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 원어성경말씀 중에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호렙 산 설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호렙산은 모세가 사명을 받은 곳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키고 호렙 산에 와서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호렙 산은 모세와 연관이 있는 산입니다.
호렙 산 (하르 호레브)
호렙 산은 모세와 연관이 있는 산입니다. 모세가 40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왕권을 가지고 구원을 시키려고 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애굽의 고역에서 구출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애굽의 육체적인 권세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로 건져내 주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모세가 애굽의 왕권의 권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시켰다면 모세의 영광이 나타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방법대로 하려고 하는 자들의 길을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예수그리스도의 모형을 닮고 있습니다. 유대인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죽이고 여자아이면 살려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애굽의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라고 하는 자들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명령을 내린 왕은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라고 성경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럼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누구일까요?
출1: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바야캄 멜렉크 하다쉬 알 미츠라임 아쎄르 로 야다 에트 요세프
창세기에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끌려갔던 시대가 있습니다. 이때는 애굽의 왕조가 제 17왕조인 힉소스 왕조시대였습니다. 힉소스 왕조는 셈족 계통의 왕조로서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셈족 출신의 요셉에게는 호의적이었습니다. 힉소스 왕조가 약 150년을 애굽을 장악하면서 통치를 하게 됩니다. 대신 함족인 애굽 사람들은 늘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반란을 일으켜 힉소스 왕조를 몰락시키고 애굽에서 완전히 몰아내게 됩니다.
그 사람이 아모세 1세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애굽의 바로가 되면서 제 18대 왕조의 첫 번째 왕이 되는 것입니다. 아모세 1세의 뒤를 이은 왕은 아멘호텝 1세였습니다. 그 다음의 왕은 투트모세 1세입니다. 이 사람은 아멘호텝 1세의 아들이 아닙니다. 군인 출신으로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정통성을 만들기 위해 아모세 1세의 딸인 아모세 공주와 결혼함으로 왕위를 계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요셉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으로 성경에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태어날 때에도 남자아이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함족 출신이기 때문에 셈족 출신인 히브리인들을 학대하기 위해 정책을 펼쳤던 왕입니다. 이 왕이 히브리 산파들에게도 남자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출1:15-16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바요메르 멜렉크 미츠라임 라미얄리도트 하이브리요트 아쎄르 솀 하아하트 쉬프라 비솀 하셰니트 푸아
바요메르 비얄레디켄 에트 하이브리요트 우리이텐 알 하아비나임 임 벤 후 바하미텐 오토 비임 바트 히 바하야
히브리 산파인 십브라와 부아라는 사람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산파가 있을 것인데 이 사람들만 기록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바치고 남자아이들을 살려준 사람들입니다. 노예 생활을 하면서 애굽의 왕의 명령을 어긴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에게 복을 주셔서 이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셨습니다.
‘십브라’ (쉬프라 8236) 십브라,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샤파르 8231) 빛나게 되다, 아름답게 하다, 기쁘게 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히브리 산파인 십브라는 애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노예로 죽을 수밖에 없고 남자아이들을 죽이면 더 이상 소망이 없는 히브리인들이 됩니다. 이런 곳에 한 줄기 빛으로 나타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남자아이들을 살려준 인물입니다. 이렇게 행동했던 것들이 하나님 앞에서는 기쁨이 되었고 하나님은 너무나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이 사람의 행실이 아름다움으로 하나님은 성경에 기록하셔서 후대들에게 교훈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따라 행동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부아’ (푸아 6326) 부아,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야파 3313) 비추다, 번쩍거리게 하다, 빛을 비추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히브리 산파인 부아라는 인물도 죽음을 각오하고 남자 아이들을 살려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일이 애굽의 어두운 영적상황에서 빛을 비추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모세라는 인물을 등장시키기 위함입니다. 이정도로 애굽의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 찼으며 빛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탄생하실 때에도 이와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어둠이 없는 가운데 빛 되신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하신 것입니다.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그리스도가 탄생되신 것처럼 히브리 산파인 부아와 같은 자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모세와 같은 위대한 자가 탄생한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부아도 하나님의 일을 죽을 각오로 했더니 그의 행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둠을 밝히는 복음의 빛을 비추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아에게도 복을 주셔서 가정이 번창하고 흥왕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하여 볼 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복음의 일을 하면 가정과 개인을 축복해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십브라와 부아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때에 주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세가 탄생하는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어두운 상황에서 모세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모세도 남자아이기 때문에 요게벳이 숨겨서 키웠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숨겨서 키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모세를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 강으로 띄워 보내게 됩니다.
