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 원어성경말씀 중에서 에서가 살았던 세일 산 설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삭의 아들로서 선택받지 못하고 에서는 아버지의 근심을 주었던 사람입니다. 세일 산에 자리를 잡고 살면서 에돔 족속의 조상인 에서는 나중에 야곱 족속을 대적하는 족속이 됩니다.
세일 산 (하르 셰이르)
세일 산을 이야기하려면 에서와 야곱을 빼 놓을 수가 없습니다. 세일 산에 진을 치고 살았던 사람이 에서이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야곱이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축복을 훔쳤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에게 좋은 감정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창27:36 에서가 이르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이르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바요메르 하키 카라 쉐모 야아코브 바야이키베니 제 파아마임 에트 베코라티 라카흐 비힌네 아타 라카흐 비르카티 바요마르 할로 아찰리타 리 비라카
이삭이 야곱에게 모든 축복을 선포하고 난 후에 에서가 자신에게 축복을 해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미 야곱에게 모든 축복을 해주었기 때문에 에서가 받을 복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에서가 말하기를 동생의 이름을 야곱이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속였는데 두 번이나 속여서 자신이 받을 복을 동생이 빼앗아 갔다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에서는 야곱에게 복수를 꿈꾸게 된 것입니다.
창27:41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바이시톰 에사브 에트 야아코브 알 하베라카 아쎄르 베라코 아비브 바요메르 에사브 빌리보 이키리부 이메 에벨 아비 비아하리가 에트 야아코브 아히
에서는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인하여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야곱을 죽이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에서’ (에사브 6215) 에서,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아사 6213) 범하다, 헐다, 상심하다, 허탄하다, 헛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에서의 인생은 자신의 힘으로 모든 일을 하기 때문에 인생이 헛되며 마음에는 상심만 커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의 삶을 살다보니 인생 자체가 허탄한 것입니다. 마음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없고 항상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헐어버려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구원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에서와 같은 자들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말1: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비에트 에사브 사네티 바아심 에트 하라이브 쉬마마 비에트 나할라토 리타노트 미드바르
하나님께서 에서는 미워하였습니다. 똑같이 이삭의 자녀였지만 야곱은 선택받은 자이며 에서는 버림받은 자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서가 살았던 세일 산을 하나님은 황폐하게 만들어 버리셨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겨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원받지 못한 에서가 하는 행동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죄였습니다. 인생 자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들은 야곱의 자손으로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심과 같이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나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그 분의 십자가 은혜를 무시하거나 멸시한다면 나는 버림받은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부터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고 나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에서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가 되니 아버지 이삭과 리브가의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딸들과 결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노아 당시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내를 삼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이 아팠습니다.
창26:34-35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바예히 에사브 벤 아리바임 샤나 바이카흐 이샤 에트 이후디트 바트 비에리 하힛티 비에트 바시마트 바트 엘로 하힛티
바티히옌 모라트 루아흐 리이치하크 우리리브카
에서의 나이 40세가 될 때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여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을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원받지 못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유딧’ (예후디트 3067) 유딧,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야다 3034) 인정하다, 찬송하다, 감사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유딧이라는 여인은 헷 족속의 브에리의 딸입니다. 헷 족속은 가나안의 족속으로서 브엘세바와 헤브론을 차지하면서 살았던 족속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우상을 섬기면서 그들에게 찬양하고 우상을 인정하는 모든 축복이 우상들에게 온다는 것을 믿고 감사했던 족속입니다. 그런데 이런 딸과 에서가 결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스맛’ (보스마트 1315) 바스맛,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바삼 1313) 향 재료, 향기롭다, 유쾌하다, 기분 좋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다음에 에서가 아내로 취한 사람이 바스맛입니다. 이 여인도 헷 족속으로서 하나님을 기분 좋게 하며 향기로운 제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자가 아니라 자신의 조상이 섬기던 우상을 섬기면서 자신이 우상을 섬기는 하나의 재료가 되어 우상을 기쁘게 하고 기분 좋게 하는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이런 자들을 아내로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세상의 딸들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이삭과 리브가는 마음이 아팠던 것입니다.
에서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세상의 딸들을 다시 취하게 되는데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게 됩니다. 헷 족속의 딸들을 아내로 맞이할 때에는 야곱에게 축복을 빼앗기기 전입니다. 그런데 이스마엘의 딸을 맞이할 때에는 야곱에게 축복을 빼앗기고 나서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아버지 이삭에게 화가 나서 분풀이로 세상의 아내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에 못질을 하는 것입니다.
