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 알파벳 상형문자 중에서 알파벳 아인은 눈이라는 상형문자입니다. 샘물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눈은 육체의 눈도 있지만 영적인 눈도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눈이 밝아야 합니다. 눈이 어두우면 예수님을 볼 수 없습니다.
עין(아인)
עין(아인 5869) 눈, 샘
아인은 눈에서 나온 상형문자로 진리의 핵이며 분별력을 뜻하는 것으로 진리를 통하여 분별하는 안목이 생긴 것을 나타낸다. 눈은 시각기관으로 몸의 등불이며 중요한 정보통로로 가시적인 것, 보는 것, 그리고 응시하는 것, 출현하는 것의 차원에 속하는 모든 것이다. 하지만 사라지는 것, 숨겨지는 것, 은폐된 것도 또한 표현한다. ‘아인’의 꼭대기에 두 개의 가지 모양이 있다. 그 각각은 눈을 나타내고 두 선은 내려가서 한 선과 만난다. 그리고 이것은 중추신경조직 속으로 들어가는 모양의 물체와 같이 보일 수 있다.
진리의 핵심은 영안이 열려야 보인다.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이 열리면 온 지체가 밝게 된다. 사람 속에는 영혼과 육체가 있다. 하나님의 사상 안에서 이 지체들이 질서를 가질 때 영안이 열린다. 이처럼 ‘눈’이란 뜻이 있는 ‘아인’은 모든 문제의 질문에 대답하게 하는 규정된 것으로 그 대답은 곧 그리스도 예수이며 그리스도 예수가 없이는 어떤 답도 명확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눈으로 하나님께서 계시하여 보여주신 것을 직접 보고 경험한다는 의미이다. 구원받은 백성은 보이지 않는 신령한 하나님의 나라를 알고, 경험하며, 깨닫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노아는 하나님의 눈에 띄었다고 했다. 노아의 의로움이 하나님의 눈에 발견되어 진 것이다. 이렇게 ‘아인’은 보고, 경험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토라에는 여러 번 ‘하나님이 보셨습니다, 하나님이 아셨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물리적인 눈을 가지고 있지 않으심을 안다. 하나님은 살피시고, 통제하시며, 그리고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관여하신다. 토라에서 최고의 구절은 ‘이 해의 시작부터 이 해의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눈이 이스라엘을 보호하신다.’는 말이다. 그것은 그 해의 시작에서 그 해의 마지막까지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눈 때문이다.
‘아인’은 칠십(70)에 해당한다. 우리는 어떤 수의 십 배수는 그 수의 완전한 계시라고 배웠다. 칠십은 칠의 십 배수이다. 하나님이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쉬셨고 첫 번째 안식일을 가지게 되는 의미로 우리는 엿새 동안 일하고 칠일 째에 쉰다. 그러나 창조에 있어서 안식일에 쉰다는 것은 창조의 완성과 창조의 목적 그 이상까지도 의미한다. 수많은 유대의 군인들이 광야로 갔을 때 야곱의 자손들의 수 칠십명 이다. 광야에서의 장로들과 산헤드린 공회의 칠십 인의 멤버들이 있다.
‘아인’에 대한 최고의 묵상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어떻게 존재하시는지, 그의 섭리가 우리에게 어떻게 개입하시는지,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서 다른 국면들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 우리를 사랑으로 바라보시는 하나님에 의해 나타나듯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인도되고 있는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무교병’ עוגה (욱가 5692)
출12:39 그들이 애굽으로부터 가지고 나온 발교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으니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나므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며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발교되지 않은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워서 먹는다. 이 무교병은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을 먹는 것이다. 아무 죄도 없으시고 거룩하신 주님의 살을 먹는 것을 의미한다.
‘무교병을’ עוגה(욱가 5692) 떡, 과자, 전병이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עוג(우그 5746) 굽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무교병을 만들려면 불에 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을 예표한다. 뜨거운 화덕에 들어가서 빵이 구워져야 만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거룩한 몸이 찢어지고 죽으셔야 만이 선택받은 백성들에게 좋은 음식이 되는 것이다.
‘욱가’의 히브리적 의미는 진리의 복음 말씀을 운반하여 죽었던 자들에게 호흡할 수 있게 하시고 살아난 자들이 하나님께 예배의 삶을 살면서 통찰력 있는 눈으로 영적인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한다는 의미이다. 주님의 살을 먹는 자들은 영적인 눈이 열려 하나님과 교제하게 된다. 이런 자들은 신령한 자가 되어 세상의 육적인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됨으로 항상 주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항상 주님의 거룩한 떡을 사모하고 먹어야 한다.
‘겸손’ ענוה(아나바 6038)
잠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사람이 겸손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면 재물과 영광과 생명을 보상으로 받는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겸손한 삶을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은 축복하신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께 큰 상급을 받는다.
‘겸손’ ענוה(아나바 6038) 겸손, 온유함, 이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ענה(아나 6031) 수고하다, 고난당하다, 괴로워하다, 쇠약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성경적인 겸손과 온유는 다른 사람 때문에 고난당하고 고통당하여 괴로워하며 쇠약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실 필요가 전혀 없으셨던 분이다. 하지만 죄악에 빠진 나 때문에 고난 당하셨다.
‘아나바’의 히브리적 의미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과 결합이 되어 죽었던 자들이 호흡하게 되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항상 하나님을 경험하고 말씀으로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 겸손한 사람은 예수그리스도 진리의 말씀과 연합이 되어 있는 자이다. 그래서 세상의 것을 좋아하지 않고 복음의 말씀 듣기를 좋아하며 예수님 때문에 고통당하는 것을 기뻐하는 자이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을 즐거워한다. 하늘에 대한 천국을 소망하기 때문이며 천국을 경험했기 때문이다.