출2:10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바이기달 하옐레드 바티비에후 리바트 파르오 바예히 라흐 리벤 바티크라 쉐모 모셰 바토메르 키 민 하마임 미쉬티후
모세를 건져내어 기른 사람은 투트모세의 딸인 핫셉수트 공주입니다. 바로의 딸로서 모세를 물에서 건져내어 자신의 양자로 삼은 것입니다. 핫셉수트는 남편 투트모세 2세가 죽자 애굽의 여왕이 되어 통치를 하였습니다. 핫셉수트는 아들이 없고 딸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양자로 삼은 것이고 자신의 딸을 조카인 투트모세 3세와 결혼을 시키고 조카를 왕위에 오르게 한 후에 섭정을 하였습니다.
‘모세’ (모쎄 4872) 모세,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마솨 4871) 끌어내다, 꺼내다, 끌어당기다, 건져내다, 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자신도 물에서 건져내짐을 당해 구원을 얻은 것처럼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끌어내어 노예로부터 건져내고 있습니다. 모세를 이렇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는 예수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죄악으로 죽었던 우리들을 끌어내주신 분입니다.
모세가 이렇게 바로의 공주 밑에서 애굽의 모든 공부를 하게 됩니다. 세상의 학문을 키워나갔던 것입니다. 모세는 가만히 있으면 애굽의 왕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히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피스테이 모세스 메가스 게노메노스 에르네사토 레게스다이 휘오스 뒤가트로스 파라오
말론 헬로메노스 슁카쿠케이스다이 토 라오 투 데우 에 프로스카이론 에케인 하마르티아스 아폴라우신
메이조나 플루톤 헤게사메노스 톤 엔 아이귀프토 데사우론 톤 오네이디스몬 투 크리스투 아페블레펜 가르 에이스 텐 미스다포도시안
모세는 믿음으로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히브리인들과 함께 고난 받기를 기뻐했습니다. 모세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고 하나님께서 주실 상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도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모세에게는 아직 육적인 생각이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애굽의 왕자로 세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하나님의 뜻과는 달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히브리 사람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을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에 애굽의 통치자는 투트모세 3세였습니다. 이 왕은 핫셉수트의 치하에서 기를 피지 못하던 왕이었으며 핫셉수트가 죽자 그녀를 증오하여 그녀와 측근들의 기념물을 부수고 기억조차 하기 싫어 그녀의 신전에 있는 많은 부속물들을 부수어 채석장에 내다버렸습니다.
이런 왕이 핫셉수트의 양자인 모세를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모세가 얼마나 눈에 가시였겠습니까?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였다는 소리를 듣자 즉시 체포령을 내렸고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2:11-12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바예히 바야밈 하헴 바이기달 모셰 바예체 엘 에하이브 바야르 비시빌로탐 바야르 이쉬 미츠리 마케 이쉬 이브리 메에하이브
바이펜 코 바코 바야르 키 에인 이쉬 바야크 에트 하미츠리 바이티미네후 바홀
모세가 장성하여 40세가 되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는 생각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사건이 하나 벌어졌습니다.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목격한 모세는 애굽 사람을 죽여 모래 속에 감추어 버렸습니다.