창28:9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
바옐레크 에사브 엘 이쉬마엘 바이카흐 에트 마할라트 바트 이쉬마엘 벤 아브라함 아호트 니바요트 알 나샤이브 로 리이샤
이삭에게 화가 난 에서는 이스마엘에게로 갑니다. 육적으로는 자신의 아버지인 이삭의 형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만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마엘도 이삭의 형이었지만 결국은 아버지의 기업을 물려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에서도 자신이 형이지만 야곱에게 축복을 빼앗기고 기업을 물려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처지를 잘 알 것 같은 이스마엘에게로 에서가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게 됩니다.
‘마할랏’ (마할라트 4258) 마할랏,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할라 2470) 병들다, 슬퍼하다, 근심하다, 수고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스마엘의 딸 마할랏을 에서가 맞이하여 더 큰 근심을 아버지에게 주는 것이며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한 자신의 육적인 형의 딸을 며느리로 맞이하여 이삭은 심령에 큰 근심을 떠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에서도 인생이 평탄하지 못하고 늘 수고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들끼리 모여 인생 자체가 근심하면서 슬퍼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서는 미워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처음의 취지는 좋아서 결혼을 하지만 결론적으로 인생 자체가 고달프고 마음이 병들어 가는 것입니다. 점점 주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되고 나중에는 신앙을 포기하거나 떠나게 되는 상황까지 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근심하게 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에서와 같은 신앙을 한다면 하나님은 나를 통하여 마음에 한탄만 나오고 근심만 쌓여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에서는 이삭을 떠나 세일 산에 자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밧단 아람의 외삼촌 라반의 집에 거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의 삶을 살면서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간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20년이 흐른 후에 하나님의 훈련을 모두 마치고 라반의 집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도망치듯이 라반의 집을 빠져 나왔지만 라반을 완전하게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라반이 야곱을 붙잡아 죽이려고 했는데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야곱을 죽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라반과 야곱이 언약을 맺게 되는데 이 산이 길르앗 산이었습니다.
창31:54-55 야곱이 또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그들이 떡을 먹고 산에서 밤을 지내고 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 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바이제바흐 야아코브 제바흐 바하르 바이크라 리에하이브 레에칼 라헴 바요켈루 레헴 바얄리누 바하르
바야쉬켐 라반 바보케르 바이나셰크 리바나이브 비리비노타이브 바이바레크 에트헴 바옐레크 바야샤브 라반 리미코모
야곱이 길르앗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많은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고 이들이 떡을 먹고 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라반은 아침 일찍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을 맞추고 자신의 고향인 밧단 아람으로 돌아갔습니다. 바로 이 산이 증거의 무더기가 되는 길르앗 산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대신 야곱과 같은 자들이 살아났다는 것을 예표로 보여주는 산입니다. 이 산에서 야곱이 떠나 하나님과 약속하신 땅으로 가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거주하고 있는 가나안 땅을 향하여 걸어가는데 야곱에게 하나님의 사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창32:1-2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비아야코브 할라크 리다리코 바이피기우 보 말아케 엘로힘
바요메르 야아코브 카아쎄르 라암 마하네 엘로힘 제 바이크라 솀 하마콤 하후 마하나임
야곱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도중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들을 보고 하나님의 군대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럼 야곱이 가는 길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난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야곱의 앞길에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야곱이 가는 길에 에서라는 큰 장벽이 버티고 있습니다. 에서는 평생 야곱을 원망하면서 복수만을 다짐하면서 세일 산에서 정착하여 살았습니다. 이 손길에서 보호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마하나임’ (마하나임 4266) 군대, 떼,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 2583) 거처를 정하다, 주둔하다, 머물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앞으로 가는 길에 두려워하지 말고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군대가 되어 호위하여 줄 것이며 어떠한 문제가운데도 주둔하여 항상 야곱에게 머물러 있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야곱이 거처가 정하여지지 않아 떠돌고 있지만 앞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거처를 정하여 주시고 함께 하시겠다는 것을 말씀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세상에서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야곱과 같은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당장 앞에 에서라는 큰 장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먼저 나타나 주시는 것입니다. 이 문제 속에 내가 거주하여 완벽하게 풀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다짐인 것입니다. 이것이 마하나임입니다. 육적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영적인 사람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군대가 보이는 것입니다.
