이다. 부활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다. 부활에 대한 소망이 없는데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겠는가? 결국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다가 마지막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함께 멸망을 받는다. 이제부터 주님이 부활하신 것을 확실히 믿고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는 신앙생활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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