‘쳐 죽여’ (나카 5221 CW.VHIMZS 와우계속, 동사, 히필,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쳐 죽이다, 격파하다, 때리다, 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같은 동포인 히브리 사람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을 보고 의분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을 쳐서 죽였습니다. 돌을 격파하듯이 애굽 사람을 때려 숨지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죽여 놓고 보니 모세는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모래로 시체를 감추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왕권을 가지고 있는 왕자라면 사람 한 명 죽였다고 이렇게 당황하지는 않습니다. 그때에 애굽은 계급사회이기 때문에 왕족들의 권세가 컸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모세는 왕자의 신분은 있지만 히브리인이라는 것 때문에 애굽 사람들로부터 큰 신임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투트모세 3세가 모세를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애굽 사람을 죽일 때에 즉시로 때려 죽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개입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히브리 동족들을 구원하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히필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 때문에 모세는 애굽의 왕으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쫓겨 가서 이드로의 집에서 십보라와 결혼하여 이드로의 양을 치면서 40년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출2:15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곁에 앉았더라
바이쉬마 파르오 에트 하다바르 하제 바이바케쉬 라하로그 에트 모셰 바이브라흐 모셰 미페네 파르오 바예셰브 비에레츠 미드얀 바예셰브 알 하베에르
애굽의 왕인 투트모세 3세가 모세를 죽이려고 찾는 것입니다. 눈에 가시였던 모세를 죽일 명분이 생긴 것입니다.
‘찾는지라’ (바카쉬 1245 CW.VPIMZS 와우계속, 동사, 피엘,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찾다, 수색하다, 명령하다, 라는 뜻입니다. 바로 왕은 모세를 체포하기 위해 전국에 샅샅이 명을 내렸습니다. 절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수색하여 모세를 붙잡아 오라는 것입니다. 투트모세 3세는 모세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핫셉수트의 아들인 모세를 죽여서라도 분풀이를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녹아져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피엘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도망을 쳤는데 미디안 땅으로 도망하여 하루는 우물 옆에 앉아있습니다. 미디안으로 도망친 이유가 무엇일까요?
‘미디안’ (미드얀 4080) 미디안, 이라는 뜻이며 다툼, 분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딘 1777) 억울함을 풀다, 신원하다, 통제하다, 규정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모세는 자신 스스로 억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왕권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여 했던 행동이 자신은 비참하게 하루아침에 쫓겨나서 거지와 같은 신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 신원하여 자신의 처지를 알아달라고 하는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다툼을 잠재우기 위하여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를 통제하고 규정하여 정확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미디안은 모세의 육적인 생각을 영적인 생각으로 고쳐주시는 장소이며 훈련의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미디안 광야는 어디입니까? 현재 내가 처한 환경과 사업장과 교회와 가정이 나를 하나님께서 훈련시키시는 미디안의 광야는 아닐까요? 스스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출2:18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버지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바타보나 엘 르우엘 아비헨 바요메르 미두아 미하리텐 보 하욤
모세는 르우엘의 집에 거주하면서 르우엘의 일을 도맡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양을 치면서 40년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훈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도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훈련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은 르우엘을 모세에게 붙여서 40년 동안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르우엘’ (레우엘 7467) 르우엘,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레아 7453) 친구, 동료, 라는 뜻과 (엘 410) 하나님, 이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르우엘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친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르우엘에게 붙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앞으로의 인생길에 하나님께서 모세의 친구가 되어 주시겠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르우엘의 보호를 받으면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노예의 삶에서 끌어내려 했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모세는 40년 동안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훈련받고 애굽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르우엘을 만나 광야에서 양을 치면서 40년의 세월이 흐르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40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시켰는데 겸손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하나님은 모세에게 사명을 주시는데 호렙 산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출3: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우모셰 하야 로에 에트 촌 이트로 호테노 코헨 미디얀 바이니하그 에트 하촌 아하르 하미드바르 바야보 엘 하르 하엘로힘 호레바