왕하6: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바이트팔렐 엘리샤 바요마르 아도나이 피카흐 나 에트 에나이브 비이르에 바이파카흐 아도나이 에트 에네 하나아르 바야르 비힌네 하하르 말레 수심 비레케브 에쉬 시비보트 엘리샤
아람의 왕이 엘리사를 잡기 위하여 말과 전차들로 에워쌌습니다. 이때에 엘리사의 사환이 두려워 떨면서 엘리사에게 말합니다. 이제 우리는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선지자의 눈에는 마하나임의 하나님의 군대가 에워싸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환의 눈을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니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했으며 엘리사를 둘러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하나임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눈이 열려있다면 하나님의 마하나임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탐욕에 빠져있다면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군대를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나에게 군대를 보내어 보호하시고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히1: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우키 판테스 에이신 게리투르기카 프뉴마타 에이스 디아코니안 아포스텔로메나 디아 투스 멜론타스 클레로노메인 소테리안
‘보내심이’ (아포스텔로 649 VPPPNNP 동사, 분사, 현재, 수동태, 주격, 중성, 복수) 보내다, 파송하다, 보내심을 입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아포 575) ~로부터, 라는 뜻과 (스텔로 4724) 가까이 하지 않다, 조심하다, 떠나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또한 (스텔로)라는 단어는 (히스테미 2476) 서다, 확정하다, 작정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럼 우리가 이것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천사를 보내시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천사가 구원받은 자들에게 보내져서 하는 사역은 그들 옆에서 서서 떠나지 않고 추악하고 더러운 죄들을 짓지 않도록 조심하게 만들며 사탄의 방해와 어려움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천사입니다. 천사는 나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존재하고 있으며 나를 도와주는 존재로서 하나님이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언제 있습니까? 바로 지금 나와 함께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현재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아무에게나 보내주시는 것이 아니라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보내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내가 하나님 앞에서 귀한 존재입니다. 천사가 나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하나만 있는 것이 마하나임처럼 군대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복수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의 영안을 열어달라고 기도하면서 마하나임의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마하나임의 하나님을 만났지만 두려운 마음을 해소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신의 형인 에서가 살고 있는 세일 땅에 자신의 사자들을 먼저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창32:3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바이쉴라흐 야아코브 말아킴 리파나이브 엘 에사브 아히브 아르차 세이르 시데 에돔
야곱은 2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에서를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마음에는 에서가 두려웠습니다.
‘세일’ (셰이르 8165) 세일 산,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사이르 8163) 털이 많은, 거칠은, 이라는 뜻과 (사아르 8175) 몹시 두려워하다, 떨다, 전율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세일 산에서 정착했던 에서는 원래 털이 많고 외형적인 사람입니다. 세일 산의 뜻에 나오는 것처럼 에돔은 붉은 사람이라는 별칭이 있습니다.
창25:30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바요메르 에사브 엘 야아코브 하리이테니 나 민 하아돔 하아돔 하제 키 아예프 아노키 알 켄 카라 쉐모 에돔
에서가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리면서 생긴 별명입니다. 말 그대로 에서가 정착하여 살았던 세일 산이 지금으로 볼 때에는 페트라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돌로 된 산으로 모든 바위가 붉습니다. 자신의 별명처럼 이렇게 붉은 바위에 거주하여 살았습니다. 또한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입니다.
창25:25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바예체 하리숀 아디모니 켈로 키아데레트 세아르 바이크리우 쉐모 에사브
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붉고 털옷 같아서 에서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이런 에서가 평생을 살았던 장소가 털이 많은 뜻이 있는 세일 산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세일 산은 바위로 된 산으로서 적들의 침입에도 방어하기가 좋은 장소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세일 산을 공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일 산의 장소에 몹시 두렵고 떨었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하나님의 심판 때문에 떨 수밖에 없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세일 산에 거주하였던 에돔 족속들은 하나님 앞에서도 교만했습니다. 그 이유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이 산을 정복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산이 험하고 전쟁을 해도 이길 수 없는 아주 좋은 지형적 조건을 가지고 있는 산이 세일 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산을 완전하게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옵1:3 너의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바위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지돈 리비카 히쉬에카 쇼키니 바하기베 셀라 메롬 쉐비토 오메르 빌리보 미 요리데니 아레츠
오바댜의 말씀은 에돔 족속들에 관한 예언입니다. 이들은 에서의 후손들로서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망시킬 때에도 동조했던 무리들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항상 하나님의 백성들을 공격하여 괴롭히고 환란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마음에 교만하여 자신을 속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거주지는 바위틈에 살고 있습니다. 바로 세일 산에 거주하면서 아주 높은 곳에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다보니 자신들 스스로 교만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마음속에 우리를 땅으로 끌어낼 자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만이’ (자돈 2087) 교만, 거만,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주드 2102) 죽을 쑤다, 끓이다, 사악한 짓을 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에돔 족속들이 마음에 교만해졌습니다. 오만불손하여 자신들의 세일 산을 점령할 자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여기에서 (주드)라는 단어는 야곱이 죽을 쑨다고 했을 때에 사용하던 단어입니다. 이 죽을 에서가 받아먹었습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고 사악한 짓을 그대로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에서의 후손들도 똑같이 되풀이하여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고 회개하지 않아 하나님의 분노를 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은 하나님께서 세일 산에 살고 있는 에서의 후손들인 에돔 족속들을 흔적도 없이 멸망시켜 버렸습니다.