모세가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하나있습니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로 쫓겨났을 때에 만났던 사람의 이름은 ‘르우엘’ 이라고 기록해 놓고 이제는 40년이 흐른 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에는 같은 사람인데 ‘이드로’ 라는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드로’ (이트로 3503) 이드로,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야타르 3498) 초과하다, 남다, 풍부하다, 탁월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이드로의 양을 치면서 열심히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훈련을 받았는데 초과하여 넘치도록 잘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만족하게 모세는 40년의 훈련을 탁월하게 높은 점수로 시험을 마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호렙 산에 모세가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을 때에 이렇게 높은 점수로 탁월하게 통과하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스승을 붙여주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혼자 독불장군 식으로 하는 것은 없습니다. 사람을 붙여주셔서 가르치고 배우게 하여 하나님의 때가 되매 불러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호렙’ (호레브 2722) 호렙,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하라브 2717) 황폐하다, 황량하다, 파괴하다, 말리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호렙 산에는 하나님이 임재하고 계시는 산입니다. 하나님의 산 호렙 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함부로 율법의 행위로 나오는 자들은 심판을 받아 죽게 되는 산입니다. 이곳에 오려면 하나님의 의를 가지고 와야 만이 살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율법의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진노 받아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 산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의로만 나올 수 있는 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너의 행위의 신발을 벗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출3: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바요메르 알 티크라브 할롬 샬 니알레카 메알 라겔레카 키 하마콤 아쎄르 아타 오메드 알라이브 아드마트 코데쉬 후
모세가 자신의 신발을 신고 호렙 산에 접근을 하니 하나님께서는 이 땅은 거룩한 땅이니 너의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너의 신발을 신고 들어오면 하나님은 심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을’ (나알 5275) 신발, 샌들,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비유적으로는 매우 가치 없는 것을 나타낼 때에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가 (나알 5274) 잠그다, 신기다, 덮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이 신고 있는 신발을 벗으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죽이기 위해서 그러는 걸까요? 아닙니다.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모세가 현재 신고 있는 신발로는 생명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율법으로는 절대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새로운 복음의 신을 준비하여 주시고 신겨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죽음은 완전하게 봉쇄되어 잠가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덮어주시는 것입니다.
엡6: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카이 휘포데사메노이 투스 포다스 엔 헤토이마시아 투 유앙겔리우 테스 에이레네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하시면서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신을 신으면 평안이 오고 안식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신을 말씀하고 있는데 이 단어도 (나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의 신발을 벗고 하나님이 준비해 주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신발을 신고 들어와 생명을 얻고 안식을 얻으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죽지 않고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전도를 떠나는 자들에게도 집에 들어갔을 때에 너희를 반기지 않고 쫓아내면 신발에 있는 먼지를 모두 떨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저주를 의미하는 행위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의 신발을 신고 있는 자들은 가는 곳마다 정죄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불화가 일어나고 싸움과 투쟁과 분쟁이 일어나는 중심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신발을 신고 다니는 사람은 싸움이 있는 곳에 평화가 일어나게 되고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현재 무슨 신발을 신고 있습니까? 항상 정죄만 하고 저주만 퍼붓는 율법의 신발을 신고 있습니까? 아니면 주님의 평안의 복음의 신발을 신고 안식을 누리면서 축복을 선포하는 신발을 신고 있습니까? 이제부터 우리는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복음의 신발을 신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고 죄인의 삶이 아닌 의인의 삶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호렙 산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게 됩니다. 애굽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러내는 사명입니다.
출3: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비아타 리카 비에쉘라하카 엘 파르오 비호체 에트 암미 베네 이스라엘 미미츠라임
이제 하나님이 보시기에 모세의 훈련은 모두 끝이 났습니다. 이제는 실전에 배치되어 악의 무리들과 싸우러가는 사명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야차 3318 VHMMYS 동사, 히필, 명령, 남성, 2인칭, 단수) 나오다, 돌려보내다, 항복하다, 이끌어 내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사명을 주셨는데 애굽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끌어 내라는 것입니다.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라는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애굽의 왕을 항복하여 무릎을 꿇게 하라는 명령입니다. 악의 무리들을 꼼짝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권세를 받아 대리자로 가서 심판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가 받은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훈련을 마친 모세에게 직접 명령하여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모든 훈련을 잘 마쳤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제 애굽으로 가도 된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들도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세상에 가서 복음을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세상에는 죽어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여 주님 앞으로 인도해야 하는 사명을 우리가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40년 전의 모습과는 정 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가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끌어 내라고 말씀하시지만 모세는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80이 되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와 함께 있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백성들이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0년 전에 있었던 애굽의 투트모세 3세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왕은 이미 죽었습니다. 모세를 알지 못하는 왕이 통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왕은 아멘호텝 2세입니다. 투트모세 3세의 아들로 정권이 이양되었기 때문에 모세에 대하여 크게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출3: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바요메르 키 에흐예 임마크 바제 리카 하오트 키 아노키 쉘라히티카 비호치아카 에트 하암 미미츠라임 타아비둔 에트 하엘로힘 알 하하르 하제