옵1:4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임 티기비하 카네셰르 비임 벤 코카빔 심 키네카 미샴 오리디카 니임 아도나이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돔 족속들이 독수리같이 높이 올라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에돔 족속들을 끌어내리시겠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말로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끌어내리리라’ (야라드 3381 VHICXS 동사, 히필, 미완료, 공성, 1인칭, 단수) 강림하다, 파괴하다, 낮아지다, 떨어뜨리다, 떨어짐을 당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면서 자랑하고 있는 에돔 족속들을 교만한 자리에서 최고 낮은 자리로 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세일 산에 모여서 살고 있는 에돔 족속들에게 하나님은 심판의 주로 임하셔서 철저하게 파괴하시고 있습니다. 더 이상 소생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모든 것을 헐어버리고 떨어뜨리셔서 교만하지 못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끌어내리시는 것은 직접 세일 산에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도 남김없이 끝까지 파괴하셔서 에돔 족속들의 씨를 말려버리시는 것입니다.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구원받지 못한 백성들을 심판하시는데 마지막까지 심판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만한 마음을 완전하게 무력화시켜 다시는 이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심판하시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옵1:6 에서가 어찌 그리 수탈되었으며 그 감춘 보물이 어찌 그리 빼앗겼는고
에크 네히피수 에사브 니비우 마치피나이브
에서가 어떻게 수탈되었는지를 깨닫고 그들이 감춘 보물이 어떻게 빼앗겼는지를 알라는 말씀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욕심으로 채운 모든 재물들은 심판 때에 아무 소용없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수탈되었으며’ (하파스 2664 VNACZP 동사, 닢알, 완료, 공성, 3인칭, 복수) 찾아지다, 찾아내다, 변장하다, 간구하다, 라는 뜻입니다. 에돔 족속들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을 때에 자신들이 모은 재물들을 꼭꼭 숨겨두어도 하나님은 모두 수색하여 찾아내셔서 빼앗아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찾지 못하도록 변장시키고 가리겠지만 하나님은 모두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재물을 빼앗을 때에 에돔 족속들이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여도 절대 용서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서의 모든 재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끝까지 챙기려고 해도 챙길 수 없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보물을 하나도 건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닢알형과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보물을 내가 간직하고 싶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빼앗아 버리면 하나도 남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의 재물에 마음을 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에서와 같이 모든 재물들을 하나님께서 빼앗아 가버리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옵1:8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에 내가 에돔에서 지혜 있는 자를 멸하며 에서의 산에서 지각 있는 자를 멸하지 아니하겠느냐
할로 바욤 하후 니임 아도나이 비하아바디티 하카밈 메에돔 우테부나 메하르 에사브
하나님께서는 세일 산에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만들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혔던 자들을 멸망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돔의 지혜 있는 자를 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에서가 살고 있는 세일 산에 지각 있는 자를 멸망시켜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세일 산을 멸망시킬 때에 선택받지 못한 에돔의 족속들은 두려워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혜 있는’ (하캄 2450) 익숙한, 지혜로운, 간교한, 이라는 뜻입니다. 에돔 족속들 중에서 지혜 있는 자들을 멸망시키겠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잘못된 길을 인도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가르치지 않고 세상의 지식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파하지 않은 자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율법주의자들과 같은 지식인들과 거짓 선생들을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심판하여 멸망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간교한 입술로 거짓된 복음을 전파하던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된 백성들보다 거짓된 선생들을 심판하여 엎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지막 날에 거짓된 복음을 전파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지각 있는’ (타분 8394) 총명, 분별력, 명철, 이라는 뜻입니다. 거짓된 복음을 분별하지 못하는 자들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지식을 주시고 지혜를 주셔서 말씀을 분별할 수 있는 은사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된 복음을 분별하지 않고 따르는 자들도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세일 산에 구원받지 못한 자들처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들었다면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거짓된 복음인 다른 육체를 따라가면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실행에 옮기시는 분입니다. 에서가 세일 산에 살면서 교만하여 야곱을 죽이려고 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힌 것에 대한 보복으로 세일 산에 거주하고 있는 에돔 족속들도 똑같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일 산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선택받지 못한 백성들은 반드시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일에 선봉에 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는데 도와주고 죽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에서와 같은 존재들을 그냥 놔두지 않으시고 반드시 보복하셔서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도 세일 산과 같은 왕국을 만들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대적하고 율법을 준수하여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불순한 무리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의 육체를 보내주셨는데 인간의 육체인 다른 복음을 따라가고 있다면 교회 안에서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세일 산이 높고 다른 자들이 우러러 본다고 생각하여 자기 보다 더 높은 사람은 없다고 교만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늘 아래 똑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잘난 것도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들이 자신이 높은 곳을 선점했다고 교만하여 오만하게 하나님 앞에서 행동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셔서 땅에 떨어지게 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제부터 세일 산과 같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과 함께 하지 않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