하나님의 목적은 호렙 산에서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섬김을 받고 싶은 것입니다. 호렙은 하나님이 계시는 산으로서 영광을 받으시는 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호렙 산에 와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모세를 보내는 증거입니다. 우리들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세상으로 나가서 전도하여 주님께 돌아와 주님을 섬기게 되면 우리가 세상에 나간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호렙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르비딤에 도착했을 때에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와 다투면서 하나님을 시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호렙 산에 있는 반석을 치라고 말씀하시면서 이 반석을 치면 물을 마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출17:6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힌니니 오메드 리파네카 샴 알 하추르 베호레브 비히키타 바추르 비야치우 미메누 마임 비샤타 하암 바야아스 켄 모셰 리에네 지키네 이스라엘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난 장소인 호렙 산에 있는 반석 위에 서있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는 반석을 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석에서 물이 쏟아져 나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시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반석’ (추르 6697) 반석,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추르 6696) 함께 묶다, 대적하다, 괴롭다, 도륙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반석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반석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는데 장정만 60만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이며 많은 가축들이 먹을 수 있는 양의 물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엄청난 양의 물이 반석을 통하여 흘러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호렙 산에서 목마른 자들에게 은혜를 공급해 주시는 산입니다. 광야에서 죽어가는 자들에게 물을 공급하여 살리는 산이 바로 호렙 산입니다. 이 산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이 반석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하고 있는 바위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때리라고 모세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은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이 도륙당하시고 괴롭힘 당하여 영원한 생수가 터져 나온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뜨거운 광야의 세상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생수를 마심으로 갈증을 해소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카이 판테스 토 아우토 포마 프뉴마티콘 에피온 에피논 가르 에크 프뉴마티케스 아콜루두세스 페트라스 헤 데 페트라 엔 호 크리스토스
호렙 산에서 신령한 음료를 모두 마셨습니다. 이 음료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나왔는데 바로 예수그리스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반석도 (추르) 반석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생수를 마심으로 영원한 갈증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뜨거운 광야의 삶이라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나의 영원하신 생수 되시는 예수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이 나오리니’ (야차 3318 VQACZP 동사, 칼, 완료, 공성, 3인칭, 복수) 솟아나다, 넘치다, 흘러나오다, 라는 뜻입니다. 모세가 반석을 때리니 물이 반석에서 솟구쳐 올라오는데 엄청난 양의 물이 흘러넘치고 있는 것입니다. 주변에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목마른 자들은 신이 나서 춤을 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이 쏟아져 나오는 곳으로 일제히 모여들어 물을 마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물은 조금만 나온 것이 아니라 많은 양의 물이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수가 아닌 복수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져서 마시고 배가 부를 정도로 먹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대하5:10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그들과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에인 바아론 라크 쉐네 하리호트 아쎄르 나탄 모셰 비호레브 아쎄르 카라트 아도나이 임 베네 이스라엘 비체탐 미미츠라임
호렙 산은 어떠한 곳입니까? 모세가 성막의 식양을 받고 법궤를 만들어 십계명 돌 판을 넣은 곳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의 언약이 세워진 곳이 호렙 산입니다.
우리가 호렙 산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율법적인 신앙으로 하나님을 만나러 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호렙 산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율법의 행위로 가서 자신의 신발을 신고 들어가면 하나님의 진노의 불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신발을 벗고 들어오라고 하셨습니다. 이 땅은 거룩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준비해 주신 신발로 갈아 신고 호렙 산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호렙 산은 은혜가 부족한 자가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목마른 자들이 호렙 산에 들어가면 진리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마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호렙 산에 서 계시면서 준비하신 반석입니다. 이 반석은 낮은 반석으로서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반석입니다. 그래서 고난당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반석입니다. 이 반석에서 생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렇게 생수를 마신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아야 합니다. 호렙 산에서 모세가 사명을 받아 애굽에 가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끌어 낸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그리스도의 생수를 먹고 살아난 자들은 세상으로 들어가 죄악으로 죽었던 자들을 이끌어내어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이제부터 세상에서 살다가 고난이 있거나 힘들거나 괴롭다면 호렙 산에 계시는 주님을 만나러 오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